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씩 빠르게 흘렀다.
아빠는 곧잘 할아버지의 말을 빌려
"나이가 곧 시간의 속도야. 40살은 40킬로로 시간이 지나고, 50대가 되면 50킬로(km/h)로 시간이 가." 했다.
왜 어른이 되면 시간이 빠르게 지날까?
아마, 어릴 땐 의미를 두던 사소한 일들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지 싶다.
언제부턴가 저녁을 먹고 무심코 양치를 하면, '내가 양치를 했나 안 했나' 싶을 때가 있다.
입이 화 - 한가를 잠깐 생각했다가, 아 이미 양치했구나 하고 생각한다.
화장실로 가, 치약을 짜고 3분간 양치를 한다.
컵에 물을 채우고 입을 헹군 뒤, 칫솔을 내려놓는 그 일련의 행위.
이 과정이 내게는 의식해서 행동할 여지가 하나도 없지만, 내 세 살배기 딸에겐 중요한 하루의 일과이다.
미니언 칫솔로 양치를 할지, 엘사 칫솔로 양치를 할지. 딸기맛 치약으로 이를 닦는지, 바나나 맛인지 꼼꼼히도 옥신각신 댄다. 입을 헹굴 때 얼마나 멀리 물을 뱉는지, 충치벌레가 입안에 남아 있는 건 아닌지 매일 묻는다.
그에 반해, 난 더 이상 내 칫솔 색을 고르지 않는다. 칫솔모가 상하면, 서랍을 열고 가장 위에 있는 칫솔을 꺼내든다.
양치질 같은 사소한 하루의 일과들이 기억에서 지워져 간다.
그래서 시간이 자꾸만 빠르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회사생활도 그랬다.
하루하루는 여전히 더디게 흘렸지만, 일주일, 한 달은 빠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침엔 점심시간만 기다리다가, 점심을 먹고 나면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하루하루와
금요일 오후만 기다리는 일주일,
휴가와 공휴일만 기다리는 몇 달간의 시간이 뭉쳐진 게 결국 회사에서의 일과가 아닐까.
그리고 점점 그 사이의 사소한 스트레스는 무뎌졌다. 익숙하게 뭉그러졌다.
친구는 "주말과 휴가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흘려보내는 시간이 슬프다"라고 말했다.
"왜 슬퍼?" 내가 묻자, 그는
"내 젊은 날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거잖아." 했다.
그렇지. 그렇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들조차도 내게 주어진 반짝이는 젊은 날임을 잊고 있었다.
어쩐지 삶의 가장자리가 조금은 노릇 하게 익는 기분이었다.
노릇노릇한 하루하루였다.
더 이상 연봉 사천은 화수분 같은 돈이 아니었다. 들어오는 월급만으로 행복을 느끼기에는 고정지출이 늘었다. 카드값 빼고, 대출 이자 갚고, 생활비 빼고, 전기세/물세/가스비/통신비 4인방 빼고. 통장에 남은 '나머지'돈은 힘을 잃고 떼구르르르 굴러다녔다. 설레지 않았다.
성취와 숫자들은 온도가 낮았다. 추워서 손이 시린 온도는 아니었지만, 서늘한 느낌이었다. 너무나 'Cool'한 일들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매달리다 보니 좋은 고과를 받았고, 상사로 부터 이따금 칭찬을 받았다. 같이 일하는 내 또래의 동료가 '이런 부분을 잘해주셔서 믿어요'하는 쑥스러운 칭찬을 하면 2-3도쯤 온도가 올랐는데, 이내 다시 내렸다.
옷을 여미는 추위가 아닌, 몸을 데울 곳이 없는 서늘함이 꾸준히 느껴지는 매일이었다.
너무 오래 찬데 내 앉았더니, 으슬으슬한 느낌에 시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짜증이 늘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화가 났다.
노트에 업무 목록이 줄기는커녕 늘어만 갔고, [긴급/공문]이라고 빨간 글씨로 쓰인 이메일들이 쏟아지면 꼬락서니가 나기 시작했다. 사납게 전화를 받고 나면 동기가 눈치를 줬다. '너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 이상해진 거 못 봤냐'라고 핀잔을 줬다. 부끄러워 마음이 철렁했다.
출장 다니느라 아직 얼굴도 못 본 내 멘토에 대해 사람들이 내게 흉을 보는 것도 짜증 났고, 다 같이 야근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는 네이버 기사나 읽고 있는 상사가 한심했다.
하루종일 푸닥거리를 마친 어느 날은 정해진 업무시간이 땡!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인적이 드문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회사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숨어서 맥주 한 캔을 선채로 들이켰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아 업무를 이어갔다.
죽고 싶다고 혼잣말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극단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샤워실 호스만 봐도 목을 감고 싶다거나, 창문만 열려있어도 마음이 동한다거나 하는 그런 장르는 아니었다. 다만, 씻고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아, 이대로 끝나도 괜찮겠다' 싶었다. 내가 스르르 사라진다거나, 잠든 사이에 지구가 다 멸망해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서서히 침식하듯 우울했다.
내가 나빠졌다.
그런데 손끝에 쥐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놓을 수가 없었다. 누가 좀 구해줬으면 좋겠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버둥거렸다. 취미로 이것저것 배워봐도 피곤하기만 했고, 사람을 만나는 건 귀찮았다.
부유먼지처럼 친구들과 웃고 떠돌며, 개봉영화와 신작소설들을 모두 챙겨보게 만들던 활기가 몽땅 시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불 끌 타이밍을 놓친 고기처럼 불판에서 노릇하게 태워져 가는 기분이 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꿈을 하나 꿨다.
꿈 속에선 통으로 크게 난 이국적인 창문을 통해 환한 빛이 쏟아지는 하얀 집이 보였다. 나는 주방에서 간식거리를 내오고 있었다. 아마 그곳은 내 집인 것 같았다. 그 창 앞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이의 실루엣과 두 살쯤 된 꼬마가 있었다.
아이의 얼굴로 시선이 먼저 갔다.
빛에 비쳐 보이는 꼬마의 옆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벅차올랐다. 얼굴 옆선을 천천히 시선으로 쫓으며, 그 모습에 취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 아이가 누군지 난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아들!' 꿈속의 내가 답하듯 중얼거렸다. 초록 내복에 바가지 머리를 한 내 아이는 아빠 다리 언저리에 매달려 놀고 있었다. 씩- 웃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숨이 막혔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따스한 행복. 온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한참이나 아이의 옆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책을 읽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림자로 비쳐 잘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어 주춤 다가갔다. 그러다 번쩍 꿈에서 깼다.
잠에서 깼다. 일어나 얼마나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랜만에, 그러니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랜만에 사진 같은 꿈을 꿨다.
멍하게 앉아 천천히 꿈의 순간순간을 다시 새겼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따뜻한 꿈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꿈이 내가 놓치고 있는 어느 다른 차원의 내 모습 같이 느껴졌다. 난 숫자나 성과 따위를 쫓느라 바빠, 내가 그런 것들을 놓치고 있는 줄도 몰랐다.
불현듯 주르륵.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난 손에 쥐고 있는 걸 모두 놓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자랑스럽고 훌륭한 내 회사에 난 퇴직을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