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을 먼저 말한 몬조은행-FanCase14

고객을 데이터가 아닌 공동 운명체로 설계한 몬조의 극단적 투명성 전략

by 박찬우

금융권, 은행의 브랜드 팬덤은 어떨까? 그 궁금증을 품고 있던 찰나, 인터넷에서 몇 해 전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은행 계좌를 열기 위한 대기자 명단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도 일반 시중은행이 아니라,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작은 핀테크 스타트업의 계좌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그 대기 번호를 SNS에 인증하며 자랑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친구에게 대기열 초대권을 건네는 것이 하나의 사교적 행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은행 계좌 하나를 여는 것이, 마치 한정판 운동화를 얻는 것과 같은 감각으로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그 은행은 바로 몬조(Monzo)였습니다.


앱이 곧 은행 — 몬조(Mon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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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조는 2015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디지털 전용 은행, 즉 네오뱅크(Neobank)입니다. 오프라인 지점이 없습니다. 창구도, 통장도, ATM 네트워크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 앱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결제 알림이 실시간으로 오고, 지출 내역이 카테고리별로 자동 분류되며, 카드와 계좌 관리가 앱 안에서 직관적으로 해결됩니다. 수수료 부담도 적습니다. 이후에는 공동 계좌, 청소년 계좌, 비즈니스 계좌로 서비스를 확장하며 생활 전반에 밀착하는 방향으로 성장했습니다.


2017년 4월, 영국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정식 은행 라이선스를 취득하면서 예금 수신부터 대출까지 본격적인 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선불카드 형태로 운영되었으니, 사실 몬조의 팬덤은 완전한 은행이 되기도 전에 먼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몬조는 "앱이 곧 은행"이라는 경험을 만들며 성장한 회사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의 핵심 포지셔닝은 "불편한 은행" 대신 "일상에서 쓰기 쉬운 금융 앱"이었습니다. 이 포지셔닝이 특히 젊은 고객층의 강한 충성도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몬조는 영국 성인 5명 중 1명이 사용하는 은행이 되었습니다. 고객 수 1,300만 명, 연매출 £12억(한화 약 2조 원)을 기록하며 2026년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입니다. 영국 7대 은행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행에는 우리가 아는 방식의 광고가 없습니다.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TV 광고도, 지하철을 도배하는 옥외 광고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이런 숫자가 있습니다.


몬조의 신규 고객 중 67%는 지인 추천으로 유입됩니다.


팬이 팬을 데려오는 구조입니다. 브랜드 팬덤이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된 가장 선명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몬조는 어떻게 이 구조를 만들어 냈을까요.


전통 금융이 가장 두려워한 것을 무기로 삼다


몬조가 창업을 준비하던 2014~2015년, 영국 금융 시장의 분위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영국 소비자의 37%만이 은행을 신뢰한다고 답했습니다.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단 하나, 투명성의 부재였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형 은행들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은행은 소비자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정보를 숨기는 기관"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기존 금융기관의 답은 '더 완벽한 이미지'였습니다. 더 견고해 보이는 건물, 더 신뢰감 있는 서체, 더 안정적인 색상. 권위와 완벽함으로 신뢰를 쌓으려 했습니다.


몬조는 반대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이 선언이 몬조의 전략적 출발점이었습니다. 불완전함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먼저 꺼내 놓는 것. 전통 금융이 가장 두려워하는 행동을 몬조는 핵심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을 실행하는 구체적인 장치들을 하나씩 설계했습니다.


1. 공개 로드맵: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다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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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몬조는 자사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Trello 보드 형태의 공개 제품 로드맵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후 Trello에서 자체 웹사이트 커뮤니티 섹션으로 이전하면서도 이 원칙은 유지되었습니다.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지금 개발 중인 것(Doing), 다음으로 할 것(Next), 아이디어 단계인 것(Ideas). 이 세 가지를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했습니다. 단순히 '기능 출시 예정'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고민 중인 것, 방향을 잡지 못한 것까지 함께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 마케팅 캠페인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몬조는 성과 보고서, 베타 기능 현황 등 고객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한데 모은 투명성 대시보드를 별도로 운영했습니다. 마케팅팀이 기획한 '투명성 포지셔닝'이 아니라, 회사 전체가 공유하는 운영 원칙이었습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것이 왜 강력한지 이해됩니다. "내가 원하는 기능이 언제쯤 나올까"를 알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편의가 아닙니다. 기업이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내 의견이 반영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객이 감시자이자 응원자가 되는 순간, 관계의 성격이 바뀝니다. 이것이 팬덤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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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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