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날은 델리행 비행기에 오르기 이틀 전이었다.
“정말 안 가면 안 돼?”
붙잡는 사람은 불안했다. 떠나는 사람은 간절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형편없었으니까.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혼란스러웠고 상황도 도와주지 않았다. 내 인생의 결정을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던 결과는 혹독했다.
그럴 때가 있다. 내 마음이 내 것 같지 않고, 세상도 다 나에게 등을 돌린 것 같을 때. 이 세상에서 혼자된 것만 같은 시간들. 관계가 삐걱거리고, 사랑도 마음대로 안되었다. 서른 초반이었다. 내가 원하는 게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삶인지, 도전하고 모험하는 삶인지 헷갈렸다. 양손에 떡을 모두 쥐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안정과 모험, 양립할 수 없는 속성사이에서 나는 방향도 목적도 사람도 모두 잃었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과 세계여행을 떠날 작정이었던 나는, 이 모든 게 나 혼자만의 의지임을 깨달았고 결혼도 세계여행도 모두 손에서 놓아버렸다. 양손 가득 쥔 떡은 어느 하나도 내 것이 되지 못하고 썩어갔던 것이다. 될 일은 물 흐르듯 이루어진다고 하더니, 우리는 모든 과정에서 댐이 가로막는 듯 흐르지 않는 저수지 같았고 이 말은 더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나의 힘들었던 시절을 프롤로그에서부터 밝히기가 부끄럽다. 그렇지만 솔직하지 못한 글을 읽을 때면 나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 있게 고백해 본다. 이런 나 자신이 싫었다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지 도통 모르겠을 때마다 요가매트 위로 도망쳤다.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일 때면 이 모든 잡념이 다 사라졌다.
요가수업은 항상 사바아사나로 끝이 났다. 매트 위에서 시체처럼 몸에 모든 긴장을 풀어내고 고요한 호흡만이 존재하는 자세. 나의 사바아사나는 50분간 무념 후에 찾아오는 눈물의 시간이었다. 눈 바깥쪽의 관자놀이로 흐르는 눈물을 얼른 닦아 모른 척하거나, 울음을 주체하지 못해 나보다도 더 어린 요가선생님을 안고 울었다. 나 혼자 있는 탈의실에서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나를 바꾸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었고 답을 찾고 싶었다. 내 마음이 스스로도 감당 못할 만큼 요동치는 것을 잠재우고 싶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마음 편한 시간은 요가수업 시간이었기에 매트 위로 아주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져 인도 리시케시에 있는 요가원 하나를 찾았다. 곱실거리는 머리와 덥수룩한 턱수염을 가진 요가선생님이 계신 곳. 한 달간 새벽부터 저녁까지 요가만 배우는 과정에 덜컥 등록하고, 비행기표도 끊었다. 매일 요가만 하다 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렇게 내 요가 여정이 시작되었다. 인도에서 시작된 이 여행은 발리, 뉴욕을 거쳐 몰디브에서까지 이어졌다. 매트 위로 도망쳤던 나는 이제 매트 위에 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요가를 한 경험은 정말로 내 인생을 바꾸었다. 한 사람을 바꾸었으니, 그건 곧 하나의 세상을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다리를 앞뒤로 찢고 허리를 뒤로 젖혀 발과 머리를 닿게 하는 종류의 변화가 아닌 그 보다 더 큰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