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의 단편 영화
AV 관련 작업을 하는 남자 유조, 그리고 17세의 나이로 살해당한 여자 귀신 미츠키. 둘은 미츠키가 살해당한 후 15년 간 기묘한 동거생활을 지속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유조는 미츠키의 동생 사츠키에게, 언니에 대한 다큐멘터리리를 만들기 위한 인터뷰를 요청받는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15년 전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밝혀지기 시작한다.
어떤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이 부재한 상황이나 인물을 제시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젊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노인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이 제일이고, 인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인간성이 사라진 디스토피아적 사회를 묘사하는 게 제일인 것처럼 말이다.
<천국은 아직 멀어>는 삶과 생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걸 빼앗긴 주인공 '미츠키'를 등장시킨다. 그렇지만 사실 삶을 상실한 것은 그녀 뿐이 아니다. 사츠키는 언니의 죽음이 가족의 해체를 불러왔다는 아픔과 '언니 대신 내가 죽었으면 우리 가족은 조금 더 나았을까'하는 이유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유조는 매일 AV 영상을 보면서도 정작 자신의 욕구는 자위로 처리하는 식의 의욕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삶의 의지를 상실한 둘, 아니 셋이 만난다. 인터뷰 과정에서 미츠키가 유조에게 빙의되면서, 자매는 재회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난 후, 사츠키와 유조는 이 인터뷰가 서로에게 일종의 치료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츠키는 유조를 매개로 언니와 만나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고, '언니 대신 내가 죽었으면 조금은 나았을까' 라는 이유 모를 죄책감을 어느 정도 치유한다. 그리고 유조는, 그 과정에서 미츠키의 영이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타인과 육체적으로 연결된다.
영화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와보자.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고립되어 있다. 아무리 활발하고 붙임성 좋은 사람일지라도 본질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활발해보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사실 외로움을 많이 탐' 이라는 심리테스트 문항에, 괜히 많은 사람들이 내 얘기라고 공감하는 게 아니다.
특히나 거품 경제가 꺼진 이후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소위 말하는 '히키코모리'가 과거부터 꾸준히 일본 사회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니까. 이건 비단 남의 얘기는 아니다. 최근 청년층에도 고독사가 늘어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천국은 아직 멀어>는 이런 고립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거시적인 측면보다는 개인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 타인과의 결합, 사회화, 만남 등.
"천국은 아직 멀어" 라는 미츠키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끝난다. 인상적인 수미상관이다. 시작의 독백은 미츠키의 멍한 눈빛과 더불어 마치 여기에 남겨져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인상을 주는 반면, 마지막의 독백은 살아갈 의지를 표명한다. 빗방울이 내 몸에 떨어지지 않더라도, 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더라도, 몸이 없이 영만 남아있더라도, 비가 내리는 걸 볼 수 있다면, 빗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유조와 사츠키를 치켜볼 수 있다면, 천국이 아닌 지상에 살아갈 의미는 아직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