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나라 유감 - 이제는 전략 파트너로]
- ‘사돈의 나라’라는 표현은 친근감 표현이지만 변화한 한-베 양국 관계의 깊이에 비춰봤을 때 더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언어 선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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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가 권력 서열 1위이자 베트남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있는 또럼 공산당 총비서가 8월 10일 ~ 13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베트남 최고 지도자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첫 외국 정상이라는 것은 한국-베트남 양국 간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은 베트남 최대 투자국으로 1만여개의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미국과의 관세 문제로 인해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내 지속 투자가 불확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최고 지도자로서 미국과 관세 협상 방향 설명과 베트남에 자리 잡은 한국 기업들의 생산 기지 이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함이 주요 방한 이유로 보인다.
또다른 중요한 방한 목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관련 투자를 요청하기 위함이다. 베트남이 2045년까지 중진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IT 첨단 산업 유치가 가장 중요해 사활을 걸고 반도체 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파트너이다.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방산, 한반도 평화 측면에서도 베트남은 한국에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 부분 첫 댓글 칼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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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재명 대통령은 베트남 국영통신사(VNA)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베트남은 사돈의 나라…경제협력 질적 고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과 경제 협력을 질적으로 고도화 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결정이지만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으레 말하는 '사돈의 나라'라는 표현은 참 유감이다.
'사돈'이라는 표현으로 베트남에 대한 애정과 친근감을 드러낸 것이겠지만 베트남은 '사돈' 보다는 경제적, 전략적 파트너로서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돈' 발언은 아직 대통령실이 베트남과의 관계 인식을 '사돈'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단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6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베트남이 한국에 도움을 요청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라는 인식이다. 베트남 경제 성장 속도와 방향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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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더 이상 값싼 하청 생산기지가 아니다. 지난 30년간 한국사회는 베트남을 주로 저렴한 노동력을 갖춘 생산기지 정도로만 인식해왔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갈등으로 인해 중국 의존형 공급망의 분산 필요성이 커지면서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군사안보 측면에서도 한국과 베트남은 긴밀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간 베트남의 무기체계 근간이었던 러시아산 무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급이 불안정해졌다. 게다가 성능 면에서도 한계를 드러내 베트남 무기체계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미국산 무기를 도입할 경우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우려한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베트남은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산 무기는 실용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냉각된 남북 관계의 돌파구로도 베트남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9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이유는 미국이 북한에 베트남의 개혁·개방 모델을 제시하며 설득했기 때문이다. 당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베트남의 기적이 북한에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또한 2018년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식 모델로 가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번 또럼 베트남 총비서의 한국 방한이 단순히 양국간의 관계가 '사돈의 나라'에 머물지 말고 '중요 전략적 파트너'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길 강하게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