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s beautiful and then there's you
무슨 음반을 사려고 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CD를 구매하기 위해 광화문 핫트랙스에 들렀고, 매장 벽면에 붙어 있던 병아리색의 커버를 보았다. 눈썹을 깎은 옆모습이 어딘가 인상 깊었다. 내가 사려던 음반을 고르고 여느 때처럼 매장을 기웃거리다, 그 노란색 커버의 음반을 청음 했다. 1번부터 앞부분만 조금씩 들으며 트랙을 넘기는데 음악이 대체로 좋았다. 그래서 그날의 ‘충동 앨범’으로 찰리 푸스의 ‘NINE TRACK MIND’를 구매했다.
몇 번 언급했지만, 보통 CD를 사러 매장에 방문하면 꼭 충동적으로 낯선 가수의 앨범을 사들고 온다. 대체로 그렇게 구매한 가수의 음반을 매우 좋아하고, 심지어는 팬이 되기도 한다. 존 레전드가 대표적인 예이고, 찰리 푸스 역시 매우 대표적인 예이다.
집으로 돌아와 리핑을 하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나이가 어리고, 버클리 음대 장학생 출신이고, 이 음반의 모든 곡은 그가 작곡했으며, 눈썹은 어릴 때 강아지에게 물린 상처이며… 등등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유투브를 검색해 예전에 그가 올린 커버곡, 뮤직비디오 영상을 보고 있었다. 지금 찰리를 무척 사랑하는 팬들에 비하면 나의 애정도는 그리 깊지 않을 수 있으나, 운명처럼 ‘이것은 입덕이다’라고 느꼈을 때 나는 몇 주 동안 그의 노래만 들었다. 커버곡들도 MP3로 다운 받아서, 지금은 다운 받을 수 없는 EP 앨범들도 유투브에서 구해서 들으며 언젠가 내한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전 세계 투어를 다니는 것을 보며 한국도 올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로 찰리가 왔다. 노래하러, 서울에, 찰리가 왔다.
지인들이 티케팅을 도와주어 나름 앞번호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영상으로만 보았던 찰리를 실제로 볼 생각에 설렜다기보단,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공연 시작 전에 내 번호를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줄을 섰다. 종이비행기 이벤트를 한다고 해 기억을 더듬어, 주위 사람들에게도 물어가며 비행기를 만들어 접었다. 가방에 잘 넣고, 흘리는 땀을 닦으며, 부채질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곧이어 입장 시간이 되었다.
공연장 내부는 다행히 시원했다. 촬영과 스탭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팬스가 가운데로 나와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곳에 자리가 남아 자리를 잡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가수들은 관객들 기준으로 항상 왼쪽을 보길래 일부러 오른쪽 팬스 근처에 있었다. 조금 먼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점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공연장은 꽉 찼고, 경호원들은 다치는 사람들이 있을까 계속해서 주의를 주었다. 물도 준비해주고, 힘드신 분들은 꺼내주겠다고 하고, 친절한 사람들 같았다. 뭐 얼마나 힘들까 했는데, 찰리를 기다리느라 정말 힘들어 죽을 뻔했다.
드디어 조명이 꺼지고 어디선가 찰리가 나타났다.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니 이렇게 많은 카메라는 처음 본다고 강아지처럼 해맑게 웃는 우리 찰리. 티셔츠에 헤어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귀엽고 뽀송뽀송했다. 피아노에 앉으니 연주하는 손은 보이지 않았지만 팔 위쪽부터는 볼 수 있었다. 키가 작은 나는 까치발을 종종 들어야 했고, 밀려오는 관객들로부터 버텨내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SNS를 워낙 자주 하는 편이라 아주 멀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찰리의 라이브를 이렇게 듣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노래가 시작되었는데 사운드도 너무 좋고, 우리 찰리 피아노 연주도 잘하고, 첫 곡이 ‘Marvin gaye’였는데 비트박스도 해줬다. 우래기 비트박스도 잘하지. 이어서 ‘Dangerously’ 불렀고, 후렴구와 코러스를 열심히 따라부르며 분위기가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거의 첫 곡부터 떼창 분위기였다. 과하게 소리 지르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찰리의 목소리가 완전 묻혔던 건 아니었고 찰리가 좋아했으니까 나도 좋았다. 물론 지옥철 같은 스탠딩에서 버티느라 너무 힘들기 시작했지만.
중간에 스탠드 마이크에서 두 곡을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곡을 다 피아노 연주를 하며 불러 주었다. 멘트를 하며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중간에 쇼팽의 즉흥 환상곡도 들려주었다. 중간중간 한국말 연습한 걸 적어왔는지, ‘와주쇼쇼 감샤합니다.’ ‘정말 예뻐요’ 등의 말도 해주었다. ‘Left right left’ 이벤트 때, 핸드폰 플래시를 이용해서 노래 가사에 맞춰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었는데 정말 해맑게 웃는 게 너무 귀여웠다. 뷰리풀~ 이러는데 찰리가 더 뷰리풀하지. ‘싸뢍해요’도 이 노래 끝나고 해준 것 같다. 노래 거의 끝날 즈음엔 팬들 방향에 맞춰서 고개도 까딱까딱 흔들어주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태에서 핸드폰 흔드는 게 정말 힘들었고, 옆에 계신 분이 팔로 휘적휘적 흔들어서 정말 더 힘들었지만 웃는 찰리를 보며 힘을 낼 수 있었다.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좋았다. 어쩜 마이크가 내가 있는 쪽 정면에 딱 서 있는지. 공연 보면서 영상을 잘 안 찍는데 –생눈으로 봐야 하니까- 왠지 이건 찍어야 할 것 같아서 핸드폰을 들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Up all night’과 ‘Then there’s you’였다. 기타 반주 하나에 찰리 목소리 하나. ‘Up all night’은 떼창 이벤트를 위해 가사를 외우기로 했던 곡이라 그런지, 찰리와 함께 재밌게 노래를 불렀다. 2절 부를 때 두 손으로 박자 맞추는데 너무 귀여웠음. 그리고 팬들이 노래 따라 부르니까 팔 벌리고 들으면서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나중에 영상을 보고 알았다. 팬들이 찰리 노래를 들으면서 받는 에너지만큼 찰리도 팬들의 에너지를 받겠지?
중간에 노래가 끝나고 찰리 제스처가 넘 귀여웠는데, 두 팔을 들었다가 내리며 ‘아유~ 됐어~’이러는 줄 알았다. 몸짓 하나하나에 팬들이 꺅꺅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는 잠깐 토크를 하면서, 어제 코리안 바비큐를 어제 먹었는데 참 맛있었고, 다음 곡이 코리안 바비큐에 대한 곡은 아니라는 귀여운 농담도 치고. 그러고는 ‘Then there’s you’를 불렀다.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면서 진지하게 찰리가 노래하는데 우리가 후렴구 나올 때 비행기를 던지니까 이게 뭔지 싶어 고개를 두리번 두리번거리는 게 정말 너무 귀여웠다. 광대가 치솟더니 비행기 하나를 집어 들며 ‘That’s so awesome.’ 이런다. 팬들이 코러스 넣어주고 같이 불러주니까 또 같이 노래하면서 떼창을 온 몸으로 듣는 우리 찰리.
다시 피아노에 앉은 찰리는 커버곡을 하나 불러주었다. 존 메이어의 ‘Edge of desire’였다. 커버곡 올린 거 봤냐고 물어본 것 같은데(확실하지 않음) 대답을 못 했다. 유투브에서 커버곡 웬만한 건 다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는 공연 보고 나서 뒤늦게 찾아보았다. 영상을 보니 이때도 귀엽구나. 유투브에 올리려고 부르던 그 노래를 한국의 어느 공연장에서 부르면서 우리 찰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어서 ‘We don’t talk anymore’를 불러주었는데, 중간에 ‘찰리의 노래 교실’이 있었다. 짙은도 공연 때마다 노래교실이 열리는데, 팬들이 잘 따라 하면 그렇게 세상 흐뭇해한다. 찰리는 좀 난이도가 높았다. 멜로디도 즉흥적이고, 고음대결처럼 음이 계속 올라갔는데 팬들이 너무 잘 따라 하니까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빵빵 터지는 게 또 넘 귀여움. (찰푸덕이라면 꼭 그 영상을 찾아서 보세요. 너무 귀엽습니다.) 그러면서 피아노 연주 너무 잘한다. 중간에 찰리 채플린 모던타임즈 멜로디도 넣어가며 연주하는데 엄청 멋있었어. 애기애기한 찰리지만 말할 때 목소리 너무 섹시하고, 피아노 연주할 때 멋지고, 그냥 최고야.
이어서 현란한 피아노 연주 실력 자랑하며 Suffer를 들려주었고, 이후 마지막 노래라고 하면서 ‘One call away’를 불렀다. 우리 모두 마지막 노래가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움 가득 담아 함께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에 끝까지 팬들이 노래를 부르니 찰리가 잠시 서서 바라보다 들어가는데 너무 예뻤다.
잠시 들어갔던 찰리는 앵콜을 외치는 우리에게 한 곡만 더 부르겠다고 하면서 ‘See you again’을 불렀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이벤트라 다들 종이를 들고 있어서 찰리가 잘 안 보였지만 함께 찰리와 노래를 부르며 다시 또 만나기를 기약했다.
해외 가수를 이렇게 ‘깊이’ 좋아하는 것은 처음이라 내게는 낯선 것이 너무 많다. 한국 가수보다 자주 볼 수 없는 게 가장 안타깝고 언어의 한계를 자주 느끼지만, SNS로 팬들에게 자주 인사를 해주어서 무척 고맙다. 무엇보다 좋은 노래를 불러주니 그게 제일 팬으로서 고맙다. 좋아하는 음악을 행복하게 계속해나가면 좋겠다. 살면서 부침이 없을 순 없겠지만 험한 연예계에서 가능하면 덜 상처 입고,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으면 하는 바람. 또 와, 찰리야.
아직도 꿈 같다.
2016.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