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난 타이완 여행기] 몰라도 너무 몰랐던 대만 - 3편
대만 사람들의 일상에서 종교는 빼놓을 수 없다. 어느 거리, 어느 동네에도 신당과 사찰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도교사원이 있다. 특정한 날에만 가는 게 아니라 그냥 퇴근하며 들르는 곳이다. 대만의 도교는 불교, 민간 신앙이 융합된 종교다. 그래서 불상을 모시는 동시에 인간사 수많은 분야를 담당하는 신들을 모신다. 그들 중엔 실존(했다고 알려져 있는) 인물도 있는데 삼국지의 장수 관우나, 신의 손을 가진 의사였던 화타, 송나라의 대 유학자 주자 등이 현세의 신으로 모셔져 있다.
이들은 각각 건강, 학업, 연애, 재물 등등 담당이 있고 사람들은 그 분야에 맞는 신을 찾아 소원을 빈다. 이런 제사, 혹은 기도 문화를 빠이빠이(拜拜, 절하다)라 한다. 가정에서도 조상님을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빠이빠이하며, 음력설이나 보름에 가정, 기업, 산업체 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행사이자 일상이다. 특별한 음식이나 사치스러운 제사용품은 필요 없고 과자, 과일 정도만 차려 놓는다고 한다.
대만 역시 무신론자들이 조금씩 늘어간다고도 하지만, 정부의 공식 조사에 따르면 최소 200개 이상의 종교를 80% 이상의 국민들이 믿고 있다고 한다. 도교, 불교를 비롯 조상신이나 각종 민간 신앙을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길가의 흔한 사원들. 퇴근 무렵 현지인들이 꽤 많이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부분에 호기심이 생겨 관심도, 일정에도 없었던 룽싼스(龍山寺, 용산사)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용산사는 타이베이 시의 남쪽에 있는 대표적인 불교와 도교가 공존하는 사찰이다. 독특한 건물의 형태와 규모가 상당해서 대만 필수 관광지로 손꼽힌다. 해가 질 무렵 들어선 용산사는 처음 보는 화려한 장식과 신비로운 분위기가 깊은 인상을 준다.
건물의 모든 곳에 조각이 되어있거나, 알록달록 혹은 금으로 색칠이 되어있다. 사진으로 잘 표현이 안된다. 정말 한도 끝도 없으며 빈 구석이 없다. 기와지붕과 처마까지 장식된 용머리 장식 끝으로 철사처럼 얇은 용수염이 꼬불거린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온갖 디테일로 꽉 차 있다. 일천한 여행경험이지만 어디서도 보지 못한 복잡하고 정교한 건축물이다.
향을 피우거나 종이를 태우고, 알 수 없는 나무 조각을 바닥에 던져 점괘를 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엄숙하고 진지하다. 사람이 많았지만 크게 염불을 하거나 주문을 외는 웅성거림은 없다. 모두들 자신에게 집중한 채 조용히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뭐라고 미신 어쩌고 오만한 판단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한 젊은 커플이 서로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신에게 같이 합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딱.. 따닥.. 간헐적으로 들리는 나무토막 던지는 소리에 내 마음도 차분해지며 그저 그들의 삶이 바라는 만큼 행복하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이렇게 오랜 전통과 종교적 관습을 유지하고 있는 대만은 건물 입구나 문에 복을 기리거나 악을 쫓는 부적, 그림, 글씨들이 붙어 있는걸 많이 볼 수 있다.
다음 날 무계획으로 숙소를 나와 아침밥을 먹으며 어디 갈지를 생각 중이었다. 숙소가 있는 시먼딩의 북쪽 멀지 않은 곳에 전통 거리 디화제(迪化街, 적화가)가 있다. 가장 예스러운 거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라 가보기로 했다. 도착해 보니 정말 영화에서 본 옛날 홍콩거리 같다.
나는 이곳이 프랜차이즈가 점령하기 전의 서울 인사동 같은 곳이겠거니 했다. 거리를 걷다 보니 전통 한약재들이 가득한 경동시장 같은 곳이었다. 실망이 아니라 달랐다는 뜻이다.
기념품 샵과 맛집들도 많이 보인다. 어떤 식당에 한글로 '대만음식은 먹어야 한다'라고 적혀 있어서 숙소로 복귀하는 길에 먹었다. 맛은.. 나중에 여행기 식(食) 편에서 밝히겠다.
곳곳에 뜬금없이 아주 세련된 재즈 카페나 카메라 스토어가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디화제 중앙에 큰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전통시장이었다.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실내에서 채소와 과일을 팔고 있었고 축산품과 음식을 파는 곳이 같은 곳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입구 쪽에 옛 석탄시대 광부들이 먹던 '요우판(油飯, 기름밥)'집이 문전성시였다. 버섯과 함께 기름을 많이 넣고 볶은밥에 오븐에 구운듯한 커다란 닭다리를 얹고 간장 같은 소스를 넣어 먹는다고 한다. 한창 점심시간이라 기름밥을 담은 종이 상자를 한꺼번에 큰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형 선풍기로 식히고 있었다.
먹어본 분들은 맛도 있고 다시 생각난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비주얼을 본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을 선풍기로 식힌다고? 버섯이 저렇게 시커멓다고? 무지막지하게 큰 닭다리, 이건 거의 반마린데.. 건강을 위해 오랫동안 절제된 식사를 해온 생활 탓에 내 비위가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달려들었을 거다. 근데 내가 좀 맛없게 찍긴 했다. 실제로 이 정도는 아니다.
여기도 어김없이 도교 사찰이 있고 사람들이 기다란 향을 피우며 기도를 하고 있다. 향냄새를 딱히 싫어하지 않기에 나는 괜찮았지만 사람에 따라 좀 거북할 수도 있겠다. 향도 향이지만 대만에서 종교 행사를 하고 나면 여러 가지를 태우면서 발생한 미세먼지로 대기 질이 크게 나빠질 정도라 한다. 대만 여행 후 목에 가래가 많아졌다. 오토바이 매연까지 포함해 알게 모르게 미세먼지를 많이 마신 듯하다. 마스크를 쓰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나 홀로 타이완 [觀] - ④ 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