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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ug 09. 2023

슈뢰딩거와 복식부기

고백하자면, 난 회사에 들어가서야 공부에 심취했다.

'평생 공부할 사주'라고 단정 지었던 사주 아저씨의 말이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 일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새 교수님이 오셨다. 정교수로 취임했는데도 파격적으로 젊어서 화제였다. 미국 어디 엄청 좋은 대학에서 박사까지 취득했다고 했다. 기본 세팅이 웃는 상인 교수님은 술도 세서 당할 수가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야말로 공대가 사랑하는 인재였다. 교수님이 담당하는 과목 중에 내가 듣게 될 과목은 양자역학이었다.


수업 첫날 전공책의 첫 장을 열기도 전에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양자역학을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이해하지 못해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 그저 수강신청이 귀찮았다. 인기 있는 과목을 치열하게 비집고 들어가는 게 영 성격에 맞지 않아 그냥 전공 20학점을 통째로 다 신청해 듣던 중이었다. 참고로 난 맛집도 줄 서서 사 먹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있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달랐다. 양자역학은 어지간하면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런 과목을 굳이 신청해 듣는 이들은 의지가 타오르던 갓 전역한 복학생과 성적을 위해 대학의 낭만을 몽땅 포기한 전장 엘리트들, 그리고 새 교수님의 연구실로 대학원을 갈 학생들 뿐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시작도 전에 이해할 생각도 하지 말라니!


"저도 양역학 첫 수업에 딱 그런 표정이었어요. 교수님이 이해할 없다고 이해하지 말라고 잘라 말하더라고요. 교실 끝에 앉아서 책이나 뱅뱅 돌리면서 자리 친구에게 '저게 소리야?' 했어요."


그는 짐짓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우린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세요. 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데로 외워버립시다. 자, 이제 첫 장을 펴서 시작할게요. 여러분 세상 모든 건 웨이브와 파티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책상도 공기도 물도 모든 건 웨이브와 파티클의 집합체예요."


아멘. 교수님이 옳았다. 난 전공책의 첫 장 첫머리부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한 학기 내내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슈뢰딩거 공을 노트에 쓰고 또 쓰며 익혀서 부호 하나 빠트리지 않고 이 그림 같은 공식을 똑같이 그려내는 것뿐이었다. 양자역학은 천재들의 영역이었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공학 자체가 내게 그런 학문이었다.


공부하는 내내 반응식과 끝도 없이 나오는 'XX의 법칙'이라고 이름 지어진 세상 만물의 이치들은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깁스나 슈레딩거, 베르누이, 맥스웰, 볼츠만.... 유명한 화학자들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원망의 대상이었다. 시험기간마다 친구들과 모여 앉아 "그들만 없었어도 이 고생을 안 할 텐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깁스씨?"라며 시답잖은 소리를 했었다. 타임머신이 생기면 뉴턴부터 막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놈의 사과 먹어 치워 버리겠다고.


반면 회사에서 배우는 공부는 달랐다.

똑같이 숫자로 하는 게임인데, 눈에 보였고 똑똑 떨어졌다.


특히 회계는 매력적이었다. Double entry라고 부르는 이 복식부기는 계산의 오류를 찾는데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화공 양론을 배울 때 소수점 다섯째 자리까지 채점한다는데, 소수점 둘째 자리부터 틀린 답을 적고 있던 나로서는 오류를 검증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이 마음에 쏙 들었다.


계약법도 좋았다. 계약법에 명시된 데로 계약서를 풀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새 용어가 많아 읽기 어려웠는데, 읽다 보면 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슈뢰딩거 공을 백 번 손으로 적어봤지만 그 방정식에 쓰인 그 어떤 기호도 진짜 숫자로 치환해 넣을 수 없었다. 하지만, liquidated damange(위약금)와 force majeure(불가항력조), Extension of Time(공사기간 연장)은 차이가 분명히 이해됐다. 그리고 각각을 적용함에 따라 우리 프로젝트에 영향을 숫자로 산출할 수 있었다.


무역법에 따라 운송 방법과 보험, 책임(liability)의 범위를 PO 서류에서 검토하는 게 좋았다. 각 나라별로 FOB를 할지, Ex-work을 할지. 컨테이너에 실을지 charter를 쓸지, 비행기로 서둘러 옮겨야 할지 의사결정을 위한 근거들을 착착 채워나가는 부분이 흥미로왔다.

물론 내 전략은 오류 천지라, 항상 부장님의 꾸지람과 조언을 들어야 했지만 말이다.


실체가 있다는 게 좋았다. 그래서 일과 숫자와 공부에 취했다.

고 3 때 이렇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면, 아마 서울대도 갔겠지.


문제는 럼에도 조바심이 났다 점이다.

가 만드는 결과물들 계속 초라했다. 

내가  초라한 결과물들을 들고 주물 딱 거리는 사이에 기회는 자꾸만 다른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았다. 여전히 업무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주변은 애초에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똑띠들이 숨 막히게 빼곡히 차고 넘쳤다. SKY도 높아 보였는데 해외대를 졸업한 인재들까지 속속 등장하자, 나 따위는 경쟁 선에도 못서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봐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대단했다. 아무리 새벽마다 영어 학원을 다니고 영어 시험을 쳐봐야, 난 그들이 손쉽게 슥슥 만들어 낸 레터를 읽고 따라가기도 바빴다.

하나씩 출력해 밑줄 그어가며, 사전 찾아가며 번역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내가 이런 걸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었다.


"나도 잘하고 싶다. 힝" 

더 잘 해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목구멍에 차올랐다. 수면욕, 식욕만큼이나 원초적인 욕구였다.

나도 칭찬받고 싶고, 잘나고 싶다!!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걸로는 그 갭을 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은 출퇴근 길마다 자기 계발서를 수도 없이 읽었.

판을 뒤집어 버린 청춘, 이것저것 두루두루 천재가 된 홍대리, 신입사원 생활백서, XX처럼 설득하는 말하기, 메모의 힘, 아침형 인간, 며칠 만에 끝내는 MBA...

그리고 그것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용감한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기회가 되면 술과 차를 사며, 회사 안팎의 사람들의 무용담들었다.

깡 넘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책 속의 그 과정을 직접 겪어보니, 글로 줄여놓은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소모적인 일이었다.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이면 아주 가끔 생산적인 조언을 건져 올렸다. 대체로 우당탕탕 거렸지만, 그중에는 가끔 이런 반짝이는 것들도 있었다.

"영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영어만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회사 프로그램으로 미국 MBA에 가 있는 선배가 한 말이었다. 확실히 영어 점수만을 목표로 두던 당시의 내 시야를 확 넓히는 조언이었다. 덧붙여 그는 뭘 하든 학위를 얻고, 자격증을 따서 기록을 남겨 놓으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고심 끝에 난 회사를 다니면서 시도할 수 있는 많은 자격증 중에서 회계를 선택했다.

본격적으로 AICPA(미국 공인회계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신문지 같은 재활용 종이에 영어로 된 수식이 가득 찬 두툼한 AICPA 시험 대비서를 받아 들던 날, 난 던킨 도너츠에서 벤티 사이즈의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그날 오후의 그 공기 맛이 기억난다. 난 고작 '시험을 쳐보자'라고 다짐만 한 상태였는데, 그 어려워 보이는 책이 이미 내 것이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 묘한 만족감에 공기가 몰- 랑하던 주말 오후였다.


이때가 아마 드라마 미생에서 안영이에게 “회계공부는 하고 있나? 빨리 배워둬, 회계는 경영의 언어니까” 하는 조언을 하기 4년쯤 전의 일이었다.

이 드라마가 그 당시에 나왔더라면, 잔뜩 고무된 나는 아마 첨언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감히 너무 똑똑해서 현실감이 없는 캐릭터인 안영이에게도 미생의 차장님 빙의해서,

"안영이 씨. 회계를 빨리 배워. 그리고 가능하면 자격증도 따둬. 혼자 알고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

하고 싶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좀 꼰대였던 것 같다.



"숫자를(회계를) 잘 아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기술을 깊게 이해하는 회계사가 되고 싶은 거예요?"

AICPA 네 과목을 모두 합격했지만, 정작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알게 된 교수님께 면담을 신청했고, 이 질문을 받았다. 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면담 내내 대충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리액션만 하다가, 우물쭈물 자리를 도망쳐 나왔다.


돌이켜보면, 대체 뭐가 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회사의 울타리 밖을 뛰쳐나가 판을 엎어버릴 만큼 용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회사의 어느 부장님이나 어느 상무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도 없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 건지'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닥치는 대로 잘 해내고 싶었고, 목표들을 달성해 뿌듯함을 느끼고 싶었다.

성취감에 중독돼서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하는 고민은 영영 미뤘다.


조금은 오만에 찬 '(감정적인) 워커홀릭'에 '자기 계발 중독'.

부끄럽지만 그 시기의 내 모습이었다.


선명한 사진 같던 꿈은 흐릿한 흔적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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