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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Oct 03. 2023

내겐 너무 어려운 갯가재

Simon says put your hands on your knees
Simon says put your hands on your hips
Put your hands on your head
Whoops!
I didn't say 'Simon says'

Simon says put your hands on your cheeks
Simon says put your hands on your chin
Put your hands on your nose
Whoops!
I didn't say 'Simon says'


- 위글스 'Simon says' -



"하아 기욤. 나 이번달 완전 거지야."


"응? 거지 무슨 뜻? 나 몰라."


"거지? 어. 돈 없는 거. 돈 다 써서 없어."


"아! 개털?"


프랑스에서 온 기욤은 그런 친구였다. 우리나라 말을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좁은 어휘를 활용하는 응용력이 뛰어나서 대화하는 재미가 있었다. 어디 사냐는 질문에 '용산구, 옥탑방'으로 대답하는 가 하면, 회식을 가면서 메뉴가 갈매기살이란 얘기에 "아! 갈매기살. 내 첫사랑" 했다.


참 쫀득한 표현력을 가졌다.




그런 기욤은 내 한국말을 늘 70점으로 평가했다.


"넌 한국말 잘 못해. 70점이야"


"아니, 내가 왜 70점이야? 나 언어영역 진짜 잘했어! 맨날 다 맞았다고!" 하고 따지면,


"응. 넌 발음이 안 좋아. 지읒 발음을 하면, 발음이 새" 했다.


"진짜?" 했더니,


그는 여유롭게 씩 웃으며 말했다.

"그것 봐. 지읒 발음 또 새잖아"


분하다. 분한데 내가 생각해도 방금 말한 '진짜'에 지읒 발음에서 왼쪽 입술로 바람이 픽 샌 것 같아서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내 모국어가 한국어인데! 외국인한테 지적을 받다니! 70점을 받다니!






근데 요즘 가끔, 내 한국어 발음이 70점이었단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모국어도 70점짜리로 발음하는 허술한 내가 영어라고 100점짜리 발음을 바란 건 애초에 무리였을 테니까.



호주에 살게 되면 영어가 쑥쑥 늘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매일 새벽마다 강남역에 있는 영어 회화 학원을 다녔고 주말마다 ebs 모닝스페셜 스터디를 나갔다. 최소한 그 정도 노력 정도는 해야, 내 멋대로 삐죽 튀어나가는 영어를 조금은 다듬을 수 있었다.

호주에선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영어학원에서 하던 상황극보다 수십 배는 생생하게 다른 사람들의 정답, 그러니까 상황에 맞는 표현을 매일 가만히 듣고 있게 된다.

그래서 표현이나 어휘가 어느 정도 풍부해진 건 느껴진다. 귀도 좀 더 열렸다. 처음 호주에 건너와 들은 바리스타 수업에선 선생님 말씀이 반도 안 들렸는데, 이제는 자막 없이 영화를 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5년쯤 번역을 부업으로 하면서, 문법적인 오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런데 도무지 늘지 않는 게 있다면, 기욤이 가지고 있던 저 쫀득한 표현력과 발음이다.




적재적소에 괜찮은 을 딱! 갖다 붙이는 그 응용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 이건 순발력의 영역이다.

물론 좋은 표현이나 이야깃거리를 많이 준비해 두면 도움이 되긴 한다. 주머니 속에 이런저런 상황을 상상해 표현들을 담아두고, '이때다!!' 싶은 순간에 꺼내는 거지.

업무에서는 이런 준비가 도움이  된다. 주제도 정해져 있고, 스펙이나 도면으로 이야기하는 업무는 미리 예상되는 질문과 대답을 생각해 둔다.


문제는 여럿이 사담을 나눌 때나, 아이의 유치원 학부모들을 만날 때다. 주제도 중구난방이고 이야기의 회전도 빠르다. 여럿이 한데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쪼개져 각자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새 또 몇이 붙어서 같이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우물쭈물하다가는 그룹 사이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마치 동선이 복잡한 단체무용 같은 이런 종류의 대화들이 내겐 특히 어렵다.


그날도 유치원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엄마들이 동그랗게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언저리에 슬쩍 끼여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까지는 좋았다. 주제는 아이들의 체험학습이었다.

'그래, 잭 엄마 말이 끝나면, 나도 박물관 놀이터가 기가 막히다고 얘기해야지!' 이야기 주머니에 들어있던 아이템 하나가 손에 걸려들었다.

'틈만 생겨봐' 하면서 기다렸는데,

잭 엄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가 조금 버무려지더니 집 뒷마당을 꾸미는 이야기로 말이 넘어갔다. 그 연결고리가 어디였는지, 나는 '박물관 놀이터 이야기'를 만지작 거리느라 그 이음새를 놓쳤다. 집 마당에 트럼폴린을 두는 게 좋은지, 커비하우스를 두어 소꿉장난을 하게 하는 게 좋은지.

새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쏟아졌다. 다급히 내 주머니를 허우적거려 봐도 딱히 떠오르는 카드가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내 차례가 돌아오곤 한다.

"맨디, 너희 집은 어때?"

내 이름이 불리고, 파란 눈동자들이 동그란 눈빛으로 나를 동시에 응시한다. 그러면, 머릿속이 씻겨 나간 것처럼 말갛게 변한다. 또 엉뚱한 이야기를 어수선하게 늘어놓았다. 


난 순발력이 좋은 편은 확실히 아니다.


'새로 뒷마당 한편에 둔 모래사장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포썸이 들어가서 헤쳐놓는 걸 막으려고 뚜껑도 있는 멋진 걸 샀단 이야기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방금 막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온 이야깃거리를 조물 거려 봤자, 상황은 이미 끝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건 우리 네 살배기 딸도 느낄 만큼 명백한데, 영어 발음이 절망적이다. 그래서 완벽한 소통이 어렵다.


장래희망이 옥토넛인 우리 딸은 특히 '옥토넛-사마귀 새우'편을 좋아한다. 영어로 mantis shrimp.

자기 전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데, 내가 이야기 시작 할 때면 매번 발음을 교정당한다.


"아니, 엄마 다시 따라 해 봐. 만- 티스 쉬림- 프. 만티스 쉬림프!"


딸은 마치 중학교 때 보던 영어 교육 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단어를 한 음절씩 떼서 내 눈과 입모양을 보며 또박또박 일러 준다. 지치지도 않는다. 이걸 발음해내지 못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해맑은 표정이다.


하지만, 아! 난 아직도 이놈의 갯가재를 영어로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득아득 부숴 먹을 줄이나 알았지.


어휴 갯가재로 고민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이민 1세대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이 완벽한 소통의 부재가 아닐까.


마음속에는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어도, 입 밖으로는 어버버 어버버만 하고 있다.

심지어 내뱉은 말마저도 70점짜리 발음이 가난해,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했다.

"Sorry?" 하고 되물으면, 다시 또박또박 방금 했던 얘기를 해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대화가 돌부리에 걸려 비실비실 힘 없이 넘어진다. 흥이 깨져 버렸다.



하아. 아무래도 오늘은 오랜만에 고향 친구한테 전화해서 시원한 대구 사투리로 거친 수다를 쏟아내야 할 것 같다.  


"아인나, 이걸 대체 와 몬알아듣지!! 와 한 번에 똑띠 못 알아 묵고, 머라카는 건데! 대체!"


내가 이렇게 폭발적인 성량으로 랩을 하는 사람인지, 호주 친구들은 아마 평생 모를 거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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