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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형일 Aug 11. 2022

링컨 하이웨이, 류

#22.07.09. 에이미토울스, 히가시야마 아키라

에이모 토울스 (22.7.4). 링컨하이웨이서창렬(). 현대문학

“새로운 길은 우리를 엄청 기분 좋은 곳으로 인도할 테지만, 때로는 새 방향이 아니라 이미 가고 있던 방향으로 갔더라면, 하고 바라는 수도 있어.”

그러니깐 이건 어긋나는 길 위에서 성장하는 10대들의 이야기다. 

『우아한 연인』(2011)과 『모스크바의 신사』(2016), 단 두 권의 책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에이모 토울스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란다. 인생의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문턱에 선 열여덟 살 소년을 특유의 작가적 현미경 아래에 두고, 독자를 미국 1954년 6월의 어느 열흘로 데려다 놓는데... 

내용은 이렇다.

1954년 6월 12일, 과실치사로 소년원에 수감 중이던 에밋 왓슨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조기 퇴소하여 중부 네브래스카의 고향 집으로 막 돌아온다. 어머니는 8년 전에 집을 나갔고 아버지 농장은 압류당한 상태. 설상가상 과실치사 피해자 가족의 분노가 언제 그에게로 쏟아질지 알 수 없다. 에밋은 열여덟 살이었고, 남은 가족은 여덟 살의 조숙한 동생 빌리뿐. 이제 재산이라곤 연푸른색 스튜드베이커 랜드크루저 한 대가 유일한데, 그는 동생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 남부 텍사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마음먹는다. 그런데 의외의 방문객이 나타난다. 소년원에서 사귄 교활하고 화끈한 '더치스'와 진지하고 엉뚱한 '울리'. 친구들은 에밋의 차를 타고 뉴욕으로 가버리고, 에밋형제는 어쩌다보니 화물열차를 몰래 타고 뉴욕으로 향하게 된다. 

소년들의 여정은 계속 엇갈린다. 마치 인생의 여정처럼 경로는 직선적이지도 않고 예측가능하지도 않았다. 소설은 1954년 6월 12일부터 열흘 동안의 이 소년들의 좌충우돌 여정을 따라간다. 하루의 이야기를 하나의 장으로 구성해 날짜순으로 전개하는 형식이다. 이 소설에는 여덟 명의 ‘나’가 나온다. 화자가 계속 바뀌면서 이야기의 넓이와 깊이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할까?

사족. 작가 에이모 토울스는 소설의 배경을 1954년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베트남 전쟁과 반전운동, 민권운동, 성혁명, 로큰롤 등 미국의 60년대를 정의하는 모든 문화적 격변이 54년에 준비됐고 수면 아래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불운……. 오버마이어 씨는 불운이라고 했다. 극복할 수 없을 만큼 큰 불운. 어느 정도는 그 은행원 말이 옳았다. 불운에 관해 말하자면, 에밋의 아버지는 언제나 불운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건 운수가 지독히 나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에밋은 알고 있었다. ... 1933년 보스턴에서 새 아내와 함께 네브래스카주로 온 에밋의 아버지는 이 땅을 일구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20년 동안 아버지는 밀, 옥수수, 콩뿐 아니라 알팔파까지 재배하려 했지만, 매번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아버지가 한 해 동안 재배할 작물로 물이 많아야 잘 자라는 작물을 선택했을 때는 2년 동안 가뭄이 들었다. 아버지가 햇빛을 많이 쬐어야 잘 자라는 작물로 바꾸었을 때는 서쪽 하늘에 뇌우를 몰고 오는 구름이 짙게 끼곤 했다. 자연은 원래 무자비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은 원래 무심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2, 3년마다 재배 작물을 바꾸는 농부라니? 에밋은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그런 태도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았다. (p.27).


빌리는 고전적인 건물과 분수대가 있는 마지막 엽서를 집어 들었다. 그런 다음 엽서를 뒤집어서 어머니가 쓴 글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었다.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링컨 공원에 있는 리전오브아너 미술관이야. 매년 7월 4일에 전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불꽃놀이가 여기서 펼쳐진단다!” 빌리는 형을 쳐다보았다.

“형, 엄마는 저기에 올 거야. 7월 4일, 리전오브아너 미술관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 행사에 말이야.”

“빌리…….” 에밋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형의 목소리에서 이미 회의적인 생각을 알아차린 빌리는 고개를 세차게 젓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테이블에 놓인 지도를 다시 내려다보며 어머니가 이동한 경로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갈랄라에서 샤이엔, 샤이엔에서 롤린스, 롤린스에서 록스프링스, 록스프링스에서 솔트레이크시티,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일리, 일리에서 리노, 리노에서 새크라멘토, 그리고 새크라멘토에서 샌프란시스코. 이게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야.” (p.44).


당시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간의 나쁜 짓에 의해 우리의 행동이 방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나쁜 짓을 했을 때 왜 우리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짐을 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평온하게 살아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그네스 수녀가 종종 얘기했듯이, 주님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주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신 모든 지혜를 경험이라는 선물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경험은 나로 하여금 아그네스 수녀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p.137)


“빌리, 굉장히 멋진 게 뭔지 알아? 어마무시하게 멋진 게 뭔지 알아?” 빌리는 읽고 있던 부분을 표시한 다음 책에서 눈을 떼고 쳐다보았다. “뭐예요, 울리 형? 어마무시하게 멋진 게 뭐예요?”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 (p. 150~151).


친절이란 다른 사람에게 이롭지만 의무적이지는 않은 불필요한 행위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청구서를 지불할 때는 친절할 수 없다. 새벽에 일어나 돼지에게 먹이를 주거나 소의 젖을 짜거나 닭장에서 달걀을 꺼낼 때는 친절할 수 없다. 또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거나, 아버지가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위층으로 올라간 후에 부엌을 청소할 때는 친절할 수 없다. 문을 잠그고 불을 끄거나, 욕실 바닥에 널린 옷들을 옷 바구니에 주워 담을 때는 친절할 수 없다.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현명하게도 결혼해서 펜서콜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집안일을 도맡아야 할 때는 친절할 수 없다. 그렇고말고, 나는 침대로 올라가 불을 끄면서 중얼거렸다. 이 모든 경우엔 친절할 수가 없지. 왜냐하면 친절은 필요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니까.(p. 156~157)

 

 히가시야마 아키라(22.6.22). 해피북스투유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할아버지(예준린)의 죽음을 목격한 손자(예치우성)가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이자, 시대물이다.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 범인을 쫓는 과정과 전혀 의외의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치밀한 반전의 설계가 훌륭한 장르물의 면모를 보이면서, 소설이 삼고 있는 시대적·역사적 배경과 삼대에 걸친 세대의 중첩이 대하소설의 영역까지 가 닿는 스케일을 구축했다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꼭 읽어봐야지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류>의 주요 무대는 1970~80년대의 대만. 사건의 발단은 1975년. 

당시 열일곱살이던 예치우성은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총통(장제스)께서 서거하셨습니다”라는 공지를 듣고 수업을 중단한 채 귀가하게 된다. 몇 달 뒤 예치우성은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이쪽은 더 개인적인 죽음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살해당한 거다. 

여기서 이야기는 그의 할아버지의 시대, 1920~40년대를 오가기 시작하면서 살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예치우성의 할아버지는 1927년 장제스가 일으킨 상하이 쿠데타 때 국민당에 가담해 공산주의자를 죽인 전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전쟁 이야기를 <삼국지>나 <수호지>처럼 과장된 무용담으로 전해주곤 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말해준 할아버지의 전쟁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 끔찍함은 할아버지의 말을 빌리면, “전쟁이란 (원래) 그런 거”였다. 할아버지는 함께 싸우다 세상을 떠난 의형제들의 가족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사람이었던데다, 더 나아가 그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키우기도 했다. 그런 할아버지가 포목점 세면실 안 욕조에서 시체로 발견된 거다.  누가 왜? 범인은 쉽게 밝혀지지 않고, 범죄 현장을 목격했던 트라우마는 예치우성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작가(히가시야마 아키라)는 살인사건 직후 예치우성의 삶을 펼쳐보이는데 집중하는데,  대만의 청년 폭력배들의 이야기가 예치우성과 그의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어지는데, 십대 남자의 우정과 사랑을 시련에 빠뜨리는 사건들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의 단서가 삐죽 머리를 내밀 때마다 급류에 휘말리듯 사건의 중심으로 빨려들어 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볼 거리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라고 하는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할아버지와 그의 친구들,  고도 성장기를 살아내는 경쟁의 화신인 아버지 세대, 학교 선생이면서 아들에게 채찍질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 입만 열면 허풍인 마도로스 삼촌, 기가 센 엘리트 고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단숨에 제압하는 힘을 지닌 어머니 등등.

이 소설과 함께 쟁겨놓으면 좋은 작품. 

하나. <GO(가네시로 가즈키)>. 조총련계 초중학교를 다녔던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된 성장소설이다. 사회와 가정의 폭력적 환경 속에서 성장해가는 십대를 주인공으로 삼아, 정체성 문제와 더불어 가족과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둘.  <13.67(찬호께이)>. 주인공이 경찰인 이 작품은 1967년부터 2013년까지 벌어진 여섯 건의 범죄를 엮어내는데, 정치·사회적으로 격변을 겪은 홍콩의 모습을 담아냈다


기역 자 형태로 몸이 접힌 채 할아버지는 물 바닥에 잠겨 있었다. 머리가 현실을 따라잡는 데 100년쯤 걸렸다. 헉, 목소리를 삼키고 저도 모르게 훌쩍 뒤로 물러났다(pp. 35~36).


흰 타일의 낡은 빌딩은 1층에 자조반점(셀프서비스 식당), 2층에 침·뜸 치료소, 그리고 3층에 ‘바이잉금융’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변변치 않은 계단 옆에는 오토바이가 쭉 세워져 있었다. 국민당은 오토바이를 좋아해 대만에는 오토바이가 한없이 늘어나, 가는 곳마다 불법 주차가 이루어졌다. 오토바이의 보호를 받듯 샤오잔이 사이드미러를 날려버린 문제의 검은 차도 주차해 있었다. 내가 엔진을 끄기 전에 위우원 삼촌이 내 허리에서 재빨리 권총을 뺐다.

“이걸로 어쩔 셈인데?” 총신을 내 뺨에 힘껏 눌렀다. “꼬마야, 장난이라도 칠 셈이었어? 어? 그럼 내가 지금 당장 쏴 죽여줄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여기서 기다려.”

“나도 갈 거야.”

삼촌은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가 따라오면 도울 수 있는 것도 못 도와.”

눈을 피하지 않으려 했으나 5초가 한계였다. 그만큼 위우원 삼촌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분노로 가득했다.

“절대 올라오지 마라.” 눈을 피한 내게 삼촌은 다시 못을 박았다. “더는 가족이 상처받는 일은 보고 싶지 않아.”

“…….”

이때 나는, 인생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잃고 육친이 상처받았다는 의미를 나름 이해하기 시작했다. 칼로 이마에 사인을 새기고 영혼에 침이 뱉어진 듯한 기분을, 위우원 삼촌도 오래전 맛본 것이다. 할아버지가 슈알후의 가족을 전란에서 구하려 동분서주했을 때 위우원 삼촌은 거름통에 몸을 숨기고 자신의 무기력함을 저주하면서 죽어가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비명을 들었으니까(pp.26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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