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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Sep 25. 2020

DMZ 다큐영화제 감상일지(3)

1. 카니발리즘의 시대(Days of Cannibalism)

광저우에 간 흑인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곧장 남아프리카의 레소토로 공간을 옮겨간다. 레소토에는 최근 많은 중국인 이민자들이 생겨나는 추세다. 일부는 일을 하러 오고, 일부는 사업을 벌이고, 또 일부는 아주 살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는 말없이 그저 담담하게 레소토 사회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중국인과 입찰에서 져 소를 사지 못한 농장주, 일자리가 없어서 소를 훔치는 도둑, 대형 마트를 경영하는 중국인, 중국인에 대한 분노에 찬 노래를 부르는 악사, 레소토의 소를 도축하는 사람들, 그리고 중국인의 상점을 습격한 총기 테러범들.

'카니발리즘의 시대'는 굉장히 인상깊은 영화였다. 레소토 사회의 단편적인 여러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극의 긴장감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편집, 영상미가 느껴지는 장면들, 거기에 영화를 관통하는 또렷한 중심 메시지까지 지닌 영화다. 특히 등장인물의 감정이 잘 드러나게 구성한 편집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극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카니발리즘이라는 제목, 식인은 비유적 의미다. 인간 사이의 갈등과 피해를 주고 받는 것을 식인으로 비유한 것이다. 감독이 '카니발리즘'으로 지적하는 것은 중국인의 레소토 인에 대한 카니발리즘이다. 많은 자본을 가진 중국인이 유입되며 전통적인 레소토 사회가 조금씩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레소토인들이 신성시하는 소를 중국인이 요리해 먹는 장면은, 이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다.


반대로, 중국인에 대한 레소토인의 카니발리즘 역시 보여준다. 중국인의 유입에 화가 난 전통주의자들이나 일부 시민들은 인종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급기야는 영화 말미엔, 중국인에 대한 총기 테러 사건까지 발생하고 만다. 


영화는 소가 소의 시체 잔해 위에서 무언가를 씹어 먹는 장면으로 끝난다. 세계화 시대에 뒤섞이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를 잡아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2.인플루언스

PR 전문기업 벨 포팅거의 창업자 팀 벨 경의 경력을 중심으로, 현대 정치와 권력의 구조에서 영향력(Influence)과 광고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무기로 작용하는지 살펴보는 영화다. 그는 영국의 전 수상 마가렛 대처의 3선을 견인하였으며 이후 칠레,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등 광범위한 국가의 정계에서 의뢰를 받고 PR 및 로비 활동을 지속해왔다.


2017년, 벨 포팅거는 남아공의 정치 스캔들에 관련해, 주마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돌리기 위해 물밑에서 인종 차별을 조장해왔다는 혐의를 받는다. 팀 벨은 이에 대해 부정했으나, BBC 스타나이트의 생방송 인터뷰 중 공개된 그의 유출 이메일을 통해 사실임이 드러나고, 팀 벨과 벨 포팅거 사는 몰락한다. 

영화에서 팀 벨의 이야기를 들으며, 왠지 모를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독재자가 비인륜적인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돕고, 자신의 일에는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것은 없다고 말하는 그.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 '나와 관계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팀 벨을 보고 있자니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보는 듯한 불쾌감이 들었다.


영화는 그런 벨의 발언과, 그가 정치적인 광고 및 로비활동을 한 국가의 참상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인플루언스'는 내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도덕' 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큰 권력을 가진 만큼 일반인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져야한다. 하지만 팀 벨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가치 판단 기준은 오직 영달에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명성, 유명세, 영향력, 자본. 비단 벨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권력자가 그럴 것이다. 그런 사람이 아닌, 이타적이고 대중을 생각하는 사람이 권력을 잡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사회 체제는 무엇일까? 그 동안은 민주주의가 그나마 거기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왔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에 대해 약간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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