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지 우승 감상기
1 라운드 -8으로 압도적 1위. 2라운드 -11로 1라운드 대비 다소 부진했으나 결과는 다른 선수들 대비 역시 압도적 1위. 3라운드, +3으로 합계 -8. 점수를 좀 까먹기는 했어도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성적이 썩 좋지않아 3타차 선두. 3라운드 16번홀 파5의 더블보기는 좀 아쉬웠다. 버디를 노리는 홀인데 투 오버면 상당한 데미지. 아마도 그만큼 심리적인 압박이 심했을테지.
대부분의 경기가 오후 6시 전후에 끝나도록 시간 셋팅이 되는데 이번 대회는 4시에 끝나도록 되어 있다. 중계하는 NBC의 스케쥴 때문인지, PGA 대회에 밀린 고육지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요일 오후 우리 선수들을 볼 수 있는 LPGA와 기량이 출중한 PGA를 모두 볼 수 있는 중계일정이라 나쁘지만은 않았다.
외출에서 일찍 돌아온 나는 후다닥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은 다음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낸 후 텔레비젼 앞에 앉았다. 전인지가 우승하는 모습을 봐야할 것 아닌가 말이다. 성적을 보는 순간 아 하는 짧은 탄식이 절로 나왔다. 렉시 톰슨 -6, 전인지 -4. 오늘도 전인지는 전반에 4타를 까먹고 있네. 중계 화면에 잡히는 전인지는 간간이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다. 렉시도 만만치 않고. 그런데 나는 왠지 전인지가 우승할 것만 같아서 TV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가 렉시였기 때문에.
10대때의 렉시는 펄펄 날았다. 20대초반까지도 렉시는 미국 여성 골프계의 샛별. 그러나 20대 후반으로 오면서는 우승 기록이 없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잘 나가다가도 마지막 라운드 백 나인에서 무너진 경우가 많았다. 왠지 모르지만 10대때의 거침없는 자신감은 사라지고 새가슴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날도 렉시는 1M도 안되는 퍼팅을 4개나 미스했다. 이 중 두개만 들어갔어도 우승은 렉시에게 돌아갔을텐데.
11번 파5에서 두 선수는 나란히 버디를 기록해 두타차가 그대로 이어졌다. 12번홀에서도 사이좋게 둘다 보기를 하는 바람에 역시 두타 차이. 그러나 14번에서 전인지 선수가 파를 하는 동안 렉시가 짧은 파 퍼트를 놓치면서 보기를 범하는 바람에 한타 차이로 좁혀지고. 흔들리는가 싶던 렉시가 15번홀에서 버디를 하면서 다시 두타차이로 벌어지고. 승부처는 파5인 16번홀. 전날 이홀에서 전인지는 더불보기였는데.
전인지의 드라이버는 렉시보다 짧아서 투온은 무리. 그러나 렉시는 장타답게 투온을 노리면서 친 공이 그린 앞 벙커 근처에 떨어졌다. 그 정도면 3온후 충분한 버디 찬스. 전인지는 무리하지 않고 3온, 역시 버디를 노릴만한 거리. 그러나 렉시가 친 공은 그린을 넘어 뒤쪽으로 흘러버려 결국 4온. 그런데 4번째 친 공 조차 홀에서 멀리 떨어지면서 파로 막기도 벅찬 상황. 전인지는 침착하게 버디로 홀 아웃하고 렉시는 결국 보기. 이것으로 승부는 원점.
17번에서 렉시가 친 공은 오른쪽 러프로 들어갔으나 두번째 샷을 그린에 올리는데 성공. 그러나 통한의 3퍼트, 그것도 아주 짧은 두번째 퍼트를 놓치면서 보기. 파를 기록한 전인지가 마침내 1타차 선두. 승부는 그것으로 끝났다. 오랜만에 정말 집중해서 재미있게 본 골프 중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