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중간계 ; 어때, AI 신기하지?

모두가 크리에이터를 위한 AI에만 몰입하는 걸까?

by 박찬우
AI의 바람이 대단합니다.


광고나 방송, 소셜미디어에서 이제는 AI로 제작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창작자들은 날마다 놀랍도록 새로워지는 AI 기술을 콘텐츠에 적용해 보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 음악, 미술 등 창작의 모든 영역에서 AI의 손길이 닿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우리 삶의 일부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AI 활용 장편영화, '중간계'


common.jpg

영화 <중간계>는 한국에서 AI 기술을 본격적으로 활용했다고 내세운 첫 상업 장편영화입니다. '범죄도시' 시리즈로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강윤성 감독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도전을 했습니다. 바로 생성형 AI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국내 첫 장편 상업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국정원 블랙요원(변요한), 경찰(김강우), 몰락한 여배우(방효린), 방송국 PD(임형준)가 각자 다른 목적으로 한 장례식장에 모입니다. 이들은 납치된 재력가를 쫓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눈을 떠보니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인 '중간계'에 갇혀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영혼을 소멸시키려는 저승사자들의 추격을 받으며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입니다.


이 영화에서 AI는 주로 크리처(괴물) 캐릭터 생성, 차량 폭발이나 건물 붕괴 같은 특수효과 장면에 활용되었습니다. 전통적인 CG 작업이라면 며칠씩 걸렸을 장면들이 AI 기술로 몇 시간 만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제작진은 "기존 CG 작업 시간의 3분의 1 수준으로 단축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AI 도입으로 제작 기간과 비용은 줄었지만 제작 인력은 오히려 늘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6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8,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관람료로 선보였습니다. 제작 기간도 놀랍습니다. 5월 촬영을 시작해 개봉까지 단 5개월. 통상 CG 작업에만 1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획기적인 단축입니다. 강윤성 감독은 "AI 기술이 상업 영화에 적용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줬다"고 강조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영화 매출은 6910억 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9708억 원) 대비 29% 급감했습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인기로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으면서 영화 매출이 줄었고,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배우의 인지도 상승으로 출연료가 폭등하는 이중고를 겪으며 제작비 부담도 커졌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국내 상업 영화(제작비 30억 원 이상)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7편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9편) 대비 63%나 줄었습니다. 강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AI를 사용하면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데다 제작비도 기존보다 대폭 줄일 수 있다”며 “AI가 한국 영화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간계>를 보고 난 후 후한 점수는 줄 수가 없습니다. AI 기술이 강윤성 감독과 같은 크리에이터에게는 여러 가지 효율적인 이점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관객인 저에게는 <중간계> 영화를 통해 새로운 장점을 전해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AI 기술 테스트에 관객으로 참여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별다른 이야기도 아닌데 파트를 나누어 결말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영화 마케팅에 이용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코카콜라의 AI 광고 실험: 혁신의 강행


코카콜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생성형 AI 기반 연말 광고 캠페인을 선보였습니다. 1995년 클래식 광고 ‘Holidays Are Coming’을 AI로 리메이크한 데 이어, 올해는 이를 다시 손질한 버전을 공개해 AI 광고 실험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코카콜라의 글로벌 생성형 AI 책임자 프라틱 타카(Pratik Thakar)는 이번 광고가 "영화적 스토리텔링과 기술적 정밀함의 경계를 확장했다"고 자평하며, AI가 단순한 효율화 도구를 넘어 창의성의 미래라고 강조했습니다. 코카콜라 측은 AI를 통해 다양한 국가와 문화권에 맞춘 맞춤형 광고 버전을 신속하게 제작할 수 있었던 점을 큰 성과로 꼽았습니다.


2024년에 공개된 광고에 대한 "영혼이 없다", "부자연스럽다", "진짜 사람이 만든 광고를 돌려달라"는 부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코카콜라는 또다시 AI로 광고를 내놓았습니다. 심지어 제작과정 영상의 코멘터리를 통해 개선된 AI 기술의 적용을 일일이 설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자신감 넘치는 발표와 달리, 대중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적대적인 양상을 보였습니다.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에는 이번 광고에 대한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가장 주된 비판은 코커콜라의 설명과는 달리 여전한 영상이 주는 기괴함과 이질감이었습니다. 1995년 원작 광고가 실제 트럭과 조명,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따뜻하고 몽환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면, AI 리메이크 버전은 기술적으로는 매끄러워졌을지 몰라도 특유의 '인간적 온기'가 거세되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비평가들은 AI로 생성된 동물들의 눈빛이 생기가 없고, 트럭의 바퀴가 지면에 닿지 않고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등 물리적 현실감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인간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인간 같지는 않은 존재를 볼 때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을 자극하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들이 코카콜라가 전년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AI 광고를 고수한 것에 대해 "기업이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느낀 것입니다. 유명 유튜버들과 비평가들은 코카콜라가 "기술에만 몰두하여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감성을 외면했다"고 꼬집었습니다. "AI가 만든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원하는 휴일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반응으로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죠.


이러한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코카콜라가 AI 광고를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슬람 엘데수키 코카콜라 글로벌 부사장은 "AI 기반 광고가 소비자들로부터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역사상 가장 높은 테스트 점수를 받은 광고 중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온라인상의 부정적인 여론을 '노이즈'로 규정하며, 대다수의 침묵하는 대중은 기술적 배경보다 스토리에 반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마케팅 업계에서 관찰되는 흥미로운 현상인 '인간 선호(Human Favoritism)' 연구 결과와도 맞물립니다.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는 콘텐츠가 AI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를 때는 긍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출처를 알게 되면 평가를 절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이러한 간극을 인지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인간 중심 광고 'A Holiday Memory'를 함께 공개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며 리스크를 관리하고자 했습니다.


이 광고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훨씬 호의적이었습니다. "AI를 사용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 "이게 진짜 우리가 원하는 광고"라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코카콜라는 AI 광고와 전통 제작 방식의 투트랙 전략을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슬람 부사장은 "우리가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그냥 지나쳐 버릴 것"이라며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코카콜라는 3분기 순매출이 5% 증가한 124억 6,0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크리에이터 중심 AI 현상의 명암: 'AI Slop'의 등장


중간계와 코카콜라의 사례는 현재 콘텐츠 시장이 겪고 있는 더 거대한 현상의 일부일 뿐입니다. 현재 AI 기술의 도입은 철저히 생산자와 기업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용자인 대중이 겪는 피로감은 임계치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SLOP-768x512.jpg

최근 'AI Slop', 즉 'AI 오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여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이는 호주 맥쿼리 사전이 2025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할 만큼 강력한 사회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AI Slop은 생성형 AI를 사용하여 최소한의 노력으로 대량 생산된 저품질의 텍스트, 이미지, 영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과거의 이메일 스팸이 콘텐츠의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인간의 검수나 창의적 고뇌 없이 오직 클릭 유도와 광고 수익, 비용 절감을 위해 만들어진 디지털 쓰레기입니다.


챗봇이 쓴 듯한 부자연스러운 문장, 논리적 오류,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하는 이미지,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 등이 AI Slop의 특징입니다. 왜 인터넷은 이런 쓰레기로 뒤덮이게 되었을까요? 이는 생성형 AI 도구가 제공하는 압도적인 생산 효율성 때문입니다. Billion Dollar Boy의 미국과 영국 전역의 소비자, 크리에이터, 마케터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따르면 마케터 응답자의 79%가 AI 콘텐츠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73%는 AI 콘텐츠가 기존 콘텐츠보다 성과가 좋다고 믿고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11-29 054257.png 좋아요 10만 개를 받은 새우 예수 (Shrimp Jesus) / 출처 : comicbook_sam facebook

하지만 소비자의 인식은 정반대입니다. 단 26%만이 AI 콘텐츠를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이는 전년도 60%에서 급락한 수치입니다. 마케터들은 비용 절감, 시간 단축, 대량 생산이라는 효율성에 주목하지만, 소비자들은 진정성 결여, 품질 저하, 신뢰할 수 없음이라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은 "프롬프트 한 줄이면 영상 뚝딱"이라는 도구의 편리함에 취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시청자에게 "1분 만에 만든 고민 없는 결과물"을 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용자들은 점점 더 자신의 피드가 영혼 없는 AI 생성물로 채워지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으며, 이는 알고리즘 회피나 차단과 같은 적극적인 거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AI Slop의 범람은 단순한 짜증을 넘어 디지털 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의 50% 이상이 이제 AI 생성 콘텐츠를 식별할 수 있으며, AI가 만든 것으로 확인될 경우 해당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와 정서적 유대감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AI Slop'이라는 용어 자체가 내포하듯, AI 콘텐츠는 싸구려, 가짜, 성의 없음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에 갇히고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사례에서 보듯, 아무리 기술적으로 훌륭한 AI 광고라 할지라도 소비자가 그것을 진정성 없는 복제품으로 인식하는 순간 브랜드 가치는 훼손될 위험에 처합니다.


다시, 휴먼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콘텐츠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례들도 있습니다. 영상 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이 만든 뮤직비디오 '무지개다리 너머'는 100% AI로 제작된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유튜브 댓글에는 "30초 만에 오열했다", "이 영상을 보고 안구건조증이 나았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AI가 만든 영상인 줄 알면서도 눈물이 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스토리'에 있었습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주인공의 마음, 그리움과 이별의 순간들을 담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 것입니다. AI가 이미지를 그리고 장면을 연출했지만, 그 안에 어떤 감정을 담을지,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했습니다.


야나두의 '실수하기 좋은 영어'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 할머니와 흑인 남성이라는 의외의 조합, K-할머니 특유의 잔소리 섞인 따뜻함, 그리고 콩글리시를 바로잡아주는 유쾌한 상황—이 모든 요소가 단순한 AI 기술 시연을 넘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김민철 야나두 대표는 "한국인 할머니의 잔소리하는 이미지와 거친 할렘 이미지가 부합되면서 생기는 신선함"에 주목했다고 밝혔습니다.


AI는 도구입니다. 놀라운 도구이지만, 그 자체로는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감동은 사람의 경험에서 나오고, 공감은 인간적인 이야기에서 태어납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힘입니다. AI 시대의 크리에이터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다루는 능력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입니다.


3D 입체영화가 남긴 교훈, AI는 신기함을 넘어서야 한다


EwS9G0CK1c9lRK-PFiih999WFvvxyCKJJynjO96URt-pLpW1hqRFf5pNN-qFhUzMEChH_YwXyh8_Gdhp6JYzfsPSOqT3ZPCceZF7GsVrrT1gBs9Kohg2q9zBtS_z1rN_dtasJt5mOa-Fz4HlwUdR1Q.png

2009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가 개봉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3D 입체영화 기술은 전 세계를 열광시켰습니다.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영상에 관객들은 감탄했고, 극장마다 3D 상영관을 앞다투어 도입했습니다. 영화 산업은 3D가 영화의 미래라고 확신했습니다. 제작비를 더 들여서라도 3D로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3D 영화는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3D 상영관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제작사들도 3D 제작을 포기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3D 기술은 분명 신기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관객들에게는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3D는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을 높이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어두운 화면과 무거운 안경은 불편함만 가중시켰습니다.


영화 제작자들은 3D 기술 자체에 집착했습니다. 얼마나 입체적으로 보이는지, 얼마나 생생하게 튀어나오는지에만 신경 썼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잊었습니다. 관객이 극장에 오는 이유는 신기한 기술을 체험하기 위함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경험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3D 기술이 스토리텔링에 복무하지 못하고 그저 기술 과시용으로만 사용되면서, 관객들은 점차 등을 돌렸습니다. '3D'라는 라벨이 붙으면 오히려 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AI 콘텐츠가 걷고 있는 길이 3D 영화와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AI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마케팅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AI 기술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작 콘텐츠가 전달하는 메시지나 감정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AI 광고가 받은 비판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술적 성취를 과시하다 보니 광고 본연의 목적인 감성적 연결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AI는 지금 신기합니다. 텍스트 몇 줄로 영상을 만들고, 목소리를 합성하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하지만 그 신기함이 얼마나 갈까요? 3D가 그랬듯이, 신기함은 금방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은 곧 지루함이 됩니다. 만약 AI 콘텐츠가 신기함 외에 아무것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3D 영화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AI가 살아남으려면, 아니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신기함을 넘어서야 합니다. AI는 더 좋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더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는 매개가 되어야 합니다.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AI 시대,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AI 콘텐츠 제작 기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제작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술의 진보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중간계 영화는 AI 기술로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한계도 드러냈습니다. 코카콜라는 AI 광고로 높은 테스트 점수를 받았지만, 여전히 대중은 전통 방식의 광고에 더 감동했습니다. 야나두는 AI를 활용했지만, 성공의 핵심은 창의적인 기획에 있었습니다.


3D 영화의 실패는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기술은 이야기를 돕는 도구여야지, 이야기를 대체하는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AI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AI Slop이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AI가 아니라, 더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더 빠른 제작이 아니라, 더 깊은 공감입니다. 더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더 따뜻한 연결입니다. 3D 영화가 신기함에만 머물러 추락했듯이, AI 콘텐츠도 신기함을 넘어서지 못하면 같은 운명을 맞을 것입니다.


AI는 신기합니다. 하지만 그 신기함에 취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는지,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중간계의 주인공들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갇혀 혼란스러워했듯이, 우리도 지금 AI와 인간 사이의 중간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기술의 신기함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활용해 정말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인가. 그 선택이 AI 콘텐츠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평가는요?


영화 <중간계>는 새로운 시도와 마케팅적인 관점에서는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만 영화적으로는 최하점을 줄 수밖에 없겠습니다. 허술한 이야기 구조, 서사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그냥 AI 기술의 테스트 습작 같은 영상입니다.


그렇다고 AI 기술이 신기하지도 못했습니다. AI 특유의 화질 문제, 디테일 부족, 때때로 '일그러짐'이 보이기도 했고, AI로 구현된 크리처들의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은 <중간계>가 상업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스크린샷 2025-11-29 061902.png

최종 빌런이 등장하는 액션신은 <쿵푸허슬>에서의 빌런과 유사하여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최종 빌런이 누구인지는 스포일 않겠습니다. 저만 당할 수는 없지요.


<중간계>는 '스낵 무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던 <밤낚시> 보다 못하고, 한국 SF 영화의 도전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디 워>보다는 낫네요. 항상 새로운 도전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응원하지만,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부분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AI를 활용한 새로운 영화가 탄생하길 누구보다 더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