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해답을 찾아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방랑자가 어느 한적한 시골길의 앙상한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희곡집인데요...
책의 마지막 작품 해설편을 보면,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 역시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나옵니다.
'고도'는 작가가 이렇게 대답한 이상 관객과 독자 개개인에게 그 정의가 달려있는 셈이지요.
신이다, 자유다, 빵이다, 희망이다......
p.164
고도가 무엇이든...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
두 방랑자가 고도를 기다리며
잠시 등장하는 포조와 럭키와 함께 나누는 대화들이
고도를 신으로 자유로 빵으로 희망으로 둔갑시키는 동안 저를 철학자로 둔갑시키는군요!
인상에 남는
그래서 밑줄 긋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문장들 공유해 봅니다.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포조, p.51
*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눈물을 흘릴 때가 있어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억울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일들이 행동의 대가가 아닌 세상의 원리에 의해 무작위적으로 주어진다. 이 슬픔이 끝나면 행복이 올 것이다!'
작위적으로 해석하며 희망을 기다리곤 했는데요...
유한한 기쁨도 무한한 슬픔도 없겠지요.
그런 의미의 문장으로 읽혔고,
또 다른 의미로는
'우리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으로도 해석이 되어 한참을 생각해본 문장입니다.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포조, p.150
* 산모가 무덤에 앉아 출산을 하다니...
우주의 시간으로 본다면
인간의 생은 찰나라는 비유가 맞나 봅니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걸 비유한 걸까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와 잠시 톡을 나눴는데요...
어머? 벌써 3시야? 시간 왤케 빠르니?...
하고 있는 걸 보니...
그러네요...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였어요!^^;;;;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블라디미르, p.151
* 습관과 관련된 책이 참으로 많지요.
한번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 일 거예요.
한번 벤 관성은 새로움을 거부하기도...
아니 인지조차 어렵게 하니 순간순간 깨어있음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
에스트라공, p.158
* 개인적으론 이 문장에서 많은 생각이 머물렀습니다.(문맥과 상관없이! 단순하게 저 한 문장만으로!^^)
흔히들 질량총량이 법칙이 있듯, 지랄에도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들 우스갯소리로 하지요!
이왕 할 지랄이라면(이 신성한 고전을 읽고 쓰는 후기에 지랄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줄이얍!ㅎㅎ)
'우리 아이들이 가장 안전한 부모의 품 안에 있을 때 평생 쓸 그 지랄, 다 쓰고 품을 떠났으면 좋겠다...
그 지랄을 다 받아주려면 부모들에겐 또 어떤 다른 작용이 있어야 할까?
부모들의 자기회복을 돕고 있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블라디미르 :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가자.
두 방랑자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서로 질문하고, 되받고, 장난을 치다 반복하는 저 문장처럼...
저 역시도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들의 입에서 '지랄도 더 이상 지겨워서 못하겠다.' 고 할 만큼 자신의 발달과업을 충분하게 온전하게 누리며 자랄 수 있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있는 주말 오후입니닷!^^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며'
나는 지금 어떤 고도를 기다리며 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방향도 모른체 그저 지리멸렬한 시간을 견디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고도가 무엇인지 방향을 정하고 희망의 시간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중인지...
스스로 물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