어린 날의 영웅, 린킨파크를 추억하며

by lure
15875073505_555fc7bba2_o.jpg Linkin Park, O2 Arena, London (출처: https://flic.kr/p/qbPUgT)


오늘 아침, 난 믿을 수 없는 기사를 보았다. 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 사망... 자살 추정. 공허하고 먹먹했다. 나의 유년, 청소년기를 함께한 린킨파크는 영원히 앨범을 내고 계속 활동할 줄 알았다.


내가 린킨파크의 노래를 처음 접한 건 아마, 초등학교 5-6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2004~2005년 정도. 처음으로 MP3라는 것을 가진 나는 좋은 음악을 찾아 넣고 싶었다. 비록 128MB, 그러니까 20-30곡 정도 밖에 넣을 수 없는 용량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걸로도 행복했다. 수업 중일 때를 제외하고는 난 항상 MP3를 귀에 끼고 있었다. 집에서건 어디서건 말이다.


내 MP3에 처음 들어갔던 곡들. Creed의 With arms wide open, Nickelback의 Too bad, Green day의 basket case와 같은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가수보다도, 린킨파크의 노래가 내 MP3에 가장 많이 담겼다. 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 때 지식인에서 여러 사람들이 추천해줬는지도 모를 일이다.


220px-MeteoraLP.jpg 2집 METEORA

FAINT


가장 많이 들었던 린킨파크의 음악은, 아무래도 METEORA의 Faint가 아닐까 한다. 스타리그 오프닝 곡으로도 사용되었고 한국에서 여러모로 널리 알려졌던 곡이니 말이다.


220px-Collision_Course_CD-DVD_cover.jpg JAY-Z와 LINKIN PARK의 콜라보, Collision Course

그 외에도 한동안 린킨파크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다. 정규앨범의 곡들, 제이지와 협업한 앨범 등등. Jigga what/Faint는 가사를 프린트해 외우기까지 했었다. 그 시기까지 나왔던 린킨파크의 노래는 모두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린킨파크를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린킨파크, 뮤즈와 같은 몇몇 밴드의 곡만 듣다가 외국에 다른 가수와 밴드도 많네? 우리나라에도 좋은 가수들이 많네? 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입맛이 변하듯 음악 취향이 변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는가.


220px-Minutes_to_Midnight_cover.jpg 3집 MINUTES TO MIDNIGHT

WHAT I'VE DONE


그렇게 나는 한 동안은 랩과 힙합만을, 또 어떤 때는 퀸과 비틀즈, 보위의 올드 팝만을, 언제는 국내 인디밴드들의 음악만을 듣기도 했다. 고등학교 이후 수 년간 린킨파크의 곡은 거의 듣지 않았다. 아마 마지막으로 들은 앨범이 minutes to midnight, 그리고 싱글로는 busta rhymes와 협업한 we made it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몇달 전, 우연히 린킨파크의 Castle of glass를 들었다.


220px-Linkin_Park_-_Castle_of_Glass.jpg

CASTLE OF GLASS


과거의 린킨파크가 아니구나, 나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곡이 나빴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린킨파크에 기대한 음악이 아니라 당황한 것 뿐이었다. 메탈과 스크리밍이 아닌 잔잔하고 음울한 체스터의 보컬과 음악. 하지만 그 나름대로 좋았다. 아니, 좋았던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굉장했다. 내 스스로에게 '린킨파크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찍고 또 다른 길로 나아가는데, 나는 그 동안 얼만큼 성장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 이후로 과거 들었던 린킨파크의 곡들, 그리고 내가 듣지 못했던 곡들을 조금씩 들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체스터의 부고를 접했다. 나는 린킨파크의 공연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그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본 적도 없다. 하지만 체스터의 죽음이 왜 내게 이런 기분을 주는 걸까. 어쩌면 나의 유년기에 친구들, 가족들보다 큰 영향을 준 것이 린킨파크이기 때문은 아닐까.

6181830999_8c453bedd7_o.jpg Chester Bennington (출처:https://flic.kr/p/aqguZ6)

이 글을 쓰며 Castle of glass를 듣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우울하게 들리는 건, 오늘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직 체스터의 죽음이 잘 믿기지 않는다. 조만간 린킨파크의 앨범이 나오면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목소리가 담긴 곡이 나올 것만 같다. 나는 린킨파크의 열성적인 팬은 아니다. 나이를 먹고 그들을 알았다면 열성적인 팬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어릴 때 알았던 탓에 그들은 내 유년의 일상의 한 장면이자 추억으로 박제되었다. 하지만 체스터의 죽음은 나를 알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들게 만든다. 더 이상 린킨파크의 신곡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마치 나의 유년을 부정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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