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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12. 2017

오피스-소외된 자들의 이야기

그는 칼을 들었고, 손에 피를 묻혔다

영화 '오피스'는 스릴러물이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흥행시키기 위해 감독은 영리한 선택을 하는데,

극중 배경을 '사무실'로 차용한 것이다. '사무실'이라는 현실적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내정치, 파벌, 동료사원 간의 견제와 암묵적인 경쟁은 현재 직장인이거나 과거에 직장인이었던, 또한 더 넓게는 '조직사회'를 체험한 이들을 영화 속 상황으로 이입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들의 공감과 좀 더 현실적인 공포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이는 오피스가 기존의 다른 공포물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경쟁력을 갖게 하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같은 팀원이자 상사를 죽인 '이미례'는 왜 그런 일을 벌였으며, 살인마가 되었을까. 단순히 그녀가 살인을 통해서만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여서 그랬을까. 영화는 천대받는 '계약직 인턴 이미례'를 조명한다.

살인마의 행적과 심리를 이토록 집중조명하는 이유는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녀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며, 극 중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극중 그녀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자, 시퀀스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얼마나 위태로운 환경에 놓여 있으며,

침착하던 인물이 왜 극단적인 성격으로 변모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디.


같은 공간에 있어도 동료 사원들에게 소외당하는 미례. 그들은 암묵적인 무시의 눈길을 보낸다


그녀는 직장인이다. 정식 사원이 아닌 인턴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녀는 사무실 내 자신의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한다. 동료들은 그녀의 성실함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 혐오하고 배척한다.

그들에게 직장이란 매일의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치열한 '전쟁터'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두 얼굴의 가면을 쓴다. 그들은 승진에 대한 욕망, 타 사원의 업무성과와 실적을 가로채 자신의 공으로 둔갑하고자 하는 욕구들을

가면 뒤로 숨긴 채 평범한 사원으로 둔갑한다. 가식과 정치에 능한 이들과 다르게, 미례는 그러나, 자신의 민낯을 숨길 줄 모르는 인물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노력하면 상부로부터 인정받아 정사원으로 발령날 수 있을 거란

희망과 기대에 남들이 시키지 않은 일도 성실히 수행하며, 요령을 피울 줄 모른다. 때문에 그녀는 일상의 사소한

경쟁에서 늘 패배했다. 그녀는 일선에서 가장 열심히 뛰었지만, 진급의 기회는 다른 사원이 가져가고, 듣는 건 핀잔과 무시뿐이다. 때문에 그녀는 늘 열성을 다하면서도, 언제 조직에서 퇴출당할 지 몰라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같은팀 사원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칼질과 폭력은 미례의 억압된 환경에서 일차적인 원인을 갖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아를 실현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일차적 욕구가 있다. 미례는 생존권 이전에

이러한 욕구를 달성하지 못하고 늘 억눌려있었다. 조직 안에서 가장 하급자라는 이유 만으로, 미례는 각종 차별과 폭언, 불친절에 익숙해져야 했다. 외부 환경에 의해 억압된 미례의 자아는 핀치에 내몰린 끝에 '칼'을 통해서 뒤틀리게 표출되기에 이른다.

미례는 성실함과 열정으로 조직과의 합일을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정한 위치는 그녀의 바램과는 다르게,

그녀를 사내왕따 대상자로 만들었으며, 소외를 버틴 보상은 채용이 아닌, 계약만료라는 퇴출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한 채 조직에서 제외된 '미례'는 비로소 자신이 '김과장'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는다. 김과장과 미례 둘 다 내 회사처럼 일했지만 조직에서 쫒겨난 인물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례는 부적처럼 품고 있던 '칼'을 도구로 보복을 결심한다.


미례가 칼을 쥐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정신적인 공포보다 더 무서운 '물리적 공포'만이 미례가 자신을 무시하고 소외시켰던 이들보다 더 우위에 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의도대로, 죽음의 공포에 대면한 팀원들은 너나할것 없이 벌벌 떤다. 자신을 하대했던 이들이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며 미례는 그간의 고통이 보상받은 것 같은 희열에 잠긴다. 

소심하고 숫기없고, 자신을 감출 줄 몰라 늘 민낯 그대로를 내보이던 미례는 그렇게 살인마가 되고, 사이코패스가 된다. 보복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그리고 이 지점에서 김과장과 미례는 공범이 되며, 타인의 눈에 동일시된다. 김과장이 미례이고, 미례가 김과장이 된다.

조직에 수용되지 못하고 배척당한 결과,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달은 미례는, 자신이 당했던 수모와 정신적인 고통을 그들도 똑같이 느꼈으면 하지만 자신의 지위로는 역부족임을 깨닫는다. 이미 해고가 예정된

'미례'는 그렇기에 '칼'이라는 위험한 도구에 기대어 자신의 소망을 실현한다. 그들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줌으로써 그들도 자신처럼 불안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상상하고, 이를 직접 실천하기에 이른다.


김과장에 빙의한 듯 여성의 신체력을 능가하는 무력으로 가해자들을 응징하던 그녀는 그러나, 복수의 진행 과정에서 자신이 휘두르던 칼에 도리어 자신이 찔리게 된다. 칼날이 남긴 날카로운 상처에 그녀가 가장 먼저 꺼낸 첫마디는 '아파, 너무 아파요'였다. 그 '실제적인'고통은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에게 미례가 준 것과 동일했다.

오피스는 조직 안에서 소외된 자들과 소외시킨 자들이 서로 고통을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투쟁하는 한편의

'아귀도'이다. 영화에서 '회개'나 '용서'같은 구원의 메세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용서할 생각도, 용서받을 생각도 없다. '생존'이라는 일차적인 욕구, 오직 그것만을 위해 인간이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추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영화 오피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모호하며,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부분이기도 하다.


'승진'이란 기존의 욕구가 '생존'이라는 일차적인 욕구로 환원된 것 뿐이다.

인간애가 소거된 자리에 남는 것은 악귀들의 생존경쟁 뿐이라는 점을 영화는 피의 복수극을 통해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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