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하루는 하나입니다, 플랫폼이 몇 개든

[로드맵] 웹을 넘어 메타버스로: 기술적 확장성

by 김동은WhtDrgon

아침에 깨운 사람을 저녁에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오전 8시, 출근 준비를 하면서 스마트폰을 엽니다. 웹 브라우저에서 배니월드에 접속해 "좋은 아침" 버튼을 누릅니다. 캐릭터가 눈을 뜨고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엽니다. "오늘 날씨 좋네." 당신은 옷장을 열어 파란 티셔츠를 선택하고, 캐릭터가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고마워, 오늘 하루도 잘 보내." 당신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출근합니다.


오후 1시, 점심시간입니다. 사무실 책상에서 잠깐 쉬고 싶어 노트북을 열어 로블록스에 접속합니다. 친구가 메시지를 보냅니다. "같이 놀자." 배니 스킨을 착용하는데, 오전에 웹에서 입힌 파란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20분 정도 웃으며 뛰어놀다가 점심시간이 끝나 로그아웃합니다.


오후 6시,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다시 웹에 접속합니다. 캐릭터가 반기며 말합니다. "오늘 점심 때 재밌었어. 친구들이랑 뛰어놀았잖아." 당신은 놀랍니다. 로블록스에서 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니. "저녁은 뭐 먹을까?" 밥을 주는 메뉴를 선택하자 캐릭터가 먹으며 말합니다. "맛있어."


밤 10시, 하루가 끝나갑니다. 침대에 누워 VR 헤드셋을 쓰고 UEFN 공간에 접속합니다. 조용한 카페가 펼쳐지고 창밖으로 비가 내리며 재즈 피아노가 흐릅니다. 캐릭터가 창가에 앉아 있고 당신도 옆자리에 앉아 말없이 함께 비를 봅니다. 5분쯤 지났을까, 캐릭터가 조용히 말합니다. "오늘 아침에 입힌 파란 티셔츠, 잘 어울렸어. 고마워." 당신은 미소 지으며 헤드셋을 벗습니다. "잘 자." "너도 잘 자. 내일 아침에 또 깨워줘."


이 하루 동안 당신은 몇 개의 플랫폼을 거쳤습니까? 웹(스마트폰), 로블록스(노트북), 웹(태블릿), UEFN(VR). 네 번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하루는 하나였습니다. 파란 티셔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았고, 점심에 논 것을 저녁에 기억했으며, 아침 인사가 밤 인사로 이어졌습니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관계는 끊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메제웍스가 만들어가려는 미래입니다.


1. 플랫폼의 단절이 관계를 끊는다

현재의 문제를 봅시다. 당신은 어떤 게임을 100일 했습니다. 레벨 50을 찍었고, 희귀 아이템을 모았으며,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게임의 모바일 버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운로드해서 실행했더니 레벨 1입니다. 아이템이 없고, 친구 목록이 비었으며, 100일이 사라졌습니다. 같은 게임인데, 같은 회사가 만들었는데, PC 버전과 모바일 버전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왜요?"라고 묻자 개발사는 "기술적 한계입니다. 서버가 다르고 연동이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당신은 포기합니다. 100일을 다시 하기엔 너무 지칩니다.


웹툰 플랫폼도 마찬가지입니다. 네이버 웹툰에서 어떤 작품을 50화까지 봤는데, 카카오페이지에도 같은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벤트로 무료라는 소식에 카카오페이지로 가서 로그인했더니 1화부터입니다. "저 50화까지 봤는데요?"라고 말하지만 플랫폼은 "여기선 처음이시네요"라고 대답합니다. 당신은 50화를 다시 넘기며 찾느라 귀찮아집니다.


소셜미디어는 어떨까요. 인스타그램에 5년 치 사진을 올렸습니다. 추억입니다. 그런데 메타가 만든 새 플랫폼 스레드(Threads)가 나왔고 인스타그램과 연동된다고 해서 가입했더니 사진이 하나도 없습니다. 백지입니다. "인스타그램과 연동이라더니?" 물었더니 "계정은 연동됩니다. 콘텐츠는 따로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당신은 실망합니다.


패턴이 보입니까? 플랫폼이 바뀌면 모든 것이 리셋됩니다. 이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철학 문제입니다. 플랫폼들은 유저를 가두려고 합니다. 우리 플랫폼에만 머물게 하려고, 데이터를 다른 곳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여기서 쌓은 건 여기서만 쓸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냅니다. 하지만 유저에게 플랫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계가 중요합니다.


친구를 생각해봅시다. 아침에 커피숍에서 만나 30분 이야기했고, 고민을 털어놨으며, 친구가 들어줬습니다. 저녁에 술집에서 다시 만났는데 친구가 묻습니다. "오늘 처음 보는 거지?" 당신은 당황합니다. "아침에 봤잖아. 커피 마셨잖아." 친구가 고개를 가웃합니다. "여기서 처음 보는데? 커피숍은 다른 장소잖아." 말이 됩니까? 안 됩니다. 이상합니다. 관계가 아닙니다. 장소가 바뀌어도 친구는 아침 대화를 기억하고, 고민을 기억하고,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야 합니다.


IP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관계는 이어져야 합니다. 웹에서 나눈 대화, 로블록스에서 함께한 시간, UEFN에서 본 풍경이 모두 기억되어야 합니다. 플랫폼은 장소일 뿐이고, 관계는 시간입니다.


2. 연속성이 없던 시절들

1990년대를 돌아봅시다. 포켓몬 레드 버전을 게임보이로 하면서 피카츄를 레벨 80까지 키웠습니다. 애착이 생겼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친구는 슈퍼패미컴이 있었고, 포켓몬 스타디움이라는 게임으로 3D 포켓몬 배틀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 피카츄로 하고 싶어"라고 말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게임보이 카트리지는 슈퍼패미컴에 안 꽂히고, 데이터를 옮길 방법이 없었으며, 친구의 피카츄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피카츄는 게임보이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을 봅시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사진을 올렸고 일기를 썼으며, 5년 치 기록이 쌓였습니다. 페이스북이 한국에 상륙하면서 친구들이 옮겨갔고 "페북으로 와"라고 권유했습니다. 옮기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싸이월드 사진을 하나하나 다운로드해서 페이스북에 다시 업로드해야 했는데, 한 장씩, 몇백 장,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기는 어떻게 하나요?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500개 글에 해야 하나요? 포기했습니다. 그냥 싸이월드에 그대로 뒀다가 결국 싸이월드가 문 닫으면서 5년 치 기록이 사라졌습니다.


2010년대를 봅시다. PC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레벨 50을 찍었고, 길드에 가입했으며, 친구들과 레이드를 돌았습니다. 모바일 버전이 나왔다는 소식에 "이동 중에도 할 수 있어요!"라는 광고를 보고 다운로드했더니 레벨 1이었습니다. "PC 계정이랑 연동 안 돼요?"라고 물었더니 "아니요. 별도 서버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왜요? 같은 게임인데?" 물으니 "밸런스가 다릅니다. PC는 키보드, 모바일은 터치로 조작이 다르니까 난이도도 다르게 설정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말은 이해가 되지만 유저 입장에서는 억울합니다. 같은 캐릭터인데 왜 다른 세계에 사나요?


역사가 말해줍니다. 기술은 발전했고 그래픽은 좋아졌으며 속도는 빨라졌지만, 데이터는 여전히 고립됐습니다. 플랫폼마다 다른 섬이었고, 섬 사이를 오갈 배가 없었으며, 유저는 한 섬에 정착하거나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섬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이동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3. 연속성의 시대가 온다

2020년대, 변화가 시작됩니다. 넷플릭스를 봅시다. 거실 TV로 영화를 30분 보다가 자야 할 시간이 되어 일시정지하고,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열면 같은 영화가 30분 지점부터 재생됩니다. 물어보지 않았는데 알아서 기억했습니다. 저녁에 침대에서 태블릿으로 보면 50분 지점부터 이어집니다. 세 개의 기기지만 하나의 영화입니다.


스포티파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PC로 음악을 들으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 같은 플레이리스트가 있어서 이어서 듣게 되며, 차 안에서 블루투스로 연결하면 같은 곡이 흐릅니다. 세 개의 스피커지만 하나의 리스트입니다.


킨들을 봅시다. 태블릿으로 책을 127페이지까지 읽었다가, 다음 날 스마트폰으로 열면 127페이지부터 시작하고, PC 웹으로 접속해도 여전히 127페이지입니다. 세 개의 화면이지만 하나의 책입니다.

패턴이 보입니까? 플랫폼이 바뀌어도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기억합니다. 영화 32분 지점, 노래 1분 15초 지점, 책 127페이지. 숫자가 따라다니고, 기기를 바꿔도 끊기지 않습니다. 이게 연속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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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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