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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Sep 29. 2023

한국을 떠나서야 한식을 배웠다.

Fruit and vegetables keep us alive
Always remember to eat your five
Wiggle your hips and do our live
Always remember to eat your five
One, two, three, four, five!


Runner beans and broccoli and cabbages are good for me

Mrs. Carrot, little sprouts help to make me jump about
Even onions and courgette make me faster than a jet
They make me fit, they make me strong
Like Super Potato!


- 페파피기 중 슈퍼포테이토 테마 송-




해외에 오래 살면 당연히 식성이 변할 줄 알았다.

식탁이 서구화되는 대신, 요리 실력이 느는 반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역시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남편은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 한창 소주로 인생을 배우고 있던 2005년도에 호주로 넘어왔다.

그는 호텔 경영을 전공하면서 호스피탈리티의 꿈을 키웠지만, 거듭 바뀌는 영주권 법 덕분에 등 떠밀려 결국 요리로 입문했다. 그는 아주 오래된 비염을 가지고 있었다. 취미로 요리를 만들어 친구들과 나눠먹는 즐거움을 좋아했지만, 칼 같은 미각을 가지진 못했다. 그래서 요리를 전공으로 하는데 큰 부담감이 있었다고. 그럼에도 영주권을 위해서 요리사가 되는 길을 걷기로 했다.


르꼬르동 블루.

막 호주에 캠퍼스를 연 그 학교에서 남편은 그렇게 프렌치 셰프가 되었다.




신혼 초 애정이 보글보글 거리던 그때, 우리의 프렌치 셰프님은 곧잘 요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 했다. 가장 좋은 고기를 주문하고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쳐서 누구보다 자신 있게 근사한 스테이크를 완성시켰다. 가득 찬 가니쉬와 다양한 소스로 꾸민 잘 구운 스테이크. 처음 얼굴보다 큰 호주산 스테이크를 접시 한가득 대접받던 날, '아, 셰프랑 사는 즐거움은 이런 거지.' 하며 감격했다.


하지만 작은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식성이 너무나 달랐고, 그는 고기를 너무 좋아했다. 주 2-3회, 그는 자신감 넘치게 스테이크를 구워냈고, 무던히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투정을 입에 달고 살 있었다.

"아, 진짜! 덩어리 고기 말고, 칼칼한 게 너무 먹고 싶다!"라며.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사는 내내 아침으로는 김밥, 점심 저녁은 회사 구내식당이나 테이크 아웃 음식으로 해결하던 내가 요리를 시작했다. 이제껏 해본 요리라고는 기껏해야 떡만둣국 정도였다. 인터넷 레시피를 뒤져가며, 밑반찬이나 고등어조림부터 하나씩 시작했다. 어렵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양파도 똑바로 못 썰던 나로서는 큰 도전들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스테이크를,

나는 고등어조림을,

각자 만들어 한상에 올리는 우스운 퓨전 음식들이 한동안 우리 식탁을 차지했다.





남편이 슬슬 한식에 도전을 시작한 건, 맛있는 요리를 함께 먹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차오르면서부터였으리라. 그렇게 프렌치 셰프의 서툰 한식 도전은 냉동 순대를 다 터트려서 '당면 순대 죽'을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냄비에 다 불어 터진 당면 죽을 들고 선 그를 보며 난 박장대소를 터뜨렸고, 남편은 울듯이 속상해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매일 각자의 요리에 더해, 아기 유아식까지 이제 우리는 한 시간 이내 뚝딱 어지간한 한식을 만들어낸다.

청갓, 숙주, 콩나물, 쑥갓, 부추, 시금치처럼 나물로 무쳐먹을 수 있는 야채는 우리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열무김치, 오이지, 깍두기, 순무김치, 마늘장아찌처럼 오래 담가 숙성시켜 먹는 밑반찬들도 늘 냉장고를 채우고 있다. 여기에 청국장, 김치찌개, 부대찌개, 된장찌개, 파계란 국, 파계장국처럼 간단한 국거리까지. 칼 끝을 잡고 서- 어 걱, 서- 어 걱 양파를 썰던 나는 이제 꽤 능숙한 주부로 이런 밑반찬들을 해낸다.  


반면, 남편은 주로 조금 더 요리스러운 부분을 담당한다.

원래부터 잘 만들던 갈비찜처럼 완벽하게 본인의 식성인 요리 외에도 조금씩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칼칼한 낚지 볶음, 강남역 스타일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 떡볶이, 각종 전 종류를 하나씩 마스터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곰국, 감자탕, 순댓국 같은 푹 고와낸 국물들에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곰 솥에 욕심을 내더니 냉동실에 몇 통이나 얼린 육수들을 채워 넣었다. 최근에는 중식에 꽂혔다. 탕수육, 짜장면, 짬뽕을 하나씩 완성시키더니, 기어코 이런 요리들을 우리의 외식 리스트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종종 남편과 얘기한다.

우리가 호주에 살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요리들을 배우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우리나라를 떠나서야 비로소 한식을 배우게 되었다.



정말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다.



마지막 최고의 반전은 남편은 더 이상 요리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이 바닥에서는 소문난 리크루터(헤드헌터)가 되어서, 회사를 다닌 지 어언 7년째이다.

인생은 예측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내 요리 인생의 화룡정점. 시부모님이 설날을 맞아 호주에 오시면서 아는 요리, 모르는 요리를 모두 한상에 차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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