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트루스 (Post-Truth), 진실이 중요하지 않게 된 시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바이든? 아님 날리면??
2022년 9월, 전 국민이 청력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발언을 두고 "바이든"이라고 들었느냐, "날리면"이라고 들었느냐로 나라가 둘로 갈렸었죠.
흥미롭게도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적 성향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넥스트위크리서치 조사에서 61.2%가 "바이든"으로 들린다고 답했는데, 이는 당시 대통령 지지율과 반대되는 수치였습니다. 반대로 "날리면"으로 들린다는 26.9%는 대통령 지지율과 비슷했습니다. 같은 음성을 놓고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실'을 받아들이는 전형적인 탈진실 현상이었습니다.
아직도 탈진실이란 용어가 생소하신가요? 탈진실,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는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대중의 의견을 형성하는데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환경이나 현상'을 의미합니다. 거짓이라도 각자의 신념과 정서에 부합하면 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이야기죠.
이미 옥스퍼드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습니다. 그해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때와 (7월) 트럼프의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 시기 '탈진실' 단어 사용이 2015년에 비해 2,000% 급격히 증가했고 2016년 한 해 국제사회를 휩쓴 정치 담론과 기성 언론이 제공하는 사실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최근의 상황에 가장 잘 부합하는 단어라고 분석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 동안 3만 573건, 하루 평균 21건의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는 모두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며 기성언론은 물론 과학·제도까지 권위를 끌어내렸었죠. 앞서 이야기 한 ‘바이든·날리면’ 논란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의 정치인들도 점점 탈진실 화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지지율을 지키기 위해 진실 추구라는 고된 길 대신, 진실 회피와 감정 호소라는 손쉬운 길을 선택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트럼프 이야기입니다. 2017년에 여러 논란 속에 취임한 트럼프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트럼프의 취임식 인파 사진과 버락오바마 전 대통령의 취임식 당일 내셔널 몰(National Mall)의 항공사진을 비교하며 '트럼프 취임식에 몰린 인파 수가 현저히 적다'는 조롱이 퍼져 나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당연히 그의 주위의 참모들과 정치인들은 이런 여론이 퍼져나가는 것에 대한 반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1월 21일, 당시 백악관 대변인 숀 스파이서의 첫 언론 브리핑 열어 다음과 같이 언론이 "고의적으로 축소된" 사진을 사용하여 군중 규모를 폄하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사람이 적어 보이는 건 바닥에 잔디보호를 위한 흰 커버를 깔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어제 워싱턴 D.C. 공공 지하철 이용객 수가 42만 명으로,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당시 31.7만 명보다 많았다. 이것은 역대 최다의 취임식을 본 사람 수임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온 사람과 전 세계에서 시청한 사람 모두 말이다. 이처럼 취임식의 열기를 축소하기 위한 시도들은 졸렬하고 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명백한 객관적 증거와 충돌했습니다. 사진이나 지하철 이용객 공식 집계 등 객관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넘치기 때문에 언론의 팩트체크로 백악관 측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고, 트럼프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게 되었죠.
인파 논란이 거세지자, 켈리 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2017년 1월 22일 NBC 미트 더 프레스 인터뷰에 출연하여 스파이서의 주장을 변호했습니다. 앵커 척 토드가 "트럼프 대통령은 왜 스파이서 대변인에게 거짓말을 시킨 겁니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해버렸던 것이죠.
"그렇게 과한 표현을 쓰지 마시죠, 당신은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제시한 것입니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은 이렇게 등장하였죠. 대안적 사실의 등장은 단순한 언어적 일탈이 아닌, 객관적 사실이 더 이상 공유되지 않고 감정과 신념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정치적 양극화, 미디어 생태계의 급변,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적 편향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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