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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곳에서 Feb 20. 2024

[볼리비아] 번아웃 직전 우유니 사막으로 떠나다(2)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우유니 사막의 4가지 투어(낮, 밤, 일출, 일몰)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부부가 있다. 내가 그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볼리비아 라파스였다. 그때 El Alto라는 곳으로 이동하던 케이블카에서 우연히 같이 탑승하게 되었고, 우유니 사막 일정도 맞아서 같이 투어를 하였다. 당시 신혼부부였던 그들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여행 중이라고 했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랑 이런 사진도 찍어야 한다.

중남미 여행을 하다 보면 사이가 좋던 부부도 싸우게 되기 마련이다. 중남미 국가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고, 살아본 경험자로서 이야기하면 그 대륙은 뭔가 확실하고 정확하게 딱 정해진 것이 없다. 한국 사람들이 중남미에 와서 좋은 식당에 미리 예약을 하거나, 호텔에 별도의 서비스를 요청해 두거나, 택시를 미리 불러 놓는 등 서비스를 이용할 때 한국에서는 딱딱 지켜지던 것이 이 대륙에서는 뭔가 제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쉽게 신경이 곤두설 수 있고, 가뜩이나 고산으로 힘든데 부부끼리 대화할 때 단어 선택을 잘못한다던지, 서로 거슬리는 행동 같은 것을 하면 다투게 되기 쉽다.


부부 중 아내분이 체력적 부담으로 신경이 다소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유니는 해발 3,650m에 위치하여 날씨가 매우 춥고, 고산병 증세가 특히나 여자에게 더욱 영향을 많이 준다고 한다. 볼리비아가 두 사람이 합의한 여행지인지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는 남편 분이 더 강하게 주장해서 오신 것 같았다.

아내 분의 몸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투어를 중단해야 할 위기까지 와버렸다. 남편 분은 아내 분이 걱정되어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우유니 사막 투어를 중도 하차한다고 하였고, 아내 분은 남편 분의 평생의 추억거리가 될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아파도 꾹 참는 모습이 보였다.


투어를 하면서도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지만, 남편 분이 아내분의 투정을 다 받아주시고,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전환하여 아내분을 토닥여주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내가 그분들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는데, 계속 티격태격하다가도 두 분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 중에도 서로서로 세심하게 챙겨주고 사랑해 주는 모습이 부럽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나는 여행은 혼자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진정한 '나'를 찾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을 여행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했다. 또한, 여행을 할 때 계획한 일정을 방해받고 싶지 않고, 여행 파트너로 인해 여행 중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유니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서, 나에게 계속 떠오르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나 혼자 멋진 풍경을 보면서 눈에 담고 사색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여기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 여자친구(지금의 와이프)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 우유니 사막 여행이 더욱 오래오래 기억에 남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같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멋진 추억이 됐을 것이다.


우유니 낮투어는 정말 아름답다.


우유니의 일몰 풍경을 보면서 나는 재빨리 영상편지를 남기기로 했다. 평소에 살갑지 않은 성격이라 가족들, 여자친구에게 영상 편지는 한 번도 보내본 적이 없어서 찍으면서도 많이 어색했다. 그런데 그냥 갑자기 감사하다는 말이 하고 싶어졌다. '분위기에 취한다' 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이었던 것인가. 

 

잘 보이는 두 눈, 튼튼한 두 다리, 건강한 신체를 선물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음에도, 항상 나만 생각해 주는 여자친구(와이프)에 감사.


우유니의 일몰은 더욱 아름답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이 들다 보니, 이 세상엔 감사할 일이 천지였다.


우유니 사막을 만들고, 지금까지 부수지 않고 잘 보존해 준 조물주에 대한 감사.

정말 하기 싫었던 스페인어 공부를 꾸준히 해서 오늘 멋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 과거의 나에 감사.

비교적 수월하게 취업을 하고 주재원을 나와 이른 나이에 버킷리스트(우유니 여행)를 이룬 현재의 나에 감사.

이 풍경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여기서 느낀 감정을 평생 지니고 살아갈 미래의 나에 감사.


인생샷은 건졌지만, 혼자 찍어서 너무 아쉬운 사진

감사로 충만한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인데, 고요한 우유니 사막의 풍경이 원래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감정적으로 업이 되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이렇게 감사할 일도 많고 복도 많은 나 자신이, 업무가 좀 많고 몇몇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 따위로 지쳐버리기 직전까지 온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우유니 사막은 너덜너덜해진 나에게 이렇게 멋진 풍경만큼 삶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세상에 감사한 것이 없다면 혹은 현실에 너무나도 지쳐서 더 나아갈 수 없다면 우유니 사막을 꼭 가볼 것을 추천한다. 낮, 밤, 일출, 일몰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심신이 하나가 되고, 살아있음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감사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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