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ㅣK콘텐츠의 넥스트 스탭
이번 글은 2023년부터 '콘텐츠IP산업 육성'이라는 기관의 IP 중심 새로운 전략을 짜면서 고안했던 한 관련 신규 지원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내용이다. 일본 제작위원회 형태가 골자라, 요즘처럼 제작위원회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다시 꺼내봐야겠다 싶었다. 그간 많은 리서치를 하고 업계 관계자 분들에게 자문도 받으며 고민한 것이긴 하지만, 아직 구체화가 되었거나 예산이 있다거나 한 사업은 아니라는 점 미리 밝힌다.
제작위원회 시스템에 필요한 장르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하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같은 장르이다. 그래서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굴러가려면 몇가지 요건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래와 같다.
프로젝트의 흥행을 담보할 수 있을 만한 요인이 있는가?
프로젝트가 보다 많은 소비자(시청자, 관객 등)에게 도달할 수 있는가?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의 상한이 열려있는가(upside)?
흥행 예측이 정말 여려운 콘텐츠산업에서 성공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없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투자를 제대로 하기가 어렵고, 콘텐츠 제작사나 관련 전문 투자사 같은 곳이 아니면 더더욱 그렇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이 배에 올라타려면 어떤 형태로든 '검증된 무언가'가 필요하다.
흥행은 결국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에게 소구되느냐에 달려있다. 출판에서 시작한 콘텐츠의 흐름이 방송이나 영화로 넘어간 이유는 TV나 극장이 더욱 많은 대중들이 찾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수용인지 수출도 가능한지도 중요하며, 해외 소비자들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흥행 사이즈 자체가 달라진다.
콘텐츠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의 천장이 얼마나 열려있는지도 관건이다. 방송이나 영화나 각자의 1차 유통 판로나 해외 수출을 통해 많은 수익을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콘텐츠 판매로만 그친다면 투자의 매력도가 떨어지므로, 이를 넘어 프로젝트 수익의 천장(ceiling)을 열어줄 '부가사업'으로의 확정이 가능해야 한다. 일례로 영화 <스타워즈>의 경우 머천다이징으로 번 돈이 전체 수익의 60%가 넘는다.
일본이 제작위원회를 통해 '원작 만화 → 애니메이션 → 부가사업'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던것은 위와 같은 요건들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① 글로벌 만화 강국으로 끊임없이 발굴되는 '흥행이 검증된 원작', ② 대중적 장르인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높은 제작역량과 이를 소비해주는 '1억 명이 넘는 탄탄한 내수시장 + 재페니메이션 브랜드의 충성도 높은 글로벌 팬층', 그리고 ③ 음반, 완구, DVD 등 탄탄한 부가사업 기반, 이렇게 일본은 3박자가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한국형 제작위원회 시스템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기준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사실 정부에서 한국형 제작위원회 시스템에 대해서는 꽤 옛날부터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지원사업으로 풀어낸 적도 있었으니, 바로 2002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시절에 시작한 '스타프로젝트 발굴사업'이다.
스타프로젝트 발굴사업은 문화콘텐츠산업의 투자 활성화와 하나의 자원을 여러개로 활용하는 OSMU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선정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애니메이션으로 굿즈, 완구, 게임 등 다양한 부가사업까지 기획한 프로젝트가 선정되었다. 하지만 <원더풀 데이즈>를 비롯해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그나마 <뽀로로>는 하나 건졌으니 성공이라고 봐야하나...)
2005년부터는 기획부문은 폐지하고(아마도 성과가 잘 안나와서인걸로 추측) 프로젝트당 20억 원의 제작비를 주는 제작지원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에 20억 원이면 정말 엄청나게 큰 돈이었을 텐데, 이후로도 2~3년간 추진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 사업에 대한 눈에 띄는 성과는 찾기가 어려웠다(내가 콘진원에 입사하기도 전의 전설의 사업...ㅠㅠ).
정책은 시장보다 반박자 정도만 앞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너무 앞서가면 수요가 제대로 형성도 되기 전에 과잉투자로 인한 자원낭비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스타프로젝트는 방향성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견지명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의 시장 상황 대비 너무 빠르게 나왔던 정책이었다고 조심스레 평가해본다.
그렇다면 지금은 가능할 것인가? 확신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볼만한 상황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두에 언급했던 3가지 요건이 20년 전에 비해서는 제법 충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20여년 간 한국 콘텐츠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고, 웬만한 장르는 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며 'K-콘텐츠'의 흥행성이 검증되었다. 다만, 첫 걸음을 뗄 준비는 되었지만, 제작위원회 시스템에 가장 적합할 것 같은 애니메이션은 아직 우리의 아픈 손가락이라 아쉽다. 그래도 웹소설과 웹툰 같은 탄탄한 원작 IP 공급망이 생겼고, 드라마와 영화 제작은 세계적인 수준이라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다.
그간 K-드라마나 영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이제 해외 소비자들에게도 많이 소구되고 있는 점도 청신호이다. 특히, 이번 케데헌으로 확인된 작금의 '한류'는 그 파급력이 예상보다 훨씬 큰 상황이라 협소한 내수시장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몇년간 콘텐츠 소비와 더불어 크게 늘어난 굿즈와 체험 같은 '물성매력'에 대한 소비도 부가사업 확장 측면에서 긍정적 요인이다. 인기있는 콘텐츠는 이제 장르를 불문하고 굿즈를 만들고 팝업스토어를 통해 팬들과 소통한다. 실제로 글로벌 라이선싱 시장도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4년 3천 7백억 달러 규모로 전년대비 3.7% 증가했고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4.5%에 달한다(Licensing International, 2021~2024).
그렇다면 '한국형 제작위원회'는 어떤 형태로 추진되어야할까?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되면 제일 좋겠지만, 이 글은 정책적 지원에 대해 고민하는 글이니 이 관점에서 풀어보겠다.
한국형 제작위원회를 생각하며 지원사업 초기 아이디어를 고민할 때 사업의 목적과 방향성, 실효성을 고려해 떠올렸던 한줄 로그라인은 아래와 같다.
검증된 콘텐츠IP를 활용해 제작하는 영상콘텐츠 프로젝트의
기획개발과 비즈니스 모델(BM) 설계 컨소시엄 지원
'검증된 콘텐츠IP'는 앞서 언급했던 3가지 요건 중 흥행을 담보할만한 요인이다. 큰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로 투자받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런 작품도 있어야 하지만, 한국형 제작위원회 시스템으로 시도해볼 프로젝트에는 적합하지 않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 검증된 IP로는 '웹툰'이나 '웹소설'이 제일 적합할 것 같지만 상황에 따라 기존 드라마IP의 리메이크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IP의 부가가치를 폭증시키는 콘텐츠는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를 포괄하는 '영상콘텐츠'이다. 일종의 IP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하는데, 일본은 애니메이션에, 헐리우드는 이 모든 장르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드라마와 영화에 강점이 있는데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드라마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한다(애니메이션으로도 트라이는 필요할 것 같다).
지원 단계를 기획개발 단계로 정한 것은 이 단계에서 자금 마련이 가장 어렵기도하고, IP 비즈니스를 위한 BM 설계도 이 때 된다면 좋기 때문이다. 좋은 콘텐츠로 디벨롭 시키고, 콘텐츠에 최적화된 다양한 BM을 설계하기 위한 초기 투자비용을 정부에서 보조한다면 한국형 제작위원회에 참여할 기업들이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가설을 한번 세워봤다.
어떤 항목에 대해 지원할 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섣불리 밝히기는 어렵지만 지원형태를 ① 콘텐츠IP 프로젝트의 컨소시엄을 구성해나가는 기간에 대한 지원 으로 갈 것일지, ② 결성된 콘텐츠IP 프로젝트 컨소시엄에 대한 지원 으로 갈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고 지원기간도 여기에 따라 변동이 있을 것 같다.
이 사업을 기획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이 다른 산업군의 돈을 끌어오는 것이다. 드라마야 이미 PPL이 존재하지만 단순 광고를 넘어 IP가 결합된 머천다이징으로 이제 단계가 넘어가야하지 않을까?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이 자사 IP 콘텐츠 라인업을 공개하고 함께 비즈니스를 할 다양한 산업군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행사를 개최하는데, 그런 식의 이벤트도 결합해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제작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아니지만 IP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은 국내 시장에서도 분명 나타나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이 대표적으로, 2019년 '스튜디오드래곤2.0' 전략을 발표하며 드라마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IP 비즈니스를 시도하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의 일본 뮤지컬화나 <호텔 델루나>의 방탈출 카페화를 비롯해 드라마의 다양한 IP 요소로 굿즈를 만드는 등의 시도를 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흥행에 성공한 웹툰 원작 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아시아 3개 지역 팝업스토어를 비롯한 다양한 MD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진행되는 속도를 보니 사전에 어느정도 기획을 했을 것이라 추측해 보는데, 향후에 얼마나 수익을 거둘지 궁금하다.
한국형 제작위원회에 대한 지원사업 아이디어는 제작 단계에서는 콘진원의 제작지원 사업과 문체부의 펀드 사업까지도 연계해보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특히 펀드의 경우 K-콘텐츠펀드의 미투자금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가 활성화되려면 성공과 수익성이 눈에 보이도록 프로젝트를 어느정도 쿠킹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기획 중인 한국형 제작위원회 관련 사업은 이를 고려해서 설계해보려 한다.
일본에서 제작위원회가 정착된 것은 일본에 경제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한 1990년대이다. 경제위기의 여파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투자하던 기존 스폰서들의 사정이 어려워지고 방송사의 광고 수익도 감소하며 제작 편수가 급감했다. 제작위원회는 이런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와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계가 시도한 자구책이었다(전태호, 2021).
최근 글로벌 미디어 시장은 OTT로 시장이 재편되고 코로나19라는 상황을 만나 의외의 성장을 했으나 지금은 주춤한 상황이다. 한국은 그간 축적한 높은 수준의 영상콘텐츠 제작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을 높여가고 있지만, 불과 몇년만에 찾아온 시장의 어려움(특히 국내)으로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제작위원회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듯, 우리도 지금의 어려움을 분명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분명 찾아낼 것이라 믿는다. 현재 기획하고 있는 '한국형 제작위원회'가 정답이 아닐 수는 있지만 그래도 여기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통해 새로운 해법을 찾아나가는데는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권혜미,「스튜디오드래곤, 굿즈 사업 본격화…'폭군의 셰프'도 팝업 연다」, 전자신문, 2025.
송지유, 고석용, 김진현,「"돈 줘도 왜 쓰질 못해?"…갈곳 없는 K-콘텐츠펀드 1.4조 쌓였다」, 머니투데이, 2025.
전태호, 「일본 TV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제작위원회방식의 정착과 그 배경에 관한 연구 -OVA와 팬덤」, 일본연구, 2021.
지성은,「스튜디오드래곤 IP사업팀 채지탁 팀장, '힘있는 IP 만드는 것이 내 역할'」, WIPNEWS, 2021.
Licensing International,「Global Licensing Industry Study」, 202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