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판 처음 본 면접관이 나를 위로해줄 확률
고 3 시절 수시 원서를 흩뿌릴 즈음, 대학교 수시 면접 중 구술면접이라는 항목을 가진 학교가 있었다. 내가 낸 원서 특성 상 구술 면접 / 일반 면접(인성 위주) / 논술 3가지 항목으로 나뉘곤 했었다. 하필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서울 소재 대학교의 구술 면접이 가장 첫 일정으로 잡혔다.
나는 그 전까지 면접이란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면접이란 게 무엇인지도 잘 몰랐는데... 막상 단정한 옷차림으로 면접 대기실에 가니 나 같은 소년소녀들이 바글바글 앉아서 저마다 중얼대고 있었다. 1차 쇼크. 이게 뭐야? 다들 어디에서 온 누구인 거야? 이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람들인 건가?
2 대 2 면접이란 것도 그 자리에서 알았다. 내 옆 자리 경쟁자(?)는 똑부러지게 생긴 안경을 쓴 고 3 소녀로, 깨끗하게 다린 교복을 입고 앉아서 하나님을 찾았다. 다른 사람들은 사회 시사나 경제 뉴스 따위의 것들을 줄줄 외우면서 - 아마 기출 문제 같은 것들이었을 - 면접을 준비하는데, 이 친구는 독특하게도 하나님께 소리 내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자신 있는 목소리였다.
그 기도 소리에, 기세에 바로 쫄았다. 나는 믿는 신도 없고 교복도 없는 시골 학교에서 올라왔는데. 이 친구는 너무 자신감 넘치는 포스로 면접 준비가 아니라 기도를 하고 앉아있네. 내 입은 얼어붙었고 면접 내내 한 마디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에게 질문을 해 주던 면접관도 내 자신 없는 대답에 자꾸 옆 친구에게 재질문을 했다. 사실 어떤 질문이었는지 지금도 기억하지 못한다. 패닉.
면접장 밖 주차장에서 고 3들의 부모님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신실한 기독교 소녀보다 먼저 면접장에서 나와 부모님의 차에 탔다. 부모님께 이러이러했다, 고 말하니 부모님이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다음 면접부터는 청심원을 사자고, 이번에도 살 걸 그랬다며, 처음이라 몰랐다고, 너무나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해주셨다.
그 다음 구술 면접은 무조건 청심원을 다 마시고 들어갔다. 대기 시간이 1시간이 넘는 경우, 주머니에 넣어 가서 시간 맞춰서 마시고 들어갔다. 그냥 플라시보일 수도 있겠지만 청심원을 먹은 이후의 대학교 구술 면접은 거의 다 붙었다.
대학교 구술 면접에서의 경험으로, 취직을 위한 면접에서도 대부분 우황청심원을 사서 마시고 들어갔다. 잘 긴장하던 탓에 겨드랑이와 등에 땀이 너무 많이 흐르곤 했다. 봄, 가을에는 블라우스가 너무 젖어서 면접 후 티셔츠를 새로 사 입은 적도 있었다.
이제는 몇 번의 구직 면접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도 면접을 보았다. 나는 이제 우황청심원도 마시지 않고, 블라우스가 젖을 만큼 땀을 흘리지도 않는다. 될 대로 되겠지 - 하는 마음도 있고, 그렇게 간절하게 붙고 싶은 회사도 사실은 없었다.
어제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의 첫 마디에 입사를 결심했다.
그간 회사 운이 많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죠?
이력서 상 6번이 넘는 퇴사에 2년 간의 공백까지. 그간 면접에서 내가 사실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고, 나는 단지 잘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거라고 설명해왔다. 어떤 헤드헌터는 이직 이력이 너무 많아서 내 이력서를 회사에 줄 수가 없다고 했고, 어떤 면접관은 퇴사가 잦고 길게 일한 경력이 없어서 신뢰가 안 가는데 이 회사가 왜 나를 뽑아야만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럼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속으로 욕을 했다. 그런 질문을 할 거였으면 서류에서 걸러주지. 서류에서도 이미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데 왜 불렀단 말인가. 나는 이 면접 자리에 오느라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씻고 화장을 하고, 들어가지 않는 식사를 하기도 하고,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주변 카페를 미리 찾아 들어가 인삿말을 외우다가 온 건데.
면접관이 내게 '그간 회사 운이 없으셨던 것 같다'라는 말을 하자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내게 이런저런 조건과 환경을 알려주었고, 단점도 몇 가지는 알려주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입사할 마음으로 충만했다. 그 자리에서 서로 다른 회사랑, 다른 면접자랑 면접 보지 않기~! 를 약속하며 입사일을 조율했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이 나의 커리어를 위로해주었다. 조각나고 모난 내 커리어를 사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어딘가에는 아직 내 경력이 쓸모가 있다. 나는 그 이유 하나만 있으면 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