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작가의 딸 한강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점에
내향적이고 내성적이던 외동딸인 나는 10대에 친구가 많지 않았다. 왕따도 잘 당하고, 반에 다른 아이가 왕따를 당하면 무조건 멀찍이서 방관했다(다음이 나일까봐). 소심하고 발표도 잘 못하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지만 딱 하나.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아버지가 전업 작가인 우리 집에는 책이 아주 많았다. 쌀이 없지야 않았지만, 집에는 항상 쌀알보다 책이 더 많았다. 10평 남짓한 작은 교원주택 3층의 작은 집의 안방에서 부모님과 나는 꼭 붙어 잤고, 남은 작은 방 하나를 아버지의 서재로 썼다. 또렷하진 않지만 누렇게 색이 바랜 책은 싫어했고 깨끗한 종이 냄새가 나는 새 책을 골라 읽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를 가며 처음 내 방이 생겼다. 내 방엔 작은 침대와 작은 옷장과 작은 피아노, 커다란 책상과 책장이 들어찼다.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나는 자꾸만 책을 읽었다. 화장실 변기에서도 책을 읽었고 욕조에서 물을 받아놓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책을 몇 번이나 물 속으로 쳐박았다). 어머니가 책을 사 주고 내일 아침에 읽어라, 하면 나는 꼭 밤에 스탠드를 켜놓고 그 날 산 책을 모두 읽었다. 스탠드 불빛이 문틈 사이로 스며나가서 자꾸 혼이 나자 안 쓰는 손전등을 들고 이불 속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펴면 그 날 꼭 끝까지 읽어야 성에 찼다. 나는 책을 빨리 읽는 반면 내용을 금방 잊어버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해리포터 전 권을 20번도 더 읽었는데 아직도 중간중간 빈 틈이 있다. 반지의 제왕 전 권도 10번 정도 읽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읽었다. 자꾸 잊으니까 더 자주 읽었었다.
학교를 다니던 12년 간 무수히 많은 백일장이니 글 쓰기 대회에 참가했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부모님의 직업을 손으로 적어 내야 했던지라, 아버지가 작가라는 것은 너무나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럼 저 딸은 글을 얼마나 잘 쓸까? 선생님들은 내 등을 떠밀며 원고지를 주었다.
그런데 글 쓰는 주제가 너무 어려웠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주제. 백일장 상을 잘 받는 공식이 있다고들 하던데 나는 그걸 나중에야 들었다. 어린 나는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대충 20분~30분 만에 끼적댄 후 1등으로 제출했다. 당연히 탈락이다. 잘해야 입선. 그렇지만 파란 하늘 아래 잔디밭에서 백일장을 핑계로 뒹굴 수 있는 것만 재미있었다. 그 땐 몰랐다.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데 왜 자꾸 나보고 글을 쓰라고 하는지. 나는 그저 그런 입선 한두 개로 백일장 시대를 졸업했다. 엄마아빠 속은 터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모른다.
초등학교 때는 소설을 쓴답시고 공책을 몇 권이나 채웠다. 하지만 부모님이 나중에야 확인하니 다 다른 소설들을 베낀 거였다고 한다. 그것도 교묘하게 베낀. 나는 창작을 모른다. 쓰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창작가의 마음 같은 것은 내게는 없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매일 쓴다는 꾸준함조차 내겐 없다. 그냥 좋아보이면 차용하고 베꼈다. 그리고는 금방 잊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기숙사에서 스탠드 켜놓고 책을 많이 읽었다. 그 때는 취향이 생긴 후라, 이해하기 쉬운 소설책을 위주로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신문이나 잡지 사설 같은 것도 많이 읽어서, 대학교 논술 시험을 어렵지 않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요령이 생겨 주장과 근거를 뚝딱뚝딱 써 냈다. 이 정도 쓰면 괜찮다고 학원 선생님이 그랬던 것 같아. 하지만 사실 학원 논술 선생님의 빨간 펜 그은 첨삭도 잘 무시했다. 선생님이 뭘 알아.
예술에는 선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기준 이상으로 가면 좋은 예술. 우리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상도 타고 방송도 타고 어쨌든 잘 나가던 글쟁이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강연도 꾸준히 나가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글쟁이로 키우는 데에 실패했다. 글을 써보라고 항상 권하시지만 내가 그나마 쓴 것은 10대 때 학교에 제출해야 했던 일기와 독후감 뿐이다.
아버지가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속이 뒤집힌다. 우리 아버지는 공감이나 위로보단 적절한 조언을 하는 멘토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잠깐 상상하니 물리적으로 머리가 아파온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 한강 같은 작가 멋지지 않냐며 농을 던진다. 아빠가 쓴 글보다 더 좋은 글을 쓰는 딸 작가 인생 멋지잖아. 그 말을 10년 쯤 무시하며 살아왔는데 올해 가을 한강 작가님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절반의 축하와 절반의 한숨. 독서 붐은 온다며 출판업계가 난리지만 나는 머리가 아프다. 내게 독서 붐은 이미 왔었고, 나는 전업 작가의 딸이지만 창작하는 마음까지 타고나지는 못했다.
이제 1년에 책을 한 권 정도밖에 읽지 않는다. 읽을 때마다 작가의 고통스러움이 그려진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기쁘지 않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곁에서 지켜 본 30년 내내 아버지는 외롭고 고통스러워했다. 새벽 내내 담배를 태우고 낮에는 술을 마셨다. 모든 작가들이 이렇진 않겠지만 내 아버지는 그랬으므로 나는 글을 쓰지 않는다. 나의 글로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