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7년을 거주하고 유럽으로 가려다 코로나 때문에 어쩌다 보니 방향이 바뀌어 오게 된 캐나다 밴쿠버 (왜 캐나다였냐고 물으시면 명상을 하다 답을 얻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게요).
이제 이곳에서 거주한 지도 이제 2년 반 정도가 되어가는데 살면 살수록 참 마음이 편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빅재미는 없지만 착하고 성실한 남자 같은 느낌이랄까.
일단 제 경험상 (항상 이런 글에는 "다 그런 거 아닌 거 아닌데요"라는 댓글이 달리기 때문에 강조) 지금까지 느낀 인상으로는 캐나다 사람들은 딱히 엄청 재미있진 않은데 다들 기본적으로 유하고 나이스한 것 같아요.
문화적으로도 뭔가 에지가 있다거나 스타일이 엄청 좋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특히 광고 같은 걸 보면 정말 단순한 1차원적인 메시지가 대부분이라 가끔은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어요. 이거 관련해서도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ㅎㅎ 거의 대부분 "배가 고플 땐 xxx를 먹어!", "잉크가 필요하다면 xxx에 전화해!" 이런 느낌?
문화적으로나 사람들의 센스, 즐길거리로 빅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캐나다는 참 심심한 곳이 맞아요.
제가 20대 중-후반에 이곳에 왔더라면 아마도 많이 심심했을 것 같아요. 싱가포르에 살 때도 항상 좀 더 화려하고 바쁜 옆동네 홍콩이 더 재밌어 보였고 뉴욕에도 꽂혀서 뉴욕병에도 걸렸었거든요.
거기는 뭔가 항상 신나는 이벤트가 있는 것 같고, 바쁘고, 사람들도 더 재미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근데 지난달에 뉴욕에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밴쿠버에서 못 즐겼던 '문화생활, 신나는 나이트라이프를 제대로 즐기고 올 거야!'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4박 5일을 보내고 나니 딱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뷰가 환상적인 루프탑에서 칵테일도 마시고, 브로드웨이의 최고 수준의 쇼도 보고, 박물관도 가고, 고급 시푸드 레스토랑도 가고- 물론 그 경험 하나하나는 다 너무 좋았죠. 재미있고.
근데 예전에는 나름 뉴욕의 낭만?이라고 생각했던 지하철은 이젠 그냥 너무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느리고, 우울했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어요. 예전엔 그게 참 신나고 재밌었는데 말이죠.
도시의 야경도 멋지고 엄청난 높이의 빌딩숲이 멋지긴 하지만 결국엔 밴쿠버 다운타운에서도 보이는 탁 트인 산의 전경이 그립더라고요.
20대 중반에는 뉴욕에서 살아보는 게 인생의 목표였는데 비자문제 때문에 못 이룬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느끼는 날도 오는구나 싶어서 신기했어요.
그렇게 4박 5일을 뉴욕에서 "재미있게" 보내고 밴쿠버에 돌아와서 그다음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산책을 간 거예요. 평화로운 하버뷰를 보면서 청량한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데 어찌나 마음이 편하고 좋던지. 집에 온 것 같단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문득 이건 연애,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재미있고, 뭔가 항상 신나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에게 끌렸다면 이제는 엄청 재미는 없더라도 (당연히 있으면 더 좋지만!) 마음이 편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빅재미가 없어도 마음이 편하고, 안정감을 주는 착한 남자 같은 캐나다 밴쿠버.
이제 저도 나이가 든 걸까요, 철이 든 걸까요 ㅎㅎ
밴쿠버에 살고있는 여행작가, 마케터 에리카라고 해요.
밴쿠버 여행팁, 일상은 인스타그램에서 보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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