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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Mar 23. 2022

프랑스적 기질의 결정체

제74회 브장송 음악 페스티벌, 레 시에클/로스의 '오마주 아 생상스'


프랑스 음악은 장식적이고도 내러티브한 기질이 다. 전제는 서로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며 자유로움이 부딪히지 않도록 사이에 공백(완충 장치) 마련하는 것이다.

로스는 생상스의 주제에, 단원들의 개성을  이어붙여 하나의 커다랗고 유려한 소조(塑造) 만들었다.



산 속 요새 도시의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

프랑스 동북쪽 쥐라 산맥 끝자락의 도시 브장송. 홀로 고립되어 살아남은 것처럼 생겼지만, 역사·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도시다. 서쪽으로 파리, 동쪽에 독일, 남쪽에 스위스를 둔 지리적 요충지였던 덕이다. 서프랑크 왕국(프랑스의 모태) 영토로 시작해 신성로마제국·합스부르크 왕가·스페인 통치를 거쳐 다시 프랑스가 된 지난한 역사 탓에 여러 문화 양식들이 혼재돼 있기도 하다.


(좌) 두(Doubs) 강이 감싸고 도는 브장송 시내 전경. (우) 브장송 요새. © pictarena


이러한 역사·문화적 바탕이 브장송의 첫 번째 문화 코드라면, 두 번째 코드는 가을마다 개최되는 브장송 페스티벌이다. 올해 74회를 맞은 브장송 페스티벌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 중 하나다. 1948년 제2차세계대전이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되었고, 당시 공연에 목말랐던 많은 음악가와 애호가들이 브장송을 찾았다. 1950년 백혈병을 앓던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1917~1950)가 죽음을 앞두고 오른 마지막 무대도 여기였다. 브장송은 스위스의 축제나 독일 극장으로 향하는 중간 기점이었는데, 이는 페스티벌이 다양한 연주자를 불러들이며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휘 콩쿠르도 함께 열린다. 1951년 출범해 오자와 세이지(1959), KBS교향악단의 전 지휘자였던 요엘 레비(1978), 서울시향의 오스모 벤스케(1982) 등 지휘자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콩쿠르다. 올해 한국인으로는 이대은이 본선에 진출했다.



(좌) 1950년대 브장송 페스티벌 모습. 르두 극장(Théâtre Ledoux). (우) 디누 리파티의 마지막 연주회 모습.



하나의 커다랗고 유려한 소조

9월 11일 중심가의 아담한 르두 극장에서 생상스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는 ‘오마주 아 생상스’가 열렸다. 레퍼토리는 교향시 ‘파에톤’, 첼로 협주곡 2번, 교향곡 3번 ‘오르간’, 연주는 프랑수아 자비에 로스/레 시에클이 맡았다.


레 시에클은 2003년 지휘자 프랑수아 자비에 로스(1971~)가 창단한 시대악기 오케스트라다. ‘시대악기’하면 당대 연주에 몰두하는 대신, 레 시에클은 반대로 접근한다. 작품이 작곡되던 시대의 악기를 사용하되 현재 스타일로 해석하는 것. 특히 생상스·드뷔시 등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 이후 작품에 강하다. 오케스트라의 태생이 프랑스이기도 하지만, 로스 특유의 섬세함과 자유로움이 이러한 성격을 완성한다.

프랑수아 자비에 로스/레 시에클. © Yves Petit


로스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단상에 올랐다. 금관 유니즌이 뻗어나가는 도입부는 날카롭기보다 따뜻했고, 태양을 향해 질주하는 파에톤은 맹렬하기보다 경쾌했다. 그의 제스처는 둥근 어깨선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고 긴 손가락은 곡선을 그렸다. 다정하게 그리스 신화를 읊어주듯이.


레 시에클의 진가는 교향곡 3번 ‘오르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생상스가 생전 비유하던 것처럼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듯” 자연스레 써 내려간 그의 음악은 즉흥적이고 묘사적이다. 교향곡 3번 역시 그렇다.악장 구분도 명확치 않고, 크고 작은 주제들이 계속 발전해 나간다. 로스는 거대한 돌 위에 작은 조약돌을 놓는 것처럼 살을 붙였다. 큰 음향을 강조하기보다 스펙트럼을 미세하게 나누어 강약을 대비했다. 모아둔 포르테는 2악장 피날레에서 마침내 오르간과 부딪혀 장대한 시너지를 냈다. 기세를 이어 앙코르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바카날’로 흥을 돋우었다.


프랑수아 자비에 로스/레 시에클. © Yves Petit


단원들은 개성과 활력이 넘쳤다. 마치 그들의 넥타이 색깔이 빨강 파랑 검정 제각각 다른 것처럼 연주도 그랬다. 몸을 쓰는 것도, 표현도 굉장히 자유로웠다. 프랑스 음악은 장식적이고도 내러티브한 기질이 있다. 전제는 서로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며 자유로움이 부딪히지 않도록 사이에 공백(완충 장치) 마련하는 것이다. 로스는 생상스의 주제를, 단원들의 개성을  이어붙여 하나의 커다랗고 유려한 소조(塑造) 만들었다.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이라는  강성의 필연적 부딪힘을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으로 꿰어낸 로스의 연륜이 유독 돋보인 밤이었다.


프랑수아 자비에 로스가 곧 레 시에클와 같은 ‘로스=레 시에클’의 도식이 성립된 순간.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로스가 재기발랄한 단원과 함께 음악을 깎아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 중심에 음악과 소리를 두루 꿰며 살을 붙여 나가는 방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전윤혜(프랑스통신원) 사진 브장송 페스티벌


프랑수아 자비에 로스/레 시에클. © Yves Petit



* 이 글은 월간객석 2021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월간객석 2021년 10월호 객석아이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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