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3장 · 절차적 창작이란 무엇인가

3장 · 절차적 창작이란 무엇인가 — 원리와 방법

by 김동은WhtDrgon

절차적 생성의 개념 — 게임에서 서사로

절차적 생성(Procedural Generation)¹은 원래 게임 개발에서 온 개념이다. 개발자가 모든 지형과 사건을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대신, 규칙과 확률 테이블을 설계해두면 씨앗값(Seed) 하나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자동으로 생성되는 방식이다. 이 개념을 서사 창작에 가져오면, 창작자는 이야기를 직접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가 발생하는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이 된다.

¹ 절차적 생성(Procedural Generation): 게임 개발에서 콘텐츠를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대신, 알고리즘과 규칙을 통해 자동으로 생성하는 방식. 마인크래프트의 무한한 지형, 로그라이크 게임의 매번 달라지는 던전 구조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정합성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프로그램은 정합성에 있어 극도로 엄격하다. 논리적 모순이 하나라도 있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이 안에서 돌아가는 변수들, 예를 들어 캐릭터의 체력, 공격력, 방어력 같은 수치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밀하게 움직인다. 이 정밀한 수치의 움직임을 글이라는 매체에도 도입할 수 있다. 캐릭터의 분노 수치가 80이라면, 그 캐릭터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는 이미 설계된 법칙에서 도출된다. 창작자가 그 순간마다 즉흥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파라미터와 수치가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준다는 뜻이 아니다. 세계는 능력치와 변수로 관리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수치는 생성형 AI에게 이 세계의 기준점을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수만 개의 변수로 이루어진 MMORPG도 충분히 복잡하고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그 드라마는 수치값이 직접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수치는 세계의 뼈대이고, 드라마는 그 뼈대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선택과 충돌에서 나온다. 창작자의 역할은 그 뼈대를 설계하는 것이지, 드라마를 수치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절차적 창작의 핵심이다. 직관과 영감에 의존하는 전통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미리 구축된 법칙과 데이터와 확률을 통해 이야기를 조립하는 방법론이다. 창작자는 법칙을 심고, 이야기는 그 법칙이 키워낸다.


시드 — 세계관이 시작되는 단 하나의 지점

모든 세계관은 하나의 시작점을 가진다. 이것을 시드(Seed)라고 부른다. 거대한 세계관이 뻗어 나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단 하나의 날카로운 아이디어이다.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작점이어야 한다.

시드가 될 수 있는 것은 여섯 가지이다. 법칙, 장면, 캐릭터, 키워드, 스토리, 장르. 이 중 하나를 선택하여 창조의 닻을 내리는 것이 세계관 설계의 첫 번째 행위이다.


법칙에서 시작하는 경우를 보자. 이 세계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신체에 물리적 변화가 생긴다는 법칙을 설정했다고 가정하자. 이 법칙 하나에서 수많은 질문이 파생된다. 그 변화는 어떤 형태인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정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법정은 어떤 구조인가. 배우라는 직업은 존재할 수 있는가. 법칙 하나가 세계 전체의 구조를 결정한다.


장면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1910년 만주, 영국의 여의사가 기차에서 내린다. 이 한 문장에서 이미 세계의 시대, 공간, 인물의 윤곽이 잡힌다. 1910년이면 KTX는 아닐 것이고, 만주라면 어떤 정치적 맥락이 있을 것이며, 영국인 여의사라면 그 시대에 그 자리에 있기 위해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다. 장면 하나가 세계를 소환한다.


키워드에서 시작하는 경우, 단어들의 조합이 세계의 톤을 결정한다. 녹슨 금속, 붉은 달, 유랑하는 성직자. 이 세 단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이미 하나의 세계를 암시한다. 이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과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시드의 역할은 세계관이 확장될 때 중심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세계관이 커지면 설정이 방대해지고, 그 과정에서 처음의 의도와 멀어지기 쉽다. 시드는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원점이다. 이 세계는 무엇에서 출발했는가를 기억하는 한, 세계관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시드는 세계관의 성장 단계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씨앗이다. 땅에 심긴 씨앗이 싹을 틔우듯, 시드는 세계관의 첫 번째 방향을 결정하고 이야기가 뻗어 나갈 토대를 만든다. 그러나 세계관의 구조가 완성된 이후 시드의 역할은 달라진다. 방대한 설정과 수많은 경우의 수가 쌓인 세계 안에서, 시드는 게임의 씨앗값(Seed Value)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씨앗값이 동일한 알고리즘에서 매번 동일한 세계를 생성하듯, 시드는 그 세계관이 가진 고유한 관점과 방향성을 모든 서사에 일관되게 흘려보내는 기준점이 된다. 시드를 바꾸면 같은 설정에서도 전혀 다른 세계관이 된다. 시드가 세계관의 정체성 그 자체인 이유이다.


[소결]

시드는 세계관이 확장될 때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원점이자 정체성의 닻이다.

시드는 법칙, 장면, 캐릭터, 키워드, 스토리, 장르 중 하나의 구체적 형태를 가진다.

시드가 날카로울수록 세계관은 확장되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한다.


키워드 클라우드와 도미넌트 톤 — 세계의 심장부 설계

시드에서 출발한 세계관이 확장될 때, 그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감각이 필요하다. 이것을 설계하는 도구가 키워드 클라우드와 도미넌트 톤이다.


키워드 클라우드는 세계관의 심장 역할을 하는 5개에서 7개의 핵심 단어 묶음이다. 이 단어들이 서로 엉켜 만들어내는 고유한 분위기는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인력이 된다. 이후 파생되는 모든 설정이 이 클라우드를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하는 기준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세계관의 키워드 클라우드가 고독, 녹슨 기계, 잊혀진 신, 마지막 생존자, 회색 하늘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세계에 화려한 궁전 파티 장면은 어울리지 않는다. 키워드 클라우드는 세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규정한다.


도미넌트 톤(Dominant Tone)²은 세계관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하고 주된 정서이다. 독자가 작품에 진입했을 때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는 장르적 분위기이자, 서사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기본 배경음악과 같다. 공포, 희망, 생존, 경이. 도미넌트 톤이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² 도미넌트 톤(Dominant Tone): 세계관 전체에 깔려있는 지배적 정서. 음악의 조성(調性)과 유사한 개념으로, 세계관 안의 모든 사건과 캐릭터가 이 정서의 영향권 안에서 움직인다. 도미넌트 톤이 명확하지 않으면 세계관은 감정적으로 일관성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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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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