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지 않다
요즘 같은 동성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주제가 너무 일관적이다. 대학생 때도, 20대 내내 연애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터라 그렇게 많은 대화 주제로 등장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거의 백이면 백, 다 연애, 결혼이 대화 주제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때는 하고 싶은 일, 공부, 인간관계, 진로, 조언, 여행 등이 대부분의 대화 주제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다들 주니어를 지나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전보다는 안정적인 위치에 있다 보니, 정말로 연애, 결혼, 돈, 커리어 이렇게 세 가지 주제를 오가는 이야기만(!) 자주 하는 것 같다.
확실히 에너지가 더 많고 호기심이 많았을 때보다는 인생이 훨씬 단조로워 보이기도 하고, 뭐 대단한 게 없다 싶다. 그렇지만 각자의 희망 사항을 포기하게 내려놓은 게 아닌 나를 포함한 주위 친구들을 고통받고 있는 과도기에 있는지, 서로 심심한 위로를 주고받으며 응원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과도기에 있는 거냐, 끝은 있는 거냐며 한탄하며 에너지가 많이 다운되어 있는 모습들에서 지금 나의 거울 같기도, 나의 과거이자 미래 같은 느낌이라서 아무렇지 않지 않다.
비단 또래 친구들 외에도 일하는 팀원들 또는 동호회 사람들, 모임 멤버, 친구들, 엄마 혹은 엄마의 지인분 들을 만나면 은연중에 혹은 직접적으로 나의 안부를 물어보곤 한다. 어디 살고 있는지, 이사는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회사는 어디 다니는지 등 진심으로 해결책을 구해주려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함께 공감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기혼자로서의 미혼의 삶이 흥미롭게 보는 시선도 있고 관점은 다양했던 것 같은데 대체로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라서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느낌이 쓸어가지지 않아서 잔여감이 계속 남아 있는 상태가 적합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는 어쩌면 일어나지 않겠지만, 대체로 일어날 수 있다는 여러 가정 하에 생각도 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소진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적지 않아서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하는데 점점 손 발이 쉬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머리만 굴리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정확한 것 같다. 일 년 전의 나는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었는데, 아직 성과 혹은 결과가 없었냐는 질문을 던지면 숨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을 밟아가고 있다는 것이니까 자기 위로만 남지 않도록 답을 만들 거라고 믿는 자기 암시를 챙겨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