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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영 Oct 03. 2017

사람은 많이 가졌으니 동물에게도 양보하세요

<사람은 먹지 못합니다> 서평

란포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하고서 제일 처음 검색한 것은 동물병원이었다. 먼저 키우던 고양이 레온이 죽었던 동물병원에서는 다시 진료받고 싶지 않았다. 그 동물병원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침 란포를 데려오던 날은 석가탄신일이었고, 고양이가 죽은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겁에 질려 있던 나는 휴일에도 여는 동물병원이 필요했다. 역촌역 근처에 있는 한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자, 영업한다는 친절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손바닥만한 란포를 품에 안고 나는 집보다 동물병원에 먼저 갔다. 원장 선생님은 손바닥만한 란포가 주사도 잘 참는다며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었고, 란포의 진료수첩을 받아온 게 란포와 내가 처음으로 함께 한 일이다.


란포가 두 살이 되도록 원장님은 란포의 주치의(!)가 되어 주셨다. 이제 우리 집에 들어온 지 세 달째에 접어 든 란마는 란포와는 달리 병원에서 날뛰는 게 영 몹쓸 수준이지만(…) 그런 란마에게도 원장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유쾌하시다. 뭐…… 처음 데려갔을 때 손이 다 긁힌 다음부터는 란마가 오면 일단 발톱부터 확인하시지만……. (´・ω・`)


나는 걱정이 많아서 동물이 조금이라도 아픈 것 같으면 며칠간 우울하고 사색이 되곤 하는데, 원장님은 진료를 볼 때마다 동물을 보고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근데 그 거는 말들이 단순히 ‘달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옆에서 보고 있는 보호자의 입장에선 믿음직하고 위안이 된다.


뭐, 싫어? 싫어도 할 거야. 어쩔 수 없어.

어이구, 건강하네. 너 이렇게 난리 쳐서 금방 괜찮아 지겠다.


저번에 란마 3차 접종을 맞으러 갔다가 리트리쳐리 대혈투(둘 다 손목에서 피를 보고야 말았다)를 벌이고 난 나와 원장님은 혈투를 함께 치른 동지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흥미로운 정보를 전달해주셨다. 조금 있으면 원장님이 쓴 책이 나오니, 다음에 오면 책을 한 권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 책을 연휴 첫 날인 토요일에 받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완독했다. 그러므로 이 리뷰는 최소한의 객관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은 하겠으나 필연적으로 조금은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다들 내 새끼는 귀한 법이고, 이 책은 귀한 내 새끼들 귀하게 대해주는 원장님이 쓴 책이니깐 이왕이면 칭찬을 더 많이 하고 싶은 것이 솔쯕헌 집사의 마음…….


책은 에피소드 위주의 가벼운 에세이부터 점차 층위가 깊은 논의로 이동해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1부까지는 좀 미묘한 느낌이었다. 동물병원에서 겪을 수 있는 우스운 에피소드와 살리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했으나 유명을 달리한 동물들, 그리고 뭐 이런 환수(患獸)가 다 있나 싶은 기이한 동물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1부의 가장 기이한 부분, 킬링파트라 할 수 있는 부분은 1부 전체에 녹진하게 스며 있는 저자의…… 아재개그다…… 원장님 혹시 책 제목 검색하다 이 글 보시려나…… 원장님……?


2부는 가장 익숙한 반려동물인 개 중심으로 간단한 동물 생활상식을 전한다. Q & A나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바로잡는 가벼운 아티클들인데, 오마이뉴스에 송고된 글이 많다. 2부에서 가장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아티클은 ‘반려동물의 분리불안’에 대한 글이었는데, ‘실렸다’와 ‘송고했다’가 구분해서 쓰인 것으로 보아 생가지 상태에서 머물렀던 글인 모양이다. 한 보호자에게만 집착하는 행동을 ‘보호자 유대’와 구분해서 ‘배우자 유대’로 명명한 점이 인상적이었다(실제로는 새들에게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듯). Q & A에 가까운 다른 글들에 비해 무게감이 있어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했다.


“반려동물의 이상행동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체벌을 해서는 문제 해결을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기본적인 해결책은 반려동물과 교감하고 신뢰감과 친밀도를 높이며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것입니다.”     


란마는 상당히 유난스러운 고양인데, 병원만 가면 아직 아무 것도 안 했는데도 으르릉대고 이빨을 드러낸다. 곧잘 원장님을 물기도 한다. 내가 너무 난감해하고 죄송스러워하자 원장님은 “애들마다 성격이 다 다르죠. 하나하나 다 달라요. 어이구, 이거 봐라. 너 애교도 있네?” 라고 굳이 일억일천번 물고 한 번 핥은 란마의 애교(…)를 발견해주셨던 적이 있다. 병원에 갔다 오면 란마는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애교가 늘곤 한다. 나는 어제 란마를 배 위에 두고 오래 쓰다듬어 주었다.


여기까지는 매우 익숙한 동물책이었는데, 지금껏 내가 생각지 못했던 이 책의 진가는 3부부터 드러난다. 2부까지만 해도 ‘동물’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3부부터는 ‘사람이 사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물병원마다 진료비 차이가 나는 여러 요인 중 제일 첫 번쨰로 동물의료수가제 폐지를 꼽을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999년 자율경쟁으로 진료비는 낮추고 진료의 질을 올리겠다는 취지로 동물의료수가제를 폐지했다. 그러나 자율경쟁으로 인해 진료비가 병원마다 차이를 보이며 보호자의 혼란과 불만을 야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THIS IS CAPITALISM


동물에게 좋은 것은 인간에게도 좋다고 우리는 흔히 말하는데, 그것을 뒤집어서 말해보자면 인간에게 나쁜 것은 동물에게도 나쁘다.  현재까지 농축산부에서 제시한 동물 진료비 공시제는 보험사들이 ‘동물 보험’을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까 보험사가 없이는 동물진료비를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전형으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작은 돈을 벌면서 고양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1인 가구>에게는 여전히 이것은 출구가 아니다. 가난한 동물은 더 위험해진다. 위험해진 반려동물을 데리고 병원에 가면 가난한 반려인은 더 가난해진다. 반려동물 공보험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하는 이 책의 목소리에서는 “도덕적 진보는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는 간디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4부는 조류전문가로서의 저자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네네, 저는 조류전문가신 줄 모르고 고양이를 데려가서 갈 때마다 매번 조류들이 와 있는 바람에 고양이를 이동장에서 꺼내 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왜 끊임없이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하고 그 때마다 수많은 조류가 살처분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들어있다. 죽어가는 동물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조류인플루엔자에 위협받는 인간에 대한 걱정에서 그치지 않고, 발병이 반복되는 시스템에 대해 정책 차원에서 실천 가능한 것들을 고민했다. 전문인력을 배치하는 데에 비용을 사용하지 않는 정부, 각 농가에 방역 접종 관련한 물품을 배분만 할 뿐 확인하지 않는 시스템, 방역을 직접 가지 않고 농가 주인들에게 맡기는 점, 밀집된 사육 공간이 어떻게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방역을 어렵게 하는지. 그리고 그 동물들을 땅에 묻는 인력마저도 얼마 제공되지 않는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앞에서 저자는 그 동물들을 다 묻고 나서 인간이 받을 고통을 말한다. 자신이 키운 동물을 생으로 죽이는 꼴을 보아야 하는 농가의 슬픔, 그 동물들의 죽음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 그것을 텔레비전으로 보아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


“동물들의 건강은 사람의 건강과 직결된다. 동물들이 행복해야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


마지막 4부에서 저자는 인간의 삶과 동물의 삶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시스템을 통해서 몇 번씩 다시 보여주려고 애쓴다. 우리는 동물의 행복과 비참을 섭취하고 그것에 기대어서 생을 유지한다. 심지어 그것이 ‘식용’ 동물이건 ‘반려’ 동물이건 다르지 않다. 죽고 싶은 비참의 끝에서 나는 동물들 덕분에 길어올려진 적이 수십 차례다. 저자는 동물에게 바이러스가 돈다면 그것이 ‘인류 대재앙’의 출발지점일지도 모른다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덧붙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경고가 실현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보여준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제목은 꼭 그런 의미로 지으신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람이 가지지 않고, 동물에게 양보할 수’ 있는 것들이 지금도 수없이 많다. 이를테면 위에서 언급한 동물 공보험 같은. 당연히 그건 이윤의 논리로만 가능한 것들은 아니다.


원장쌤 자주 만날 일 없게...


다시는 이런 거 못 쓰겠다고 하셨지만, 혹시 저자가 두 번째 책을 내신다면 ‘반려동물’과 인간의 사회학에 대한 책을 내셨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소망이 조금 생겼다. 동물이 사람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좀 더 폭 넓은 정치의 영역에서 읽어내는 글들을 써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뭐…… 이건 어디까지나 독자로서의 희망이고, 1차적으로는 사인해 주신 것처럼 애기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얼마 전 갑자기 눈이 부어서 병원에 다녀온 란포의 허피스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늘 옆에 있어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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