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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re Nov 26. 2020

쓰르라미 울 적에

게임 전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쓰르라미 울 적에 1챕터, 오니카쿠시

1.


내가 정말 이걸 다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긴 플레이타임 끝에, '쓰르라미 울 적에'를 끝냈다. 나는 1챕터를 하고서야, 쓰르라미 울 적에가 비주얼 노벨(혹은 사운드 노벨이거나)이면서 생각보다 큰 볼륨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서야 내빼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미 발을 담궈 버렸으니, 이제 와서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제작자가 내미는 수수께끼의 해답이 궁금하기도 했고.


'쓰르라미 울 적에'에 대해서, 무엇부터 말해야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도 그럴게, 반전 요소도 너무 많고 각 편마다 분위기도 상당히 다르다. 1편과 2편은 '두근두근 문예부' 같은 공포 미연시 같고, 3편은 상당히 부조리극스러우며(전체적인 플롯은 '살인자의 기억법'과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진다), 5편은 연애 심리물, 6편은 블랙 코미디, 그리고 7편과 8편은 소년만화 같다(4편은 별 특징이 없으므로 넘어가자). 전반적으로 심리극에 가까운 기조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사토코처럼, '쓰르라미 울 적에'의 시나리오 라이터는 상당한 트랩의 명수다. 각 챕터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그림을 보기 어렵게 하기 위해 여기 저기 덫을 놓는 등 상당히 공을 들였다. 대단한 점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런 트랩에 걸린 1인칭 화자의 심정을 이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1챕터만 하고 보면 히나미자와는 꼼짝없이 미친 마을인 것 같고, 2챕터를 하고 나면 소노자키 가가 역시 악의 축 같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점이, '쓰르라미 울 적에'를 추리물로서는 높이 평가할 수 없게 만들기는 한다. 앞 챕터에서 전혀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 뒷 챕터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며, 풀 만한 트릭은 전혀 없다. 일어나는 사건은 그저 그 자체로 수수께끼 덩어리일 뿐이다. '쓰르라미 울 적에'가 미시적인 사건에 대한 추리보다는 거시적인 추리를 요구하기는 게임이기는 하지만, 그걸 알아내기에도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정보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6챕터에서, 류구 레나

2.


연작 영화라 할 지라도, 영화의 각 편이 마땅한 작품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 영화는 고평가하기 힘들다. 그것이 전체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진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쓰르라미 울 적에'의 각 챕터 역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마땅한 타당성과 작품성을 가진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가장 고평가하는 챕터는 3챕터다. 결말이 약간 될 대로 되라식이긴 하지만 챕터 하나로 이야기의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이 광기에 녹아드는 동기와 그 묘사, 그리고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후 부조리함을 체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여러 면에서, 3챕터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플롯과 비슷하다. 주인공이 가까운 인물을 위해서 그녀를 위협하는 인간을 살해한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주인공에게, 세상의 부조리가 닥쳐온다. 결국 그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 채 기이한 세계에 던져진다.


3챕터에서 이 부조리한 세계의 역할은, '살인은 올바른 해결법이 아니다' 라는 제작자의 암시다. 게임은 '이런 상황에 몰리면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살인으로 만들어진 비극을 보여주며, 제작자는 꾸준히 해결로서의 살인을 부정한다(6챕터 정도부터는 직접적으로 말한다).  그걸 처음으로 스토리에서 드러낸 챕터가 3챕터다. 즉, 3챕터는 단일한 이야기로도, 시리즈 전체의 구성으로도 제 역할을 다 해내고 있다.


그 외에 괜찮게 느껴졌던 이야기는 5챕터와 6챕터(그 지루한 일기토를 제외하고), 그리고 굳이 하나를 더 넣자면 2챕터 정도다. 나머지 챕터는 전체 시나리오에서는 모두 의미가 있지만, 단일로는 글쎄,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마을 축제 와타나가시에서, 주인공과 친구들

3.


게임을 하며, 제작자가 정말 시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매 챕터 처음에는 시가 나온다. 그 시는 해당 챕터의 분위기, 주제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쓰르라미 울 적에' 라는 게임 전체도, 하나의 시다. 여러 챕터를 한 뒤에 되짚어보면 게임은 단일 챕터 내에서도, 그리고 전체적으로도 사건의 운율을 맞추는 데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1챕터 프롤로그에 나오는 맹목적인 사과. 죄가 게임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만큼, 그런 맹목적인 사과가 여러 챕터에 걸쳐 많이 나온다. 플레이어는 처음엔 그 사과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게임이 끝날 즈음에는 그것들의 의미를 알게 된다. 한 챕터 내에서의 예시는, 3챕터에서 케이이치가 말하는 '살아있을 권리'다. 일상 파트에서 남자 후배가 케이이치에게 자신을 돕는 대가로 수업 시간에 잘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고 말하는데, 이건 케이이치가 살아있을 권리를 이야기하며 저지르는 살인을 예고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의 전개와 결말이 얼렁뚱땅 나온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챕터를 쓰고 뒤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또 다음 챕터를 쓰고 뒤의 이야기를 급조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몰라서 소년 만화식으로 이야기를 매듭 지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 자체가 훌륭하게 짜여졌는지는 아닌지 제쳐두고, 분명 공들여 깎은 완결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게임의 운율을 보면 확실히 그걸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쓰르라미 울 적에'는 스토리의 결이 너무 심하게 들쭉날쭉하며, 추리물로도 낙제점이고, 결말부의 전개는 갑자기 히어로물이 된 것 마냥 상당히 얼토당토 않다. 이것은 제작자가 자신이 원하는 결말로 스토리를 유도하기 위하여 상당히 무리수를 많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작자가 스토리에 이렇게나 무리수를 둔 이유가 뭘까? 나는 그것이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쓰르라미 울 적에'는 그 심각성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동화나 소년만화 같은 전형적인 교훈을 남긴다. 사람들이 마음을 트고 협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교훈. 물론 제작자 본인이 여담에서 밝히듯, 현실은 그렇게 물렁하지 않다. 그래도 제작자는, 그것이 교과서적인 입바른 소리일 지언정 그 교훈을 꼭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삶은 게임과 달리 선택지가 없다. 그렇다면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여러 사람과 이야기해보며 더 좋은 결말로 향해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제작자는 도시화된 우리에게 히나미자와라는 시골을 통해 메시지를 남긴다.


개인적인 점수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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