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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키 Oct 17. 2024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가

나 진짜 뭐 해먹고 살지

2024년 가을에서야 다시 찾은 브런치스토리

작년 12월 무턱대고 사업자 등록을 한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가열차게 블로그를 키우며 지냈던 올해 초가 벌써 전생만 같다.


올해 나는 사업자 비슷한 것도, 심지어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콜 센터 비슷한 곳에서 3개월 간 전화를 받으며 블로그 원고를 쓰기도 하고, 블로그 체험단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마케터라는 이름을 다시 달고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곳에서 쉽게 포기했다.



다시 회사로 안 가는 걸까 못 가는 걸까

지금 아직도 소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제 마케터라는 이름으론 면접조차 볼 기회가 없다. 그나마 MD를 구인하는 곳에서 나를 불러주기는 하는데 면접에 붙진 못한다. 내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기도 하고, 연봉이 높기도 하고(연차에 비해서 낮다고 생각하지만 내 경력에 비해선 너무 높은 걸까). 


회사 안에서 연봉/사람/직무 중 하나라도 만족스러워야 오래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마케팅 직무도 지겹고 자신도 없는데다가 이젠 연봉도 잘 못 받는다. 사람은 괜찮은지 아닌지 판단할 기회조차 없다(오래 다니질 못하니까). 



나는 평범하고 싶은데 기준이 너무 높네

남들의 인정을 아주 가끔 받으면서 - 집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회사에서 그럭저럭 내 밥벌이를 하는 인생. 내게 주어지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다. 정확히는 내가 차 버린 일상이다. 


평범이란 것은 무엇일까? 30년 넘게 살아오며 '평범'이라는 단어에 나를 맞추려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귀가 얇고 걸음이 가벼워,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였더라

아버지가 운동을 하다 문득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너 어떡하냐 이제. 아빠는 내 딸이 회사도 다니고 결혼도 하면 걱정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딸은 아직도 진로 고민을 하고 있네.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아봐야 하지 않아? 언제까지 이직만 할 거야. 


남편에게 물으니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돈이나 벌면 됐지 뭘 그렇게까지 의미 부여를 해? 응, 그렇지. 나는 어디선가는 골칫덩이 백수 딸이고, 어디선가는 골칫덩이 백수 아내다. 어디선가는 회사에 정착하지 못하는 프로 이직러 친구. 연애만 줄창 하다 결혼해버리고, 이 일 저 일 다니다 금방 그만 둬 버리는 백수 친구.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가? 내가 정말 하고 싶으면서 그걸로 오래 실력도 쌓고 돈도 벌고 싶은 것. 남들은 정말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걸 못 하게 하면 죽는 줄 아는 그런 건 내게는 없었다. 



멈추어 있다

내게 멈추어 있다는 것은, 힘들어서 쉬는 것과는 다르다. 숨이 차서 쉬고 싶을 때는 그냥 앉거나 누워 버리겠지. 나는 걷고 싶고, 뛰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을 때 잘 멈추곤 한다. 어디로 가야 하지. 길이 뚝 끊긴 기분이다. 뒤를 돌아봤는데 너무 진흙밭이라 사실은 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뒤로 걷고 싶지 않다.


당장 다음 달 대출 이자를 낼 돈도 없다. 나는 멈추어 있다. 그런데 걸어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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