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좋은 시너지를 얻고 있는 게 아닐까요
직업 특성상 한국어를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혹은 그 반대의) 일이 자주 있는데, 모든 순간에 나를 고민하게 하는 건 형체가 없는 단어들이었다.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그 단어 자체로 이미 완성된 전문 용어들이나 고유 명사들은 그 의미와 색이 뚜렷해서 사전에 검색되거나 업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단순히 치환하면 그만이지만, 문장 속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풀이되는 형체가 옅은 단어들은 그 모든 유의어들을 가져다 모아 비교하여 그 문장에 알맞은 최선의 선택지를 골라내야만 하니까.
작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때 나를 괴롭혔던 단어들 중 하나를 꼽자면 그건 단연코 '다정하다'라는 단어일 것이다. 정말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고 누군가에게 들어보기도 했던 단어이지만, '다정하다'라는 단어를 막상 번역하자니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꽤나 힘들었다. 내 안에서 '착하다', '친절하다' 혹은 '배려심이 깊다' 등의 말들과 결을 함께하는 단어이지만 그렇다고 kind, friendly 혹은 tender, sweet 등으로 번역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번역 이전에- 다정하다는 게 대체 뭔데?
다정하다: 정이 많다. 혹은 정분이 두텁다.
(출처: 우리말샘)
그러니까 애초에 착하거나 친절한, 즉 kind 나 friendly 같은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어쩐지 부족했던 이유는 '정'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정(情)'이라는 단어와 그 개념은 한국어에서 말하는 '한(恨)'과 함께 외국인에게 설명하기 힘든 단어 중 하나로 종종 꼽히고는 하는데, '다정하다'라는 것은 多情, 즉 정이 많다는 의미이니 '정'의 개념에서 이미 턱 하고 걸려버릴 수밖에. 다행히도 작년 초가을 나를 괴롭히던 그 문장은 문맥상 다른 단어로 번역될 수 있어 어떻게 넘겼다지만 여전히 '다정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나에게 하나의 숙제 같은 것으로 남아있었다.
개인적인 습관에 가깝지만 종종 어떤 단어를 떠올렸을 때 함께 떠오르는 색들이 있다. 말로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청춘'이라는 단어는 왜인지 흰색이 어울리고, '슬픔'이라는 단어는 주황색이 떠오르는 나만의 알고리즘 같은 것이랄까. 나에게 '기쁨'은 초록색이지만 '우울'은 푸른색인 이유를 답하라면 '그냥'이라는 답밖에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 안에서 색이 입혀진 단어들은 어떤 문장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롭다. 반대로 말하면 그 색이 희미한 단어들은 왜인지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기도 할 테다.
그러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내가 다른 단어도 아닌 '다정하다'라는 단어를 아낌없이 내뱉고 있음을 깨달았다. 막연히 '착하다'나 '친절하다'와 비슷하지만 이질적이라고 느껴졌던 이 '다정하다'라는 단어가 조금은 선명해졌기 때문일까. 아마도 주변에 '다정한'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행지의 자석을 모은다는 걸 기억해 주고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내 생각이 났다며 손에 자석을 쥐여주던 친구, 점심시간이면 꼭 같이 식사하는 사람의 수만큼 물티슈와 물컵을 챙겨주는 회사 동료,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웃으며 눈인사를 해 주시는 새로 이사한 집 근처의 빵집 아주머니, 그리고 이 모든 다정들 이전부터 꾸준히 나에게 다정을 알려준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이렇게 다정을 배워가던 나에게 그룹 X의 멤버 K는 내가 알던 다정함에 새로운 의미를 더했다. 그룹 X의 멤버들 중에서도 유독 팬들로부터 '다정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 K이지만, K가 보여주는 다정함은 내가 알던 그것과는 무언가 달랐다. 지금까지 내가 배운 모든 다정들은 무언가 말랑하고 부드러운 마음들이었는데, 어딘가 단단하고 견고했다. 이렇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K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한 말로부터 그 답을 찾았다.
다정도 체력일까요, 과연? 다정하려고 하는 것에 있어서는 체력이 나가지 않아요
다정하려고 하는 것보다 본인의 좋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데에 더 체력을 요한다고 하던 K였기에, 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다정함이란 어쩌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비치는 가장 K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애써 꾸며내지 않음으로써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는 마음이란 이렇게나 단단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올곧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콩깍지라면 콩깍지랄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 결국은 사람 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일 텐데. 그렇게 나는 이 모든 다정들에게서 늘 마음을 쓰는 법을 배운다. K를 비롯한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그들이 보여준 마음들이 훗날 어느 순간에 떠올라 나를 그들과 같은 다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그렇게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K는 한 인터뷰에서 '무너지려 할 때마다 너를 보고 용기를 얻는다'라는 팬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여러분도 무너지려 할 때마다 저를 보고 용기를 얻고 단단해진다면, 우리 서로 굉장히 좋은 시너지를 얻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 결국 마음이다.
마음을 쓰는 방법이란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하겠지만, 그 누구도 어떻게 해야 상대방에게 확실히 그 마음이 가 닿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을 테다. 내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하며 의도한 바와 다르게 전달되는 마음에 속상한 순간들이 종종 나를 방황하게 하니까.
그렇지만 그 방황의 답을 종종 K에게서 찾는다. 정말이지 올곧은 방향으로 자라는 단단한 다정함이란, 그 어떤 마음보다 강하다는 것도. 그래서 사랑이나 마음 같은 것들보다 의도치 않게 중요해져 버리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요즘 K를 떠올린다. K에게서 느낀 견고한 다정함- 그 마음에서 깨달은 것들이 종종 무언가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순간, K가 말하는 그 시너지라는 것이 어쩌면 좋은 사랑을 하고 있는 증거라는 것 또한 실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