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자정리 Oct 12. 2022

옛날 외할머니와 똑 닮은 엄마

어린 시절의 기억

 어렸던 국민학교(現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성내동이었고, 할머니는 걸어서 10분 거리 정도에 작은 방에서 혼자 살고 계셨다. 옛날 주택인데 방하나를 개조해서 곤로가 있는 부엌과 출입문이 별도로 있는 그런 방이었다.  


 평일,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도착해보면 항상 외할머니가 계셨다. 혼자 있기보다는 멀지 않은 곳에 첫째 딸의 집이 있으니 동네 마실 오듯 매일 같이 드나드셨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에 댁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와 엄마의 수다는 매일매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상의 이야기였고 먹거리, 형제자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어쨌든, 할머니는 늘 같은 수다 끝에는 가끔씩 습관처럼 '어서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했다. 특히, 몸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불편할 때면 마침표와 같이 저 말을 붙이곤 했다. 


 혼자 사실 수 있을 만큼 정정하셨지만, 연세가 많으셨던 만큼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것도 당연했던지라 병원도 자주 다니셨다. 감기 기운이 좀 있다 싶거나 소화가 좀 안된다 싶으면 매번 병원이 열기도 전에 문 앞에 기다릴 실 정도였다. 


엄마와 할머니 (저렇게 보면 생김새도 똑 닮았다!)


 병원을 우리 집 오는 것만큼 자주 가셨으니, 병원을 다녀오시면 늘 상 아프다, 불편하다, 이상하다는 이야기였었다. 좋은 말도 계속되면 지겨운 법인데, 외할머니가 늘 '어서 빨리 죽어야지...'라지만 사실 '나 죽겠네'라는 말을 하는 거라 모를 리 없었다. 


 딸이니까,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엄마도 반복의 정도가 심해지면 가끔씩 짜증을 내곤 했다. 


나이가 들었는데 당연히 아픈고 고장 나는 거지, 그걸 어떡해!


 그런 일이 가끔 생기면 할머니는 마음이 토라져 집으로 바로 돌아가셨다. 또, 그렇게 돌아가시면 어머니도 '아휴~ 정말' 한숨을 쉬면서도 얼굴에는 늘 후회가 서렸다. 


 다행히도, 그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다시 찾아오셨다. 마음이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마땅히 가서 이야기를 할 곳도, 할머니의 아프다는 호소를 들어줄 곳도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 별일 없다가도 비슷한 이유로 서로 토라지고 다시 돌아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며칠 기운이 떨어지고 아프다는 이야기가 오가다 보면 결국 두 분이 함께 링거*를 맞곤 했다. 엄마도 몸이 약했던 터라 할머니가 링거를 맞거나 할 때 대부분 함께였다. 


 당시만 해도 주사 아줌마**가 집에 와서 주사를 놔줬는데, 나도 가끔 엄마가 시켜서 전화를 걸었다.  대략, '여보세요~? 여기 성내동인데요. 엄마랑 할머니 주사를 좀 맞으신다고 하셔서...'라고 전화를 하면 주사 아줌마가 딱 시간 맞춰 집에 오셨다. 


링거 [출처: pixabay.com]


 링거를 맞을 때면 보통 두 어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기에 옆에서 몇 가지 시중을 들곤 했다. 특히, 링거액이 차가우면 통증이 좀 있어서 따뜻한 물을 담아와 링거액을 데웠는데,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따뜻한 물을 보충해줘야 했었다. 


 두 분 다 링거를 맞고 나면 한결 나아진 표정을 보이셨는데, 당시 정말 효과가 있었다기보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효과가 더 컸으리라. 그리고 다시 다정한 모녀의 관계를 회복했다. 




 요즘, 어머니를 보면 옛날 외할머니가 자주 연상된다. 다니는 병원은 증상에 따라가는 동네 병원을 시작해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대학병원 2곳, 디스크 때문에 약침을 맞으러 다니는 한방병원, 계속 재발하는 노인성 설사 때마다 가는 전문 한의원. 그 외 안과, 치과 등 특별한 케이스까지...


 덩달아 드시는 약도 많다. 또 지금도 근처 동네 내과에서 가끔 링거를 맞곤 한다. 주기적인 노인성 설사를 앓다 보니 며칠 씩 음식을 잘 못 드시면 기력을 위해 링거 주사를 병원에 가서 맞기도 하고 동네 병원을 제외하고 먼 곳이나 큰 병원들은 모시고 다니느냐고 꽤나 바쁘다. 그중 누나가 엄마 옆에 있으면서 제일 고생이 많은 터라 제일 고생인데, 가끔 옛날 할머니와 엄마가 그대로 오버랩된다. 


 어머니도 가끔씩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라며 예전 할머니처럼 비슷한 말을 한다. 3남매가 돌아가며 병원을 모시고 다니니 미안하고 눈치를 보며 하는 말이리라.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이렇게 대꾸한다. 


 '그런 소리하지 마시고, 밥맛 없어도 밥 잘 드시고 귀찮아도 아파트 한 바퀴 돌고 와요. 그래야 화장실도 잘 가고 잠도 잘 자고 그런 거지... ' 등등의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리고 내심 다정함을 담아 이런 말을 덧 붙인다. '약을 많이 먹던, 병원을 자주 가던 상관없으니 건강하시고 더 아프지만 마셔요!' 



*링거 - 링거액이라고 하는데, 1882년 영국의 의학자 링거(Ringer.S)가 만든 체액 대용액이자 하트만 수액인데 보통 수액 전체를 통칭하곤 한다. 정확한 용어는 IV(정맥주사)다. 


**주사 아줌마 - 집에 방문해서 링거 등 주사를 놔주는 퇴직한 간호사 분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사실 불법인데 80년대인 그때만 해도 저런 일들이 흔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 IT 업계만 20년인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