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_체코 프라하 4박 5일
유럽사진으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빨간 지붕들이 펼쳐진 뷰를 보기 위해 서둘러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왔다. 길이 아무래도 익숙지 않아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정류장까지 제대로 내린 것 같은데 스타벅스가 있는 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어쩌다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한참을 헤맸다. 대신 메인 입구가 아니라 줄 서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짐 검사는 바로 기다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다.
프라하성 티켓이 없어도 외부는 볼 수 있어서 티켓을 구매할까 말까 고민하다 이왕 가는 거 제대로 보자라는 생각으로 무난한 B코스(성 비투스 대성당, 구황궁, 성 조지 바실리카, 황금소)로 현장 구매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고딕양식의 절정을 볼 수 있다더니 눈앞에 장황하게 서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을 보고 한순간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아름다운 건 둘째치고 우중충한 날씨 탓과 까매진 사암 외벽 그리고 적나라한 표정으로 장식된 악마 조각상들을 보니 조금 공포감이 느껴졌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여기서 악마는 성당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역할로 성당을 공격하는 자들을 막기 위해 공포심을 갖게 하여 죄와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라는 경고를 나타내는 선과 악을 말한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마자 고층의 스테인드 글라스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성스럽게 느껴진다. 외벽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안에 들어서자마자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오묘했다. 여행 다니면서 역사 깊은 성당들을 수없이 봐왔는데도 각자 가진 분위기와 스타일에 볼 때마다 항상 새로운 기분이 든다.
내부 장식은 모든 게 웅장하고 화려하다. 가장 눈에 뜨였던 건 '성 요한 네포무크'가 안치된 묘였다.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왕에게 누설할 수 없다 하여 순교한 최초의 순교자로 강에 몸을 던졌을 때 다섯 개의 별이 강물 위에 떴다고 하여 다섯 개의 별과 함께 표현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숭배하는 만큼 성인의 묘는 규모도 크고 화려하여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까를교에 있는 성인의 동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는데 깜빡하는 바람에 소원을 빌지 못했다.
대성당에서 한참을 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내부는 좀 따뜻할지 알았는데 내부 보존을 위해서 그런 건지 밖에보다 안이 더 추운 것 같았다. 체코 공화국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한다는 구황궁과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 조지 바실리카를 보고 도저히 너무 추워 스타벅스로 대피했다. 웬만하면 여행 중에 로컬을 이용하는 편인데 주변에 다른 카페가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 스벅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고 좁아 자리 잡기 힘들었는데 다행히 공용테이블에 자리 하나가 있어 잠시 쉴 수 있었다. 비록 주변은 어수선하고 시끄웠지만 덜덜 떨다 따뜻한 카페인을 섭 취하고 나니 한결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다. 프라하 도착한 첫날, 롱패딩 입고 털모자에 무장한 사람들 보고 너무 이른 거 아닌가 싶었는데 겨울옷 제대로 안 챙겨 온 게 후회스러울 정도로 으슬으슬 추운 프라하의 11월이다.
참고로 프라하성 티켓은 48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어 이틀에 나눠서 둘러보아도 된다. 개인적으로 성 비투스 대성당이 가장 압도적이었고 황금소도 나름 재밌었다. 실제 병사들이 사용했던 갑옷,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옛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방을 꾸며 놓은 게 아기자기하니 귀여웠다. 정오가 되면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된다고 하는데 나는 끝부분만 잠깐 볼 수 있었다.
프라하성을 나와 동네가 너무 예뻐 무작정 걸었다. 각각 다른 풍의 건물들인데도 전체적으로 조화감이 느껴지는 게 좋았다. 특히 다양한 패턴과 문양으로 장식된 잘 깔린 돌바닥을 보며 바닥까지 섬세하게 계획했다는 거에 예술에 대한 프라하의 진심이 느껴졌다.
걷고 구경하고 사진 찍고 하다 스트라호프 수도원 근처까지 갔다. 인터넷에서 봤던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도서관 내부가 궁금했기 때문에 다른 코스는 제외하고 도서관 티켓만 구매했다. 평범해 보이는 건물 계단을 오르면서 이런 곳에 그런 멋진 도서관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수식어에 맞게 비현실적인 공간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신학의 방과 철학의 방으로 이뤄진 이곳은 각기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져 각기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철학의 방은 호두나무 서가의 고풍스러움과 바로크 양식의 프레스코화가 어우러져 전혀 다른 시대에 온 것 같은 느낌에 감탄을 자아냈다. 안타깝게도 보존문제로 방안까지 들어가서 볼 수가 없어 문 앞에서 차례대로 보고 다음사람을 위해 빨리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유물, 서적, 곤충, 동물 관련 수집품등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어서 흥미롭게 볼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아쉬운감은 있었다.
프라하성에서부터 걷고 걸어 존레넌 벽화도 보고 현대미술관이 있는 공원까지 걷고 계속 걸었다. 우산 쓰고 풀 비린내 맡으며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낭만이고 힐링이었다.
유럽 여행하면서 하루 평균 2만 보 이상씩 걸었다. 가려는 목적지가 항상 애매하게 붙어 있던 것도 있고 뭔가 현지인처럼 걸으면서 찬찬히 보는 여행 스타일 때문에도 그러기도 했다. 평소 잘 걷지도 않다 갑자기 2만 보 이상을 걸어 다니니 다리가 멀쩡할리 없었다. 그래도 적응력이 무섭다고 다리 통증도 2,3일 지나니 이만 보 정도는 거뜬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행이 끝난 지금은 만보도 힘들어하는 내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유럽여행은 체력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