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를 잘 못 내는 마케터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는 브랜드 마케터였지. 이름만. 허울 좋은 '브랜드 마케터'로 7년 간 수많은 일을 해왔다. 브랜딩에 관련된 일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온갖 일들을 그저 마케팅이라는 명목 하에 해왔을 뿐이다.
제품 기획, 제품 출시, 제품 네이밍, 제품 상세페이지 기획, 제품 광고 소재 기획, 홈페이지 기획, 배너 기획, 배너 카피라이팅, 광고 소재 카피라이팅, 광고 소재 이미지 기획, 오프라인 홍보 행사 기획, 오프라인 홍보 행사 진행, 라이브커머스 기획, 라이브커머스 큐시트 작성, 라이브커머스 운영, 온라인 CS, 전화 CS, 사업기획서 작성, 전자기기 인증 서류 작성 및 제출...
적고 나니 브랜드 마케터가 뭐하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언젠가 MD였다가도, 온라인 마케터였다가도, 오프라인 부스 알바였다가도, CS 상담사였다가도...
마케터는 모든 일을 수치적으로, 성과로 증명해내야 한다. 장/단기적으로 매출을 내야 하고 광고 효율을 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성과를 잘 내지 못하는 마케터였다. 시키는 모든 일을 열심히는 할 줄 알았지만 잘 하지는 못했다. 그저 오래 앉아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누구나 열심히 한다고 인정하지만 정작 박수칠만 한 성과는 나지 않는 사람.
이 말을 내뱉기까지 4년이 걸렸고, 그걸 마음 속으로 인정하며 일을 정리하기까지 3년이 더 걸렸다. 꼬박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마케팅을 잘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고 회사도 7번이나 옮겨 다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실패라는 말이 잘 맞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족할 만큼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왜 '열심히'와 '잘'은 동의어가 아닐까 항상 의문스러웠다. 일을 잘 하고 싶었지만 수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성과는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왜일까. 왜 나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는가. 누구나 인정할만한, 누구나 박수칠만한 성과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왜 팔로워는 늘지 않고 내 콘텐츠는 좋아요를 받지 못할까?
7번째인지, 8번째인지 모를 회사를 이틀 나가고 퇴사했다. 그 회사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그 회사가 원하는 걸 만족시켜줄 수 없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게 들었다.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솔직히 마케팅이 지겨워졌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마케팅이라는 이름만 붙은 수많은 잡일들을 해내야 하나. 열심히만 하는 것도 일이 너무 많은데 성과까지 내라고 하네. 내가 잘 못하는 일을 더 이상 붙잡고 할 이유가 없었다. 눈물의 퇴사를 선언하고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퇴사한 지 벌써 3달이 다 되어가고, 모아둔 돈은 벌써 떨어졌다. 12월 초 덜컥 개인사업자까지 내 버렸다.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하지만 마케터로써 회사에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속단할 수 없지만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아마 다시는 날 마케터라고 소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