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게임 기획자의 조건 2부

게임기획자를 지망하는 학생용 원고

by 김동은WhtDrgon

기획자의 조건 2부

기획자의 내부 조건 — 물량·안목·감각·진입


머리말

1부에서는 바깥을 이야기했다. 기획자가 세계를 얼마나 넓게 알아야 하는가, 장르의 계보를 어떻게 추적하는가에 대해서.

2부는 안쪽의 이야기다. 그 넓은 세계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는가. 안목과 감각은 어떻게 키우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갖추어 가면서 실제로 게임 업계에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


3장. 물량: 아이디어는 압축의 싸움이다


"재미있는 게 안 떠올라요"의 진짜 의미

게임 기획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자산의 문제다.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자. "한 단어로 표현해 보세요"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단어가 안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어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단어가 충분하지 않아서다. 한 단어란 단어 하나가 아니라 경쟁을 뚫고 올라온 대표단어를 말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인구1인으로 되는게 아닌 것처럼 20개의 단어 중에서 하나를 골라내려면 먼저 20개가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도 같은 원리다. 길거리에서 성공했다고 불릴 만한 콘텐츠, 돈 주고 살 만한 것들은 통상 수천 개의 후보 중 살아남은 하나다. 그 수준의 결과물을 원한다면 재료가 수천 개 있어야 한다. 4개의 아이디어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을 고를 수 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그 4개를 100개로, 1,000개로 늘리는 것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는 것은 선택할 보기 1,2,3,4가 없다는 뜻이다.


아이디어는 창조가 아니라 조립이다

아이디어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막힌다. 아이디어는 조립이다.


올바른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무엇을 조립해야 가장 잘 맞는 것이 될까"다. 이미 존재하는 장르, 모티프, 규칙, 정서를 결합하고 재배치하는 것이 기획의 본질이다. 독창성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있던 것들을 새롭게 배치하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다. 인류의 모든 창조는 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배틀그라운드는 아르마 모드와 배틀로얄 영화와 밀리터리 시뮬레이터가 만났다. 사이버펑크는 SF 문학과 펑크 음악이 만났다.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는 앤 라이스의 소설과 민간 설화와 테이블탑 RPG 문법이 만났다. 새로운 것은 없던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있던 것들의 새로운 조합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조립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부품이다. 부품이 많아야 좋은 것을 조립할 수 있다.

스팀에서 마음에 드는 게임 100개를 찾아서 한 줄씩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표절이 걱정되는가. 표절은 완성된 것을 그대로 내놓을 때 발생한다. 수집하고 분해하는 단계에서 표절은 없다. 이 단계에서는 많이 가져올수록 좋다. 이렇게 모은 기획 아이디어들이 쌓이면, 그것이 곧 GDD¹²의 재료가 된다.


시(詩)와 게임 규칙의 공통 원리

시가 왜 재미없는지 아는가. 접힌 것이 펼쳐지지 않아서다. 시는 수십, 수백의 의미를 두 줄에 압축한 형식이다. 해석력이 없으면 그것은 그냥 열 단어짜리 문장이다. 해석력이 생기면 그 두 줄에서 엄청난 것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시를 보는 순간 지식들이 펼쳐지는 그 감각—예술을 느껴본 사람들이 거기에 중독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게임 규칙도 같은 구조다. 정적인 규칙이 동적인 감각을 만든다.

바둑의 규칙은 간단하다. 교차점에 번갈아가며 돌을 두고, 상대 돌을 둘러싸면 잡는다. 이것이 규칙의 전부다. 그런데 이 단순한 규칙이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는지를 생각해보자. 우하귀에서 흑룡이 중원을 노리고, 백이 그것을 감싸고, 생사석이 갈리고, 인류 최고의 두뇌들이 명예를 걸고 맞붙는 세계. 이것이 정적인 규칙 몇 개가 만들어내는 동적 감각이다.


배틀로얄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한 명만 살아남아야 한다. 이 규칙 하나가 중간에 협력을 만들고, 끝에 배신을 만들고, 희생을 만들고, 감동을 만든다.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를 울린 것도 결국 이 규칙의 설득력이다. 게임의 규칙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그 규칙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축구를 보자. 다 큰 어른들이 손을 쓰지 않고 발로만 공을 골대에 집어넣으려고 저 고생을 하는 것이 왜 이상하지 않은가. 규칙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 규칙 안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하고 자연스럽다.

게임 기획자가 규칙 설계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좋은 규칙 하나가 스토리, 감정, 드라마를 전부 만들어낸다. 거창한 세계관보다 단순하고 강력한 규칙 하나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재밌는 게 안 써지면, 100개를 채워라

많은 게임 기획 지망생이 공통적으로 빠지는 함정이 있다. 마음은 크고 손은 안 움직이는 상태다. 처음부터 대작을 구상하려 한다. 오픈 월드에, 멀티플레이에, 거대한 세계관에, 복잡한 경제 시스템까지. 이것이 일종의 망상이다. 망상이라는 표현이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능적으로는 그렇다. 실행 가능성 없는 목표가 실행 자체를 막는 것이다.


반대로 재미있는 것이 안 써진다면, 그 이유는 지금 채울 수 있는 아이디어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해법은 단순하다. 재미없어도 괜찮으니 100개를 채운다. 스팀을 열고, 게임 소개를 읽고,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를 베껴온다. 지금은 잘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100개를 채우는 것이 목표다.

100개 채우기가 익숙해지면 1,000개를 채운다. 그때부터 압축이 시작된다. 1,000개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걸러내면 100개가 남는다. 그 100개 중에서 또 걸러내면 진짜 내 것이 나온다. 이것이 아이디어가 올라오는 경로다.


조립의 재료가 충분히 쌓이기 전에는 빈 화면 앞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단 채워야 한다.


[소결]

아이디어가 안 나오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자산의 문제다. 부품이 없으면 조립할 수 없다.

아이디어는 창조가 아니라 조립이다. 좋은 것을 가져다가 새롭게 배치하는 것이 기획의 본질이다.

규칙이 드라마를 만든다. 단순한 규칙 하나가 복잡한 감정과 서사를 생성한다.


4장. 안목: 1만 개를 보고 나면 달라진다


안목은 노출량의 함수다

창작자의 안목을 키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제안된다. 이론을 공부하는 것, 우수 사례를 분석하는 것, 멘토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 모두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것들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충분한 노출량이다.


1만 개의 게임을 본 상태에서 기획을 하는 것과 100개를 본 상태에서 기획을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양적 차이가 아니라 질적 차이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안목 자체가 달라진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저 게임이 왜 지루한지가 직관적으로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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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제웍스 CEO. 배니월드,BTS월드, 세계관제작자. '현명한NFT투자자' 저자. 본질은 환상문학-RPG-PC-모바일-쇼엔터-시네마틱-게임-문화를 바라보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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