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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믿으려는 의지

가짜뉴스, 탈진실은 우리를 어떻게 선동하는가

by 박찬우

사실 전 변성현 감독의 전작들을 다 보았지만 재미있게 본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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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갖기 위해 불한당이 된 남자 '재호'(설경구)와 더 잃을 것이 없는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임시완)가 교도소에서 만나 끈끈한 의리를 다지고, 출소 후 함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그린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은 느와르의 외피를 입은 멜로물로, 두 남자의 서로 알 수 없이 끌리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어긋나는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전 브로맨스(?)의 감정에 솔직히 전 거부감이 있어 불한당원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킹메이커>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그의 곁에서 천재적인 선거 전략을 펼치는 '서창대'(이선균)의 치열한 선거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실존 인물인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을 모티브로 하였다 하여 기대를 하였었죠. 하지만 제게 그렇게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길복순>은 청부살인 회사를 엔터테인먼트로 설정하고 의뢰받은 살인은 '작품', 살인 설계를 '시나리오'라고 표현하는 등의 독특한 세계관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타일리시하고 만화적인 액션 연출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액션씬들이 완전히 저를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세 편의 영화 모두 제겐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그냥 범작의 수준으로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영화 <굿뉴스>는


그러던 중 또다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변성현 감독의 영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1970년에 발생한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요도호 사건)을 모티브로 한 블랙코미디 스릴러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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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뉴스>는 일본 공산주의 단체 적군파가 민간 여객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향하면서 시작됩니다. 한국 정부는 납치된 비행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에 착륙시키기 위해 김포공항을 평양 순안공항으로 위장하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펼칩니다. 관제사는 북한 관제사인 척 연기하며, 김포공항을 평양공항으로 속이기 위해 지상 요원들은 간판을 바꾸고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꽂으며, 여학생들이 북한 주민으로 위장하는 대담한 작전이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직전에 변성현 감독이 각본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마귀>의 스토리가 그다지 탐탁지 않았던 터라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위장한다는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고 '너무 나간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번에도 걸러야 하나 싶어 시청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잠깐의 여유가 생겨 앞부분만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에 관람을 시작했는데 글쎄 약속된 일정도 미루고 다 한 번에 몰입해서 다 보고 말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최근 본 블랙코미디 영화 중에 최고였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소재로 삼아 지금의 세상을 비판하는 전반적인 스토리의 구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동안 긴가민가 했던 변성현 감독의 연출에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네요. 앞으로의 작품에 더 큰 기대가 생겼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들도 모두 좋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만화 같은 과장된 연기를 보여주던 일본 배우들의 <굿뉴스>에서는 놀랍도록 달라진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믿고 보는 류승범의 코믹연기는 절정에 달했고 눈여겨보던 배우 홍경은 자신의 숨겨진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김성오 배우의 일본어 연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설경구 배우의 연기도 이번에는 변화가 있어 좋았네요. 영부인 연기를 한 전도연 배우는 제가 본 그녀의 최고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랐던 점은 이 영화의 바탕인 실제 사건이었습니다. 모티브가 되었던 요도호 사건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많아서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여기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오가며 변성현 감독 특유의 빠르고 화려한 편집과 만화적 연출, 입개그가 더해져 136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몰입감을 유지시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블랙코미디+스릴러로 장르를 융합한 근래 보기 힘든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믿으려는 의지



변성현 감독에게 영화 외적으로 놀란 점이 있습니다. 저도 연재글 08화 <어떻게 디스인포메이션으로 전략적 공격을 하는가?>에서 이야기했던 탈진실시대의 대중의 선동법입니다.


김포공항에서 인질극으로 번진 요도호를 문제 일으키지 말고 그냥 평양으로 보내자는 의견이 분분하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해결사 아무개(설경구)가 대중을 선동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선동이 성공하게 되자 그가 선동의 비법을 공개하게 되죠.


1. 일어난 사실

2. 약간의 창의력

3. 믿으려는 의지


네, 동의합니다. 제가 칼럼에서 여러 가지 단계와 사례로 설명한 대중의 선동법을 딱 3단계로 아주 간결하게 핵심을 짚어 주셨습니다. 영화에서는 하얀 거짓말처럼 작용했지만 작금의 시대에서는 이것이 정보혼란자들에게는 무기처럼 활용되고 있습니다.


* 탈진실 시대, 대중을 어떻게 선동하는지에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생각해 보면 변성현 감독도 영화 <굿뉴스>로 관객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이 3단계의 비법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도호 사건 (일어난 사실)에 약간의 창의력 (블랙 코디미 영화화)으로 본인도 관객들에게 믿으려는 의지를 원하고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전 선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평가는요....


저는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유머와 풍자를 곁들여 통찰력 있게 다루면서 관객들에게 신선한 재미와 동시에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블랙코미디 장르를 좋아합니다. 그런 제 기호에 <굿뉴스>는 딱 맞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보다 좋았고요, 추석 시즌에 개봉한 다른 코미디 영화 <보스>보다는 몇 배 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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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한일 배우들의 연기 대결, 과거와 현재를 잇는 풍자, 심각한 실화 사건을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로 재해석한 대담하고 신선한 연출을 <굿뉴스>에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일부 기사에 황정민 배우가 카메오로 잠시 출연한다고 언급되었는데 눈을 씻고 보아도 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함께 황정민 배우도 찾아 봐 주세요. 찾으신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시고요.


P.S. 변성현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돌이켜보면, <굿뉴스>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블랙코미디라는 어려운 장르적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만큼, 앞으로 그의 작품들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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