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크릿 메뉴, 다른 팬덤 전략
드디어 맥도날드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2026년 1월 5일, 맥도날드 UK가 공식 발표한 '시크릿 메뉴' 캠페인이 화제입니다. 런던 웨스트필드의 옥외광고판에서는 시크릿 메뉴 포스터가 자동으로 파쇄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습니다. 매장 키오스크 화면은 글리치처럼 지지직거리며 순간적으로 숨겨진 메뉴를 노출했습니다.
이는 수십 년간 레딧, 틱톡, 스레드에서 도시전설처럼 떠돌던 팬들의 메뉴 조합을 브랜드가 직접 공식 메뉴로 인정한 것입니다. 서프 앤 터프(치즈버거+필레오피쉬), 애플파이 맥플러리, 치킨 치즈버거 같은 소비자들이 직접 만들어낸 비공식 레시피가 드디어 정식 메뉴판에 오른 것이죠.
벤 폭스 맥도날드 UK CMO는 "우리는 소비자 사이에 수년간 무르익어온 대화에 주목했습니다. 팬들이 직접 만들어낸 메뉴들과 함께 시크릿 메뉴를 공식적으로 현실화했습니다."라고 캠페인의 의미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미 75년 전부터 'Not-So-Secret Menu'라는 이름으로 시크릿 메뉴를 운영해 온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인앤아웃 버거입니다.
같은 '시크릿 메뉴'라는 전략을 사용하지만, 두 브랜드의 접근법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미묘한 차이 속에 팬덤 마케팅의 인사이트를 찾아보겠습니다.
인앤아웃 버거의 시크릿 메뉴는 마케팅 부서의 기획이 아닌, 철저한 운영적 유연성과 고객 중심의 서비스 철학에서 탄생했습니다. 1948년 해리 스나이더(Harry Snyder)와 에스더 스나이더(Esther Snyder)가 캘리포니아 볼드윈 파크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 메뉴는 햄버거, 치즈버거, 프렌치 프라이, 음료라는 극도로 단순한 구성이었습니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은 식자재의 신선도 관리와 조리 속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나, 동시에 고객들로 하여금 '빈 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시크릿 메뉴인 '애니멀 스타일(Animal Style)'은 1961년 고객들의 요청에 대한 주방의 대응으로 탄생했습니다. 패티에 머스터드를 발라 굽고, 피클과 엑스트라 소스, 구운 양파를 추가하는 이 복잡한 조리법은 단순히 맛의 변주가 아니라, 당시 매장을 찾던 특정 고객 집단(다소 거칠고 시끄러웠던 현지인들을 'Animals'라 칭했다는 설이 있음)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였죠.
이것이 점차 다른 고객들에게 구전되면서, '애니멀 스타일'이라는 용어는 고객과 직원 사이의 암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인앤아웃의 시크릿 메뉴가 '발명'된 것이 아니라 '발견'되고 '축적'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브랜드는 이를 공식 메뉴판에 올리는 대신, 웹사이트의 'Not-So-Secret Menu'라는 별도 페이지에 소극적으로 등재함으로써, 이것이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라는 환상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맥도날드 영국의 시크릿 메뉴들의 공통점은 주방에서의 새로운 조리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완제품들을 새롭게 '조립(Assembly)'하는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인앤아웃의 애니멀 스타일이 패티를 굽는 방식 자체를 달리해야 하는 것과 달리, 맥도날드의 시크릿 메뉴는 계산대(POS)와 포장 단계에서의 결합만으로 완성됩니다. 이는 운영 복잡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소비자에게 '새로움'을 제공하려는 고도의 공급망 관리 전략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인앤아웃 매장에 처음 방문한 고객이 메뉴판에 적힌 '1번 세트'를 주문하는 것과, 숙련된 고객이 "더블더블 애니멀 스타일에, 감자튀김은 웰던으로, 그리고 통양파 구이를 추가해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행위 사이에는 거대한 위계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주문은 일종의 '시볼레스(Shibboleth,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암호)'로 작용합니다. 시크릿 메뉴를 주문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를 넘어, 자신이 이 브랜드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내부자(Insider)'임을 증명하는 의식이 됩니다.
레딧(Reddit)과 같은 커뮤니티에서 인앤아웃 방문 경험담이 공유될 때, 이러한 커스텀 주문의 디테일은 팬덤 내의 서열을 확인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인앤아웃의 시크릿 메뉴는 '희소성'의 가치를 극대화합니다. 인앤아웃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모집하지 않고, 직영점 체제를 고수하며, 물류 센터에서 하루거리 이내에만 매장을 오픈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캘리포니아와 서부 일부 지역에 국한된 매장 접근성은 동부나 해외 팬들에게 인앤아웃 방문을 일종의 '성지순례'로 만들었으며, 이때 시크릿 메뉴를 주문하는 것은 성지순례의 필수 의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구조의 핵심은 '발견의 즐거움'입니다. 시크릿 메뉴를 알게 되는 순간, 팬들은 마치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행위 자체가 팬덤 활동이 되죠.
맥도날드 영국의 이번 캠페인은 단순한 신제품 출시가 아니라, 모바일 앱(App) 사용을 유도하고 디지털 고객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글리치(Glitch) 마케팅: 매장 내 키오스크와 디지털 스크린이 일시적으로 오작동하는 것처럼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시크릿 메뉴가 아주 짧은 순간 노출되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고객들에게 우연한 발견의 기쁨을 제공하고, 이를 포착하여 공유하게 만드는 게임화(Gamification) 요소를 도입한 것입니다.
플랫폼의 통제: 레딧(Reddit)과 같은 커뮤니티 사용자들에게 "정보를 공유하지 말라"는 역심리 메시지를 보내 바이럴을 유도했으며, 스냅챗(Snapchat)의 다이렉트 메시지(DM)를 통해 개인적인 '비밀'을 전달하는 듯한 1:1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앱 중심의 주문: 시크릿 메뉴의 주문 과정을 맥도날드 앱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하거나, 앱 사용 시 리워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설계하여, 오프라인의 팬덤 에너지를 디지털 플랫폼의 활성 사용자(MAU) 증대로 전환시켰습니다.
이 구조의 장점은 '검증된 수요'를 메뉴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SNS에서 바이럴 된 조합이기 때문에 실패 리스크가 낮습니. 그리고 팬들은 "내가 제안한 메뉴"라는 오너십(Ownership)을 느끼게 됩니다.
두 브랜드의 시크릿 메뉴 접근 방식은 팬덤을 다루는 철학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인앤아웃은 팬들에게 '발견의 여정'을 제공하는 반면, 맥도날드는 팬들의 창작물을 '공식 인정'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인앤아웃의 시크릿 메뉴 정보는 과거에는 구전으로, 현재는 틱톡이나 블로그를 통해 퍼지지만, 여전히 매장 키오스크나 메뉴판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검색하고 학습해야 합니다. 이러한 '학습 비용'이 팬덤의 결속력을 강화합니다.
반면 맥도날드 영국은 이 정보를 모든 미디어 채널로 민주화했습니다. 누구나 광고를 보면 알 수 있고, 앱에서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정보의 진입 장벽을 낮춰 대중적 확산에는 성공했지만, '나만 아는 비밀'이 주는 배타적 즐거움은 희석되었습니다.
이는 인앤아웃이 추구하는 '깊은 팬덤(Deep Fandom)'과 맥도날드가 추구하는 '넓은 팬덤(Broad Fandom)'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인앤아웃의 팬덤은 '구조적 진정성'에 기반합니다. 시크릿 메뉴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주방 시스템이 그러한 커스터마이징을 허용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인앤아웃의 시크릿 메뉴는 마케팅이 아니라 '요리'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팬들은 직원들이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자신만의 특별한 주문을 요리해 준다는 사실에서 브랜드의 진정성을 느낍니다.
반면, 맥도날드의 시크릿 메뉴는 '수행적 진정성'을 띱니다. 기업이 팬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연기(Perform)'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당신들의 해킹 문화를 보고 있었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팬들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패키징 된 상품으로 판매될 때, 팬들은 이것이 요리라기보다는 효율적으로 계산된 '제품'임을 인지하게 됩니다.
팬덤의 '참여적 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팬들이 메뉴를 개발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일종의 '놀동'입니다. 인앤아웃은 이 놀동의 결과물을 공식 메뉴판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그 창작의 권리를 여전히 팬들의 영역(혹은 '아는 사람들'의 영역)에 남겨두었습니다. 브랜드는 단지 그 주문을 받아주는 수동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팬들이 계속해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혹은 만족감)을 줍니다.
맥도날드 영국의 경우, 팬들의 노동 결과물을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전유'했습니다. 팬들이 개발한 '맥갱뱅(McGangBang)'이나 '애플파이 맥플러리'를 브랜드가 가져와 공식 이름과 가격표를 붙여 판매하는 행위는, 팬들의 창의성을 자본화한 것입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팬들에게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는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팬덤 활동의 동력을 기업이 흡수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숨겨진 보물이 없다면, 탐험가들은 떠나기 마련입니다.
맥도날드와 인앤아웃의 시크릿 메뉴는 겉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그 선택은 분명한 차이가 있고 각각 일장 일단이 있습니다.
맥도날드의 선택: "우리가 당신들의 문화를 축하합니다"
단기적 효과: 화제성, PR 효과, 매출 증대 가능성
장기적 리스크: 팬덤 정체성 약화, 독점성 상실, 코어 팬 이탈
인앤아웃의 선택: "이것은 여전히 당신들의 문화입니다"
단기적 비용: 즉각적 확산의 어려움, 통제 불가능성
장기적 가치: 팬 주인의식 강화, 브랜드 로열티 심화, 지속 가능한 팬덤
하지만 두 전략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팬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맥도날드는 팬을 공동 창작자로 특별하게 만들고, 인앤아웃은 팬을 인사이더로 특별하게 만듭니다.
결국 시크릿 메뉴의 본질은 '정보'가 아니라 '소속감'입니다. "나는 이 브랜드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이 팬덤을 만듭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팬에게 어떤 특권을 줄 건가요? 창작의 특권인가요, 발견의 특권인가요?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시크릿 메뉴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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