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선이 담긴 <로이터 사진전>

타인의 평범한 삶

by Ellie

“순간을 영원히!”


침몰하게 될 운명도 모른 채 잭과 로즈가 1등 선실에서 잔을 부딪치며 외쳤던 축배사가 떠오른다. 초창기의 카메라는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긴 노출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보도 사진은 이동하기 쉬운 카메라가 등장하면서부터 역사의 현장을 기록했다. 사진전은 제1차 세계대전의 현장을 기록한 흑백사진을 보여주며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시회가 처음 보여준 사진은 ‘전쟁’의 현장이다. 왜 하필 분쟁의 역사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인가?


첫 번째로 맞이하는 사진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들의 흑백사진이었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계사에서 보았던 굵직한 사건들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민주화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다. 87년의 대한민국 이한열 열사의 사진도 만나볼 수 있었다. 흑백사진에 언제부턴가 색이 입혀진다. 뉴스로 접했던 동시대 사건들로 근현대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며 전시회는 자신의 간단한 소개를 마친다.


회색 벽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우리를 맞이했던 전시회는 환한 조명 아래, 하얀 상자에 담긴 사진들을 보여준다. ‘emotion’이라는 제목이 붙은 부스에는 폴 매카트니의 결혼 현장, 김연아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 카메라 렌즈 앞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자살 폭탄 테러범 어머니의 죄책감과 미안함, 자연재해로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목발을 짚고 필드 위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 등을 보여준다. 이름을 아는 유명인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의 한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고개를 돌려 상자 안에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설명을 읽기도 전에 그들이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진을 보며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했고, 축복하거나 위로해주었다.


감정이 가득한 방을 지나, 다소 감정적인 마음으로 보게 되는 사진들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한쪽 벽면은 그 자체로 거울이었고 맞은 편에는 서로 같은 사진이 여러 장 전시되어 있었다. 지구의 어느 곳에선가 살고 있을 사람들과 동물들의 사진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는 동안 마음이 평화로웠다.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시장에서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각기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던 일본 어느 섬의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다소 포근해진 마음으로 암막을 거치면 암실을 재현한 컨셉의 전시가 이어졌다. 사진작가가 직접 쓴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영상으로도 함께 보이고, 테이블 위에도 그 사진들이 놓여있다. 아이들의 사진을 찍던 중 근처에서 폭탄이 터져 작가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과 두려운 모습 모두가 렌즈에 담겼다. 언제 어디에서 생을 마감할 줄 모르는 삶이 그 아이들에겐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지만, 두려움이 다가오는 순간의 그 공포는 늘 겪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


바로 안쪽 공간에는 다소 잔인한 사진들이 있으니 심신이 미약하신 분들은 관람에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커튼을 열어 작은 방에 들어갔다. 영화에서 보았던 피가 낭자한 사진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유난히 작고 은밀한 공간처럼 느껴졌던 그 전시실에는 전쟁과 테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생을 마감한 어떤 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설명이 아니었더라면 시신인지 살아 있는 사람인지 알기 어려운 사진들이었다. 사진으로 그들의 모습을 보는 우리에겐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속의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많은 이들의 삶이 나와는 상관없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달라진다.


마음이 쓰렸다. 무거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오니 이번에는 테이블에 필름처럼 여러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국가별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 사진이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았던 것과 달리 이 구간에서 관람객들은 사진을 아래로 내려봐야 했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경찰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난민들을 보고 영상으로도 보았다. 사진이 기록된 날짜는 무척 가까운 시기의 일들이었다. 전시 초입에 압축된 100년의 역사에서 인류는 분명 발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생의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렇기에 로이터는 현장을 기록하고 고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렌즈를 들이대고, 많은 이들이 볼 수 없거나 보지 못하는 세계의 눈이 되어 준다. 그들의 눈을 통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전시회는 그 주제를 제시한다. 인권, 환경 등의 주제 속에서 우리가 파괴한 자연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끝으로 우리가 왜 파괴하는 인류의 이 역사를 방관해서는 안 되는지,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역설한다.


로이터사진전2.jpg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은 커다란 바구니 같은 작은 배에서 낚시하던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낚시하고 어머니는 노를 젓고, 함께 따라 나온 아이는 평온하게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나도 엄마 손을 잡고 엄마가 일하는 곳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어린 나를 데리고 다니기 무척 귀찮았을 텐데 어린 엄마에게는 그런 딸이 함께 해주는 것이 힘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타인의 평범한 삶을 앗아갈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시위 현장에 나타난 군중들의 사진을 가까이서 보면 모두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얼굴은 제각기 다르게 생겼다. 흐릿하지만 작은 그 얼굴에는 저마다의 삶이 있는 것이다. 전쟁은 그런 삶들을 빼앗아 간다. 그렇기에 로이터 사진전은 100년 전의 전쟁을 기록한 사진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보았던 전쟁은 역사로 기록됨으로써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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