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공연과 앱은 전시라는 시간의 정거장

by 김동은WhtDr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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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김동은 WhtDrgon @ MEJEworks. All rights reserved. 광화문 한복판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습니다. 수십 년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서 있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동상은 물리적으로는 변하지 않았지만, 이 동상을 배경으로 찍힌 사진들을 보면 동상은 매번 다릅니다.

정치 집회 때 찍힌 사진에서 동상은 시위대와 함께 분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칼을 든 손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이 더 날카롭게 보입니다. 축제 때 찍힌 사진에서 동상은 축제의 일부입니다. 환호하는 사람들이 동상 주변을 가득 메우고, 동상은 마치 그들을 이끄는 것처럼 서 있습니다. 희망적입니다. 추모 집회 때 찍힌 사진에서 동상은 침울합니다. 수많은 촛불이 광장을 밝히고, 동상은 그 빛 속에서 슬퍼 보입니다.


같은 동상입니다. 같은 청동이고, 같은 자세이며, 같은 표정입니다. 하지만 사진 속 동상은 매번 다릅니다. 믿음직하게, 침울하게, 슬프게, 희망적으로. 왜일까요? 동상이 변한 게 아니라 동상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1. IP는 관객으로 흐른다

IP를 만드는 사람들은 종종 착각합니다. 자신들이 만든 것이 IP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앨범을 만들었으니 앨범이 IP이고, 영화를 찍었으니 영화가 IP이며, 게임을 개발했으니 게임이 IP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IP의 실체는 창작물이 아니라 창작물이 만든 파장입니다. 돌을 물에 던지면 파문이 일어나는데, 중요한 건 돌이 아니라 파문입니다. 돌은 가라앉지만 파문은 퍼져나갑니다. 해안까지 닿고, 다른 파문과 만나며, 새로운 패턴을 만듭니다. IP도 그렇습니다. 창작자가 만든 원본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닿아 만들어내는 파문이 더 중요합니다.


콘서트를 한 번 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주최사는 몇 달 동안 준비합니다. 무대를 설계하고, 조명을 설치하며, 리허설을 수십 번 합니다. 공연 당일, 2시간 동안 무대가 진행됩니다. 노래하고, 춤추고, 관객과 소통합니다. 공연이 끝나면 주최사의 일도 끝납니다. 무대를 철거하고, 정산하고, 다음 일정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관객의 일은 이제 시작입니다. 공연장을 나온 관객들은 핸드폰을 꺼냅니다. 찍어둔 영상을 확인하고, SNS에 올립니다. "오늘 공연 진짜 미쳤다" "이 무대 레전드" "울었어" 댓글이 달리고, 공유되며, 확산됩니다. 누군가는 블로그에 후기를 씁니다. 몇천 자짜리 감상문을 밤새 씁니다. 어떤 무대가 좋았는지, 어떤 멘트가 감동적이었는지, 어떤 순간에 울었는지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누군가는 영상을 편집합니다. 직접 찍은 영상(직캠)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립니다. 조회수가 몇십만 나옵니다. 누군가는 팬아트를 그립니다. 무대 위 모습을 그림으로 재현하고, 트위터에 올립니다. 리트윗이 수천 개 됩니다.


2시간짜리 공연 하나가 수천 수만 개의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주최사가 만든 것은 하나지만, 관객이 만든 것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이 무수히 많은 콘텐츠가 IP를 증식시킵니다.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직캠을 보고, 후기를 읽으며, 팬아트를 보면서 간접 경험을 합니다. "나도 다음엔 가야지" 생각합니다. 팬이 됩니다.

IP는 창작자에게서 시작하지만 관객에게서 완성됩니다. 창작자는 씨앗을 뿌릴 뿐이고, 관객이 키웁니다. 물을 주고, 햇빛을 쬐게 하며, 가지를 쳐줍니다. 씨앗은 나무가 되고, 나무는 숲이 됩니다. IP는 관객으로 흐릅니다.


2. 전시는 해석의 분기를 만든다

같은 공연을 봐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기억합니다. 2만 명이 같은 공연장에 있었지만, 2만 개의 다른 공연이 일어났습니다.


앞줄에 앉은 사람은 가수의 땀방울을 봤습니다. 무대 조명이 땀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순간을 봤습니다.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진짜 열심히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뒷줄에 앉은 사람은 무대 전체를 봤습니다. 댄서들의 대형이 바뀌는 모습, 조명이 바뀌는 타이밍, 전체적인 구성을 봤습니다. "안무 구성이 예술이네" 생각했습니다. 옆에서 본 사람은 관객들의 반응을 봤습니다. 떼창하는 목소리, 응원봉을 흔드는 손, 우는 사람들. "이 순간을 다 같이 공유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같은 2시간이었지만 세 사람은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좋았다"고 말하지만, 무엇이 좋았는지는 다릅니다. 이것이 분기입니다. 하나의 사건에서 여러 개의 해석이 갈라져 나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공연이 일상입니다. 재밌었고, 즐거웠으며, 돈 값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적 소비입니다. 내일이 되면 잊힙니다. 또 다른 공연을 보러 갈 것이고, 또 즐길 것입니다. IP를 소비하지만 IP에 깊이 빠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공연이 행사입니다. 인생이 바뀝니다. "이거다" 싶습니다. 팬이 됩니다. 앨범을 사고, 굿즈를 모으며, 다음 공연 티켓을 예매합니다. SNS 프로필을 바꾸고, 닉네임을 바꾸며, 친구들에게 전도합니다. "너 이거 들어봐" 영상을 보냅니다. IP가 삶의 일부가 됩니다.


같은 공연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핑크 시나리오이고 누군가에게는 섹션을 나누는 블랙 시나리오입니다. 주최사는 이걸 조절할 수 없습니다. 똑같은 무대를 만들어도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IP의 불확정성입니다. 양자역학처럼, 관측하기 전까지는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은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이 IP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이 순간을 기억해주세요" 하지만 관람객은 기획자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감동받고, 기획자가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그냥 지나칩니다. 기획자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분기가 일어날 조건을 만들 뿐입니다.


메제웍스가 하는 일이 이것입니다. 분기를 설계합니다.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여러 개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IP를 배치합니다. "이렇게 봐도 되고, 저렇게 봐도 됩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당신이 결정하세요" 자유를 주면 사람들은 능동적이 됩니다. 자기만의 의미를 찾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IP를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3. 생산자 중심의 한계 - 일상이 없다

현재 대부분의 IP는 사건 중심입니다. 앨범 발매, 콘서트, 영화 개봉, 게임 시즌 업데이트. 큰 사건들이 IP를 이끌어갑니다. 이 사건들 사이에 팬들은 무엇을 할까요? 기다립니다. 다음 앨범을 기다리고, 다음 콘서트를 기다리며, 다음 시즌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IP는 잠듭니다.


아이돌 그룹을 봅시다. 1년에 앨범을 2번 냅니다. 3월에 한 번, 9월에 한 번. 각 앨범 활동 기간은 한 달입니다. 음악 방송에 나가고, 팬사인회를 하며, 예능에 출연합니다. 한 달 동안 팬들은 바쁩니다. 매일 음악 방송을 보고, 투표하고, 스밍(스트리밍)하며, SNS에 응원 글을 씁니다. 하루하루가 이벤트입니다.

하지만 활동이 끝나면 공백이 옵니다. 5개월 동안 아무것도 없습니다. 팬들은 과거 영상을 돌려보고, 과거 사진을 다시 보며, 다음 앨범을 기다립니다. IP가 멈춥니다. 물론 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고, 2차 창작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공식 콘텐츠는 없습니다. 새로운 것이 없으니 재미가 떨어지고, 재미가 떨어지면 관심이 줄어들며, 관심이 줄어들면 팬덤이 약해집니다.


이것을 공백기(Hiatus)라고 부릅니다. K-POP 산업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활동할 때는 뜨겁지만 활동하지 않을 때는 차갑습니다. 온도 차가 극심합니다. 이 온도 차가 팬덤을 지치게 만듭니다. 365일 중 60일만 뜨겁고 305일은 차갑다면, 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60일 동안만 팬이고 나머지 305일은 팬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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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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