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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Apr 13. 2019

금영맥 #1

<그녀>와 <루비 스팍스>


금요일엔 영화와 맥주.
영화의 맥을 잇다.
매주 금요일, 어떤 점으로든 공통점을 지닌 영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아파트 단지가 분홍빛으로 물들어가고 바람도 부드러워지는 걸 보면 봄이 또 오긴 하나 보다. 봄에 사랑 얘기는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점점 가벼워지는 옷차림과 날씨가, 햇빛에 빛나는 사물들이, 피어오르는 꽃들이 괜시리 우리를 들뜨게 하니까. 그래서 사랑하는 누군가와 어디로든 떠나버리고 싶어지게 하니까. 로맨스영화가 크게 둘로 나뉘어 하나는 스토리에 중점을, 또 하나는 소재에 중점을 둔다면 <그녀>와 <루비 스팍스>는 일단은 후자다. 독특한 소재로 보통의 이야기를 하는 <그녀>와 <루비 스팍스>를 소개한다.



 <그녀>


거친 세 줄 요약 :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편지 대필작가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어느 날 인공지능 os를 사게 되고 하루종일 os 사만다와 소통하게 된다. 말이 너무나 잘 통하는 둘은 어느덧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몸이 없는 os와의 사랑이 순탄히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그러다 계속 업데이트 되는 os는 결국 테오도르를 떠나게 되는데…          





<루비 스팍스>


거친 세 줄 요약 :

 베스트셀러 작가 캘빈(폴 다노)은 차기작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 치료의 일환으로 소설을 쓰다가 ‘루비 스팍스’라는 여인을 창조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눈앞에 실제 사람으로 구현되어 나타난 루비(존 카잔). 그 후 루비는 타자기에 쓰는 대로 변하는 존재란 걸 알게 되고, 바라던 이상형의 등장에 행복하던 캘빈은 이후 자꾸만 타자기로 루비를 고치게 되는데…





 아이폰 유저라면 ‘시리’를 한 번쯤을 불러봤을 것. 나 또한 구매 초기에만 조금 불러보다가 <그녀>를 본 후 시리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져 괜히 말을 걸어보곤 했다. <그녀>에 나오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os는 영화 속 광고에서 ‘당신에게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고 알아줄 존재‘라고 소개된다. 테오도르의 os는 자신을 사만다라고 이름지었는데, 그녀는 몸이 없는 것이니 육체적인 교감은 이루지 못하고 오직 정신적 교감에만 의존해야 하는 사이다.(쉽게 말해 롱디커플?) 그러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그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어떤 서비스에게 빠졌다는 건 어찌 보면 현실 부적응자의 도피처럼 보이기도 한다. 테오도르의 전 부인이 그가 컴퓨터와 사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결혼 당시 그저 밝은 아내를 원하고 서로 맞춰가는 걸 꺼렸던 테오도르를 나무라면서 ”진짜 감정을 감당 못 하는 게 짠하네.“라는 말을 날렸던 것처럼. 그렇지만 그런 그는 역설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가상의 os와 사귀면서 진짜 감정을 마주해간다.      


  <루비 스팍스>에서도 캘빈이 루비를 계속해서 바꿨던 이유는 이 진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서 였을 거다. 그도 상대와 맞춰가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나 감정들에 솔직하지 못한 채 기어코 상대방을 자신에게 맞춰버리는(타자기를 사용해 상대의 성격을 '진짜' 바꾼다) 비겁한 캐릭터이다.



 사실 감정에 무게를 잴 수 있다면 테오도르의 감정이 더 무거울 듯하다. 캘빈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에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계속해서 타자기로 그녀를 깎아 버리니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이 그리던 이상형인 그 껍데기만을 좋아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사랑하는 os를 잃은 테오도르는 앞으로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두 영화는 이색적인 소재로 영화를 진행하지만, 사람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네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래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랑에서의(모든 어떤 관계에서의) 가장 큰 난점이 아닌가. 두 영화는 사랑의 달콤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깨지고 부서져서 아픈 마음들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어느 정도 테오도르이기도 하고, 캘빈이기도 하니까 이 마음들은 낯설지 않다. 그래서 두 캐릭터 모두 그리 사랑스럽지 않지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 2014년에 <그녀>를 봤을 땐 테오도르가 끼고 있던 무선 이어폰이 꽤나 생소하게 느껴졌는데(그걸로 전화를 한다고?), 이제는 그게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게 묘하다. 디자인도 지금과 얼마나 비슷한지!       


   

++) <그녀>가 5월 29일에 재개봉된다고 한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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