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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억 새를 죽인 정부? 가짜뉴스로 배우는 진짜 소통

새가 아니라 드론이라고? 수백만이 믿은 거짓말의 교훈

by 박찬우

2017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여성의 권리와 평등을 옹호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과 발언에 반대하기 위한 '여성 행진(Women's March)이 열린 주말이었습니다. 한 청년이 여성 행진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던 중 몸집이 큰 중년 남성들의 반대 시위를 보게 되었죠. 그들은 분명히 가해자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사가 아닌 곳을 침범하고 있었고, 거기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청년은 반대 시위대 사이로 즉흥적인 메시지를 들고 뛰어들었습니다.


2019년 테네시주 멤피스의 "새는 진짜가 아니다" 광고판
새는 진짜가 아니야 (Birds Aren't Real)

라고 휘갈겨 쓴 팻말을 들고 반대 시위대와 함께 서자, 반대시위자들이 그의 피켓이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즉흥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정부가 새들을 모두 죽이고 감시 드론으로 대체했습니다.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는 모든 새는 사실 당신들을 감시하는 작은 깃털 달린 로봇입니다."라고 주장했고 "50년 동안 이어져 온 운동에 참여했으며, 원래는 미국의 새들을 구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실패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담은 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그저 즉흥적인 농담으로 시작되었던 그의 퍼포먼스는 의도치 않게 거대한 사회적 흐름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괴짜 청년은 공연 예술가 겸 영화 제작자로 활동 중인 피터 맥킨도(Peter McIndoe)입니다. 그는 1969년부터 2001년 사이에 미국 정부가 120억 마리의 새를 모두 죽이고 감시 드론으로 교체했다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새똥도 사실은 액체 추적 장치이고, 길가에서 죽은 새도 모두 고장 난 로봇이라는 설정까지 더해졌습니다. 놀랍게도 이 운동은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모으며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피터 맥킨도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조롱하는 사회풍자 운동입니다. '새는 진짜가 아니야'라는 ‘가짜 음모론’으로 ‘진짜 음모론’을 비틀어 공격하는 그의 풍자 방식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었습니다.


맥킨도가 ‘새는 진짜가 아니야’라는 가짜 음모론을 들고 나온 배경에는 거짓 정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퍼뜨리며 정치 세력화한 ‘큐어넌(QAnon)’이 있습니다. 큐어넌은 2017년 미국에서 처음 조직된 극우 음모론 단체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알려져 있죠. 이들은 미국 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비밀리에 아동 성착취 등을 저지르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라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맥킨도는 멀쩡한 사람들이 큐어넌을 믿고 따르는 것을 풍자하기 위해 ‘새는 진짜가 아니야'라고 외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진짜 음모론처럼 퍼져나간 가짜 음모론

‘새는 진짜가 아니야’ 음모론은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맥킨도는 단순히 "새는 진짜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진짜 음모론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치밀한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이는 그의 음모론이 내용(content)이 아닌 형식(form)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완벽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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