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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진 Apr 18. 2024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라고 하기에 궁금했다. 받고 싶은 선물을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아내는지. 그래서 실험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귀띔을 해주는 것 같으니, 갖고 싶은 것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엄마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무엇을 받고 싶은 지 자꾸 물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니, 부모님이 산타의 스파이인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산타 할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며, 씩 웃기만 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책상 위(우리 집 산타는 머리맡이 아니라 책상 위에 선물을 두고 갔다)에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 있었다. 다이아몬드라는 보드게임이었는데 엄마는 산타가 주고 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물건을 바란 적이 없다고 하자, 산타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잘못 고르신 것 같다고, 다음엔 산타에게 미리 연락할 테니까 갖고 싶은 선물을 엄마한테만 살짝 말해달라고 했다. 역시. 부모님이 스파이일 거라는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다음부터는 갖고 싶은 것을 꼭 말씀드렸고,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원하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성탄절을 서너 번 거치면서 부모님이 산타일 거란 의심이 싹텄지만 이번에는 실험을 하지 않았다. 대신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산타를 믿는 어린이가 되기로 했다. 선물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열한 살 즈음인가. 이번에는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산타에게 들켰고, 선물은 끝났다.


실험을 했던 크리스마스에 원래 받고 싶었던 선물은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지만, 그 해 산타가 잘못 주고 간 다이아몬드 게임은 선명하다. 책꽂이에 버리듯 꽂아 넣었더니 엄마는 선물이니까 한번 해봐야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지만 좋지는 않았는데, 종종 친구들이 놀러 오면 꺼내어 한 판 씩 하곤 했다. 그리고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너, 산타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니?” 하고. 나는 아무래도 나쁜 애였던 것 같고, 산타도 이 점만큼은 알고 있었을 듯하다.


*월간 <환경과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Korea)>에 2023년 1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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