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떠난 타이완 여행기] 나를 위한 대만 음식은 없다
당황스럽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번 여행에서 먹는 건 (거의) 망했다. 내가 건강상 이유와 운동을 하면서 식단을 절제한 탓에 다양한 향신료와 달고 짠맛에 대한 적응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맛 표현은 지극히 개인 적인 것이니.. 자칫 대만 음식이 맛이 없다고 오해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여행에서 맛집에 줄 서기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대신 맛있는 음식을 발견을 하고 싶었다.
둘째 날 먹은 이 점심 식사가 여행 내내 나를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길을 걷다 무작정 사람 많은 곳을 찾아 들어갔다. 친절한 사장님이 밥을 푸시고, 위에 얹을 반찬 3가지를 고르라 신다. 나는 닭고기 조림과 몇 가지 채소무침, 그리고 멸치처럼 생긴 볶음을 골랐다.
기대감과 함께 첫술을 입에 넣는 순간.. 음.. 이건 뭐지.. 좀 싱거우면서도 달고, 약간 쿰쿰한 냄새가 나면서 느끼함이 밀려왔다. 반찬을 황급히 투입했는데.. 간이 거의 안되어 있고 채소가 물컹하다. 뭔가 느글거리는 맛이다.. 조미료를 물에 탄 맛이랄까. 순간 비위가 확 상해버리고 만다.
손님이 적은 식당도 아니었기에.. 이 음식이 맛없는 건 내 문제였다. 보는 것과, 상상한 맛과, 실제 맛의 갭이 너무 컸고 현타가 온 나는 여행 내내 뭘 먹어도 속이 느글거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음 날은 조금 가격대가 있어 보이는 큰 식당으로 갔다. 쭈글.. 중정기념당 옆을 지나다 발견한 식당이다. 사람이 꽤 많았고 잠시 기다리니 친절한 직원분이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급 호감을 가지고 잘 대해주는 느낌은, 기분 탓은 아닌 듯하다. 매번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샤오룽바오(小籠包 소룡포)를 시키고 따뜻한 수프 종류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친절하고 아리따운 직원분이 산라탕(酸辣汤)을 추천해 주었고 먼저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난 또 멘붕이 빠지고 만다. 이건 또 뭔가. 맑은 물풀 속에 재료가 흐물거린다. 약간 얼큰한데 싱겁고 시큼한 맛이 난다. 서양의 닭고기 수프처럼 아플 때 먹는 영혼을 치유하는 수프라는데 나는 되려 영혼이 아프다. 다행히 함께 시킨 샤오룽바오는 맛이 괜찮았다. 다만 일부러 먹으러 갈 정도는 아니어서 별점을 준다면 3개 반이다.
결국 산라탕은 거의 다 남기고 말았다. 친절하고 따뜻한 서비스와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도심이 익숙해진 아침, 멀리 떠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하철 아무 노선이나 고르고 맨 끝 정거장까지 가기로 했다. 내리니 절벽이 펼쳐진 강변이다. 오길 잘했다!
출렁다리를 지나는 게 스릴 있었다. 다리 끝에 좀 무서운 골목 입구가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 보니...
등산로가 나온다!
한 가족이 내려오고 있었다. 휴,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ㅎㄷㄷ
피톤치드를 마시며 몇 시간 등산을 했다. 정상까지 가지는 않았고 중간에 빠지는 길이 있어 산 둘레길로 내려왔다. 땀이 제법 났지만 시원한 바람에 금방 상쾌해졌다. 며칠 운동을 못해 찌뿌둥하던 것들이 싹 사라졌다. 10월의 대만 날씨는 정말 축복이다. 나, 대만으로 이민 갈까? 아.. 여름이 있었지..
검색해 보니 이곳은 비탄풍경구(碧潭碧潭風景區)라 불리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가평이나 청평 같은 느낌의 강변유원지다. 식당가도 너무 예쁘게 잘 꾸며져 있고, 포근한 날씨에 친구, 가족들과 함께 강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나는 그나마 안전할 것 같은 쌀국수를 시켰다. 먹어 봤잖아. 고수도 좋아하잖아.
그러나 결국 레몬에, 고추기름 소스를 추가로 부탁해 마구 때려 넣지 않고서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달다.. 달다.. 달다.. 왜 이렇게 단거야. 면도 미끌미끌.. 국물도 뭔가 다르다. 시원하지가 않아! 아름다운 풍경과 상쾌한 등산..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타이베이 101 타워 옆 브리즈 난산(Breeze Nanshan) 쇼핑몰에 있는 식당가다. 여기도 전 세계 음식이 다 있다. 그중 만만해 보이는 일본식 덮밥을 시켰다. 이건 내가 한국에서도 먹어 봤으니까.. 드디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달다.. 그냥 단 게 아니라 고기가 설탕처럼 끈적거리는 양념에 쩔어 있다. 우삼겹이 아니라 우설탕삼겹이다. 미소 된장국은 한국, 일본보다 너무 싱거워 느끼함을 잡아주지 못했다. 결국 나는 맥주를 시켰다. 기린 맥주의 쌉싸름함이 겨우 내 속을 달래준다. 멋진 마천루와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낭만..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결국 유튜버들이 극찬한 진천미(眞川味)라는 곳을 찾았다. 깨갱… 뭐라도 먹어야 하니까.. 창잉터우(苍蝇头), 파볶음, 두부 튀김 등이 특히 유명한 곳이다. 나는 창잉터우를 시켰다. 잘게 썬 부추쫑과 다진 돼지고기, 발효한 검은콩인 두시(豆豉 또우츠)를 넣고 간장 양념하여 볶은 것이다. 이건 내가 살던 동네에 작은 대만 음식 전문점이 있어 꽤 자주 먹었던 메뉴이기도 하다. 짭조름하고 두시의 쌉싸래한 맛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달다.. 밍밍하다. 반찬은 또 싱겁다. 내가 먹던 불맛 가득한 볶음이 아니라 물이 흥건하다. 두시는 씹는 맛이 없다.. 찾아보니 두시는 화병에 좋은 한약재이기도 하다는데. 나는 화병이 생길 거 같다. 유튜버들의 극찬과 밀려드는 손님들,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그래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메뉴를 찾으려면 유튜브를 뒤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 두 가지와, 지금도 생각나는 한 가지를 찾았다는 점이다. 앞의 두 가지는 곱창국수와 또우장이다. 뒤의 한 가지는 버블티이다.
시먼딩의 번화가 중심에 위치한 아종면선(阿宗麵線)의 곱창국수다. 역시나 좀 달고, 흐물거리며, 물풀 같은 국물에 탄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면... 3시간 동안 불린 컵라면 같은 식감이다. 처음 먹어보고는 먹방 예능 <맛있는 녀석들>은 '맛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1차 당황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 갑자기 곱창국수가 생각났다. 밤새 무지성으로 틀어놓은 에어컨에 몸이 싸늘히 식어 있었고, 방음이 1도 안 되는 다인실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깊은 잠을 못 자고, 공용 욕실, 화장실을 드나드느라 고단한 몸이 그 녀석을 몹시 원하고 있었다. 2차 당황이다. 숙소에서 10분 거리인 아종면선에 잠도 덜 깬 채 총총히 걸어간다. 라지(큰 놈)를 시켜서 후루룩 하는 순간.. 불꽃놀이가 내 머릿속에서 펑하고 터졌다.
아.. 뚱이들이 말한 게 이 맛이구나.. 차가운 몸을 데워주고, 식도에서 위장까지 나를 감싸며 토닥거려 주는 부드러운 면, 중간중간 야들야들 고소한 곱창의 식감은 잠을 깨워준다. 기둥에 비치된 니 맘대로 소스 중 매운 놈을 살짝 뿌려주니 세상에나.. 느끼함이 확 줄어들고 비호감 국물은 이제 물풀이 아니라 건강 죽보다 더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가 막힌 맛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한국에 도입이 시급한 또우장(豆漿)이다. 곱창국수와 함께 거의 매일 먹었다. 기다란 튀김 빵 요우띠아오(油条)와 또우장(豆醤, 두유)을 함께 먹는다. 또우장은 따뜻한 것, 차가운 것 / 단맛, 무설탕을 고를 수 있다. 얼죽아인 나는 당연히 차가운 두유에 무설탕이었다. 그냥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빨간 X자 표시는 무설탕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대만 여행을 가면 1일 2티를 한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준 시먼딩의 행복당(幸福堂)의 버블티다. 다른 버블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숙소로 복귀할 때 거의 매일 들렀고, 걷느라 지친 피로가 버블티 한잔에 싹 사라지곤 했다.
행복당은 공장이 아니라 매장에서 바로 만든 천연 타피오카를 쓴다. 2012년 대만산 타피오카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어 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화학성분 타피오카 패, 천연 타피오카 승'라고 매장 앞에 써 놨다. 무엇보다 맛이 있다. 찐득한 연유크림 위에 흑당(흑설탕 아님)을 퍼 올리고 토치로 빠르게 지진 ‘흑당버블티’가 시그니쳐다. 굵은 빨대로 잘 휘저어 먹으면 천연 타피오카와 대만 우유의 부드러운 고소함, 불맛 나는 흑당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분명 달달한데 과하지 않고 끝맛이 깔끔하다.
먹거리 하면 빠질 수 없는 대만의 야시장이다. 그러나 이미 비위가 상한 나. 이름 있는 야시장 닝샤, 스린 등에서 후추빵, 큐브스테이크, 치즈감자, 우유도넛, 닭꼬치, 삼겹살 파말이, 기타 등등.. 적지 않은 것들을 먹어 보았지만, 딱히 감탄할 맛을 못 느꼈다.
그래도 모두들 자기 직업과 음식에 자부심이 보였다. 활기차고, 대부분 밝은 표정이 음식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야 말로 여행자가 행복해지는 순간이 아닐까?
대만의 야시장은 생각보다 굉장히 관리를 잘하고 있었다. 카드 사용을 장려하고 있었고 길바닥에 음식물 찌꺼기나, 쓰레기는 찾아볼 수도 없다. 우리나라 재래시장보다 훨씬 깨끗했다.
희한하게도 지금도 사진으로만 보면 달려들어 먹방을 찍을 것 같다.
과일을 드신다면 이걸 추천드린다. 구아바를 썰어서 요상한 양념을 섞어 준다. 배와 사과, 무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식감에 찝찌름한 첫맛, 달큰한 끝맛이 느껴진다. 걷다 지칠 때 에너지가 공급되었다.
정겹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비주얼과 그렇지 못했던 나의 먹방체험.. 당황스럽다.
포스터에 대만 음식은 먹어야 한대서 먹었다. 매장 입구에 주인장의 사연도 적혀 있다. 유명한 단짜이면(擔仔麵)이다. 오.. 얼마나 먹음직스러운가... 노코멘트다. 당황스럽다.
가격이 좀 더 나가면 맛있을까?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 있는 딤딤섬(點點心)이다. 여긴 비싸다.
오른쪽의 닭발은 정말 최고였으며, 볶음밥과 찐 밥의 중간 맛인 메인 요리도 너무 맛있었다. 청경채 무침에 간장소스를 뿌리니 조화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일단 비싼 건 맛있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고. 여기는 두 번을 더 갔다.
딤딤섬으로 다소 즐거워진 내 위장을 한 방에 KO 시킨 사건이 있었으니… 타이베이 북쪽 <말할 수 없는 비밀>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단수이(淡水)에 놀러 갔다 딱히 먹을 곳이 없어 향토음식 푸드코트라는 곳에 들어갔다. 이름도 모르고, 세상 맛있어 보여 시킨 메뉴.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왼쪽은 누린내 나는 곰탕인데 거의 소금국이다. 오른쪽은 밥 위에 간장 두부와 계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충격이다. 간이 1도 안 됐다. 진짜다. 저 색깔.. 어딜 봐서 싱거워 보이는가.. 1/5도 못 먹고 그냥 나왔다. 아름다운 강변과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다수의 먹방 채널에서 극찬을 했던 임동방우육면(林東芳牛肉麵)이다. 진입장벽 없는 조화로운 육수에 적당한 서비스, 돈 주고 따로 시킨 채소 반찬도 비로소 맛있었다. 마늘이 많이 들어가고 간이 적당해 면 요리와 잘 어울렸다. 된장처럼 생긴 건 매운 양념이다. 국물에 조금 풀면 칼칼하니 정말 맛있다. 대만에서 내가 먹어본 것 중 가장 훌륭한 맛이다. 그러나 결론은 건대 앞 송화도삭면이 나에겐 1등이다.
나의 랜덤 한 입맛에 이제 독자 여러분도 당황스러울 것 같다.
PS. 피신해 간 세븐일레븐이라는 안식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ㅠㅠ
나 홀로 타이완 [食] - ② | 타이베이의 1일 1 카페 탐방기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