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음

뉴질랜드 남섬 관측 여행기

by Ellie

빨리 여행이 시작되길 바랐다. 그래야 이 여행이 끝날 테니까. 내게 이 여행은 틀린 건 하나도 없이 제출하고 싶은 완벽한 숙제와도 같았다. 답을 찾지 못한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떠나 남겨진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단편 소설에서 실연에 빠진 인물을 묘사하며 그랬지.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못해, 그 결과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 마음이 비어있음을 알았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좋은 흔적들이 내게 남았다. 그렇지만 나는 충분히 아파하지 못해 공허한 마음을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비우고 온 것은 타인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이고, 내가 가지고 온 것은 빈 마음이다. 그 마음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차곡차곡 채워나가야겠다 다짐하며, 며칠 지나지 않은 여행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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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서호주를 다녀온 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논문은 쓰지 못했지만 다니던 대학원을 수료했다. 1년이나 미뤄진 논문을 이제 써야 한다. 회사는 두 번 옮겼다. 프리랜서로 4개월, 프로젝트를 맡으며 3개월, 지금 근무하는 회사는 입사한 지 3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잠시 스치는 인연일 수도, 평생을 기대거나 원망하게 되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긴 목적과 목표 없이 하나의 방향만 세워두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며 지난 1년을 보냈다. 뉴질랜드 여행도 그중 하나다. 관측 원정이 아니면 평생에 못 가봤을것 같은 나라에 은하수와 오로라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현지에서 일정을 변경하는 데 한계가 있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동 경로를 확정 짓고, 그에 맞춰 숙소를 예약해야 했다. 항공편이 몇 번 변경되어 강한 클레임을 걸기도 했다. 나는 중화항공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두꺼운 겨울옷을 사고, 뜻하지 않게 경유지인 대만에서도 여행하게 되어 회비도 추가로 걷어 환전했다. 어디를 가든 따라가겠다 약속할 정도로 좋았던 미라인의 은하수가 흐릿해질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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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부터 체크리스트를 만들며 짐을 쌌는데도 불안했는지깊게 잠들지 못했다. 밤을 두세 번 쪼개어 쪽잠을 자고 새벽을 맞았다. 전날까지 비도 많이 내렸고 여름휴가 절정기라 서둘러 J와 집을 나섰다. 공기는 젖어있고 날은 더웠다.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가방을 열어 여권과 지갑이 있는지, 어플을 켜고 숙소 예약이 되어있는지 또 한 번 확인하였다.


일찍부터 공항에 도착해 있던 멤버들을 만났다. 오클랜드에서 크라이스트 처치까지 이동하는 국내선의 수하물은 23kg 이내로 무게를 맞춰야 해서 우리는 저울을 왔다 갔다 하며 캐리어를 계속 올려보았다. 핫팩을 나누어 담고 기내에 들고 갈 짐들은 따로 정리했다. 그룹 체크인을 하려다 인원수가 부족해 일단 줄을 서 있기로 했다. 승무원들이 동선을 정리하고 데스크에서 준비하는 움직임이 보이자 우리 뒤로 다른 여행자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늦게 오는 멤버들은 따로 체크인하기로 하고 먼저 도착한 멤버들은 세 명씩 나누어 발권을 마쳤다. 첫 번째 X레이 검사를 마치고 자동출입국심사를 지나 면세점으로 들어왔다. 영화 <터미널>에서는 비행 중 국가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공항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잘 살펴보면 어딘가 그런 사람이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돌아와야 하는 여정을 시작했음을 이런 경계지역의 낯선 풍경에서 느낀다.


대장만 부산에서 출발해 열 한 명의 멤버들만 인천에서 대만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시차를 확인한 후 손목시계를 미리 맞춰두었다. 늘 열심히 찍지만 막상 보는 일은 거의 없는, 비행 중 구름 위의사진과 동영상을 열심히 촬영했다. 태풍이 북상 중이라 대만에서 출발하는 비행편이 결항 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체류하는 동안엔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입국신고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피켓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대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코인 라커룸을 찾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투명한 창문에 가득 담긴 햇살이 비추는 실내 분위기는 지방의 어느 작은 터미널 같았다. 공항버스 매표소를 지나쳐 한참을 걸어가도 코인 라커룸을찾을 수가 없어 경비원(인지 경찰인지, 제복을 입은 분)에게 ‘스마트 라커룸’이어디 있는지 여쭈었더니 2층으로 안내해주었다. 대만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길을 잘못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의심 속에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왼쪽 복도로 들어가니 체크인 데스크가 있는 쪽에 코인 라커룸이 있었다.


짐을 넣어두고 1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방금 버스가 떠난 정류소엔 자리가 없어 타지 못한 승객이 몇 명 남겨져 있었다. 매표소엔 일본인 관광객이 티켓을 사는 중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한국어로도 편도, 왕복 티켓에 대한 가격 안내가 적혀있었다. 열두 장을 구매하니 네 장씩, 세 번에 나누어 발권기가 딸각거리며 티켓을 인쇄했다. 미리 줄을 서 있던 멤버들에게 티켓을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버스가 들어오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며 서 있는데 파란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태풍을 기다리는 하늘이 원래 이렇게 맑았던가. 불안정한 대기가 구름을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소나기를 뿌렸지만, 가시거리가 좋아 잠시 해가 비치면 무척 맑게 느껴졌다.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의 하늘만 보다 이렇게 파란 하늘은 오랜만이었다. 사진을 찍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건물 내의 찬바람을 맡기 위해 가끔은 자동문 앞에서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대만_01.jpg 타오위안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
대만_02.jpg 타이페이 메인역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버스가 안내해주는 대만을 눈에담기 시작했다. 나와 J는 광고를 래핑한 자리에 앉아, 벌집 모양의 창문 너머로 대만을 봐야 했다.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들이보였다. 페인트가 벗겨진 건물이 많았다. 고가도로와 신호등을몇 번 지나자 시내가 보였다. 비가 금방 내렸던지 바닥엔 물기가 남아 있었다. 10여 년 전 한자 능력검정시험 2급을 딴 게 무색할 정도로 더듬더듬아는 한자를 골라내며 읽는 동안 타이페이메인 역에 도착했다. 조심조심 발을 내딛고는 주변을 살폈다. 백화점 같은 건물이 보였고 그 옆에 지하철 입구가 있었다. 초행길이지만 당당하게 앞장서 계단을 내려갔다. 어딘가로 바삐 향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안내판을 보며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갔다. 교통카드를 대신 장난감 동전 같은 남색 코인을 개찰구에 찍고 통과하는 사람들이보였다. 별거 아닌데도 판매기에서 코인을 사며 우리는 ‘와아’ 감탄했다. 잔돈이 부족해 편의점으로 Y가 물을 사러 갔고, 나머지 일행들은 도시의 흔한 외국인 관광객답게 어딘가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모여있었다. 언제쯤 오는지 까치발을 들고 두리번거리는데 낯익은 얼굴이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같은 동호회 회원이었다. 대만에서 만나다니, 우리는 서로 닮은 사람을 본 줄 알았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우연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지만, 해외여행 중에 만난 건 처음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신기하다.


개찰구를 지나 역 안으로 한참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서로를 잃어버릴세라 계속해서 뒤돌아보며 숫자를 세어보았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땐 감각으로 알 만큼 익숙해져 내릴 때가 되면 알아서 감은 눈도 떠지고, 읽던 책도 다시덮게 되는데. 낯선 곳에 왔으니 문 위에 반짝이는 불들을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금통에 넣듯 코인을 개찰구에서 반납하고, 지상으로 올라가자 습하고 더운, 그리고 아까부터 어디선가 풍겨오는 독특한 냄새가 났다. 여름날복도를 지나면 그 집만이 가진 향기가 바람과 함께 날아오던데, 도시도 저마다 그런 향기를 가져서일까. 홍콩에 채도가 높고 소리마저 진한 도시였다면 대만은 채도가 낮고 소리도 옅은 곳이었다.


인도에 그늘을 만들어준 건물을 따라 몇 블록 더 걸어올라갔다. 어딘가 마사지샵이 있는지 포근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예쁘게 과일을 진열해둔 상점을 지나고, 스타벅스도 지났다. 대만의 스타벅스에선 어떤 음료를 파는지 궁금해 기웃거리는데 바로 그 옆 골목에 우리가 찾던 레스토랑이 있다고 했다. J와 가게로 다가가니 직원분들이 환히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쉬는 시간에 예약하러 간 것인데, 인원수를 알려주니 계산대 바로 옆 동그란 테이블을 추천해 주셨다. 의자의개수를 세어보니 마침 열두 개였다. 예약을 마치고 가게를 나오는데 유리문 밖에는 낯선 골목에 일렬로선 멤버들이 결과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대만_03.jpg 대만 거리
대만_04.jpg 구름 사이로 햇빛과 건물에 비친 그림자


잠시 빙수나 한 그릇 먹으며 쉬어 가기로 했다. 유명한 망고 빙수 가게에 들르기로 했다. 경유지라 유심칩을구매하지 않아 지도 어플을 켤 수 없어, 기억에 의존하며 길을 찾았다. 걸어왔던 길을 돌아 내려가는데 아무리 걸어도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큰 건물에 들어가 땀을 식히고, 대만에 방문한 적 있던 사람들끼리 기억을 다시 소환했다. 뉴질랜드에서 쓰려고 다운 받은 GPS 내비 어플도 동원되었다. 아무래도 반대 방향으로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맑은 하늘이 흐려지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가끔은 비를 피하며 걷다 보니 애타게 찾던 그 빙수 가게가 나타났다.


둘러보니 아까 들렀던 레스토랑 근처였다. 공연히 대만 구경을 했던 우리는 어서 땀을 식히고 달달한 빙수를 먹고 싶었다. 자리가 없어 두 테이블로 나누어 앉아 주문하려는데 테이블 차지가 있어 빙수를 많이 주문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곧 저녁을 먹어야하는데 디저트로 배를 채울 순 없었다. 망고 빙수와 밀크티 빙수를 하나씩만 사서 맛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먹을 곳이 없었다. 근처의 거리에서 먹자는 이들도 있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먹자는 이들도 있었다. 만수르처럼 대만에서 놀아보자며 회비도 얻었는데 거리에서 먹을 수는 없었다. 빙수가 담긴 쇼핑백을 고이 들고 조금 일찍 레스토랑으로돌아갔다. 얼굴을 알아본 직원은 다시 한 번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예약된 자리에 앉으며 매우 조심스럽게, 이 음식을 여기서 먹어도 되냐며 물었더니 흔쾌히 가능하다고 하셨다. 덜어 먹으라며 개인 접시도 가져다주셨다. 중국 음식을 먹는 커다란 숟가락으로 망고 빙수와 밀크티 빙수를 맛보았다. 망고빙수는 달기만 했는데 타피오카가 들어간 밀크티 빙수는 버블티를 기대하게 하는 맛이었다.


잔액에 맞춰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돈을 꺼내 세어보고, 버스비를 뺀 예산을 정리하는 사이 멤버들은 메뉴판 분석을 마쳤다. 두팀으로 나누어 4개씩 메뉴를 골라 총 8개의 메뉴와 인원수에 맞춰 밥을 주문했다. 달콤하고 차가운 얼음을 먹었던 빈속을 재스민차로 달래주고 나자 음식이 나왔다. 회전이 가능한 동그란 테이블 위에 차례대로 음식이 놓였다. 사진을 찍고 의리 게임을 하듯이 모두가 먹을 수 있도록 조금씩 자기 접시에 덜었다. 먼저 맛을 본 사람들은 으레 음식을 평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국에서 먹어본 익숙한 맛을 떠올려 비교를 했다. 수요미식회의 패널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는 저마다 한 입씩 맛보고 그 평을 거들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요리들이 도착했다. 얼큰한 도가니탕, 매콤한 새우요리, 향이 짙은 돼지고기 등이 지나갔다. 제대로 음식이 나왔는지 확인하는 길은 개수를 세어보는 것뿐이었다. J가 기억해낸 유일한 메뉴가 아직 나오지 않아 메뉴판을 들고는 요리를 가리키며 이 요리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각자의 언어로 말했으나 그 말은 공기 중에 부딪혀 사라졌을 것이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뜻은 전해졌다. 조금 늦었지만 파와 돼지고기를 볶은 요리가 나왔다. 듣던 대로 꼭 먹고 일어서야 했을 정도로 맛있었다. 여행을 오기 전 오티를 하느라 다 같이 모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때도 우리는 이렇게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동그란 테이블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다 보니 뭔가 가족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공항에 모여 대만까지 날아와 제대로 된 첫 끼니를 마치고 나서인지 함께 커다란 미션을 완수한 느낌이기도 했다.


어딘가에서 붉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무렵에 레스토랑을 나왔다. 관광객의 흔적은 찾기 어려운 작은 골목을 지나자 대로에 닿았다. 신호등을 건너며 외웠던 길을 따라 걸었다. 퇴근하는 시민들 틈새로 도시를 구경했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큰 길가에선 보이지 않을 골목 너머의 건물도 구경하며, 미니 선풍기를 손에 꼭 쥐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니 작은 공원과함께 나무껍질 같은 101 타워가 나타났다. 그새해는 넘어갔는지 하늘은 짙은 파란색으로 변했다. 영화 <라라랜드>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들 ‘라라랜드 같다’고 했을 것이다. 그 영화를 본 이후로, 해 질 녘의 보랏빛 하늘을 보면 늘 ‘라라랜드 하늘’이라고 한다. 나의 101타워 배경은 미아와 세바스찬이 탭탠스를 추던 영화 속 하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 것이다. 랜드마크를 봐도 크게 흥분하지 않는데 유독 신이 났던 이유는 그 하늘 덕분이다. J와 에펠탑에서 찍은 사진이 생각나 머리에 뿔이 달린 듯 사진을 찍었다. 멤버들과도 기념사진을 찍었고, 기념사진을 찍는 멤버들의 모습을 찍으며 아주 짧은 관광을 마쳤다.


대만_05.jpg 아마도 퇴근길이겠지?
대만_06.jpg 신호에 걸렸을 때 찍은 어떤 건물의 사진
대만_07.jpg 라라랜드 같았던 하늘과 101타워


버스표를 구매하기 위해 그랜드하얏트 호텔로 향하는 길에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멀리 아주 작은 버스정류장이 보여 노선을 확인 후, 로비로 들어갔다. 행사가 열리는지 배지를 나누어주는 데스크가 있었다. 비즈니스 행사였던 것 같다. 그곳을 지나쳐 호텔 직원에게 티켓을구매했다. 버스 도착시각을 확인한 후, 로비 소파에 자리를잡았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숨을 돌리다,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되어 다시 거리로 나갔다. 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반짝이는 별이있었다. 어떤 별인지, 혹시 행성인지 궁금해 대장에게 물어보았다. 목성인 것 같다고 했다. 목성이 이렇게 하늘 높이 있었나? E가 어플로 확인해보니 목성이 맞았다. 그 주변을 더듬어 다른 별들도 찾아보았다. 작년엔 아는 별자리라고는 오리온자리뿐이었는데 이제는 행성과 별도 구분할 줄 알고 이름을 외는 별도 생겼다. 밤하늘을 자주 보던 사이인 우리는 여행을 떠난 곳에서도 어둠이 내리면 고개를 들어 별을 찾고, 별의 이름을 부르고, 선을 그어가며 자리를 확인했다.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호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멤버들을 불러내 티켓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버스에 올랐다. 우리를 제외하면 너무도 쓸쓸히 손님을 태우고 도심을 지났을 버스는 한 시간여를 달렸다. 충무로처럼 애견샵이 모여 있는 거리를 지났다. 간판의 문자가 다른것을 제외하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도 하고, 차가 밀리는 곳도 있었다. 부지런히 돌아다녀 밥과 빙수를 먹고 101타워를 본 게 전부였지만 덤으로 얻은 여행치고는 썩 나쁘지 않았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터미널을 연결하는 기차가 보였다. <스타트렉: 다크니스>같은 SF 영화에서 본 고가도로 위를 지나는 기차였다. 우리도 저걸 타는 걸까, 생각하며 공항에 도착했는데 코인 라커룸까지 정말 한참을 걸어야 했다. 영수증을 꺼내 짐을 찾으려고 보니 맡길 때 지급했던 비용만큼 추가로 돈을더 내야 했다. 잔돈이 부족해 가까운 가게에서 누가 크래커를 한 상자 샀다. 모든 짐을 찾은 뒤, 낱개로 포장된 크래커를 멤버들에게 하나씩 쥐여줬다. 까서 먹어보니 예전에 J가 사 왔던 것보다는 눅눅하고, 과자도 짜지 않고, 누가도 많이 들어있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원조를 사 먹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다들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하나씩 나누어주고 나니 4개가 남았다. 인적 드문 타오위안 공항의 복도에서 우리는 누가 크래커 배 가위바위보 대회를 열었다. 깔깔깔 웃으며 경기가 진행되었지만, 긴장감만큼은 누아르 영화 못지않았다.


한바탕 게임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또 걷고 걸어서 출국장에 도착했다. 씻고 편히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서둘러 출국 심사를마친 뒤 공항에서 샤워부터 하겠다며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 샤워실의 위치를 물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멤버들과 올라가 보니 공항 라운지만 가득했다. 아무리 봐도 무료 샤워실은 없었다. 샤워실 위치를 찾다가 멤버들과 흩어지게 되어 게이트를 베이스캠프 삼아 일단 모이고 움직이기로 했다. 게이트까지 가는 길이 꽤 멀었다. 성공적으로 샤워실을 찾은 멤버들도 있었지만 먼 길을 다시 돌아갈 기력이 없었다. 양치와 세수, 그리고 앞머리만 감는 것으로 나와 타협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한 나름의 준비를 마친 뒤 남은 돈으로 멤버들과 나누어 먹을 음료수를 사러 갔다. 안타깝게도 타피오카는 품절이라 음료마저도 밀크티로 타협해야 했다. 밤 10시 즈음의 공항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으리라. 근처자판기에서 레모네이드까지 사고 나니 딱 3달러가 남았다. 아주알맞게 돈을 쓴 것 같아 매우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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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의자에 짐을 하나씩 내려놓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탑승을 기다렸다. J가 휴족시간을 꺼내 붙이길래 나도 얻어다 다리에 붙였다. 다리가 시원해지면서 피로가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새로 산 목베개를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우리도 슬슬 일어나 줄을 섰다. 나란히 나란히 비행기에 올랐다. 대만에서 시드니까지 가는 우리의 두 번째 비행이다. 밤 11시에 출발해 다음 날 오전에 도착한다. 나와 J는 창가 쪽 두 자리에 앉았다. 힘찬 엔진 소리로 신호를 알린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높게 날아올랐다. 빗방울이 기체에 부딪히며 작게 부서지는 게 창문으로 보였다. 아직 뉴질랜드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피곤함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태어나 처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LA였다. 밥을 두 번 먹었던가. 세번이었나. 첫 비행부터 장거리를 다녔기 때문에 비행기를 오래 타는 걸 좀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꼼짝 않고 있으려니 불편해 잠이 들 수 없었다. 승객들이 대부분 잠들어 불이 꺼져있는 기내에서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은 일어났다. 괜히 화장실을 다녀왔다. 창문을 올려 얼굴을 붙이고 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은지 보았다. 괜히 자리에서 또 일어났다. 과제를 해야 한다며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 I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보았던 창밖의 밤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는 함께 밤하늘을 비행하는 이 별을 보기 위해 먼곳으로 떠나는 중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갈 곳이 없었다. 불꺼진 비행기 안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고작 몇 걸음뿐이었다. 더 넓고, 먼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사부작거리는 나 때문에 J가 잠에서 깼다. 깊이 잠들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다. 의자에 붙은 모니터를 켜더니 게임이나 하자며 조이스틱을 붙들고 테트리스를 시작했다. 능숙하게 블록들을 쌓고 지우더니 게임이 끝날 때마다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게임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곧잘 하던 실력이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오랜만에 테트리스를 했다. 내겐 게임이 수학보다 더 복잡하게 느껴졌다. 어느 게임이든 금세 질려 익숙해질 틈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펌프’가 유행했을 시절 외에는 오락실에 가본 적도 없고, 시대를 대표할만한 인기 있는 게임기가 등장했을 때에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가끔 생각나서 해보는 게임이 테트리스다. 잘 하는 편은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조작하는 게 조금 익숙해질 무렵에 금방 질려버렸다. 줄을 당겨 조이스틱을 다시 넣어놓고 킨들을 꺼냈다. 비행기에서 읽겠다는 핑계를 대며 전차 책을 여러 권 사서 넣어뒀는데 가장 먼저 손이 갔던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편집장이 함께 쓴 단편 에세이이다. 여행하며 읽기엔 짧은 글이 좋다. 소설을 읽으면 그 세계에 너무 빠져버려서 여행하는 내가 잊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책은 기대보단 재미있지 않았다. 이기호 작가의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를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잠깐 졸기도 하는 사이 잠시 소란스러워지더니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준비해주었다.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식량을 채우고 나니 시드니에 거의 도착했는지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실내이긴 했어도 기내 밖을 나오니 제법 차가운 공기가 살에 닿았다. 복도를 따라 갈아타는 곳까지 한참을 걸었다. X레이검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데 뒤에 있던 멤버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어 듣지 못했는데 열두 명의 한국인 승객을 소환하는 방송이 나왔다고 했다. 앞의 승객을 따라 우리도 짐을 트레이에 올리고, 겉옷을 벗어 세상 밝은 표정을 보여주며 검색대를 통과했다. 랜덤으로몇 개의 짐은 검사하는지 우리 중 일부는 가방을 열어 보여주어야 했다. 먼저 나와 있던 멤버들과 아직 검색대를 지나고 있는 이들을 지켜보며 잠시 대책회의가 열렸다. 시드니 공항에서는 커다란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로의 여행을 결정한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그리고 항공권을 구매한 게 11월이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대만을 경유해 시드니에 잠깐 들렀다가 오클랜드로 출국하는 항공권이었다. 그런데 12월인가, 대만에서 출국하는 일정이 50분 앞당겨졌다. 한 시간 이내에 환승하는 건 다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가 연착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공항도 넓어서 환승을 못 할 뻔했다는 후기도 가득했다.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비행기가 연착되어 환승 시간이 매우 밭아서 나는 뛰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수하물이 하루 늦게 도착한 적도 있었다. 현지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모르니 우리는 긴 논의 끝에 항공편을 오전 시간대로 변경해 더 일찍 한국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그 결과 경유지에서의 체류 시간이 9시간으로 늘었고 대만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7주 전인 6월 초에, 또 일방적으로 항공 스케줄이 변경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뉴질랜드에서의 모든 일정도 맞춰두었기 때문에 항공사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전체 스케줄을 하루 앞당기거나 미룰 수는 없었다. 시드니에서 오클랜드 편이 결항한 것이기에 최대한 스케줄을 맞출 수 있도록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시드니-오클랜드 연결편을 출국 시에는 ‘에어 뉴질랜드’로, 귀국 시에는 ‘콴타스’로 변경해주었다. 티케팅을 할 때마다 여러 번 체크를 해야 했고 시드니에서는 티켓 체크인을 별도로 해야 했다. 처음으로 J와 유럽여행을 갔을 때, 환승하면서 티켓 체크인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시간이 짧아 면세점을 뛰어가다 키오스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승무원을 만났고, 승무원이 도움을 주어티케팅을 할 수 있었다. 항공사 측에서는 공항 내 데스크에서 하면 된다는데 데스크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검색대를 통과하면 바로 앞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있고, 그 뒤편에 데스크가 하나 있다. 혹시나 해 문의해보니 콴타스항공 전용이라고 했다. 1층으로 올라가 우선 게이트부터 찾아 가보기로 했다. 환승 시간이 다소 빠듯해 걷는 듯 뛰듯 공항을 가로질렀다. 커다란 면세점에서 파는 예쁜 인형도, 가방도, 옷도, 기념품도 볼 시간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구경하면 된다고 마음을 달래며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걸어 게이트에 도착했다. 근처에 에어 뉴질랜드 라운지가 있어 가는 길이니 잠시 들렀다 오기로 했다. 멤버들을 세워두고 한 층 더 올라가 데스크의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마치 용한 역술인이 ‘왜 이제야 왔어!’하고 말하듯 게이트 앞에서 얘기하면 발권을 해줄 거라고 알려주었다. 게이트에선 탑승 10분 전이라 승무원들이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한 이티켓을 꺼내며 상황을 설명하니 티켓을 발권해줄 수 있다고 했다. 한 사람씩 여권과 이티켓을 보여주며 티켓을 받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매우 숨 가쁜 시간이었다. 고프로를 아이언맨처럼 가슴에 달고 촬영하던 M에게 혹시 방금도 촬영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진지한데 촬영하는 것은 민폐인 것 같다고 답했다. 우리 방금 <런닝맨>에서 미션하는 사람들 같았는데, 기록되지 않았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승무원이라면 기내에서 난동을 부릴 승객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듬직하고 포스 있어 보이는 남자 승무원이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자리에 앉고선 드디어 뉴질랜드로 간다며 못생긴 얼굴로 셀카도 찍었다. 우리가 한참을 걸어 게이트에 도착한 것처럼 비행기도 오랜 시간 활주로를 돌아다니다 이륙했다. 공항을 뛰어다니는 사이, 날이 밝고 점심시간도 지나 비행기의 그림자가 땅에 비쳤다. 한 마리 고래 같아서 한참을 보는데 바다 위로 날아가니 정말 고래처럼 보였다. 바다에서 가까워지는 때가 되면커다란 고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야생 고래를 볼 일이 내게도 있을까?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을 고래가 궁금했다. 기내식도 먹고, 비행기가 좋아 보여 이것저것 구경하는 사이, 창문 너머에 하얀색 봉우리가 보였다. 얼마 후, 바다에 착륙하듯 활주로에 닿은 비행기는 우리를 드디어 뉴질랜드에 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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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고 비행기를 타는 데 온전히 하루를 쏟고서야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시차가 크진 않지만, 점점 시간이 빠른 곳으로 이동하다 보니 하루가 더 길어졌다. 반복 감기를 하듯 특정 시간에 갇힌 느낌이었다. 멤버들이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화장실에 들러 옷을 덧입었다. 추울테니 양말을 신고 레깅스를 입었다. 수하물을 찾기 전이라 아직 샌들을 신고 있었다. 따로 챙겨온 두꺼운 카디건도 걸쳤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패션이 완성되었다. 다행히 모두가 상황이 비슷해서 서로 부끄러워하진 않았다. 입국신고를마치고 수하물을 찾은 뒤 검색대로 향했다. 음식물 반입을 깐깐하게 본다고 해 다소 긴장한 상태에서 J와 함께 직원 앞으로 향했다. 인스턴트 푸드를 가져왔다고 하니 어떤음식이냐고 다시 물었다. ‘너처럼 수많은 한국인이 이런 음식을 가져왔거든’이라고 말하려는 듯, 일본식 수프라고 했는데도 치킨, 김치, 김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어떻게 치킨을 수하물에 넣어올 수 있는 걸까?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먹지 않는 나는 한국에 가면 알아봐야지 생각하고는 문제없이 검색대를 지나왔다.


캐리어를 다시 집어 들고 자동문을 나서니 공항에 사람들이 많았다. 사계절을 모두 담은 패션을 한 우리는 누가 봐도 북반구에서 넘어온 관광객이었다. 짐을 한곳에 모아두고 유심부터 구매하기로 했다. 멤버들을 따라 나도 1G짜리 유심을 구매했다. 멤버들과 데이터로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게되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반짝이던 햇살은 사라지고 하늘은 검푸른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시간은 정말 무심히도 흐른다.


오클랜드_01.jpg 오클랜드 공항에서 셔틀버스 기다리는 중


터미널에 도착했다. 보통의 공항이라면 느껴지게 마련인 들뜬 분위기조차 가라앉아 있을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화분에 심어진 나무처럼 키오스크가 여러 대 줄을 지어 세워져 있었다. 빈자리에서 예약번호를 누르고 티켓을 뽑았는데, 수하물 태그가 인쇄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티켓만 발권해주는 키오스크였다. 승무원에게 다가가 사정을 설명하니 매우 친절하게 수하물 태그를 인쇄해주었다. 그걸 모르고 J의 티켓도 같은 키오스크에서 발권한 터라 승무원이 동생 것도 인쇄해주었다. 태그를 직접 붙여야 했는데 할 줄을 몰라 우왕좌왕하니 또 친절하게 붙여주셨다.


모두 짐을 부치고 화장실 앞 벤치에 잠시 모였다. 간단하게 각자 저녁을 먹고 시간에 맞춰 모이기로 했다. 공항이 넓지않아 어디에 있든 서로의 위치는 확인될만한 공간이었다. 시간이 늦어 푸드 코트의 식당들은 거의 문을닫고 있었다. J와 나는 한 바퀴 둘러본 뒤 리조또와 과일을 사 먹기로 했다. 둘이서 유럽여행을 다녔을 때 마트에서 조리 식품을 사서 먹곤 했던 기억이 났다. 함께 마실 차도 주문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리조또를 들고는 푸트코트로 향했다. 저 너머로 멤버들이 맥도날드 앞에서 햄버거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자리를 잡고 리조또부터 뚜껑을 열었다. 치즈 냄새가 강하게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블루치즈였던 것 같다. 한 입 넣어보니 향만큼이나간도 셌다. 차로 입을 헹구고, 짠 리조또를 먹고, 달콤한 과일을 먹으니 나름 궁합이 나쁘지 않았다.


오클랜드_02.jpg 나와 j의 저녁 메뉴


은하수를 볼 수 있을까 싶어 크라이스트 처치로 향하는 국내선은 모두 창가에 일렬로 앉도록 좌석을 예약했다. J와 나란히 앉아 하늘이 예쁘면 좀 보려고 했는데 귀가 너무 아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J에게 대만에서 보았던 달이 반대 방향이라는 소식만 전해듣고는 잠이 들었다가, 차를 주길래, 쿠키를 주길래 잠에서 깼다. 친절하다, 뉴질랜드.


드디어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그제야 피곤함을 잊고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기내에서 내려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쪽에 짐을 모아놓고 캐리어에서 겨울옷을 꺼내 주섬주섬 입었다. 이번엔 샌들 대신 운동화를 꺼내 갈아 신은 뒤 두꺼운 패딩을 입었다. 역시, 여전히 이상하다. 멤버들이 예약한 렌터카를 찾기 위해 문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잠시 공항을 구경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오로라를 본뜬 건물인지, 초록색 조명이 인상 깊었고 택시 몇 대가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워서 다시 금방 돌아왔는데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길을 잃은 것이냐며 내게 길을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역시, 친절해.


크라이스트처치1_01.jpg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


주차된 차를 찾으러 각자의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나갔다. 모두가 떠나가고 이 공항엔 우리만 있는 듯했다. 렌터카 표지판을 확인하고 차키를 누르니 뾱뾱 소리를 내며 불이 들어온 차들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세 대의 차를 찾았다. 짐을 나누어 싣는 사이 무전기가 지급되었다. 대장이 운전하는 1호 차, SUV가 2호 차, 세단이 3호차였다. 무전기를 사용하는 법을 확인하고는 2호 차에 탔다. 통신이 원활한지 체크한 뒤, 창문에 가득 낀 얼음을 덜어내고, 나누어 탄 차에서 모든 준비를 마쳤는지 확인한 이후 조심스럽게 시내로 접어들었다.


남들이 보면 우스웠을까. 낯선 도시에서 차량 세 대로 나누어 이동하는 관광객들이 무전을 하는 모습 말이다. 군사작전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꽤 진지하고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었는데. 무전기를 처음 사용해본 건 작년이었다. 그땐 사용할 일도 거의 없었다. 옆에서 보기만 했다. 관측 원정 유경험자로서 왠지 조수석에 앉아 무전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면허가 없어 운전에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구글맵을 켜서 숙소 주소를 찍고, 앞차를 따르며 지도를 계속 보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30분 정도 걸렸다. 이미 늦은 밤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신호에 걸리면 잠시 대기하고,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1호 차가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길은 많으니, 다른 길로 가나 보다 하는데 갑자기 멈춰섰다. 주소를 잘못 찍었는지 근처 어딘가에서 차가 멈춘 것이다.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는 차를 돌려 가다 보니, 구글맵에서 보았던 익숙한 거리가 나왔다. 몇 개의 숙소들이 지나가고 지난겨울부터 검색해보고 봄에 예약했던 숙소가 눈에 보였다. 예상보다 규모가 매우 큰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체크인을 위해 안내데스크로 달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름을 얘기해주니 금세 예약 정보를 찾았다. 숙소마다 게스트의 모든 여권 정보를 요청하기도 하는데 이곳이 그랬다. 아직 돈을 걷기도 전이라 100달러씩 돈을 걷었다. 여권도 걷었다. 게스트의 개인 정보도 추가로 작성해야 해서 한 사람씩 작성하게 하고는 그것도 같이 걷었다. 6인 도미토리실 키 두 개를 받고 직원이 안내해준 곳으로 이동했다. 가운데 넓은 정원이 있는데 우리가 갔던 길은 창가 쪽이어서 반대로 돌아가야 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방문을 열었다.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개별 욕실 1개와 2층 침대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캐리어 여섯 개를 모두 열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숙소를 예약할 때 적었던 신용카드 정보가 파기되어 새로운 카드 정보를 주러 가는 김에 자판기에서 물을 두 개샀다. 하나에 3달러나 하다니, 너무 비싸다. 마트에 갈 시간이 없었으니 어쩌겠나. 남자 방에도 물을 하나 전달하고는 여섯 명이 물 한 병을 아껴 나눠 먹었다.


잠깐 다녀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 보았는데 시내인데도 별이 많이 보였다. 하늘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반구에올 때면 지구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같아 느낌이 이상한데, 이러다 중력이 갑자기 사라져 우주 밖으로떨어지면 저 별에 닿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기엔 숙소가 너무 추웠다. 첫날부터 핫팩을 터뜨려 이불 아래 던져 놓았다. 촬영을 나간다는 멤버들도 있어 최대한 질서정연하게 씻을 순서도 정했다. 대만에서부터 너무 씻고 싶었다. 사계절 모두를 담은 패션이 아닌 겨울옷만 입고 싶었다. 캐리어를 열어 잠옷과 겨울옷부터 꺼내 침대 위에 던져놓았다. 총무를 맡았으니 돈 계산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는 일기가 쓰고 싶었다. 시간을 건너 지구의 아래편으로 이동하느라 하루의 경계가 불분명해졌지만 그래도 나의 하루는 정리하고 싶었다. 평소에도 저녁엔 하루를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순서가 되어 씻고, 내일 일찍 출발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나니 2시가 훌쩍 넘었다.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으니 핫팩이 따뜻하긴 해도 콧등에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가운데 1층 자리에서 자고있던 W의 외침이 들렸다. “얘들아, 6시 15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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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집합이라 1시간 전부터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려고 했다. 분명 알람이 울렸을 텐데 잠결에 껐나 보다. 벌떡 일어나 간단히 세수부터 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여전히 너무 차갑고 추운 욕실에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렌즈를 끼고 스킨, 로션을 바른 뒤 간단하게 화장을 했다. 옷을 갈아입고, 잠옷을 개서 가방에 넣고, 두고 가는 물건은 없는지 살핀 뒤에 먼저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열쇠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는 길에 남자 방에 들러 열쇠를 받아 리셉션으로 향하는데 이제 막 하늘은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 시간까지도 빛을 발하는 별들이 있었다. 그 틈에라도 본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짧은 감상을 마치고 키를 반납했다. 미리 준비를 마친 멤버들은 차에 시동을 켜놓고 창문에 붙은 얼음을 깨며 떠날 준비에 한창이었다. 방에서 캐리어를 꺼내오고 다시 2호 차에 앉았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별이 사라지고 어제 못 보았던 거리가 담장 너머로 얼핏 보였다. 멤버들이 모두 탑승한 것을 확인한 후 1호 차부터 숙소를 빠져나갔다. 추웠지만 놀 거리가 많은 숙소인듯했는데, 철야 시즌에 집에 들러잠만 자고 나가듯이 숙소에 머물다 가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주말 아침, 이른 새벽에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마트였다. 이동하면서 먹을 식량과 오늘 저녁 숙소에서 해먹을 음식,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먹을 것들을 다양하게 샀다. 첫날이라 필요한 것들이 많아 이것저것 구매하다 보니 예산을 훨씬 웃도는 비용이 나왔다. 이동하면서 아침으로 먹을 음료와 빵을 배분했다. 빵과 함께 먹을 누텔라, 크림치즈, 잼도 나누었다. 우리는 크루아상과 크림치즈를 선택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운전은 못 하지만 왠지 무전기를 들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조수석에 앉아 무전에 응답해가며 길을 나섰다. 시내를 빠져나오니 외곽 지역에 에어 뉴질랜드에서도 주었던 쿠키 공장이 보였다. 검색하면서 보았을 때 공장에 들르진 않더라도 그 쿠키는 꼭 사 먹으라고 했던 게 생각나 차에 함께 탄 멤버들에게그 얘기를 전해주었다. 마트에 다음에 가면 꼭 사 먹자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고속도로가 나왔다.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눈이 내려서인지 산은 모두 흰색 패딩을 입은 듯 눈이 덮여 있었다. 도로는 제설작업이 되어 있어서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고, 창밖으로보이는 풍광은 더욱 아름다웠다. 간혹 로터리가 나오고, 아주 작은 마을이 나오기도 했다. 로터리를 지나며 직진을 하려면 두 번째 출구로 나가라는 내비 안내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보다 더 낯선 것은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었다. ‘헤지’를 처음으로 기억한 건 학교에서 조경 수업을 들을 때였다. 그전에도 들었을 수 있지만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 같다. 헤지는 나무로 만든 정원의 울타리를 뜻하는 말이다. 정원이 없으니, 정원에 나무로 울타리를 어떻게 만들어뒀는지는 미드와 애니메이션을 보며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의 헤지는 정원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었다. 지은 지 30년이 지난 내가 사는 아파트엔 메타세콰이어가 10층까지 자랐는데 그만큼이나 큰 나무들이 넓은 평원에 줄지어 심겨 있었다. 나무가 자란 모습 그대로 둔 곳도 있고 아이스바처럼 네모반듯하게 가지를 자른 것도 있었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인지, 기르는 동물을 가두기 위해서인지, 땅을 구분하기 위해서인지는 알수 없으나 매우 생경했다.


1호 차는 아니었지만, 앞자리에 앉아 시야가 트여 볼거리가 많았다. 내가 헤지에 감탄하며 바위처럼 놓여 있는 양들을 구경하는 사이, 오른쪽에 빙하가 덮인 산이 보였다. 우리는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운전하던 E가 눈을 잠깐 힐끗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대장에게 무전이 왔다. 운전자들은 집중하라는 얘기였는데 우리는 순간 이 무전기가 도청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운전하다 뒤차가 잠깐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과 차를 뒤흔든 그 눈 덮인 산으로 향했다. 점점 산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길에 와갈 즈음 1호 차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잠시 사진을찍고 가기 위해서였다. 차가 오지 않는 도로에서 사진을 찍고, 텔레토비가 튀어나올 것 같은 푸른 초원을 찍고, 바람이 추운 줄도 모르고 놀았다. 그러고는 다시 차를 탔다. 아무래도 장거리 비행과 짧은 수면으로 운전을 하는 E는 많이 졸렸을 것이다. 선곡을 맡았지만 들려줄 만한 노래가 별로 없었다. 신나는 노래들로 선곡을 했지만, 핫식스를 연거푸 들이키는 것을 보니 꽤 졸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E가 졸음과 싸우며, 힐끗거리며 풍광을 감상하며 안전운전을 해준 덕분에 우리는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호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테카포_01.jpg 잠시 차에서 내려 찍었던 뉴질랜드
테카포_02.jpg 저 너머 헤지가 보인다
테카포_03.jpg 2호 차 앞자리에서 본 풍경
테카포_04.jpg 테카포 호수가 저 멀리 보인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마트에 이은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는 테카포 호수다. 선한 양치기의 교회가 있는 호수인데, 반짝이는 호수의 빛깔이 은은하고 아주 아름다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카메라를 챙겨 나갔다. 나무 위에 소복이 내린 눈은 결정 그대로 얼어 있었다. 손가락을 대니 차가운 눈이 체온에 녹아 금방 사라졌다. 어디선가는 눈싸움을 걸어오는 듯했지만, 셀카도 찍으며 교회로 다가갔다. 아주 높은 언덕에 있을 줄 알았는데 교회는 크기도 작았고,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사진으로본 것처럼 예뻤다. 동화 속에 나오는 과자 집 같았다. 세모난 지붕 위에는 갈매기들이 간격을 유지하며 가슴을 내밀고 앉아 있었다. 아직 녹지 않아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걸으며 멤버들을 따라 호숫가로 내려갔다. 이런 데선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그림처럼 사진을 찍어야만 할것 같았다. 쓸쓸하고 모험적인 그런 느낌인데 공감해주는 이들이 없어 다소 외로웠다.


테카포_05.jpg 선한 양치기의 교회
테카포_06.jpg 호수 맞은 편의 마을


사진을 찍고 어슬렁어슬렁 놀다 보니 점심때가 다가왔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마을에 몇 개의 식당이모여 있었는데 먼저 들렀던 곳은 트립 어드바이저 후기에서도 보았던 일식당이었다. 커다란 건물 안에서 기념품 매장을 마주하고 있는 일식당엔 호수에 있는 관광객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자리를 문의하니이미 예약이 꽉 찼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가게 앞의 커다란 눈사람과 사진만 찍고는 다른 곳을 알아보았다. 중국요리를 파는 곳도 있고 가볍게 브런치를 먹을만한 곳도 있었다. 우리는 스테이크와 피쉬앤칩스를 파는 곳을 택했다. 전망이 좋은 자리에 열두 명이 앉을 수는 없을 것 같아 여섯명씩 나누어 앉았다. 창가 쪽 테이블은 여러 메뉴를 시켜 나누어 먹는 모양이었다. 안쪽에 앉은 나와 멤버들은 각각 햄버거와 피쉬앤칩스를 시켰다. 접시에 넘칠 만큼 담긴 감자튀김을 보며 저건 무슨 메뉴인가 했더니 내가 먹게 될 피쉬앤칩스였다. 얇은 튀김옷을입은 생선은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감자튀김도 고소하니 맛있었다. 튀김이 맛없긴 힘들다지만 신선한 재료로 만들었다는 건 나도 알 것 같았다. 다들 만족스러웠는지 초밥을 먹었으면 아쉬울 뻔했다는 말들을 나누며 식당을 떠났다.


테카포_07.jpg 참 맛있었던 피쉬앤칩스


숙소로 들어가기 전 근처의 천문대를 들르기로 했다. 차 1대당 8달러씩 입장료를 받았는데 4시가 되면 길을 통제한다고 했다. 검문소 같은 곳을 지나 올라가는 길은 차 한 대가 빠듯하게 다닐만한 도로였다. 굽이진 도로를 천천히 올라가는데 맞은편에서차가 내려왔다. 서로 몸을 부딪치지 않으려는 만원 지하철의 사람들처럼 마주 오던 차가 수줍게 길가에 차를 세웠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지나쳐 올라가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내려오는 차들을 만나야 했다. 대학교에서 운영 중인 천문대였는데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니 동그란 하얀 지붕이 눈이 내린 산들과 무척 잘 어울렸다. 산 아래를 보니 우리가 아까 들렀던 호수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본 적은 없지만 스위스에 온 것만 같았다. 막상 스위스를 가보면다른 느낌일 테지. 내가 생각했던 푸른 초원 위의 평화로운 목장이 아닌 다른 뉴질랜드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테카포_08.jpg 두꺼운 눈으로 뒤덮인 천문대
테카포_09.jpg 하늘을 제외하 모든 세상이 하얗다
테카포_10.jpg 테카포 호수가 있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찍으며 놀다가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듯한 아주 조그만 아이가 아빠 품에 안겨 -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아빠의 두 손에 ‘들려’ - 곤히 자고 있었다. 근처 카페에 마실을 나온 듯했다. 주문한 음료를 받았는데 홀더에는 보라색 배경에 GRAVITY라는 회사명이 적혀 있었다. 어딘가 우주적이다. 천문대와 썩 어울린다 생각하며 뜨거운 차를 마셨다. 진한 우유 맛과 짙은 차향이 느껴졌다. 나름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데 지붕 위의 눈이 녹으며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지나온 길이라 깜짝 놀랐다. 다행히 아무도 그 얼음 덩어리를 맞지 않았다. 멀리서는 예뻐 보여도 언제 위험해질지 모르는 게 자연이구나, 싶었다. 사람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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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겨울왕국에 도착해 눈을 원 없이 보았다. 갑자기 겨울옷을 입고 추워하고 있는 건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지만, 사진을 찍듯 눈과 마음에 그 풍경을 하나하나 담았다. 이번엔 우리가 길을 비켜주기도 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온 뒤, 숙소를 향해 달렸다. 천문대에서 숙소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대장이 어디선가 검색해서 링크를 주었던그 숙소는 호주의 미라인 스테이션처럼 주변엔 아무것도 없어 관측하기 최적의 장소라고 했다. 하늘도 맑아서, 테카포 호수도 너무 예뻐서, 우리의 점심도, 잠시 들렀던 천문대의 그 풍경도 너무 아름다워 밤하늘이 무척 기대되었다. 테카포 호수보다 조금 한적해 보이는 호수가 근처에서 내비 안내가 끊겼는데 입구를 찾지 못해 1호 차가 숙소를 지나쳤다. 차를 돌려 표지판이 가리킨 곳을 따라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울타리가 쳐진 길을 지나는데 맞은 편에서 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창문을 내리고 말을 건넸다. 숙소예약 때문에 나와 메일을 주고받았던 줄리아였다. 그는 우리에게 길을 설명해주곤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낯선 사람들이 궁금하듯 우리를 구경하는 양들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진으로만 보았던 곳에 집 한 채와 별채가 있었다.


줄리아로부터 숙소를 안내받았다. 방을 보여주고, 샤워실을 보여준 뒤, 벽난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체크아웃 시간을 확인하고, 숙박비를 결제한 뒤에 멤버들과 방을 둘러보았다. 테카포 호수로 나가 밤에 별 사진을 찍을까 고민하던 멤버들은 숙소를 보자마자 그럴 필요 없겠다며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더블베드가있는 방을 나와 J가 쓰기로 하고, 일단 구경을 하러 나갔다.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봤던 그림 같았다. 수박바 모양의 뾰족한 나무들과눈 덮인 산, 그리고 불이 들어온 작은 집. 우리는 신나서발이 푹푹 빠지는 언덕 위를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찍어주고, 드론을 날리고, 또 사진을 찍고 그렇게 놀았다.


푸카키_01.jpg 우리가 지나쳤던 숙소 입구의 표지판
푸카키_02.jpg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며 신나게 뛰어 놀던 숙소 앞 눈밭과 호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는 필요한 짐만 몇 개 꺼냈기 때문에 이곳에서야 제대로 짐을 풀 수 있었다. 침대 위에 갖은 짐들을 펼쳐 놓고는 정리를 좀 하다가 포근한 냄새가 나길래 같이 저녁을 준비하러 주방엘 갔다. 고기와 함께 먹을 채소를 손질하고, 통째로 산 파인애플을 다듬었다. 마트에선 잘린 걸 사지만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파인애플을 사 와서 손질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을 더듬으며 딱딱한 껍질을 벗겨냈다. 식사를 준비하는 멤버들 입에 파인애플을 한 조각씩 넣어주었다. 망고는 덜 익었는지 떫은맛이 났다. 돌아갈 즈음엔 먹을 수 있을까 싶어 봉투에 담아 넣어두었다. 깔끔하게 씻기지 않은 그릇들을 꺼내 설거지를 하며 고기가 구워지길 기다리는데,가스가 없어서 불이 약해 잘 익혀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집 안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아 통역을 담당했던 G가 10m 정도 걸어나가 줄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을 즈음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줄리아가 미안해하며 가스를 주고 갔다고 한다. 고기가 늦게 준비되어 밥과 채소가 모두 식었지만 다들 맥주를 한손에 들고 정성껏 함께 준비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장년엔 광부처럼 이마에 고프로를 매달고 촬영했던 M이 가슴에 카메라를 달고, 애완동물에게 말을 하듯 카메라에게 음식을 보여주고는 한 입 먹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좋은 그림을 위해서는 노력하는, 어쩌면 완성된 편집본을 보는 데 1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덕분에 우리는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사위가 금방 어두워졌다. 단단히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암적응을 위해 눈을 감고다섯까지 숫자를 센 뒤 눈을 떴다. 그렇게 눈밭을 걸어 올라가며 하늘을 보니 은하수가 보였다. 그제야 작년에 호주에서 보았던 그 밤하늘이 떠올랐다. 언덕 위에서 함께 은하수를 보며 마젤란 은하를 찾고, 망원경으로 성단을 보고, 남십자성을 그으며, 가로지르는 유성을 발견할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방향이 다른 전갈자리도 알아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커다란 고래 같은 이 은하의 일부만 보인다고 한다. 날이 좋은 날 우연히 은하수를 보더라도 구름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렇게 선명한 은하수를 보기 위해 멀리 날아온 보람이 있었다. 지구가 작게 느껴질 만큼 먼 곳으로 날아왔다. 우주비행사가 되어 지구 밖으로 쏘아 올려질 일은 당연히 없을 테니, 지구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우주여행은 이런 것이다.


푸카키_03.jpg D가 찍어준 은하수와 나
푸카키_04.jpg 푸카키 호수의 은하수 BY. D
푸카키_05.jpg 푸카키 호수의 은하수 2 BY. E
푸카키_06.jpg 푸카키 호수의 은하수와 달 BY. Y (instagram @woongdida)
푸카키_07.jpg 푸카키 호수와 은하수 3 BY. M (instagram @fantasista86)


새벽 세 시에 달이 지면 촬영을 재개하기 위해 멤버들이 숙소에 모였다. 주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벽난로가 켜진 거실 한쪽에 따뜻한 차를 가져와 앉았다. 촬영은 안 하더라도 다시 나가서 하늘을 볼 테니 하루가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일기를 썼다. 정산을 한 번 하고는 비스듬하게 누워 책을 읽었다. 낯선 곳에서도 내가 일상을 유지하며 평상심을 갖게 하는 건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것이다. 몇 번의 여행을 지나며 내가 깨우친 것은 여행으로 삶을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여행은 삶과 다른 궤적을 그리는 게 아니다. 새로운 경험을 체화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나의 중심은 사소하고 시시한 그 일상 안에 있다.


달이 졌는지 멤버들이 촬영을 재개했다. 감기 기운이 있어 일찍 잠들고 싶었지만, 사진을 촬영하는 J와 좀 더 놀고 싶었다. 나와 J는아주 애틋한 사이는 아니다. 가족의 연으로 만난 친구에 더 가깝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함께 들으며 많은 감상을 나누며 자랐다. 친구들과는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과 친구들은 결코 공감하지 못할 순간들을 J와 나눌 때가 있다. 여행하며 그런 시간을 많이 쌓아왔는데 이런 곳에서 별을 촬영하는 건 또 처음 아닌가. 알아서 잘 하고 있겠지만 어떻게 촬영하고 있는지 궁금해 밖으로 나가보았다. 멤버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J는 잠시 카메라 앞에 서 보라고 했다. 은하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별과 사람을 모두 초점을 맞추는 기술이 부족해 자꾸 흔들리게 나왔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멤버들의 사진처럼 선명하고 예쁘진 않더라도 둘이서 그 밤에 사진을 찍고 놀던 기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라디에이터와 벽난로를 켜서 숙소에 온기가 돌긴 했지만 방은 추웠다. 핫팩을 이불 아래 넣어두고 거실의 따뜻한 온기가 들어오길 바라며 문을 조금 열고 잠이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방문이 닫혀 있었고 목이 따가웠다. 머리도아팠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씻으러 가는 길에 보니 일찍부터 일어난 대장과 D가 아침을 준비해두었다. 전날 늦게까지 촬영한 사람들이 많이 예정된시간보다 한 시간 더 늦게 출발하기로 했다. 조금의 여유가 생겨 나갈 채비를 하고 주방에 둘러앉아 같이 아침을 먹었다. 여행 중에는 끼니를 챙기기 쉽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먹어 두어야 한다.


숙소에 방명록이 있어 그곳에 이름을 남기려고 했는데, 대장이 무언가를 적던 게 생각나 물어보니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에 또 갈 일이 있을까, 우리가 뭐라고 적었는지 알아보는 이들이 방문하려나. 미궁에 빠진 방명록을 남겨두고 숙소를 떠나왔다. 이날은 1호 차를 탔는데 나갈 때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나가야 해서, 질퍽거리는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마다 우리가 마셨던 술병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한국에서 가져온 거치대가 맞지않아 조수석에 앉은 D가 내비를 켜고, 가끔 핸드폰을 보여주며 살아있는 내비게이션을 자처하고 있었다. 창문도 자동이 아니라 수동이고, 뭐랄까 초등학생 때 아빠 봉고차를 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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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련이 남은 사람들처럼 나가는 길에 호수를 눈에 담다가 적당한 곳에서 차를 세웠다. 지푸라기를 쌓은 것처럼 갈대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진 길을 밟으며 호수가로 향했다. 사실 갈대인지 억새인지는 잘 모르겠다. 발을 내디디며 어딘가 <더 랍스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나온 커다란 괴물의 털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두 영화 모두 얘기했지만, J는 언니만 아는 영화 이야기라고 했다. 아무도 나와 공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역시 괴물의 털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오면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물이 차는지 돌멩이들이 있는 바닥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돌이 왜 이런 색일까, 여긴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알 수 없는 궁금증만 가득 안은채 괴물의 털 같은 갈대밭을 밟으며 가로질러 돌아왔다. 다시 덜컹거리며 길을 떠나는데 저 멀리 검정색 소 떼들이 보였다. 줄을 지어 이동하던 소들이 차가 지나자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더니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영어로 말했으면 알아들었으려나.


퀸스타운_01.jpg 갈대인지 억색인지 알 수 없지만 괴물의 털 같던 그것
퀸스타운_02.jpg 구름이 가득 낀 하늘 아래 파란 푸카키 호수
퀸스타운_03.jpg 길을 비켜주곤 우리를 쳐다보는 소들


떠날 때가 되니 하늘에 구름이 모여들었다. 산등성이처럼 하얗게 변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젯밤날씨가 좋았던 건 정말 커다란 행운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맑은 기운을 가져오는 날씨 요정이라고 주장했지만, 처음부터 이런 하늘을 만나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운을 얘기하는 대화 소리가 옅어질 즈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도 많이 잠기고 감기기운이 더 심해진 것 같아 Y에게 약을 처방받아 먹었는데, 약기운이 돌았나 보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시트를 뒤로 젖히고, 멤버들이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뜨거운 핫팩 하나를 해달처럼 배에 얹고서 그렇게 낮잠을 잤다.


잠시 차가 멈추는 것 같아 눈을 떠보니 대관령의 어느 휴게소 같은 곳이었다. 연어를 파는 곳이란다. 원래 가려던 곳은 아니었지만 지나는 길에 들른 모양이다. 쓰레기도 버릴 수 없고,연어도 비싼듯해, 잠시 화장실만 이용하기로 했다. 마을이보이는 벤치가 곁에 있어 멤버들을 기다리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추운 날씨에 잠이 깰 법도 한데 차를 다시 타니 금세 잠이 들었다. 잠깐 깨서 겨우 실눈을 뜨면 그 사이로 낯선 풍광들이 스쳐 가는 게 보였다. 어릴 때 몇 시간이고 달려 명절마다 할머니 댁에 갔던 게 생각난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어렴풋이 알아들었지만, 모른 척하며 내내 노래를 듣고 잠만 잤던 그때처럼. 운전과 길을 찾느라 고생한 멤버들에게 감사하게도 나는 무척 포근함을 느꼈다.


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주차된 차들 틈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도착한 곳은 원래 가기로 했던 연어 양식장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리고 여행을 다니는 내내 우리는 연어 농장이라고 불렀다. 사실 '양식장'이 더 어울리는 표현인데 우리에겐 연어를 키우는 일이 '농장'처럼 여겨졌나 보다. 동그란 구멍에 얼굴을 내밀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귀여운 입간판이 입구에 있었다. Y가 뛰어가 얼굴을 내밀고 귀엽게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계단을 내려가자 그곳의 모든 장식은 연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마치 나의 소품이 녹색 계열을 띠는것처럼, 누가 보아도 주제가 분명한 인테리어였다. 과한 캐리커처가 양쪽 문에 하나씩 그려져 있던 투명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두막 같은 실내는 한쪽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몇 개 있고, 다른 쪽에는 카운터와 주방, 냉장고가있었다. 맞은편 문을 열고 나가니 어장이 보였다. 작은 수영장같은 검은색 웅덩이들이 몇 군데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어장 난간에 몸을 살짝 기대 구경을했다. 누군가 먹이를 던지니 수면 위로 연어가 튀어 올랐다. 그 물이 우리에게까지 닿자 사람들은 파도를 피하듯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떨어졌다. 크기가 제법커서 과장을 좀 보태면 돌고래 같았는데, 고래의 재롱을 본 것처럼 사람들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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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에게 정이 들기 전에 자리를 떴다. 두 개의 테이블로 나누어 각각 회와 김밥을 하나씩 먹기로 했다. 주문하고 자리에 돌아오니 J는 I와 연어 캐릭터 종이에 색을 칠하고있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컬러링의 여파인지 이곳의 마케팅 전략인지,혹 어린아이를 위한 서비스인지는 모르겠다. 두 사람이 연어의 모자에만 색을 입혔을 무렵, 선홍빛의 연어 회를 맛보았다. 잘못 먹으면 비린 맛이 강해 즐겨먹는 편은 아닌데 듣던 대로 신선하고 부드러워 맛이 있었다. 멤버들의 눈빛을 보아하니 다들 연어 한마리쯤은 거뜬히 먹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내장까지만 손질되어 있어 반 마리를 통으로 사 가면 우리가 해체해야 했다. 어제저녁 고기가 질기다며 얇게 회 뜨듯 고기를 자르던 M의 칼질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해서 먹겠지.’ 하고는 반 마리를 사 가기로 했다.


약간 아쉬운듯한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니 문경에서 보았던 것처럼 커다란 과일 조형물이 있는 마을이 나왔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연어를 파는 곳엔 사람보다 큰 연어 조형물이, 과일을파는 곳엔 과일 조형물이 있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것들을 크게 만들어 전시하는 건 어디나 비슷한가보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과 이름이 비슷해 어느 한적한 가게에 들어갔는데, 손님이라곤 우리뿐이었다. 견과류와 건과일은 시식할 수 있어서 몇개 맛을 보았다. 생각보다 많이 달고 시큼했다. 광장시장에서 비닐봉지에 조금씩 넣어 파는 것처럼 가공식품도 함께 판매 중이었다. 사과도 종류별로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단맛이 나는 사과가 무엇인지 묻고는 그 사과와 칠리소스를 샀다. 멤버들은 꿀을 사느라 바빴다. J는 그 틈에서 크랜베리가 섞인 누가 카라멜(이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의 간식)을 샀다. 차에서 한 개를 나눠줬는데 놀라울 만큼 달았다. 차에서 굴러다니며 후숙 중인 애플 망고 옆에 사과가 담긴 봉지를 놓고 원래 가려던 과일 가게로 가니, 우리 바로 옆으로 커다란 관광버스가 다가왔다. 그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이어서 가게 안은 지방의 어느 도시같았다. 방금 들렀던 가게와 비슷한 물건들을 팔았는데 꿀은 이곳이 더 싸다고 했던 것 같다. 과일의 가격은 비슷했다. 제아무리 대파라지만 이렇게 커도 될지 싶은 커다란 대파와 다른 채소들을 팔고 있었다. 방울양배추가 있어 요리에 쓰고 싶어 골랐다. 둘러보던 대장이 뉴질랜드에 왔는데 키위를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키위를 산다고 했다. 결제하는 틈에 같이 내밀었더니 사주었다. 처음에 갔던 가게가 더 지역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 같아 좋았다는 평을 나누고, E에게 이전 가게에서 산 초콜릿을 하나 얻어먹고는 퀸스타운으로 출발했다.


번지점프를 하기로 한 멤버들이 있어 가는 길에 예약도할 겸, 마음의 준비도 할 겸 그곳에 들렀는데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자느라 차가 서는 줄도 몰랐던 것 같다. 눈을 떠 보니나 혼자 주차장이고,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차에 오르던 멤버들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한참을 잤고 몸이 조금 회복되는 것 같을 때쯤 퀸스타운에 도착했다. 해가 거의 져서 어두워졌고 비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기위해 정신을 차리고 바로 앉아 예약 정보를 인쇄해둔 파일을 한 번 살펴보았다. 공사 중이던 건물 옆이 우리가 지낼 숙소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웃으며 맞아주었다. 이곳에서는 내 여권 정보만 확인하였다. 총 열두 개의 혼성 도미토리베드를 예약했는데 네 개의 열쇠를 주었다. 3명 / 3명 / 4명 / 2명 이렇게 나누어졌다. 두 명만 6인 실이고 나머지는 4인실이었다. 낯선 외국인들과 방을 함께 써야 해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전날의 숙소가 너무 좋아서인지 다들 조금씩은 당황한 듯, 혹은 어색한 듯 보였다. 남자들이 셋으로 나누어 방을 쓰고 나와 J가 6인실에 가기로 했다. 객실과 주방과 욕실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구조였다. 길을 매번 헤매게 만들었는데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다른 여행객들이 보였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캐리어를 완전히 열지도 못한 채 필요한것만 후다닥 꺼내고는 밖으로 나왔다.


멤버들이 연어를 해체하는 사이 마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가까운 곳에 아시안 마켓이 있었다. 시간이 없어 즉석밥을 사려다 가격이 비싸 포기하고 밥을 지어 먹기로 했다. 김치와 간장만 샀다. 바로 대각선 맞은편에 있던 마트에서는 고기와 맥주를 샀다. 장 본 것들을 들고 주방으로 바로 올라가니 다들 연어 때문에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했다. J가 '어떻게든 먹을 수 있으면 된 거지'라는 마음으로 연어를 썰고 있었다. 각자 분주히 움직이며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어느새 주방엔 우리와 어느 외국인 손님 한 명만 남게 되었다. 꼭 맛있게 먹어야겠다며 J와 Y에게 와사비 심부름까지 시켜 준비한 저녁이 완성되었다. 긴 테이블에 둘러앉아 뷔페에 온 것처럼 밥을 먹었다. 고생해서 해체한 연어는 낮에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었다. 순대 같은 식감을 자랑했던 소시지는 채소와 함께 볶으니 순대 볶음 같았다. 뉴질랜드 양파가 너무 매운 탓인지, 찬물에 넣어 뒀는데도 양배추 샐러드는 꽤 매웠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동하느라 양이 부족했는지 라면을 몇 개 더 끓여 먹고서야 저녁 식사가 끝났다.


다음 날 밀퍼드 사운드를 다녀오면 시내 구경을 할시간이 없기에, 잠깐 보니 하늘의 별도 잘 보이는 것 같아 산책 겸 촬영을 떠나기로 했다. 장을 보았던 마트를 지나니 퍼그 버거가 보였다. 빵집도 같이 운영하는데 그 빵도 유명하단다. 펍 같은 분위기의 햄버거 가게를 지나, 문이 닫힌 상점들은 잠시 구경하고 나니 금방 호숫가에 도착했다. 불을 밝힌 배가 고요한 호수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당장 맥주 한 잔씩 하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들이 주변에 있었다. 몇몇은 자리를 잡고 촬영을 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공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공원에 가까워지니 전혀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퀸스타운 자체가 크지 않지만 차도 적고 펍 주변을 제외하면 고요하기까지 했다. 가로등이 거의 없는 공원엔 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듯한 연인이 있었고, 10대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길을 막은 곳까지 더 안쪽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비가 와서 물웅덩이가 생긴 곳도 있었는데, 어느새 시내에서 보았던 호수 맞은편에 서 있었다. 아쉽게도 하늘은 촬영할만하지 않아 호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어둠속에서 E가 삼각대를 폈다. 하늘과 호수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몇 번의 촬영을 마치고 고사리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인공조명과 핸드폰 플래시를 활용해 단체사진을 남겼다. 결코, 잘 나올 리가 없는 곳에서 사진을 찍은 건 그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뜻이었을 터. 우리는 걸어온 길을 돌아갔다. 공원의 끝에선 다른 골목으로 돌아오며 퀸스타운의 밤거리를 기억했다.


퀸스타운_05.jpg 퀸스타운의 밤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갔다. 문가에 있는 1층 침대를 내가, 맞은편 2층 침대를 J가 쓰게 되었다. 씻을 준비를 하려고 짐을 정리 중인데 J와 같은 침대를 쓰는 1층 게스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미안한데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주워달라고 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어서 베개를 주다가 한쪽 팔에 깁스를 한 걸 보았다. 여기에 와서 다쳤는지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매우 아파 보였다.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 샤워실로 갔더니 이미 멤버들이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먼저 샤워를 했던 W가 다른 샤워실이 있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마치 비밀의 다락방을 올라가는 것처럼 3층으로 올라가니 외딴 샤워실이 하나 있었다. 역시 미로같은 숙소다.


1층에서 머리를 말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낮에 이동하며 그렇게 많이 잤는데도 피곤했다. 모두 잠이 든 것 같아 조심스럽게 캐리어의 지퍼를 여는데, 커다란 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내일 입을 옷을 꺼내놓고,오늘 입은 옷을 넣어두고, 침대 위의 짐들을 정리하는데 아까 베개를 주워달라 부탁했던 게스트가 또 말을 걸었다. 자기가 너무 아프니 불을 끄고 좀 서둘러 줄 수는 없냐고 했다. 아프다는데, 내가 도미토리에 머무는 걸 어쩌겠나.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줄 수밖에. 나는 내 침대의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꼼꼼히 커튼을 쳤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서 남은 옷가지를 다시 개어 놓고 정산을 했다. 개인경비를 올리는 마음가짐으로 영수증 뒤에 사용내역을 적어두고, 핸드폰 메모장에 지출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계산을 여러 번 한 뒤 지갑에 다시 돈을 넣어놓고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일 밀퍼드 사운드를 다녀와 그 다음 날 하스트로 떠나면 벌써 여행의 절반이 지난다. 인천공항에 모여 대만을 다녀온 게 아주 오래전 일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증발하는 기억들이 아쉬워 첫날부터 우리의 여정을 되짚어 보았다. 조금 여유가 있었더라면 어딘가에서 앉아 일기를 썼을 텐데. 몸이 고단하니 기억을 되새기며 잊지 않으려 애쓸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일 아침엔 7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늦을까 봐 불안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릴까 봐 그것도 걱정이 되었다. 피곤해도 잠이 안오는 건 아닐까 그 또한 마음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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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알람이 울렸다. 일어나 알람을 끄고 잠시 뒤척였는데 핸드폰이 사라졌다. 한참을 침대위에서 뒤적거리다 혹시나 해 커튼을 젖혔더니 바닥에 핸드폰이 떨어져 있었다. 잠결에 핸드폰을 내려놓다가 떨어뜨린 모양이다. 다른 손님들이 깰까 봐 커튼 속에서 준비를 마쳤다. 주로 여행을 다니면 오전 9시쯤 준비를 마친 뒤 일정을 시작하고 저녁을 먹을 즈음엔 숙소로 돌아오는 편이라,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 다른 여행객들을 보면 신기했다. 그 체력이 대단하다 싶었는데 내가 이러고 있으니 인생은, 그리고 사람은 참 알 수 없다.


전날 비가 내려 물기가 가득한 새벽에 하나둘, 우리는 모여들었다. 퀸스타운에 왔을 때처럼 대충 차를 나누어 타고 아침을 사기 위해 함께 시내로 이동했다. 산책하며 보았던 빵집을 가려다 서브웨이를 가기로 했다. 매장에 손님이 별로 없었고, 아침이라 할인도 되고, 맛도 나쁘지 않으니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샌드위치가 제작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샌드위치에 넣을 재료들을 장인 정신이 느껴질 만큼 정확한 위치에 놓았다. 첫 번째 샌드위치에 재료가 놓이자마자, 아 맥도날드를 갔어야 했던게 아닐까 싶었다. 체감상으로는 한국에서보다 다섯 배는 시간이 오래 걸린 듯했다. 대체로 잠이 깨지 않은 것 같은 멤버들은 의자와 한 몸이 되어 녹아가고 있었다. 주차했던 곳에서 문제가 생겨 자꾸만 차를 옮겼는지 대장이 상황을 살피러 방문했다. 근처에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곳이 있어 쓰레기까지 버리고 왔는데도 우리가 소식이 없으니 궁금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시내에서 나가는 길에 서로의 차를 놓쳐 우선 가장 가까운 주유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주유소에 도착해 기름을 넣고 있으니 금방 다른 차들이 도착했다. 먼길을 떠나야 하니 기름을 가득 채웠다. 번호를 기억해 각 차량의 주유비를 결제한 뒤 차에 올랐다. 이제는 길을 따라 쭈욱 밀퍼드 사운드로 가는 일만 남았다. 타운에서좀 더 벗어나 도로가 안정화되었을 무렵 샌드위치를 꺼냈다. 시간이 없어 빵을 데우지 않았고 가장 무난한 메뉴를 골랐는데도 제법 맛이 있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만족스러운 아침이었다. 그래서일까. 배를 채우고 잠시 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잠이 들었다. 더 자도 된다는 대장의 말에 자세를 고쳐 앉아 J와 나란히 잠들었다. 심심하다, 둘 다 잔다는 내용의 무전이 중간에 들렸다. 정신을 잃은 듯 그렇게 자고 있는데 갑자기 ‘길이 막혔다’, ‘우리가 잘못 본 건 아닌가 보다’ 하는 얘기가 잠결에 들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눈을 떠보니 어느새 테아나우였다.


여행 경로를 짤 때 테아나우의 숙소도 알아보았다. 아침 일찍 퀸스타운에서 출발해 밀퍼드 사운드를 다녀오는 일정이 무리가 될까, 중간 지점인 테아나우의 숙소도 알아본 것이다. 날씨 때문에 못 가게 되면 굳이 그곳까지가는 의미가 없어 퀸스타운에서 머물기로 했었다. 지도에서 보았던 그 작은 마을이 이곳이구나 싶었다. 자느라 몰랐는데 밀퍼드 사운드로 가는 길이 현재는 통제 중이고, 오후 1시가 지나야 출입 여부를 공지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고 한다. 밀퍼드사운드와 비슷한 갤퍼드 사운드를 갈지 논의 중이었다. 커피나 한잔하자고 하여, 주문을 받아 커피를 사러 갔다. 잠이 덜 깨 알려주는 방향으로 걸어가니 레스토랑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문득 드라마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인테리어지만 그곳의 공기가 무척 낯설었다. 메뉴판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에 적어두었던 대로 총 열두 잔의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던 직원은 깜짝 놀라며 다른 일을 하는 직원을 불러냈다. 음료가 준비되길 기다리며 건물 내의 화장실을 다녀오니, 차례대로 커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뚜껑을 닫아 가져갈 텐데도 예쁘게 라떼 아트도 해주었다. 무심하게 쿠키를 먹겠냐고 묻기에 ‘감사히 먹겠다’고 대답해주었다. 커피와 쿠키를 챙겨 주차장으로 향했다. 멀리서 멤버들이 온갖 카메라로 우리를 찍어주었다. 자다 깨서 커피를 사 오는 게 그렇게 주목을 받을 일은 아니다만, 워낙 사진을 좋아하는 멤버들이니 이렇게 많이 찍히고 서로를 찍는다. 커피와 함께 갈색 봉투에 담긴 쿠키를 나누어주었다. 차에 앉아 이제는 하트가 사라진 라떼를 마셨다. J의 친구는 라떼 아트를 보기 위해 라떼를 마신다던데, 나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좋아 마신다. 여름에는 아메리카노를조금 더 먹지만 날이 추워질 때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라떼가 좋다. 골판지 같은 종이컵에 담긴 라떼는맛있었다. 컵을 쥐고 있었던 손에 자국이 남았다. 금방 사라지겠지만 커피를 마신 흔적을 눈으로 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밀퍼드사운드_01.jpg 라떼


비가 많이 내린 모양이다. 길이 얼어 도로를 통제하는 것 같았다. 안개도 매우 짙어 공포영화 오프닝을 찍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1시가 되어야 상황을 알 수 있으니 밀퍼드 사운드에 가기로 했다. 전광판엔 어떤 곳으로 향하는 도로가 통제되었다는 안내가 떴다. 작은 초소가 보이는 도로 한복판에서 주황색 옷을 입은 안전 요원이 차를 세웠다. 도로가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주행하고, 도로 통제가 풀리길 희망한다는 따뜻한 인사도 덧붙여주었다. 한참을 달리다 숲이 우거진 곳을 지나게 되었다. 운전하던 대장이 이끼가 많아 도로가 좀 더 미끄러운 것 같다고 했다. 우리보다 앞서 밀퍼드 사운드로 향하던 관광버스가 앞에 보였다. 며칠 전엔 흰 눈이 소복이 쌓인 호수에 있었는데, 푸른 나무들 사이로 환한 햇빛이 비치는 풍광을 보니 여름처럼 식물들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뒷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엄청난 모험을 떠나는 길 같았다. 관광버스가 가는 걸 보니 그래도 도로가 열릴 것 같다며 긍정적인 대화들이 오갔다. 여행할 때마다 미술관이 리뉴얼중이고, 가려던 식당이 문을 닫은 적이 많지만 왠지 이번엔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숲을 가로질러 가다 어느 계곡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닿으니 차들이 도로 통제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밀퍼드사운드_02.jpg 모험을 떠나는 우리들
밀퍼드사운드_03.jpg 저 멀리까지 차들이 줄지어 있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캠핑카 뒤에 차를 세웠다. 과자를 먹던 손을 털고 봉지 안의 과자가 눅눅해지지 않도록 돌돌 말아 집게로 채운 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왼쪽에 나란히 줄지어있던 차들은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우리보다 먼저 그 길에 도착한 여행객들이 도로로 나와 주위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 멀리 만년설이 아니라면, 한국 사람이 우리뿐인 걸 제외하면 강원도의 어느 골짜기 같았다. 물소리를 따라 도로 옆 수풀 아래를 구경했다.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폭포들이 보여 너도나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리를 둘러싼 산들을 구경했다. 키위인 줄 알았던, 검은색 새가 관광객 틈으로 유유히 걸어와 모두가 신기하게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E가 별을 볼 때 사용하던 망원경을 꺼냈다. 다 같이 모여 동그란 창에 비친 저 멀리 있는 산꼭대기를 구경했다. 선명하게 보이는 모습이 신기했다. 핸드폰 카메라에 대고 그 모습을 찍어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어딘가 소란스러움이 느껴져, 약속된 시간이 다가와 우리는 차에서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출입이 통제되어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온 길을 나가는것도 꽤 시간이 걸릴 터였다. 대장은 엔진 소리가 들린다고 했고, 다행히 돌아 나오는 차는 없었다. 조금씩 개미들처럼 줄지어 우리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아직 제설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운전이 미숙한 차량 몇 대는 오르막길에서 헛바퀴 질을 하고 있었다. 함께 그 차를 타고 온 여행객들은 뭐가 즐거운지 깔깔깔 웃으며 힘겹게 차 엉덩이를 밀고 있었다. 퇴근길의 올림픽대로처럼 차는 매우 천천히 움직였다. 그 덕에 주위 풍경을 더 천천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원웨이 터널 앞에서 잠시 신호를 기다렸다. 터널은 이제 막 공사를 마친 동굴 같았다. 천장도 낮고 습기도 가득하고 마감재로 마무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주 최소한의 상처만 산에 남겨 길을 뚫으려는 의지가 보였다. 그렇게 터널을 지나 밝은 빛으로 향해 가니 굽이진 내리막길이 펼쳐졌다. 우리를 허락해준 자연이 이토록 아름답구나,새삼 느끼며 한참을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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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라면 크루즈 탑승 시간이 지났을 텐데 입장이 제한되었으니 선착장에 우선 도착하고 볼 일이었다. 주차장에서 선착장까지는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버스만 주차할 수 있어서 우선 티켓을 사라며 대장이 나와 J를 선착장에 내려주었다. 사실 밀퍼드 사운드는 날씨가 허락하면 가보는 것으로, 크루즈도 현장에서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었다. 우리가 잡아두었던 예산에서 크루즈 관광 비용은 포함되어있지 않다. 단체여행이라 대부분의 일정을 맞추긴 해도 크루즈를 타는 게 싫은 멤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왔는데 어떻게 크루즈를 경험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겠나. 우선, 열두 명이 가장 이른 시간에 크루즈를 탈 수 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카운터에 도착해 인원을 얘기하자 단체 할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안내해주셨다.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였다. 문제는 가장 빠른 배는 10분 뒤에 도착하는데 그 시간까지 멤버들이모두 도착할 수 있는지 내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장에 들고 있는 현금도 부족하고, 모두가 탑승할지도 아직 묻지 못했다. 예약해둔 단체 관람객들이 티켓을 구매하는 사이 저 멀리 멤버들이 하나둘 뛰어왔다. 화장실로 바로 간 멤버들을 기다리며 일단 함께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나중에 회비를 걷을 테니 일단 부족한 현금을 받아서 결제하고, 티켓을 받고, 마지막 멤버들까지 챙겨서 크루즈를 타러 뛰어갔다. 마치 밀퍼드 사운드를 가기 위해 이 여정이 시작된 사람들처럼 달려 배에 탑승했다.


객실을 지나니 위층으로 나가는 나선형 계단이 보였다.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탠딩 공연에서 펜스를 잡는마음으로, 배의 방향과 같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쨍하고 파란 하늘에 하얀 종이 달이 떠 있었다. 저 멀리 작은 폭포을 만들며 산을 타고 내려오는 맑은 물줄기들이 보였다. 기름 냄새를 내뿜으며 잠시 출렁이는 배가 방향을 틀었다. 왠지 모르게 항구에서 평화롭게 앉아있는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배가 움직이면서 찬 바람이 불어왔다. 급히 내리느라 겉옷을 챙기지 못한 걸 그때 알았다. J 뒤에 꼭붙어 배가 안내하는 바다로 나아갔다. 주변의 산을 보고, 하늘을 보고, 감탄하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돌고래였다. 오른쪽 아래, 바다를 베듯 헤엄치는 저 지느러미는 분명 돌고래였다. 난 아직 돌고래를 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예고없이 눈앞에 돌고래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반가워 인사를 한 건지, 우연히 길목에서 만난 건지 알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한 반가움에 호들갑을 떠는 나를 대신해 J가 차분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게 밀퍼드 사운드는 길이 막히면 안 가도 되는, 가는 여정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던 여행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관광지였다. 어쩌면 여행을 갈 때마다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나의 문 닫음 리스트'에 올라갈 목록이었을 수도 있다. 날씨요정의 기운이거나 돌고래를 보고 싶었던 간절한 바람 때문일 수도 있다. 생애 언제 볼 수 있을까 싶었던 돌고래를 만나고서 나는 무척 격양되어 있었다. 추위에 떨며 광분하는 사이, 배는 바다를 향해 더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닿았지만 배를 타고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나던 옛시절의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결심을 되돌릴 수 있는 바다의 마지막 경계선인듯한 곳에서 배는 키를돌렸다. 관광객을 태운 배는 그곳이 회귀점이고, 그 배를탄 나는 더 이상의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하늘이 아닌 바다를 품고 세상을 여행하는 마음은 어떨까, 그런 궁금함이 밀려올 즈음엔 너무 추워서 결국 선실로 먼저 내려갔다. 올라갈 땐 몰랐는데 조종실(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배를 운전하는 곳)이 객실과 벽을 두지 않고 한 공간에 있었다. 이제막 폭포 아래로 들어가는 때라 창문 옆에 바로 붙었다. 소리를 지르며 물을 맞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위에선 못 보았던 바위들을 좀 더 자세히 보는데 뭔가 덩어리 같은 게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물개였다. 낮잠을 즐기고 있었고, 곁에 다른 물개도 있었다. 우리가 동물들을 구경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공간에 인간이 침입한 것이니, 낮잠을 자는데 여러 인간을 싣고 왔다 떠나는 커다란 배를 돌고래와 물개가구경하는 것일 테지.


밀퍼드사운드_05.jpg 배가 향했던 바다의 끝, 혹은 시작
밀퍼드사운드_06.jpg 배를 조종하는 직원들
밀퍼드사운드_07.jpg 잠 든 물개


이젠 더 보여줄 게 없는듯 서성이던 배는 천천히 맴돌며 항구를 향해 움직였다. 물개를 발견했을 때부터 같이 내려 와있던 J와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어느새 느껴지는 허무함처럼 잊고 있던 허기가 밀려왔다. J가 몇 개 안 남은 크랜베리 누가 카라멜을 줬다. 단맛을 느끼며 오늘 본 돌고래와 물개를 떠올리고 배를 조종하는 직원을 구경하고 있으니 E가 나타났다. D도 지나갔다. 카라멜을 하나씩 주었다. 마지막 크랜베리 누가 카라멜은 M의 몫이었다. 어느새 항구에 닿아 선실을 내려가는데 이런 곳에서 컵라면을 팔면 장사가 잘 될 것이라는 E의 얘기가 들렸다. 그리고 마치 꿈결처럼 아래층의 누군가가 컵라면을들고 지나갔다. 이미 팔고 있었는데 우리만 몰랐던 모양이다.


좁은 계단통로에서 다시 옹기종기 모이게 된 우리는 바로 작전을 세웠다. 이미 늦었기 때문에 길이 위험할 수 있으니, 중간에 미러 호수도 보려면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고 대장이 말했다. 잠시 나에게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을 허락해줄 수 없는지 양해를 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고 싶은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매정한 대장은 아니기에 우리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주차장까지 걸어가 다시 들어왔던 길을 빠져나갔다.


밀퍼드 사운드 내에 캠핑할 수 있는 숙소가 있다. 원래는 예약하려다 객실이 모두 차서, 객실이 있더라도 날씨 때문에 못 가게 될까 봐 예약하지 않은 곳이다. 주차장에서 나오다 발견했는데 이곳에서 한밤 머물렀다면 새로운 세계에서 시간을 보낸 느낌일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지도의 점으로, 누군가가 찍은 사진으로 보던 것을 실물로 접하는 일은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혼자서만 반가워하며 밀퍼드사운드와 그렇게 헤어졌다.


굽이진 산길을 다시 돌아와 낮은 터널과 마주하게 되었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까 우리에게 다가왔던, 키위인 줄 오해했던 검은색 새 한마리가 차 옆을 걸어 다녔다. 한국의 비둘기처럼 관광객들로부터 먹이를 얻는 모양이었다. 아까는 2호 차 본네트에 새가 올라타더니, 이번엔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가 있어 우리는 그 베짱이 같은 새를 구경만 했다. "새야, 안녕"이라는 인사를 남기고 그 습하고 어두운, 낮은 터널을 빠져나왔다.


1시간 동안 길이 열리길 기다렸던 그 내리막길에 닿을 때쯤엔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들르고 싶었던 뷰 포인트는 갈 수가 없었다. 대신 미러 호수엔 갈 수 있었다. 분명 지나치며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순서를 잘못 알고 있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믿을 게 못 되는지. 지금 이 후기도 분명 조작된 기억임이 틀림없다. 미러 호수는 긴 데크를 따라가면 나오는 아주 작은 크기의 호수였다. 우리보다 오래 살았을 게 분명한 커다란 나무를 피해 데크가 설계되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 호수는 거울처럼 풍경을 반사해, 표면 위에 한가득 그림을 안고 있었다. 잠깐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는 사이에 해가 졌다. 이젠 어두워진 밤길을 조심히 운전해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밀퍼드사운드_08.jpg 미러 호수, 표지판이 센스 있다


매우 먼 길을 다녀가는 길이다. 여행 중에 몇 번 마주쳤던 짙은 안개처럼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가 끝인 줄도 모른다. 끝인 줄 알았던 바다는 새로운 곳과 이어져 있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우리에게 이날의 여행지는 반환점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면서 우선 떠나고 보는 것, 불편하지만 그 예측 불가능한 스릴을 즐기고 나의 유연함을기르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커다란 줄기 안에서 규칙과 자유로움을 느꼈던여행 속의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세상모르고 자다가 눈을 떠 창문 밖을 보았다. 누가 차 바로 위로 은하수가 보인다는 얘기도 한 것 같다. 눈을 감았다가 섧은 잠에 들고 깨어, 다시 하늘을 보니 이번엔 별이 가득했다.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없는 하늘이었다. 이미 늦은 거, 밥 조금 늦게 먹으면 어때.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으로 공터에 차를 세웠다. 첨엔 가볍게 하늘을 잠깐 보려고 했었는데, 그 하늘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나름의 방법으로 기록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퀸스타운으로 흘러가는 물이었나 보다. 맞은편의 산과 우리 사이엔 호수가 있었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높은 나무들 너머에 별이 총총이 박힌 하늘이 보였다. 저 멀리 구름이 들어오고, 하늘은 예쁘고,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좀 더 놀기로 했다. 삼각대가 없는 J는 나를 삼각대 삼아 머리 위에 카메라를 올리고사진을 찍었다. 영 시원치 않은지 테이블 위에, 본네트 위에 카메라를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 하늘 위로는 유성이 길게 꼬리를 만들며 지나갔다. 정말, 아름다웠다.


아주 짧았지만 만족스러운 관측이었다. 이번 여행이 우리의 삶에서 잠시 지나가지만 깊은 자국을 남기듯 오래 기억될 밤이었다. 별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추운 곳에 있었더니 잠이 다 깼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퀸스타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퍼그 버거를 먹기 위해 동선을 논의했다. 일단 숙소에 차를 세우고, 햄버거를 사 온 뒤 주방에 모여 먹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호스텔 주방은 일찍 닫기에 계획대로라면 퀸스타운의 어글리 코리안이 될 것만같았다. 작전을 변경해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사람이 많기도 하고,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모두 대표메뉴인 '퍼그버거'에 블루 치즈를 곁들여 먹기로 했다. 우리는 나란히 버거 가게 인도를 따라 놓인 벤치에 앉았다. 드디어 얼굴만 한 버거가 포장되어 하나씩 배달되기 시작했다. 먼저 감자튀김을 먹었다.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진 않았다. 갈색 종이에 감싸져 있던 햄버거는 한 입 베어 무니 놀랄 정도로 짰다. 치즈때문이었다. 하지만 먹을수록 간이 맞았다. 아침에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신 뒤, 과자와 초콜릿과 과일 등으로 허기를 채운 티가 날 정도로 우리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맥주 한 잔 곁들이면 딱 좋았을 늦은 식사였다. 퍼그 버거 옆엔 함께 운영한다는 베이커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젤라또 가게가 있었는데, 퀸스타운의 모든 사람은 이 가게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알고 보니 퍼그 버거 영수증 하단에 젤라또 가게의 할인 쿠폰이 달려 있었다. 배가 부르지만 젤라또도 먹고 싶었다. Y와 함께 젤라또를 사러 갔다. 투명한 냉동실 뚜껑에 적힌 영어를 더듬더듬 읽으며 맛을 몇 개 보았다. 모두의 취향에 맞출 수 있도록 달콤한 초콜릿과 상큼한 레몬, 그리고 고소한 피스타치오를 샀다. Y가 친구들이 많다고 얘기해 인원수대로 작은 숟가락도 받았다. 한컵에 담긴 세 가지 맛 젤라또를 들고 멤버들이 있는 버거 가게로 향했다. 대만에서 빙수를 먹을 때처럼 한입씩 나눠먹었다. 행복이 뭐 별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 나눠 먹으며 이야기하고,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잊혀도 괜찮은 저녁을 먹는 것도 행복이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마트에서 뭔가를 사겠다며 나와 J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두 블록밖에 안 되는 거리이니 멀지는 않았다. 다음 날 도시락을 싸겠다며 재료를 몇 개 사려던 것 같은데 시간이 늦어 마트에 들를 수는 없었다. 문이 열린 곳까지 갈 만큼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J와 숙소로 돌아갔고, 이제 막 주차를 마친 멤버들이 차에서 내려 숙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몸이 아픈 다른 게스트 때문에 불을 켜지 않고 핸드폰 플래시를 이용해, 짐을 정리하고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J가 나에게, 내 침대 위에 커플이 함께 누워 있다고 했다. 둘이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고. 낯선 여행객들과 혼성 도미토리에서 묵었던 적이 드문데 이틀 만에 새로운 경험을 알차게 하게 되었다. 머리를 말리고 챙겨갔던 세면도구를 다시 들고 돌아왔다. 다음날 떠나야 하니 일단 짐을 정리해두어야 했다. 늦은 시간에 너무 소란을 피울 수 없어 대충 캐리어에 밀어 넣었다. 내일 아침 도시락 당번을 자처해 기상 시간을 J에게 알려주었다. J가 함께 도시락을 쌀 마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움직일 시간이 없어 운전하지 않는 내가 도시락을 싸야겠다 생각했고 J도 동의했던 것 같다. 내일 입을 옷을 챙겨두고 오늘 쓴 영수증을 정리해 정산을 마쳤다. 노래를 듣고 있던 이어폰을 빼니 위층 연인들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지면 뭐라고 한마디 해야 하나 마음속으로 영작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시끄럽진 않아서, 그리고 영작을 하다 말고 잠이 들어 그 밤 그 연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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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한 다음, 옷을 대충 정리해두고 주방으로 올라갔다. 마치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얘기하던 D가 먼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획했던 레시피는 잘게 썬 양배추에 사과와 양파를 추가하고, 마요네즈와 케첩이 섞인 드레싱을 넣고 잘 버무린 뒤에, 달걀과 함께 토스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요네즈와 케첩이 섞인 드레싱이 없었다. 사과도 없었다. 어느 차에 실려 있을 텐데 행방이 묘연했다. 마트를 다녀오거나 멤버들을 깨울 수가 없어 우선 있는 재료부터 다시 살피기로 했다. 차에서 굴러다니며 후숙이 되고 있던 망고와 발사믹 드레싱이 있었다. 어쩌겠나, 있는 재료로 해야지. D에게는 빵과 베이컨을 부탁했다. 요리를 하고 남은 양배추를 썰고, 양파를 채 썰어 찬 물에 담가두었다. 덜 익은 망고를 샐러드처럼 곁들어 먹던 베트남의 음식을 떠올리며 망고도 썰었다. 발사믹 드레싱을 넣고 버무려 먹어보니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재료준비가 완성될 즈음 J가 주방으로 올라왔다. J가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했다. 구워진 빵 위에 크림치즈와 잼을 바르고, 야채와 베이컨을 올렸다. 자투리 빵으로 테스트 삼아 만들어 먹어보니 그럴싸했다. 마침 주방에 올라온 E에게 맛을 보라며 주었더니 아주 맛있다고 했다. 다행히 먹을만한가 보다. 여행하며 쓸 일이 있을 것 같았던 커다란 오버액션토끼 봉투에 샌드위치를 담아 넣고, 준비를 마친 뒤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나갔다. 침대 시트와 베개 시트를 벗겨놓고, 열쇠를 모두 반납하여 체크아웃을 마쳤다.


곧 생애 첫 번지점프를 뛰어야 하는 멤버들과 함께 먼저 마트에 들렀다. 이동하면서 먹을 간식거리와 저녁 찬거리를 샀다. 맥주도 같이 사려고 했더니 25살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일행 모두가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여권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쉽지만 맥주는 다시 돌려놓고 나머지 물건들만 결제했다. 긴 영수증을 몇 번 접어 지갑에 넣어두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직접 번지점프를 뛰어볼 생각도 없지만, 번지점프를 보는 게 처음이라서 그것만으로도 설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번지를 뛰기로한 네 명의 멤버들은 긴장감 속에서 순서를 정하기 위한 가위바위보를 했다. 이 게임에서 승리한 M이 순서를 정해주었다. 지난번 예약하러 들렀을 땐 자느라 번지점프대를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TV에서 보았던 것보다 고요했다. 나무데크가 있는 곳에선 발에 줄을 감고 몸을 던지는 누군가를 지켜볼 수 있도록 테라스가 길게 나와 있었다. 바로 옆 천막에서는 영상을 찍는 것 같았다. 한 손에 핫팩을,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언 손을 녹이며 테라스에 기댔다. 점프대아래는 초록빛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속을 마친 멤버들은 손등에 숫자를 받아 적어왔다. 점프대로 향하더니 아래가 얼마나 깊은지 보는 듯했다. 나는 그 점프대로도 가보지 않았고, 그저 아래서 지켜보기만 했다. 적당히 찬바람이 불고 멤버들보다 앞서 다른 관광객들이 뛰어내렸다. 저마다 큰 결심을 한 도전일 텐데 TV에서처럼 극적이고 감동적인 배경음악은 없었다. 뛰어내리는 건 순간이었고, 몇 번의 반동이 끝나면 노란색 보트가 다가가 긴 막대기를 건넸다. 뛰어내린 사람은 그 막대기를 잡고 보트 위에 안착해,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순서가 되어 멤버들은 하나, 둘 뛰어내렸다. 멋지게, 소리도 지르면서, 두팔을 벌리고 몸을 날렸다.


하스트_01.jpg 번지점프대


지나고 나서야 알았는데 이곳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나온, 그 번지점프대라고 한다. 영화에서 뉴질랜드로 번지점프를 하러 갔던가. 라이터와, 해변가의 숲속을 거닐던 장면, 그리고 테마 음악만이 떠오른다. 나에게만 해당하는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보단 감상이, 몇 개의 장면과 분위기만 기억에 남는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제목에 ‘번지점프’라고 적혀 있어도 번지점프대의 이미지는 거의 없었는데. 어린 시절의 내겐 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어쩌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친구들이 얘기했을 수도 있다. 말을 꺼냈더니 다들 아는 것 같았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이것뿐만은 아니겠지. 그때의 내가이 사실을 몰랐다고 해서 많이 아쉬운 건 아니다. 언젠가 다시<번지점프를 하다>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영화를좀 더 새로운 마음으로 보게 될 테니까. 당시엔 그걸 몰라 무용담을 늘어놓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을 기웃거리며 살만한 물건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복실복실한 양 인형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딱히 맘에 들지는 않아서 회사 책상에 놓을만한 작은 인형을 샀다.


나는 내가 이렇게 인형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내 돈을 주고 인형을 처음 산 건 지난겨울, 대구의 한 수족관의 기념품 샵에 방문했을 때였다. 새로 생긴 백화점에 극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할 겸 친구와 함께 들렀다. 기념품 샵도 그냥 한 번 들러본 곳인데 엄청 귀여운 돌고래 인형이 있었다. 우리나라토종 돌고래인 ‘상괭이’라고 했다. 만져보니 부드러웠다. 고래를 좋아하는, 돈을 벌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 살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다른 곳으로여행을 해야 했는데도 커다란 비닐봉지에 상괭이 인형을 넣어 다녔다. 지금도 잘 때마다 내 옆에 둔다. 어떤 날엔 베개가 되기도 하고, 쿠션처럼 쓰기도 한다. 애지중지하며 모셔두는 것은 아닌데 하얀 상괭이의 표정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인형을 조금씩 사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물품을 사겠다며 들른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에선 혹등고래 인형을 샀다. 얼마 전 다른 고래인형도 샀다. J는 번지점프 기념품샵에서 못생겨서 더 귀여워 보인다는 인형을 샀다. 테이블 위에 인형을 놓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J가 인형을 들고 찍은 사진에 내가 찍혔는데 눈이 보이지 않지만 애틋함이 가득했다. 곧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이 여행을 추억할 유일한 기념품이기에 더 그랬던 것은 이제 와 붙이는 의미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을 촬영해 사진과 영상으로 판매한다. 멤버들은 사진을 확인하고 있었고, 기념품으로 주는티셔츠를 받았다.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낸 멤버들과 함께 약간은 상기된 마음을 안고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W가 운전하는 3호차를 탔다. 아침에 만든 샌드위치가 배분되어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 다들 아주 맛있게 먹어주었다. 배가 고프니 맛이 없기가 힘든 탓도 있겠지만, 맛있다고 잘 먹어주니 마음이 뿌듯했다. 뒷자리에 앉아 이번에도 내가 선곡을 담당했다. 나는 E와 W의 딱 중간쯤 되는 나이였는데 음악의 취향은 W와 더 가까웠나 보다. 유재하와 윤종신, 토이, 신해철과 에이미 와인하우스, 존 레전드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도로를 달렸다. 3호 차에서는 1호 차의 무전이 잘 들리지 않아 2호차에게 다시 묻고, 때로는 카톡도 해가며 앞차를 쫓았다. 길을 따라가다 아름다운 곳이 보이면 중간에 내려 사진을 찍었다. 어떤 곳은 사유지인지, 공사를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주차할 수 없다고 안내해주어 금방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다시 차에 올라 조금 더 이동하다 어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호수가에 내려 또 사진을 찍었다. 물만 보면 돌을 던져 수제비를 뜨는 대장은 E와 함께 돌멩이를 줍고 있었다. 수제비 뜨기 강습을 받는지 I도함께 돌을 주웠다. 멤버들은 서로를 사진으로 찍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또 사진으로 찍고,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난 호주 여행에서도 느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잠시 멈춰 그곳을 구경하는 것은 삶의 태도마저 바꿀 정도로 매우 좋은 경험이다.


하스트_02.jpg 어디인지 모를 호수


그렇게 몇 번을 멈춰가며 사진을 찍고 놀다 제주의 사려니숲 같은 길에 도착했다. 블루풀로 향하는 트래킹 코스였다. 이미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관광객들을 지나쳐 흙길을 밟으며 숲으로 들어섰다.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키가 큰 나무들과, 세 명이 둘러도 다 안지 못할 만큼 품이 큰 나무들이 가득했다. 얼마나 예쁜 곳일지 기대하며 뒷동산에 오르듯 길을 걸었다.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도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깊은 산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 <와일드>가 생각났는데 이번에도 나만 아는 영화 이야기다. <와일드>가 내게 남긴 분위기와 마음은 ‘현명한 포기’에 관한 것이었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인데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면 현명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깨달았다. 인간이란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말하는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날것 그대로의 삶은 얻게 되는 자유만큼 예측 불가능한 일의 연속이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것을 가르쳐 주었다. 영화에서도 내가 걸었던 것처럼 울창한 나무숲을 걷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아이가 그때 주인공 옆을 지나가는데, 그 장면이 유독 인상 깊었다기보다내가 숲속에 있으니 영화 속 그 장면이 떠올랐다.


혼자만 아는 영화를 생각하며 걷다 보니 구름다리가나왔다. 먼저 가는 멤버를 따라 J와 함께 몸을 실었다. 우리가 걷기만 해도 좌우로 흔들렸다. 양옆의 자연은 눈에 담을 틈도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멤버들이 장난을 치는지 더 심하게 흔들렸다. 다리 건너편은 흙길이 아닌 데크로 되어 있는 길이었다. 중간에 나무가 끊어진 곳도 있었다. 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데크 위를 걸었다. J와 함께 걷다가 발이 나오는 사진을 찍고, 뒤이어 따라오던 대장과 I도 함께넷이서 발 사진을 찍었다. 어깨동무하고 바닥이 듬성듬성 보이는 데크 위에서 우리는 모두 어두운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걷다 보니 다시 한 번 구름다리가 나왔고, 그 다리 아래엔 짙은 초록색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초록색이었냐면 내가 입고 있던 외투와 색이 거의 비슷했다. J가 보호색 같다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초록색물은 엄청 맑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강가쪽으로 내려간 D는 하늘에 드론을 띄웠다. 우리는 드론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우리도 강가로 내려갔다. 돌무더기 위에 서 있으니 이번엔 J가 보호색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저 멀리 멤버들은 돌을 주우며 수제비를 뜨고 있고, 저마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파란 하늘에 어제처럼 종이 달이 떴다. 누군가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빈 것 같은 곳에, 나도 돌멩이를 하나 쌓아 올렸다.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곳에는 더 난이도가 높은 돌탑이 있어서 나도 소원을 빌었다. 돌과 함께 어떤 소원이 쌓이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스트_03.jpg J와 나
하스트_04.jpg 블루 풀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갈 즈음엔 해가 지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호수와 노을이 엄청 아름답고 예뻤다. W는잠시 속도를 늦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지만 M과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그 아쉬워하는 분위기마저도 재미있었다. 먼지가 가득 낀 서울에선 보기 힘들 하늘이었다. 해는 매번 뜨고 지는데, 내가 보는하늘의 배경도 늘 비슷하겠지만, 나의 마음이 늘 똑같진 않고 구름의 모양도 대기의 질도 다르니 노을은 매번 다른 색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것 같다.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즈음 숙소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봤을 땐 시설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꽤 괜찮았다. 규모도 제법 컸다. 예치금을 포함한 사용료를 내면 식기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남자들은 7인실을 쓰기로 하고, 2인실을 나와 J가, 4인실을다른 멤버들이 사용하기로 했다. 짐을 숙소에 던져놓고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주방에 가보기로 했다. 그사이에 해는 완전히 져서 어두운 밤이 되었다. 멤버들도 주방이 궁금했는지 둘러보러 왔다. 조리 공간도 테이블도 무척 넓었다.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우리는 서둘러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선 차에 실려있던모든 식재료을 4인실 숙소에 옮겨 놓고, 식기들과 필요한 것들만 골라 주방으로 옮겼다. 전기밥솥이 있어 가장 먼저 쌀을 씻어 앉혔다. 파스타를 하기로 해 재료를 다듬고, 물을 올렸다. 한쪽에서는 고기를 굽느라 분주했다. 문득 술이 없다는 걸 기억해내, E와 Y가 맥주를 사러 다녀왔다. 파스타를 만드느라 면을 두 번 삶고, 요리도 두 번 해야 했다. 익은 면을 볼에 담으면 J가 올리브유를 뿌려 붇지 않게 고루고루 섞어 주었다. 채소와 베이컨을 볶고, 토마토 소스를 부어 놓은뒤, 면을 넣고 면수를 넣어가며 파스타를 만들었다. 준비했던 음식들로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각자 준비한 요리들을 앞에 두고, 맥주를들고 앉아 저녁을 먹었다. 다들 전투적으로 준비했던 저녁 식사였다.


배불리 밥을 먹고 나니 숙소에서 좀 쉬고 싶어졌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관측하기엔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바닷가에 촬영을 나가겠다는 멤버들이 있었다. J도 간다는 모양이다. 나도 가기로 했다. 여기까지 여행 와서 J와 충분히 놀아야 하니까. 다녀와서 씻기로 하고,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었다. 독서를 취미로 삼은 지는 이제 4년 정도 되어간다. 워크맨에서 시작해 CD플레이어, MP3플레이어, 핸드폰으로 기기는 변해도 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이제는 외출할 때 책이없거나 책을 한동안 읽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기분에 따라 음악을 고르듯 읽고 싶은 그 날의 책이 있게 마련이다. 비행기 안에서 거의 다 읽었던 이기호 작가의 에세이를 마저 다 읽었다. 간단한 감상평을 인스타에 남기고 잠시 노래를 들으며 누워 있으니 촬영을 곧 나갈 거라고 했다.


오랜만에 활짝 열어둔 캐리어에서 깔바지를 꺼냈다. 두꺼운 패딩도 꺼냈다. 핫팩도 미리 준비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차를 타고 함께 길을 따라갔다. 밤에 처음가보는 길이라 해변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사유지 같은 곳을 지나쳐, 환하게 불이 밝혀진 주유소 맞은편 공터에 차를 세웠다. 중요한 소지품들은 보이지 않게 어딘가에 넣어두고, 오솔길을 따라 바다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우리 키만큼 자란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니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딱딱한 흙길이 푹신푹신한 모래사장으로 바뀌고, 조금 더 가니 넓은 해변이 펼쳐졌다. 달빛이 무척 밝았다. 해가 뜬 환한 낮은 아니라 얼굴이 다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형체를 구분할 수 있었다. 달빛이 비치는 세상은 모든 색을 빼앗아 간 것 같았다. 밝은 회색이거나 짙은 회색, 혹은 검은색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그림자가 된듯한 기분이었다. 오직 달이 떠 있는 하늘만이 다른 색이었다. 세상의 소음마저 잠든듯한 고요한 밤에 파도는 무서운 소리를 내며 해변으로 달려들었다. 저 달을 보니, 인간이 늑대로 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검은 하늘에 별이 가득하면 좋았으련만 멀리서부터 짙은 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이미 망했음을 직감한 우리는 달을 배경으로 컨셉 사진을 찍기로 했다.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달무리를 보았고, Y가 달무리의 형성 원리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었지만 사실 잘 이해하진 못했다. 언젠가 책에서 그 단어를 보았는데 어떻게 생겼는지는 이번에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마치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통로처럼 하늘에 달 보다 몇 배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나와 J는 Y가 시키는 포즈대로, 키가 작아서 더 팔을 높게 뻗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버려진 나무가 있었는데 마치 미드 <로스트>의드라마 시퀀스처럼, 어느 가수의 앨범 표지처럼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Y는 마치 그 해변이 자신의 스튜디오인 것처럼 우리에게 포즈를 주문하고, 잘했다 칭찬하며, 한 번 더 가겠다고 말하며, 프로 사진가처럼 사진을찍어주었다.


달무리.jpg 숙소 근처에서 J가 찍은 달무리


여행에서 다녀오자마자, 그 주 주말에 짙은 콘서트에 갔다. 지하 4층까지 깊은 곳으로 내려간 곳에서 그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데 ‘안개’를 들으며 달밤 아래의 우리가 생각났다. ‘모든 게 희미해 보이는밤이야, 우린 어둠 속에 숨어 길을 나섰지. 가슴 속에 머무는 풀내음과 어둠 속에 우릴 이끄는 하나의 달. 모든 게 완벽해, 다 준비돼 있어. 도망가기에 좋은 그런 날이지.’ 처음 앨범이 발매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천 번은 들었을 곡인데, 처음으로 그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달무리를 보던 우리의 모습이 이 노래의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숙소에 돌아오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릴 겸, 일기도 쓸 겸, 작은 테이블에 앉아 수첩과 볼펜, 키보드를 꺼냈다. 지갑을 열어 돈을 다 꺼내놓고 잔액을 확인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놓은 지출내용과 비교하며 정산을 했다. 금액이 잘 맞지 않았다. 장을 보기 전에, 새로운 숙소에 갔을 때, 회비를 어느 정도 지출하고 나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걷어서 사용하는 중이었다. 한 번에 많은 금액을 받아서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하는 데는 분명 여러 이유가 있다. 카드로 대신 결제하는 경우도 생기고, 회비를 미리 받는 셈 쳐서 돈을 당겨 쓰기도 해서 계산하기가 가장 복잡한 날이었다. 잔액에 내 돈도 섞여 있어 계산하는 데 헷갈렸던 모양이다. 사실 평소의 나는 여행을 하면서 매일 지출 내용을 점검하지 않는다. 현지 물가를 확인해보고 예산을 정한 후, 비상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나누어 일일 지출비용을 정한다. 지출내용을 기록해가며 예산에서 크게 넘지 않으면 계산하지 않고 출국하기 전, 가능한 한 환전해둔 현금을 다 쓰고 온다. 몇번 영수증을 모으고, 지출내용도 체크하긴 했으나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총무를 하는 동안 영수증을 모으고 회비를 걷는 게 일하는 것 같았다. 영수증 뒤에 어떤 항목인지 적어두고 일자별로, 항목별로 얼마의 비용이 들었는지 정리했다. 금액의 규모가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예산을 짜고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비용 집행 후 정산하는 것까진 똑같았다. 금액이 맞는지 확인 후, 영수증에 클립을 끼워 파일 홀더에 넣으며 퇴근하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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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렸는데도 끄고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전날 늦게 잠들어서 몸이 매우 고단하였다. 10분만 더 누워있을까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통유리로 되어 있는 문 옆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기에 커튼을 치고 누군가 봤더니 D였다. 집합시간에 늦지 않도록 다른 방 사람들을 깨우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오늘의 아침은 포기하기로 하고 조금 더 누워있다 짐을 챙겨 나왔다. 키를 걷어 체크아웃을 마쳤다. 해변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숙소는 아침에도 그 모습이 예뻤다. 밤에 들렀던 해변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마음이 모두 통했던지 우리는 프란츠 조셉으로 이동하기 전 주유를 한 뒤 해변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어제처럼 같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울타리옆의 작은 길을 지나 해변으로 나갔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며 놀았던 해변엔 발자국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소품으로 사용된 커다란 나무도 있었다. 달무리가 있던 자리엔 푸른하늘과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반짝이는 예쁜 모래를 손 위에 올려 구경하기도 하며, 물에 빠뜨리려고 장난을 치는 I와 G를 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밤의 해변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색이 있는 세상이 더예쁘고 좋다.


하스트_05.jpg 하스트의 해변
하스트_06.jpg 아마도 어젯밤에 우리를 지켜봤을 해변의 양


처음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여행을 시작할 때처럼 이날엔 2호 차를 탔다. 지도를 확인했을 땐 서쪽 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라 왼쪽에 눈부신 바다가 펼쳐진 풍광을 기대했는데, 수풀에 가려져 바다는 고불고불한 길을 지날 때마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이동하는 길에 전망대가 있어 잠깐 차를 세웠다. 바다 근처의 산과 맞닿은 호수였다. 2호 차를 운전하던 E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산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모델처럼 가만히 서 있길래 그 그림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커다란 자연을 품에 안는 의연한 모습이 느껴졌는데, 사진엔 잘 담기지 않은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사진을 찍고 놀다가 다시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I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는데 다행히 E가 아는 노래가 많은 듯했다. 내가 아는 노래가 거의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노래를 듣는지 알 것 같았다. 세상엔 참 많은 노래가 있고 사람의 취향은 매우 다양하단 것을 새삼 깨달았다.


바다와 호수를 곁에 두고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어느 산길로 접어들었다. 연어 양식장이었다. 연어를 너무 맛있게 먹은 우리는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마트에서 파는 연어는 양이 너무 적었기에, 연어를 한 마리 더 사기로 했다. 어느 은밀한 산속으로 들어가는것 같았는데 차에서 내려 안쪽으로 들어가니 양식장과 함께 식당, 카페,기념품 샵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지난 번 양식장에서 본 것처럼 동그란 어장이 벌집처럼 여러 개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어장에는 치어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돌고래만 한 연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가게는 어수선하지 않고 안정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격언을 써놓은 그림들이 있었다. ‘LIVE THE LIFEYOU’VE IMAGINED’ 그래, 그럴게.


가게를 구경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멤버들은 기념품을 구경하고 있었다. 연어도 사고 커피도 한잔하기로 해, 주문을 받았다. 나는 커피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기념품 코너 옆에 작은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었는데 <도리를 찾아서>의 ‘도리’ 모양 아이스크림이었다. 모양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 먹어보았는데 얼음이 잔뜩 낀 것으로 보아 해동을 여러 번 거친 아이스크림인듯 했다. 파란색 물고기 모양의 아이스크림은 상상했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맛을 궁금해하는 멤버들과 나눠 먹었다. 치어를 노리는 두루미(인것 같은 새)도 구경하며, 연어를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어느 해변이었다. 다른 해변보다 햇살이 유독 눈 부셨다. 주차한 곳 바로 앞에 낙서가되어 있는 돌들이 쌓여 있었다.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격언이나 자신의 이름이 각국의 언어로 적혀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매직과 네임팬을 들고 우리도 하얀 돌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J는 ‘안녕’이라는 인사를 남겼다. 옆에 보니 그림을 그려 놓은 돌들도 있어서 돌고래를 그려달라고 했다. 마침 적당한 돌이 있어 J는 돌을 안아 들더니 점을 찍어 눈을 만들고, 기타 피크를 닮은 세모를 그리더니 그 안에 검은색을 칠했다. 마지막으로 입을 그리니 귀여운 물개 돌이 되었다. 밀퍼드 사운드에서 보았던 물개가 생각났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돌을 가지고 J가 꼬물거리는 사이 나도 다른 돌멩이를 하나 골랐다.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대사이면서 내 나름의 좌우명이기도 한 문구를 적었다.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새 노트를 사거나, 뭔가 다짐을 해야 할 때 적는 문장이다. 영화 속 대사란 것을 아는 이도 있겠지만, 어쨌든 적은 건 나이니 내 영어 이름을 적어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다른 돌들과 함께 잘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당한 곳에 놓아두었다.


프란츠조셉_01.jpg 브루스 베이
프란츠조셉_02.jpg 내가 적은 돌


큰 바위를 밟고 내려가 저 아래 해변까지 간 멤버들도 있었다. 저 멀리 커다란 수풀림도 보였다. 바위에 먼저 앉은 J가 옆에 앉아 보라고 했다. 나란히 앉아 바다를 보았다. 대장은 어디서 매끈하고 하얀 돌을 주워왔는데, 우리가 보이는 곳에 놓고 들리지 않는 말을 하더니 다시 해변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물어보니 느낌표 모양의 돌을 준 것이라고한다. !!!! 그랬구나. 샌드 플라이가 달라붙어 옷을 털고자리에서 일어나니 안내판 위에 물개 돌과 다른 돌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J가 한 것이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적어두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물개 돌을 보고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라도 함께 나누면 좋겠다 싶었다. 역시,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J가 사진 하나를 보냈다. 어떤 꼬마가 웃으며 물개 돌을 소중하게안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DM으로 아이 엄마가 보낸 사진이라고했다. 그래, YOLO는You Only Live Online도 맞는 말인 것 같다.


프란츠조셉_03.jpg D가 찍어준 나와 J


차 안까지 따라서 들어온 샌드 플라이를 손으로 꾹꾹눌러 죽여가며 프란츠 조셉에 도착했다. 크라이스트 처치 다음으로 유일하게 구글맵으로 숙소 위치를 확인해본 곳이다. 여기도 퀸스타운처럼 열두 개의 침대만 신청해두었기에 방 배정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예약서를 보여주고는 세 개의 키를 받았다. 함께 숙소를 둘러보고 방을 배정하기로 했다. 비밀번호를 누른 후 무거운 문을 열고 지나가면 주방과 거실이 나오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 화장실 옆 코너에 3인 실 방 두 개가 있었다. 6인실은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단다. 위층의 방은 더 볼 새도 없이 1층의 두 3인실을 여자 멤버들이 쓰기로 했다.


프란츠조셉_07.jpg 우리가 지냈던 숙소는 사진을 못 찍고, 숙소에서 찍은 맞은 편 숙소의 사진만 남았다


캐리어만 방에 밀어 넣고 소지품 몇 가지를 챙겨 다시 앞마당에 모였다. 근처에서 빙하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였다. 트래킹코스가 시작되는 길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커다란 한옥 식당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깊이 더 들어갈수록 나무들은 높아지고, 고사리가 마치 야자수처럼 크게 자라 있었다. 블루풀로 가는 길과는 매우 달랐다. 어디선가 트리케라톱스가 튀어나와도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대체로 그 길에서 공룡을 떠올렸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공룡은 둘리이기 때문에, 어디선가 ‘아기공룡둘리’ 주제가를 부르자 너도나도 길을 걸으며 따라 불렀다. 그렇게 흙길을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엔 커다란 폐광산 같은 길이 나타났다. 오른쪽 높은 산에서는 밀퍼드 사운드에서보았던 작은 폭포가 여러 줄기로 흐르고 있었다. 물이 말라버린 듯한 강바닥에는 나이테처럼 시간을 줄로새긴 돌들이 가득 깔려 있었다. 빙하는 보이지 않았다. 앞사람이가는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광활한 계곡 같은 곳에 아무 것도 없으니 스산하기까지 했다. 회색 돌들은 녹이 슨 것처럼 위쪽이 갈색으로 뒤덮여있기도 했다. J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연과 대비되게 멋진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서로 포즈를 잡고 휘적휘적 한참을 걸었다. 돌무더기 사잇길을 한참 걸으니 더는 접근이 제한된 펜스가 나왔다. 마치 하이파이브를 해야 할 것처럼 한쪽 손을 들고 있는 아저씨의 판넬도 함께 있었다. 먼저 도착한 대장과 I는 바위에 걸터앉아 우리를 맞아주며, 저 멀리 헬기가 오고가는 곳에 빙하가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헬기가 지나가기 전에는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았는데, 헬기가 지나가니 거리감이 느껴졌다. 원래는 우리가 걸어온 곳까지 빙하가 있었고 그 물이 흘렀는데 지금은 많이 녹아 사라졌다고 한다. 둘리가 빙하를 타고 내려왔다면 쌍문동보다는이곳이 더 어울릴 것 같긴 했다.


프란츠조셉_04.jpg '아기공룡 둘리'를 떼창했던 트래킹 입구
프란츠조셉_05.jpg 빙하를 향해 가던 길


걸으니 더웠다. 외투를벗고 J와 함께 바위에 앉아 아직 오지 않은 멤버들을 기다렸다. 주차장에서 내릴 때 차 안에 있던 콜라 한 캔을 급히 꺼내 M의 가방에 넣어주었는데, 그 콜라를 꺼내 함께 나눠 마셨다. 나름대로 트래킹을 마치고 빙하 앞에 왔으니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는 다시 걸어온 길을 돌아 나갔다. 대장은 마치 현장학습을 온 과학 선생님처럼 걸어올 때 지나쳤던 것들을 짚어주며 설명을 해주었다. 수학을 그나마 잘해 이과를 가려다, 지구과학과 생물을 못해 문과를선택한 내겐 태어나 처음 듣는 얘기들 같았다. 돌의 줄무늬를 보며 인간의 1년이 자연에는 얼마나 얇게 새겨지는지, 나무 기둥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무가 아닌 어떤 식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숙소로 돌아갈 즈음엔 해가 지고 있었는데, 다리 아래에서 한 할아버지가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런풍 경을 보고 자란 화가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 또한 하나의 풍경처럼 예뻤다.


프란츠조셉_06.jpg 나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것 같은 돌들


카레를 먹기로 했다. 마트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카레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크지 않은 체인점 마트를 돌아다니다 가루형 카레를 찾았다. 어떻게든 먹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몇 개를 고르고, 파스타를 해 먹기 위해 소스를 골랐다. 유일하게 제대로 차려 먹는 식사이니 고기도 샀다. 마늘이 너무 비싸서 한동안 사지 못했는데, 요리에 쓰려고 딱 하나만 샀다. 여권을 보여주고 이번엔 무사히 맥주를 구매했다. 나이를 확인하더니 나와 J에게 매우 어려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여권 검사를 해야 하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뉴질랜드 사람들, 다시 말하지만 우리에게 매우 친절했다. 가볍게 장본 것들을 차에 싣고 카트를 반납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도착하자마자 방에 짐을 던져놓고 저녁 준비를 함께 했다. 이번엔 J가 카레를 맡았고 파스타가 내 몫이었다. 여기에도 전기밥솥이 있어서 밥을 지었다.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 양이 부족할까 봐 냄비 밥도 따로 올렸다. 한쪽에서는 연어가 해체되고 있었다. G가 통역과 운전에 이어 연어도 해체하고 있었다. 완성된 요리는 네 명씩 앉을 수 있는 세 개의 테이블에 놓였다. 전투적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데는 꼬박 한 시간이 걸리는데 먹는 건 순식간이었다. 배불리 먹고, 약간의 수다를 떤 뒤에, 점령했던 주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설거지팀이 출동했을 때 잠시 방에서 쉬기로 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웠고, 나는 깨어나지 못했다.


서울에서 혼자 일하고 있을 우리 팀 사원과 잠시 카톡을 주고받고는, 잠이 들었다. 잠깐 깼을 때 렌즈를 뺐다. 잠결에 J와 I가 촬영을 하러 나간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밤이 지났다. 정신을 좀 차릴만해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다. 그렇게 씻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야근을 쉼 없이 하는 날 가끔 집에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든 적이 있는데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풀어 놓은 짐이 없으니 쌀 짐도 별로 없었다. 주방에는 게스트를 위한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진을 찍어 준비된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려주고는 나도 아침을 먹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멤버들을 기다리며 빈백에 몸을 기대 잠시 쉬고, 차에 오르기 전 맞은편 숙소의 사진을 찍었다. 동네가 아기자기하고 예뻤는데 제대로 못 봐 조금 아쉬웠다. 열쇠를 받아 체크아웃도 마쳤다. 한국어도 제법 하던, 미드 ‘프랜즈’의 첸들러를 닮은 직원이 환한 웃음을 보이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DAY8크라이스트처치.jpg


하룻밤만 지나면 여행이 끝난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프란츠 조셉을 떠나왔다. 마지막 날이고 정산도 정리할 겸 대장이 운전하는 1호 차에 탑승했다. 뒷좌석에 앉아 담요를 덮고 있으니 햇살을 맞으며 한숨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창밖 풍경을 다시 담았다. 그렇게 호키티카에 도착했다. 낮은 건물들이 예쁘게 모여 있는 마을이었다. 해변에 차를 세웠는데 저 멀리 나무 조형물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사진 찍고 있는 게 보인다는데, 그게 뭔지 싶어서 가보았더니 나무로 HOKITATKA를 만들어 해변에 꽂아둔 것이다. 마치, 여기에서 사진을 꼭 찍으라는 것처럼 세워져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 한 장, J를 옆에 세워두고 한 장, 나도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놀 때 말이 지나가기도 했다. 어디로 가는 길인지, 태우고 가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해변과 꽤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호키티카_01.jpg HOKITIKA


오랜만에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검색해보니 유명한 피자집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사진을 찍고 놀던 곳 근처에 마침 있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가 가게 문을 여니 아직 영업 전이라고 했다. 12시에 문을 연다 하니 그 전까지 각자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와 J는 길을 건너 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에 들어갔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 같지는 않았다. 예쁜 물건이 가득했지만 내게 쓸모 있는 것은 아니어서 나중에 다시 찾기로 하고 길을 나왔다. 조금 더 걸으니 귀여운 그림이 벽면에 그려진 건물에 잡화점 같은 게 있었다. 다시 길을 건너 조금 더 올라가니 미술관 같은 건물이 있었다. 도서관이라고 적혀있었다. 책 덕후로서 방문하지 않을 수가 있나.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니 이곳에 이미 멤버들 몇 명이 역사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무료 박물관 같은곳이었는데 호키티카도 골든 에이지 때 개발된 곳인 듯했다. 이 마을에 큰 공헌을 한 어떤 인물의 소품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는 우리는 함께 단체 사진 셀카를 찍기도 했다. 볼만한 게 많지 않아, 내겐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어서 금방 자리를떴다. 사람이 거의 없는듯한 거리엔 예쁜 건물이 많았는데 조금 안쪽으로 가니 기념품을 파는 다른 가게가있었다. 바로 옆집은 나무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구경하고 싶었는데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문에 쪽지가 적혀있었다. 바로 옆집의 다른 가게에 들어갔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공예품과 엽서, 그림 등을 파는 곳이었다. 책을 읽을 때 눌러놓을 돌 같은 게 필요해 물건들을 유심히 보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J는 그곳에서 엽서 두 개를 샀다. 그 사이 나무공예 가게의 주인이 돌아왔는지 문이 열렸다. 그 공예품도 지역의 예술가들이 만드는 제품인듯했다. 고래 모양 공예품도 있었는데, 갖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마음을 쉽게 접었다.


호키티카_02.jpg 해변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입구
호키티카_03.jpg 건물이 너무 예쁘다


가게를 나와 조금 더 올라가니 로터리가 나왔고, 그 건너편에 건물에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아직 국내에는 개봉하지않은 작품이지만 전 회사에서 관심 깊게 지켜보던 영화라 포스터를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일단 길을건넜다. 호키티카의 영화관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하면서 가까이 가니 맛있는 냄새가 났다. 영화 상영표가 붙어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주 작은 로비에, 두개의 테이블이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고 계셨다. 극장이기보단 카페 같았는데, 테이블 바로 위에 <발레리안>과 <덩케르크>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보아 영화를 틀어주긴 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상영관 입구에서 볼 수 있는 간이 매점처럼 작은 매표소 겸 매점이 테이블 근처에 있었다. 사이즈가 다른 작은 전단들이 놓여 있었다. 전단을 우선 하나씩 챙기고, 상영관이 어딘가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안쪽에 커다란 소파와 테이블이 보였다. 두꺼운 커튼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천장에 프로젝터가 달려 있었다. 그곳이 상영관이었다. 아, 이곳에선 영화를 이렇게 보는구나.


호키티카_04.jpg 호키티카의 영화관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4DX를 체험하게 되었다. 안마의자처럼 진동이 오더니 놀이기구처럼 움직이고, 물을 뿜기 시작했다. 스크린 속으로 들어온 것같은 효과를 이렇게 체험할 수 있는 것 또한 기술의 발전이고 그 방향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으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영화들이 있다. 그렇지만 내게 영화는 ‘이야기’가 기본이 되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작은 바다 마을에서 <덩케르크>를 프로젝터로 쏜 화면으로 보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영화가 어떻게 유통이 되고 제작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세계 어디에든 이렇게 영화관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신기했다. 영화도 좋아하지만 정확히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극장을 발견한 건 새롭고 신비하며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극장을 나서 맞은 편에서 사진을 한 번 더 찍고, 약속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5분 정도 남았을 무렵 가는 길에 서점을 발견하고는 일단 들어갔다. 시간이 많지 않아 동화책 코너를 기웃거리다 고래가 나오는 그림 동화책을 한 권 구매했다. 그리고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식당 앞에 모였다.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니 직원이 인원수에 맞춰 동그란 피자를 12조각으로 나눠줄 수 있다고 했다. 메뉴판을 탐색하고는 티렉스, 콰트로, 치킨수프림 이렇게 세 개를 골랐다. 이름이 어딘가 귀여웠던 티렉스는 어린이용이었던지 간이 세지 않았다. 콰트로치즈는 진한 치즈맛이 아주 입맛에 맞았고, 치킨수프림은 매콤한 맛이었다. 어떤게 더 맛있는지 서로 얘기하며 나누어 먹다 보니 금세 피자 세 판이 사라졌다. 마음 같아서는 다섯 판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배가 금방 불렀다. 나와 J 모두한 조각씩 피자가 남았다. 맞은편에 앉은 E에게 피자 한 조각을 주고, 다른 한 조각은 나누어 먹었다


든든하게 점심을 챙겨 먹고는 예쁜 호키티카 마을을지나 캐슬힐로 향했다. 지나는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는데 점심을 먹으니 잠이 쏟아져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Y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예쁜 곳이 나오면 창문을 열어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2호 차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하러 갔는데, 결제도 셀프였다. 공중전화 박스 같은 곳에 기계가 홀로 있었다. 주유기 번호를 누르고 카드를 꽂으니 그제야 주유기에서 기름이 나온 모양이었다. 현금으로 결제할 수 없어 개인 카드로 결제를 마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나라마다 주유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아주 다른 건 아니지만, 이런 사소한 차이가 모여 독특한 문화가형성되는구나 싶었다. 가다 보니 사진을 찍을만한 예쁜 호수가 나타나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놀았다. 미러 호수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호수는 산과 하늘을 가득 담고 있었다. 조금 더 가니 캐슬힐 타운이 보였다. 하루만 예약할 수가 없어 가지 못했던 곳이다. 구글맵으로 보았을 때 마을이 참 예쁘던데, 지나가면서 보아도 곧장산타할아버지가 나올 것 같은 귀여운 마을이었다.


캐슬힐_01.jpg 지나치며 보아도 왠지 귀여운 캐슬힐 빌리지


영화 <반지의제왕>을 처음 본 것은 좋아하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목소리연기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본래 판타지 장르를 소설이나 영화나 좋아하지 않고, 시리즈물의 경우 앞의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즐겨 보지 않는다. 한창 영화 속 캐릭터들이 인터넷 유행어처럼 번질 때 나만 알아듣지 못한 때도 있었다. 뒤늦게 본 <반지의 제왕>은 재미있었다. 극장에서 보았다면 나도 N차를 찍었을 법했다. 다만 2편이 나오면 또 기억을 못 하고 함께 영화를 보는 누군가에게 계속 무언가를 물어봤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반지의제왕>은 1편만 보았고, <호빗>은 극장에서 봐놓고 정작 베니가 나오는 2편은 못 보았다. 촬영장소에 도착해도 잘 모를 것 같아서 캐슬힐에 도착하기 전에 인터넷이 연결될 때 - 뉴질랜드 대부분의 도로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 사진을 검색해보았다. 대체로 비슷한 사진이 나와 알 수는 없었지만 비교를 위해 일단 다운 받아 두었다. 캐슬힐에 도착하니 멀리 커다란 바위들이 보였다. 공원처럼 되어 있는 질퍽한 산책로를 걸어 올라갔다. 왠지 문이 달려있을것 같은 버섯 모양의 돌이 있어 궁금해 가까이 가보았다. 당연히 문은 없었다. 저 멀리 콩알만큼 작아진 멤버들을 풍경과 함께 사진에 담았다. 이미 그림자가 길어질 만큼 해가 넘어가고 있어서 오래 머무르진 못했다.


캐슬힐_02.jpg 거인이 갖고 놀다 미처 치우지 못한 것 같은 바위들
캐슬힐_03.jpg 저 멀리 바위 그림자가 길어졌다
캐슬힐_04.jpg 나와 J의 그림자도 길어졌다
크라이스트처치2_01.jpg 크라이스트 처치로 가는 길에 본 비너스 벨트


도시에 닿을 때쯤 하늘은 연보라색으로 물들어 비너스벨트를 볼 수 있었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날 보았던 아이스바 같던 헤지들이 들판에 가득했다. 시내에 들어가니 교통체증이 생길 정도로 차가 많았다. 마지막 날의크라이스트 처치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우리끼리 마지막 밤을 즐기고 맘 편히 짐을 쌀 수 있고 공항과도 거리가 가까웠다. 동네에 진입했을 땐 완전한 어둠이 내려 다소 길이 헷갈렸는데, 내비가 가리키는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학원이었다. 주소는 맞았다. 안쪽에 있는 건물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주방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테이블보를 정리하고 계셨다. 노크하고는 매우 반갑게 ‘헬로우!’하고인사를 했는데 ‘안녕하세요!’, 한국말이 돌아왔다. 한국분이었다.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한국인에게 영어로 인사를하고 말았다. 숙소 안내를 받으며 알게 되었는데 어학원과 함께 빈방은 에어비앤비로 운영하고 계셨다. 방 배정을 해야 해 멤버들과 함께 숙소 투어를 한 뒤, 여자들과 짐이 많은 남자들이 1층을 쓰기로 했다. 더 필요한 건 없냐 물으시길래 가까운 한인 마트가 어디냐고 여쭈었더니,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주시겠다고 했다. 김치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한 포기밖에 없지만 가져다주신단다. 필요한게 무엇이든 다 꺼내주실 것 같았다. 하지만 맥주는 없을 게 분명했기에, 어차피 술을 사러 마트에 가야 한다며 지금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드렸다.


방에 들어가 짐을 대충 풀어놓고 마트를 다녀오기 위한 조를 짰다. 운전할 E, 함께 장을 보며 짐을 들어줄 Y, 그리고 나와 J. 총무이며 주로 요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장을 우리가 보는 게 편했다. 마트 주소를 내비에 찍고 차가 출발하는 사이 핸드폰으로 리스트를 적었다. 예산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 꼭 필요한 만큼의 음식만 사기로 했다. 마트는 커다란 쇼핑몰 1층에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리스트를 체크하며 재료를 하나둘 담았다. 술도 고르고, 안주로 먹을 과자와 튀김을 샀다. 라면을 찾지 못해 잠깐 위기가 찾아왔지만 똑쟁이 동생들이 금세 라면을 찾았다. 무사히 미션을 마치고 재빠르게 복귀했더니 아주머니가 김치를 주셨다. 사실, 퀸스타운에서 한인 마트에 들렀을 때 김치를 샀다. 하스트에서 저녁을 해 먹으며 김치를 남겨두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 버터와 김치와 달걀을 넣어두었는데 다들 아침을 먹지 않아서인지, 아무도 그 음식들을 챙기지 못하고 떠나왔다. 프란츠 조셉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알았는데, 마지막 날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니 동생들이 탔던 2호 차에서 김치찌개를 얘기했다. 한인 마트에 들러 김치를 사려고했는데 이렇게 잘 익은 김치를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프란츠 조셉에서 남아서 싸 온 찬밥과 김치가 주어졌다. 유학 경험이 있는 G가 정통 까르보나라를 담당하고 대장이 업그레이드 된찹스테이크를, 나와 J가 김치찌개와 볶음밥을 맡기로 했다. 평소에도 볶음밥은 J가 잘 하니 내가 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집에서 해 먹는 요리의 종류가 몇 년 사이 많이 바뀌어서, 막내가 입대한 뒤로는 김치찌개를 끓여본 기억이 없다. 최소 1년은 넘은 듯한데, 기억을 더듬어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마지막날이고, 우리만 있는 숙소이니만큼 맘껏 떠들고 웃으며 식사를 준비했다. 그 과정을 기록하려고 선반 위엔 고프로가 설치되고, 냉장고 위엔 드론이 앉았다. 여러 요리에 사용할 채소를 다듬은 뒤 커다란 냄비를 찾아 불 위에 올렸다. 5인분을 주로 만들다가 12인분을 만들려니 양이 가늠되지 않았다. 참치 기름을 조금 붓고는 베이컨을 넣어 볶다가 김치를 넣었다. 스팸도넣었다. 신맛을 잡아야 한다고 해서 설탕을 조금 뿌리고, 계속 볶다가 김치의 풀이 죽었다 싶을쯤 김칫국물을 다 넣고 물을 부었다. 볶음밥이 모두 완성되고 찹스테이크가 시작될 때 통조림에 있던 기름을 따라버리고 참치를 찌개에 넣었다. 한참을 끓였다. 맛이 없어도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오랜만에 먹는 한식인데 맛이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을 때쯤 맛을 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주방을 서성이며 심부름을 하는, 찌개가 먹고 싶다는 2호 차에 탔던 아이들에게 국물이 약간 있는 게 좋은지 물어보았다. 국물이있는 게 좋단다. 그렇다면 물을 더 부어야지. 국물이 생기게 물을 더 부어 놓고는 간장을 간을 맞추었다. M에게 맛을 보여주니 감격하며 맛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테이블 두 개를 붙여 함께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정리했다. 준비된 음식을 옮기고, 테이블을 세팅했다. 면을 삶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까르보나라가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뒤늦게 완성되었다. 치즈를 뿌리고 달걀 노른자를 넣으며 설명을 곁들이는 G의 모습이 흡사 TV 프로그램의 셰프 같았다. 방청객처럼 앉아있다가 박수도 보내며 까르보나라를 맞이했다. 커다란 냄비에 담긴 찌개가 한쪽 테이블에선 멀어 E가 덜어 먹을 그릇을 가지러 갔다. 어디선가 뚝배기를 구해왔다. 예상 밖의 아주 알맞은 그릇이 보니 웃음이 났다. 맥주를 한 병씩들고,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고생한 서로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마지막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J가 만든 볶음밥이 좀 식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아주머니가 주신 김치 덕분에 맛있게 끓여진 찌개는 짜고 칼칼하고,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달래주는 그리운 한국의 맛이었다. 찹스테이크는 점점 완성도가 높아졌다. 망고와 함께 1호 차에서 후숙 중이던 키위가 들어가서인지 고기도 연했다. 엄청난 양의 음식이 순간 삭제되고, 부른 배를 튕기며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매일 이동해서인지 맥주를 많이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장을 볼 때 한 박스만 샀더니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모든 맥주가 소진되었다. E와 Y가 맥주를 사러 출동했고, 한참을 헤맨 끝에 맥주를 사 들고 귀환했다.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하니 아침에 샤워하기로 하고, 방에 들어가 짐을 정리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입을 일이 없 는두꺼운 패딩을 압축 비닐에 넣고, 바람을 빼고, 무릎으로 눌러가며 돌돌돌 말았다. 별을 보러 갈 때마다 입었단 깔바지도 넣었다. 내내 캐리어 구석에 넣어두었던 여름옷을 꺼내두었다. 별수 없이 내일은 여름옷을 안에 입고 겉에 카디건과 겨울옷을 입어야만 했다. 겨름 패션을 입고 다닌 베니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에게도 그런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짐을 어느 정도 정리해두고 영수증과 함께 정산을 마쳤다. 금액이 딱 맞았다. 렌터카를 반납할 때 마지막으로 주유를 하고 나면 모든 정산이 끝난다. 여행을 마치고 정산 내용을 모두 공유하겠지만, 회계를 정리하며 여행의 마무리도 할 겸 다시 주방에 모였다.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여행의 소회도 오갔다.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런 자리에서 빠질 수없는 게 또 음악인지라 좋아하는 노래들을 신청하며 노래도 함께 불렀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듣던 가수들이 하나둘 소환되었다. 그때를 추억하며 마치 ‘알쓸신잡’의 게스트가 된 것처럼 각자 아는 잡다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날 아주 오랜만에 김형중의 ‘그랬나봐’를 들었다. 다녀오고 나서 한참이나 마음으로 따라 불렀다. 또 나만 아는 이야기라서 그땐 하지 않았는데, 여전히 나는 ‘그랬나봐’를 들을 때마다 <올댓뮤직>에서 희열님이 피아노 버전으로 완성된 그 노래를 처음 들어주던 날이 생각난다. 몇 개월 전에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가 “You make me to be a better man.”이라는 대사를 들었다. 디제이 유에게 들었던 멘트 같아 낯이 익었는데 ‘그랬나봐’의 노래 가사에 쓰였다는 걸 얼마 뒤에 깨달았다. 눈이 내리면 창밖을 보라고 얘기해주던 따뜻한 심야라디오의 감성이 생각났지만, 말했듯이 나만 아는 이야기이므로 혼자 잠시 그때를 생각했다.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에서 볼 때는 가정집 같았는데, 실제로는 가정집이긴 하나 어딘가 기숙사 느낌도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추울것 같아 마지막 남은 핫팩과 E에게서 빌린 핫팩을 이불 속에 넣어두었는데, 바닥에 난방이 되어서인지 그래도 조금은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결국, 여행 중에 제대로 일기를 써보지도 못하고, 나중에 까먹을까 간략하게 있었던 일만 어플에 메모해두고는 잠을 청했다. 이젠 기억도 까마득해진 대만 여행부터 곱씹어보다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오는 날까지 복기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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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짐을 챙기다 오른쪽 세 번째 손톱이 부러졌다. 정확하게는 찢어졌다. 처음엔 몰랐는데 짐을 들고 옮기다 보니 통증이 느껴졌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 손톱을 짧게 자르고 다녔던 터라, 직접 네일아트 하는 걸 좋아해도 손톱을 기르지 않는 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손톱을 자르기엔 길이가 너무 짧아서 그냥 왔더니, 그새 길었는지 여행 중에 다른 손톱도한 번 부러졌다. 이번엔 손톱을 자른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Y에게 밴드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가방에서 ‘누나, 이거 좋은 거예요’ 하며 떨어지지 않도록 예쁘게 붙여줬다. 과연, 돌아오는 내내 물이 닿아도 잘 벗겨지지 않던 좋은 밴드였다. 작은 상처를 손에 남기고 차에 다시 올라 숙소를 떠나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카톡을 남겼다. 잘 챙겨주셔서 덕분에 편히 있다 간다는 인사와, 주방을 사용하며 식기 몇 개를 망가뜨려 죄송하다는 사과, 그리고 직접 뵙고 가면 좋을 텐데 일정이 맞지 않아 먼저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아주머니도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지 못해 아쉬워하셨다. 별을 보는 사람들인 줄 알았더라면 별이 잘 보이는 숙소로 안내를 해줄 걸 그랬다며, 다음에또 오거든 얘기하라고 하셨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원에 들렀다가 성당에 가기로했다. 아주머니께서도 추천해주신 공원으로 내비를 찍고 이동하는데 시내이다 보니 차량 세 대가 한 번에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3호 차와 떨어졌고 우리는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숙소에서 도로로 나올 때부터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모두 주말 오전부터 공원에 모여있는 것 같았다. 조깅하고, 개를 산책시키고, 럭비 연습을 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행하며 보았던 사람들보다 차가 움직이고 5분 동안 본 사람의 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만나기로 한 주차장에 들어갔다가 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곳까지 잘못 들어가 돌려나오는데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공원에서 뭔가를 더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우리는 바로 교회에서 만나기로 했다. 얼마 전 크라이스트 처치에는 큰 지진이 발생했고, 그때 무너진 건물들은 여전히 복구되고 있단다. 교회도 그중 하나다. 저 멀리 개성있는 벽화가 그려진 건물들 사이로 교회가 나타났다. 근처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비를 지급하는 기계에 동전을 넣고 있으니 얼마 안 있어 3호차도 도착했다. 다시 만날 시간을 정하고 우리는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동 중에 도시를 구경하는 건 또 처음이어서, 들뜬 발걸음으로 J와 함께 어딘가 극장처럼 보이는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뉴질랜드 영화제 포스터가 붙어있는 기둥 앞에 있던 그 건물은 오페라를 공연하는 곳이었다. 들어가 보려다 드레스코드에 관한 안내문이 있어 살짝 구경만 했다. 조금더 걸으니 파스텔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나타났는데, 크라이스트 처치를 검색하며 보았던 트램 거리였다. 교회와 이곳이 가까운 줄 모르고 무작정 걸어왔는데 뜻하지 않게 거리를 보게 되니 신이 났다. 시간이 된다면 와보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맞으면 트램을 탈까 했더니 배차 간격이 길어서 포기했다. 트램 정류장을 지나가니 작은 광장이 나왔고 고릴라가 벤치에앉아있는 조형물이 어느 가게 앞에 있었다. J와 번갈아 가며 앉아 사진을 찍고, 광장에서 노는 사람을 구경하다, 트램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걸었다. 특이하게도 트램은 건물 안을 지나갔다. 쇼핑몰 같은 곳이었는데 피규어를 판매하는 매장이 있어 들어갔더니 작은 테이블에 여러 사람이 모여 피규어를 조립하고 있었다. 피규어를 전시해서 판매하는 곳이라기보다 피규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조금 더 길을 걸었더니 다시 도로가 나왔다. 예쁜 차가 세워져 있는 레스토랑이 있어 사진을 찍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교회가 보였다. 공사 가림막을 쳐놨는데 앞쪽으로 교회를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여느 광장이 그러하듯 수공예품을 파는 가판대가 있었고 그 곁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푸드 트럭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환전을 많이 해간 J가 커피를 사준다고 했다. 신나는 레게 음악이 나오는 가게였다. 할머니가 주문을 받고 할아버지가 커피를 만들어 주셨다. 그 분위기가 좋아서 동영상으로 촬영을 했는데 음악에 맞춰 흥겹게 커피를 내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다시 봐도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렇게 춤추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지금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일이 늘 즐겁지만은 않던데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즐거우신가요? 묻고 싶었다. 즐겁게 커피를 만들어 주셔서인지 라떼가 엄청 맛있었다. 커피를 한잔씩 사들고는 햄버거 가게 앞으로 갔다. 온통 햄버거였다. 거리에놓인 의자마저 ‘이곳에선 햄버거를 팔아요’라고 큰소리로 외치는것 같았다. 이번엔 대장이 햄버거를 사준다고 해서 치킨버거를 J와 사서 나눠 먹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햄버거지만 어딘지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크라이스트처치2_02.jpg 크라이스트 처치의 트램 거리


짧은 시내 구경을 마쳤다. 내비에는 공사 현장이 업데이트되지 않는지 안내하는 길로 따라갔다가 다시 나왔던 길로 돌아갔다. 출구를 찾느라 차가 방황하는 사이 나는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었고, 뒤따라오던 차들도 1호 차를 놓쳤다. 앞차를 따라가는 게 더 위험할것 같아 각자 렌터카를 반납하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도착하는 날 새벽에 보았던 주차장이 보였다. 차를 찾았던 곳에 주차하고 짐을 내려놓으니 2호 차와 3호 차가 도착했다. 캐리어를 챙겨 공항을 들어가는데 정말 돌아가기 싫었다.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다시 남섬을 한 바퀴 더돌고 싶었다. 오클랜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출력했다. 이번에는 수하물 태그까지 인쇄가 되는 키오스크에서 제대로 했다. 승무원들이 하는 것처럼태그를 붙이고 수하물을 부치러 갔다. 승무원이 우리들의 캐리어 무게를 체크해주었는데 ‘좋아요’를 뜻하는 영어 표현 여러 개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lovely’였다. 정확하게는나의 캐리어의 ‘무게’가 ‘lovely’였다. 짐을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X레이 검사를 통과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안녕히 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데도 기쁘지 않았다. 조금 더 놀고 싶은 마음에 괜히 두리번거렸다.


오클랜드 공항에서도 우리에겐 미션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콴타스 데스크에서 ‘영어로’ 무사히 발권하기. 어쩌다 줄을 선 순서대로 세 명씩 나누어 발권하기로했다. 콴타스에서 모든 티켓을 다 주는 것인지 지난번처럼 시드니에서 추가로 발권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일단 이티켓을 보여주었더니 승무원이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장은 부산으로, 나와 M은 인천으로 가서인지 헷갈리는 것 같았다. 티켓은 콴타스에서 모두 발권을 해준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수하물도 한국까지 연결해준단다. 내 수하물 태그는 안주길래 물어보았더니 M의 이름으로 두 개 다 붙여놓았다고 한다. 다만, 돌아가는 길에는 자리를 붙여줄 수 없어서 서로 떨어진 자리에 앉아야 했다. 한국까지 돌아가는 티켓을 모두 발권받지 못한 멤버들도 있어 다시 확인하고, 수하물 태그도 다 받았는지 확인했다. 이젠 돌아가는 길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X레이 검사대에서 줄을 섰다. 안쪽에 있는 검사대가 줄이 짧은 것 같아 그쪽으로 나온 나는 빠르게 나왔는데 가까이에 있는 검사대로 향했던 멤버들이 대거 걸려서 짐을 다 풀고 있었다. 다른 검사대에서는 옷도 벗고 주머니의 짐도 확인하고 가방 안의 물건들도 모두 꺼내야만 했다고 한다. 아마도 카메라 장비 때문이겠거니 했는데 얘기를들어보니 트래킹 복장을 한 사람은 신발에 흙이 묻어있는지 꼼꼼히 체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동하며 뉴질랜드 야생동물을 얘기하다 토끼가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막내가 마트에서 주워와서 기르게 되었던 ‘보통’이가 생각났다. 뭘 잘 몰라 작은 집에 갇혀 지내기만 했는데, 그래도 서울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며 심심해했던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작은 동물이다. 최대한 자연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다리를 건설하고 동굴을 파는 이들이니 토끼가 아무리 귀여워도,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은 꽤 문제겠구나 싶었다. 토끼보다 귀엽지 않은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 리는 당연히 없겠지.


거의 모든 짐을 꺼내 검사를 맡던 D가 가방에서 손 선풍기를 꺼냈다. 어떤 물건인지 설명을 해주는 듯했는데 불현듯 나의 손 선풍기가 캐리어에 있다는 게 생각났다. 크라이스트 처치 숙소에서 떠나기 전에 대장이 두 번이나 물었다. 캐리어에 충전기 넣은 거 아닌지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했는데 대만에서 쓰고 캐리어에 넣어둔 채 그대로 보내버렸다. 뒤늦게 검사를 마치고 온 대장에게 사실을 말했더니 밖에서 내이름을 불렀을 수도 있고, 탑승 전에 나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별문제가 없으면 넘어 갈 테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나의 작은 선풍기 때문에 성가신 일이 생겨 멤버들에게, 비행기를 같이 탄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생각이 부풀어 근심도 같이 커졌다. 게이트로 먼저 가려고 했더니 아직 정보가 뜨기 전이었다. 함께 면세점 안으로 이동해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환전한 현금을 쓰기 위해 매장을 둘러보고, 시간이 남으니 미리 화장실도 다녀오고, 유심 데이터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기념품을 사러갔다가 맘에 드는 게 없어 딸기 맛 멘토스만 괜히 사 온 나는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아마도 티가 났겠지만 태연한 척 면세점을 돌아다녔다. 마땅히 살 물건이 없어 두리번거리다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을 찾았다. 여러 개를 사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미스트를 구매할 수 있는데 용량 제한에 걸릴 것 같아서 하나만 사기로 마음먹고 시향을 했다. 처음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숙소 근처의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에서 바디크림과 바디 미스트를 많이 사 왔었다. 가격이 매우 저렴했고 한동안 집에서 잘 썼던 기억이 있어, 그때를 생각하며 맘에 드는 향으로 하나 구매했다. 시드니에서 환승해 대만을 거쳐 무사히 인천까지 들고 갈 수있겠느냐 물었더니 ‘환승’만 하는 거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포장지에 부드러운 꽃향기가 나는 미스트까지 촥촥 뿌려서 커다란 종이가방에 담아주었다. 남은 현금을 모두 쓸 수 있었는데 하나만 사느라 애매하게 남았다. 더 살 게 없어서 걸어 다니다 다른 여행객들과 어색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햇살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게이트 정보가 뜨는 걸 확인하고 바로 가봤더니 이윽고 승무원이 나타났다. 다가가 혹시 나를찾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승무원은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별일 없나 보다 생각하며, 시드니와 대만에서도 나를 부르지 않기를 기대하며 멤버들이 모여 있는 벤치로 돌아갔다. 보통 돌아오는 날에는 현금을 털기 위해 갖은 간식들을 사게 마련인지라 다들 초콜릿과 과자를 한 봉지씩 들고있었다. 달콤한 초콜릿을 입에 녹여 먹으며 눈치껏 줄을 서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함께 체크인을 했던 M과 통로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앉는 건 알았는데, 좌석을 찾으려고 보니 내 바로 앞자리가 J와 I였다. 이전의 비행과 다르게 어딘가에 점점이 흩어져 비행하게 될멤버들의 위치를 대충 확인해보는 사이 비행기가 이륙했다.


불편한 마음 때문에 아쉬움마저 지워질 것 같았다. 손목시계를 맞춰두고 핸드폰 메모장에 후기를 쓰기 시작했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공항에서 만나는 장면을 지나 대만에 도착하는 순간을 적을 즈음 손이 아팠다. 사실 그때 쓴 후기는 모두 지웠다. 후기를 쓰고 있을 때도 돌아가 후기를 새로 쓸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의 후기도 모두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일기를 쓰다 보면 그때의 감상이 고스란히 일기에 남기도 하지만 여행 중에 쓰는 일기나 여행기는 대체로 사건을 중심으로 쓰게 된다. 일상으로 돌아와 그 여행을 떠올려보면 잊힌 기억들 사이로 생각의 틈이 생긴다.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나를 글 앞에 세워두고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느끼는감상들이 있다. 그걸 알면서도 뉴질랜드와 호주 사이의 어느 바다 위를 날던 비행기에서 글을 쓴 이유는내 기억들이 모두 날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기를 쓰고 잠시 쉴 겸 노래를 듣는데 앞에 앉은 J가 말을 걸었다. 핸드폰을 바꿔서 사진을 보자고 했다. 좌석 틈 사이로 핸드폰을 교환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자리에 앉아 있는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 교탁 위에 서보게 하는 장면이 있다.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도록 체험을 시켜주는것이다. 여행을 함께 다녀온 친구가 남긴 후기를 보거나 사진을 볼 때면 그 장면이 떠오른다. J의 사진에는 J의 시선이 담겼다. 나와 다른 각도에서 본 세상은 여행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비슷한 사진도많았다. 나와 J는 같은 순간을 다른 각도에서 찍는 경우가많다. 아마도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선별하는 기준이 비슷한 모양이다. 사진을 둘러 보고 나니 옆자리의 M이 핸드폰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썩 예쁘게 그려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뭘 하냐고 물었더니 대각선자리에 앉은 I를 가리켰다. 완성되지 않은 그 그림은 나만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밥을 주길래 좀 먹다가, 졸려서자고 나니 어느덧 시드니였다. 어디든 갈 때보다 돌아오는 때는 시간이 덜 걸리는 것 같다. 여행을 떠날 때는 시간을 앞으로 돌리며 비행기에서 같은 시간을 반복했는데, 돌아갈때는 시계를 뒤로 돌리니 시간을 지우고 있는 것 같았다.


길고 긴 환승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뉴질랜드를갈 때 통과했던 X레이 검색대였다. 다시 뉴질랜드로 가는 길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미스트를 따로 빼놓는 걸 깜박했다. 짐과 함께 나도 무사히 통과하나 싶었는데 내 가방을 열어보더니 다시 X레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일주일 전엔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비장한 마음으로 면세점을 누비고 다녔는데 이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매우 잘 안다. 그래도 한 번 와본 곳이라고 편안한 마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타고 한 층 올라갔다. 지난번과는 다른 방향으로 게이트를 찾아갔다. 일본 학생들이 여행을 왔는지 생기발랄한 소란스러움이 공간에 가득했다. 알 수 없는 말들이 가득했던 소리가 사라지고 벤치에 자리가 생겨 짐을 내려놓고 잠시 앉았다. 내 핸드폰만 공항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아 공대인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면세점이나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아까부터 눈독 들이던 알카파 인형을 집어 들고 가격을 물어보았더니 8만 원이었다. 안고 뒹굴 수 있는 인형은 아니어서,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금방 내려놓았다. 진짜 알파카 털로 만들었다고 직원이 설명해주었다.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만져보았지만 구매하진 않았다.


시드니_01.jpg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본 시드니의 밤


저녁을 간단히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왼쪽 창가에 J가 앉고 오른쪽 통로 자리에 내가 앉았다. 버스를 타듯 비행기를 타서인지 창밖의 풍경에 큰 감흥이 없었는데 높이 오르니 도시의 야경이 보여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나왔다. 도시의 불빛이 별을 가리지만 예쁜 건 사실이니까. 이때 탄 비행기는 우리가 탔던 비행기 중에서 가장 좁았고 오래된 비행기였다. 비행기 화면을 보다간 눈이 아프고 나빠질 것 같았다. 둘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J는 잠이 들고 나는 핸드폰으로 후기를 이어서 썼다. 이제 겨우 대만에서 레스토랑을 예약하는 장면까지 썼을때 글이 더는 써지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다운 받았던 팟캐스트를 들었다. 정치학도의 본능을 일깨워준 작년의 필리버스터 이후로, 지역구 국회의원의 활동이 궁금해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이젠 학생이 아닌 정치덕후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일할수록 사회적 이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부하게 되면서 거의 매일 출퇴근하며 팟캐스트를 들었다. 지금쯤은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왔을 걸 생각하니 한국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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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도착했다. 고향과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종이에 적혀 있는 안내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내려가 게이트에 도착했다. 이젠 완전히 여름옷을 입은 채였다. 짐을 내려놓고 면세점 구경엘나섰다. 면세점을 그렇게 들렀으면서도 막상 맘에 드는 걸 못 사서 구경이나 할 셈이었다. 시간이 없어 먹지 못 했던 버블티를 먹으면 좋으련만 근처에 매장은 없는 듯했다.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물어보니 푸드코트에 있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없었다. 넓지 않은 면세점을 왔다 갔다 하다 게이트가 달라 먼저 헤어졌던 대장을 만났다. 서울로 내가 들고 갈 뻔한 충전 젠더를 주고는 버블티를 찾아 같이 헤매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은 접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화장품 매장에 들렀다. 미술을 전공한 J가 내게 몇 가지 색을 추천해주었다. J가 사준 립스틱을 바른 날이면 사람들이 꼭 어떤 제품인지 묻는다. 하나를 골라주며 나를 ‘가을웜톤’이라 진단했다. 계산하고 나오다 마지막으로 메뉴판을 한번 보고 싶어 확인해보니 ‘타피오카’가 있었다. J와 나는 버블티가 맞다고 확신했고 버블티 원정을 함께 한 대장을 소환했다. 대만 시내에서 파는 것보다 비싸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려 한 입 먹어보니 생각보다 달지 않았고,향도 진하지 않았다. 그래도 먹고 싶던 버블티를 마신 것에 만족하며 게이트로 돌아가 멤버들과도 나눠 먹었다.


마지막 비행기는 내가 창가 자리였다. 시간을 다시 원래대로 맞추고는 피곤했는지 기내식을 먹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문득 깨어보니 한국에 가까워지고 있어 창문을 열고 어디쯤 지나는지 구경했다. 인천으로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점점 흐려졌다. 서울 하늘을 보며 저기가 어디쯤인가 가늠해보는 사이, 비행기는 고도를 낮춰 구름층 사이를 날아 무사히 활주로에 바퀴를 내렸다.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밖으로 나가니 숨을 못 쉴 만큼 습하고 더웠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한숨 자고 싶으면서도 여행을 가 있는 사이 개봉했던 영화가 보고싶었다. 버스 안에서는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겨우 집에 도착해서는 일단 누워 남은 일요일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했다. 결국 씻고, 간단히 밥을 먹고, 가장 가까운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나는 일상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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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 ‘여행’에 관한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여행(travel)은 단순히 목적지로의 이동이 아니라 출발한 지점으로돌아오는 것이기에 노마드(nomad)와는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기로는 출발지로 돌아오기 때문에, 여행이 삶에서 전혀 다른 지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맥락이라는 뜻 같기도 하다. 일요일에 도착해 다음 날 바로 출근하니 지난 여행이 꿈만 같았다. 번지점프를 하는 곳에서 산 양 인형이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보니 꿈은 아니었다. 바쁘게 다시 하루를 살면서 기억을 떠올려 그 꿈속으로 들어가 보니 뒤늦게 여행에 대한 많은 모습과 감정들이떠올랐다. 퇴근한 저녁, 맥주 한 캔을 마신 뒤 써 내려간 후기는 출퇴근길에도 덧붙여졌고 카페에서도, 잠들기 전 집에서도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그리고 몇 주 후, 오랜만에 날이 맑았던 어느 주말이었다. 지도 교수님을 뵈러 학교에 갔다. 항상 교수님과는 본격적인 논문 미팅을 시작하기 전에 철학적인 주제나 사회적 문제, 그리고 나의 안부에 관하여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곤 한다. 교수실로 들어가니 가구 위치가 달라졌고 한쪽 벽에 있던 커다란 그림이 바뀐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림이 바뀌었네요? 하고 물으니, 어떻게 그 그림이 걸리게 되었는지를 말씀해주셨다. 그리고는 작은 것이라도 계속해서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일상에 너무 매몰되면 그 늪에 빠지기 쉬운데, 요즘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더 많이 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더라도 사유할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러니 반드시 여행이 아니어도 작은 것에서부터 변화할 수 있어야 하고 사유할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사유’는 태풍처럼 내 마음을 쓸고 간 여행을 바라보는 이 글에 담겨 있다. 그러니 나는, 이 글의 처음에서 상처받았다고한 말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다. 애써 비우고 돌아온 마음은 금세 복잡한 여러 감정으로 채워졌다. 아마도 나는 타인에 대한 기대가 관계에 부담을 주는 것을 알면서도 기대를 할 것이다. 나에 대한 기대가 자신을 실망하게 하는 걸 알면서도 매번 기회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상처 입히는 걸 피할 수 없다. 사랑하는 만큼 상처 입히고 그만큼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고 상처를 입힐만한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상처는 다른 의미로 남는다. 그 의미가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가려진 감정들을 걷어내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관계가 아직은 더 필요하다. 결국, 숙제 같던 이 여행은 끝내 풀지 못했다. 언젠가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날에 그 해답들이 문득 선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은 있다. 하늘의 구름이 얼마나 예쁜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멈춰 생각할 수있는 삶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우주의 생애를 지켜봤을 별들을 이제야 내가 발견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달빛 아래 서 있는 건 어떤 감상에 젖게 하는지, 깊은 밤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돗자리를 펴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는 이런 여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마음을 함께 공유하고 추억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많은 사건이 벌어졌고 서운한 감정도 남았겠으나, 이 여행을 함께한 모든 멤버들에게 고맙다. 총대 메고 여행을 이끈 대장에게는 특별히 고맙다. 언제 이런 여행을, 그것도 J와해보겠는가. 어딘가 시상식 소감처럼 되었지만 그게 지금, 내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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