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고독하다고 늘 하는데, 살아보니까 결국은 저 혼자 외톨이가 될 뿐이라고 깨닫는 데에서 나온 소리일 테지요.
누가 무어라 했건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일 건 없습니다.
꿈만 잃지 않으면 됩니다.
꿈을 잃지 않는 사람에겐 때가 묻지 않습니다.
공 때리기 놀이에 공을 피하듯 이러쿵저러쿵 장애물이 당신을 때려눕히려 하더라도 요리조리 피해봅시다.
세월 속에서 때까지 묻히고서야 억울하고 원통해서 어쩝니까"
-최정희 수필 -
고등학교 3학년 때, 문제집을 풀다 문학 지문 하나를 후다닥 훔쳤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더 이상 문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근두근. 글귀가 내 마음 어딘가를 토닥이는 기분이 들어 두근거렸다. 그 토닥거림의 장단이 마치 응원가를 닮아 동동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 좋다" 글이 퍽 마음에 들었다.
문제를 풀 마음은 달아났다. 의자 뒤로 매둔 가방을 휘적거려 분홍색 포스트잇을 꺼내 개미만 한 글씨로 글을 옮겼다. 그리고 필통 앞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다. 그때부터 내내 '내 글'로 훔쳤다.
꿈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매 순간이 억울하고 원통했던 수험생의 분노를 "꿈"이라는 단어에 누르고 눌러 담아 참아냈다.
고등학교 3학년. 고3.
지금 외국친구들에게 내 고3 때, 스케줄을 이야기하면 쉽게 믿지 않는다.
얼굴 근육을 있는 데로 일렁거리며 "거짓말 살이 너무 많이 붙었다"라거나,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하냐"라고 눈썹을 찌푸린다.
기억에 의존해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스케줄이었다.
1교시 전, 0교시 자율학습을 시작으로 8교시까지 수업이 이어진다. 50분 수업에 10분 휴식.
그리고 약 2시간의 보충학습으로 가장 중요한 '국영수' 중 두 과목을 번갈아 듣게 된다.
그때부터 지루하고 긴 자/ 율/ 학습이 시작된다.
어떤 '찬란한 봄의 슬픔'님께서 이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자율 학습에 자율적인 건 아무것도 없다.
반 전체가 수업시간과 똑같이 정갈하게 앉아 문제집을 풀거나, 스스로 모의고사를 쳐본다.
짧은 석간 시간을 지난 구간을 야간 자습이라고 불렀고, 밤 10시 이후의 자습을 심야 자습이라고 했다.
줄여서 오자, 야자, 심자.
편의상 이름만 나눴지, 매일 밤 6시간 정도 끝없는 자습이 이어질 뿐이다.
그렇게 아침 7-8시부터 자정이 가까운 밤 11시 30분이 돼서야 터덜터덜 교문을 나선다.
더 무서운 건 이 일정은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20년도 더 된 옛날 옛적 곰팡이 같은 이야기이다.
그때 난 힘들었다.
하루 저녁은 가족끼리 두런두런 앉아 치킨을 먹다 문득 내 처지가 너무 서러웠다. 치킨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와락 눈물이 흘러, 닭다리를 양손에 든 채로 뚝뚝 눈물을 흘렸다. 찐득한 치킨 양념이 양손에 묻어 눈물을 닦기도 애매했다. 뭐가 서러웠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서럽고 분통이 터져 안에 무언가가 푹 솟구쳐 올랐다.
앞에서 말갛게 보던 가족들이 당황해 고요해졌다.
열여덟 살이었다.
똑같은 교실에 갇히기엔 너무나 에너지가 넘쳐 몸이 근질거렸고, 수학의 정석만 읽기에는 감수성이 터져 나왔다.
'고작 1년을 못 참냐'라고 다그치는 어른들이 말하는 그 1년은 늘어질 데로 늘어져 시간이 흐리게 흘렀다.
그래서 난 꿈에 매달렸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슴팍이 답답할 때마다 꼬깃꼬깃 포스트잇에 적어 접어둔 저 글을 끄집어내서 읽고 또 읽었다.
다행히도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매번 작은 응원가가 가슴팍에서 동동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일었다.
그 글이 연상시키는 꿈이
HOT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방송국 PD가 되고 싶다던가,
그림을 잘 그렸다는 칭찬을 들어서 미대에 가고 싶다던가 하는 이전에 가졌던 직업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조금 더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교단 뒤로 선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수능 이후로 펼쳐진다던 그 유토피아.
그 모습이 내가 붙들고 서있던 꿈의 모습이었다.
"대학에 가면 팔랑거리는 분홍치마를 입고, 살구색 하이힐을 신어야지.
곱고 차분한 머리끝은 꼭 안쪽으로 굽어진 C컬을 넣고 머리띠를 하고.
필통하나 겨우 들어가는 작은 백팩을 메고, 전공책은 손에 들고.
훈훈한 남자친구와 벚꽃 핀 교정을 여유롭게 걸어 다니는 여대생"
똥머리에 앞머리에는 야무지게 실핀까지 꼽고 기계처럼 문제집을 풀어대는 내게 꿈은 그런 재질의 것이었다.
그 사진 같은 꿈이라는 단어를 움켜쥐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이러쿵저러쿵 매일같이 피구공에 맞아 터져 나가면서도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었다.
가진 거라곤 꿈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