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필름의 성공 법칙
오늘은 특별한 영화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다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안타깝게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은 이 영화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개봉일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90년 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영화 <100 YEARS>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15년 11월 18일,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 배우 존 말코비치가 완성한 한 편의 영화가 프랑스 코냑 지방의 방탄유리로 만든 금고 속에 봉인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은 정확히 100년 후인 2115년 11월 18일입니다.
주연 배우인 존 말코비치가 각본을 쓰고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연출한 이 영화 <100 Years: The Movie You Will Never See>는 100년 후의 삶을 상상합니다. 전체 영화는 한 세기 동안 공개되지 않지만, 세 편의 티저 예고편을 통해 2115년 인류가 맞이할 수 있는 세 가지 미래 시나리오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대사와 연기가 세 가지 다른 배경에서 펼쳐지는데, 자연이 지구를 장악한 세계, 사회가 극도로 도시화되어 기술에 지배당하는 세계, 그리고 인류가 억압적인 로봇 정권의 통치 아래 놓인 세계를 각각 보여줍니다. 이 짧은 영상들은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결국 100년이 지나야 만 진짜 영화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뭐 결국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겠지만요.
이 영화는 사실 프랑스 코냑 브랜드 Louis XIII가 제작한 브랜드 필름입니다. 100년이 걸리는 Louis XIII 코냑의 숙성 과정을 영화로 표현한 것이죠. 완벽을 위해 100년을 기다리는 Louis XIII 코냑의 헌신을 전달하기 위해, 브랜드 필름 역시 100년 후인 2115년에 공개하는 독특한 마케팅을 선보인 것입니다.
LOUIS XIII 한 병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장인정신의 유산과, 정작 셀러 마스터들은 절대 자신의 작품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영화 ‘100 Years’의 창의적인 연출이 도출된 것입니다. 각 셀러 마스터가 자신이 절대 맛보지 못할 걸작에 일생을 바치는 것처럼, 이 영화의 배우들과 제작진도 최종 편집된 이 영화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Louis XIII는 이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예술 프로젝트가 2115년까지 보존될 것을 어떻게 보장할까요? 프랑스의 명문 금고 제조사 피셰-보슈(Fichet-Bauche)와 협력하여 Louis XIII는 열쇠가 아닌 시간의 흐름으로만 열리는 특별한 금고를 제작했습니다. 비밀번호나 열쇠로 열 수 없는 세계 최초의 이 고급 금고는 전원 공급 여부에 상관없이 100년 뒤 자동으로 열리게 됩니다. 이는 2115년 전까지는 이 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2115년 11월 18일, 이 금고는 프랑스 코냑 지방의 도메인 뒤 그로레(Domaine du Grollet)에서 열리는 영화의 공식 시사회에 맞춰 자동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100년 후 2115년 11월 18일에 마침내 이 금고가 열리면, 프랑스 코냐크에 위치한 LOUIS XIII 하우스에서 독점 시사회가 개최되고, 미래 셀러 마스터 및 2015년에 금속재질의 시사회 초대장을 받은 귀빈의 후손들이 참석하게 됩니다.
"모든 영화가 100년 후에 공개되면 어떨까요?" 존 말코비치는 이 프로젝트를 수락하면서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단순한 마케팅 스턴트가 아닙니다. 브랜드의 본질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역사상 가장 대담한 브랜드 필름 실험입니다.
브랜드 필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2001년 BMW가 제작한 <The Hire>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튜브가 생기기 4년 전, BMW는 데이비드 핀처가 프로듀싱하고 클라이브 오웬이 주연한 고예산 액션 단편 영화를 온라인으로 공개했습니다. 획기적인 점은 이 영화들을 TV가 아닌 오직 인터넷을 통해서만 공개했다는 것입니다.
<The Hire>는 제품의 기능을 직접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통해 BMW가 추구하는 '최상의 드라이빙 경험'과 세련된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결과는 폭발적이었습니다. 4개월 만에 1,100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2001년 BMW의 미국 내 판매량은 12%나 증가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고품질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그 자체로 강력한 마케팅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며 수많은 후발주자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온라인이나 유튜브에 머물렀던 브랜드 필름이 이제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밤낚시>는 1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스낵 무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이노션이 기획하고 현대자동차가 제작비를 지원한 이 프로젝트는 광고 제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창의력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손석구 주연, 문병곤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전기차 충전소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룹니다.
이 필름의 진정한 혁신은 촬영 기법에 있습니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차량에 장착된 전후방 및 서라운드 뷰 카메라의 시점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이 독창적인 시도는 제품을 단순히 영화 속에 등장시키는 것을 넘어, 제품의 핵심 기능(카메라 기술)을 스토리텔링의 중심 도구이자 영화의 '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제품과 스토리가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례로, 현대자동차가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창의적인 브랜드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강력하게 각인시켰습니다.
4만 5천 명의 관객을 동원한 '밤낚시'는 관객 5명 중 1명이 다른 영화도 함께 관람하는 파급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브랜드 홍보를 넘어 극장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광고제와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고, 북미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와 선댄스 영화제에도 초청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 ‘칸 라이언즈(Cannes Lions) 2025’에서는 그랑프리(Grand Prix)를 비롯해 금사자상(Gold Lions, 금상) 2개, 은사자상(Silver Lions, 은상) 2개로 총 5관왕의 쾌거를 거둬들였습니다.
HL그룹이 제작한 '빌리브'는 37분 러닝타임의 3부작 옴니버스 영화로, 스릴러와 블랙코미디, 휴먼 드라마를 아우르며 '믿음'이라는 주제를 관통합니다. 강기영, 서현, 고창석, 이정하 등 유명 배우들이 참여했으며, 웬디가 부른 엔딩곡 '플라이'로 작품의 메시지를 강화했습니다. 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CGV에서 단독 상영된 이 작품은 국내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옴니버스 형식의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빌리브'는 각 파트마다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아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를 실험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스릴러, 두 번째는 멜로와 호러, 판타지를 혼합한 장르적 실험, 세 번째는 아이스하키를 배경으로 한 청춘 성장 드라마로 구성되어 짧은 시간 안에 다채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밤낚시'와 '빌리브'의 사례는 브랜드 필름이 극장이라는 전통적 공간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극장이 다양한 형식과 길이의 콘텐츠를 수용하는 열린 공간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브랜드 필름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시대에, 관객들은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2025년 Amazon Prime Video를 통해 공개된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는 H.G. 웰스의 1898년 동명의 소설 <우주 전쟁>을 원작으로 한 SF 영화입니다. 리치 리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아이스 큐브가 주연을 맡아 영화 <서치>처럼 이야기 전체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진행되는 형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로튼 토마토 지수 4%, 관객 점수 21%를 기록한 이 영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낮은 평가과 비판을 받았습니다. 역대급으로 처참한 CG 수준과 엉망인 스토리가 주원인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등장한 아마존 때문입니다. 외계인을 물리치는 바이러스를 아마존 기사가 Prime Air 드론으로 배송해서 전달하는 황당한 전개 때문이죠. 이 영화는 원래 유니버설에서 극장 개봉을 위해 진행되었지만, 이후 아마존이 인수한 후 아마존 배송 기사 캐릭터를 포함시킨 것으로 밝혀져 더욱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메시지 없는 과도한 자극, 일관성 없는 콘텐츠, 또는 타겟과의 공감대 형성 실패 등은 브랜드 필름이 아무리 흥미롭게 느껴져도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콘텐츠를 통한 브랜드 소통에 있어 '진정성'과 '명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불행히도 전 오늘 소개드린 <100 YEARS>를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언급한 브랜드 필름을 평가한다면 뭐 나름 인디영화의 재미를 살린 <밤낚시>가 '빌리브'라는 메시지가 그렇게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던 <빌리브>보다는 낫습니다. 그리고 <우주 전쟁>은 정말 아마존 합니다. (저만 당할 수 없어 <우주 전쟁> 강추드립니다.)
성공적인 브랜드 필름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브랜드의 본질을 꿰뚫고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적 원칙 위에 세워집니다. 칸 라이언즈 2023년 수상작 분석에 따르면, 성공적인 브랜드 필름은 감정적 연결, 시대정신과의 일치,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확산 가능성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아마 우리 중 누구도 2115년 11월 18일, 프랑스 코냑에서 열릴 <100 YEARS>의 시사회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결코 볼 수 없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브랜드 유산을 만드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