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운영된 기린 맥주 대학교 -FanCase10

팔지 않고 가르쳤더니, 팬이 생겼다

by 박찬우

지지자를 팬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습거리, 떠들거리, 협업거리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이를 준비하고 팬 육성을 위해 제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이렇게 어려운 일을 무려 17년이 넘게 지속해 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유명 맥주 제조사인 기린 맥주입니다. FanCase10은 바로 기린맥주의 기린 맥주 대학교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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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은 없지만, 학생은 있다


2001년 7월, 일본 맥주 시장의 점유율 경쟁이 치열하던 그 시절, 기린 맥주는 경쟁사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TV 광고에 더 많은 예산을 쏟는 대신, 인터넷에 가상 대학교를 세운 것입니다.


https://www.kirin.co.jp/alcohol/beer/daigaku/

이름하여 기린 맥주 대학교(キリンビール大学). 건학 이념은 단 한 줄이었습니다.

麦酒一途(맥주 일도)— 오직 맥주만을 위하여


입학시험도 없고, 졸업장도 없습니다. 수업료도 없고, 캠퍼스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학교는 24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공식 운영 설명문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맥주의 즐거움과 깊이를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2001년 7월에 개강한 것으로, 24시간 365일 통학 가능합니다."


초기 운영 당시 이 가상 대학교에는 실제 대학처럼 여러 학부가 존재했습니다. 맥주의 제조 원리를 가르치는 양조학부, 음식과 맥주의 조합을 탐구하는 문화학부, 맥주의 역사를 다루는 사학부, 맥주를 예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예술학부, 세계 맥주 시장의 통계와 경제를 다루는 경제학부, 그리고 동아리까지. 강의 페이지만 200페이지가 넘었습니다. 단순한 제품 홍보 페이지가 아니었습니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몇 시간이고 빠져들 수 있는 지식의 우주였습니다.


왜 하필 '대학교'였나


기린은 왜 블로그나 뉴스레터가 아니라, '대학교'라는 형식을 선택했을까요. 여기에는 꽤 정교한 심리 설계가 들어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공략 대상에 있습니다. 일본 마케팅 분석 기관 JMR생활종합연구소는 기린 맥주 대학교를 분석하면서 '오타쿠 마케팅' 사례로 다루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오타쿠는 어떤 카테고리에서 판매원보다 더 깊은 정보를 갖고 능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소비의 프로'로, 일본 전체에 약 1,000만 명에 달하며 마음에 드는 제품을 스스로 추천하고 주변 소비를 선도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바로 '덕후'입니다. 맥주 덕후는 홉의 품종을 이야기하고, 발효 온도가 맛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고, 수십 년치 일본 맥주 소비량의 변화를 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맛있는 맥주를 드세요"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타쿠의 정보 기대치를 넘어서야만 그들이 팬이 된다는 원리를 기린은 2001년에 이미 실행한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심리적 자세의 전환에 있습니다. 소비자로서 광고를 볼 때와, 학생으로서 지식을 습득할 때 사람의 심리적 자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전자는 방어적이고, 후자는 개방적입니다. 기린 맥주 대학교의 방문자는 스스로를 '광고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맥주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브랜드와의 관계 자체가 소비자에서 학습자로 재정의된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구조 자체가 팬 여정을 설계한다는 점입니다. 학부가 나뉜다는 것은 단순히 카테고리를 나눈 게 아닙니다. 방문자에게 "아직 탐험하지 않은 영역이 더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는 것입니다. 플랫폼 안에는 '맥주 이해도 체크 퀴즈'와 전문 용어 사전도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파편화되어 있던 맥주 지식을 표준화하고, 일반 대중이 전문가 수준의 지식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추는 장치들이었습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 음식 페어링에 관심 있는 사람, 데이터와 트렌드에 관심 있는 사람 —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기린이라는 브랜드와 접점을 갖게 되며, 그 접점은 쉽게 소진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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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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