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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Jan 25. 2023

충돌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

제75회 칸 영화제 취재기 ①


제75회 칸 영화제(2022.5.17~5.28) 취재기 ①편


- 3년 만에 되찾은 자유

- 큰 충격이나 호불호 덜한 경쟁 부문

- 충돌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

- 인간 본성을 희화한 ‘슬픔의 삼각형’, 황금종려상 수상

- 한국 영화의 쾌거

한류 뒤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이면




(위) 칸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데 페스티벌 일대, (아래) 아녜스 바르다 상영관에서 바라본 칸의 전경 ⓒ Yoonhye Jeon


3년 만에 되찾은 자유

2022년 5월 17일, 제75회 칸 영화제가 개막하는 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3년 만에 공식적인 모습을 되찾은 칸 영화제를 축복이라도 하듯. 하늘과 바다는 올해 포스터인 영화 ‘트루먼쇼’(1998)의 엔딩 장면처럼 푸르렀고, 칸을 찾은 영화인들은 자유를 찾아 계단을 오르는 트루먼(짐 캐리 분)의 모습처럼, 되찾은 자유 속에 팔레 데 페스티벌의 레드카펫을 올랐다. 


올해 칸 영화제는 5월 17~28일 12일간 열렸다. 경쟁 부문 21편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20편, 감독 주간 21편, 비평가 주간 11편 등을 포함한 150편 이상의 영화들이 쉴 틈 없이 상영됐다. 사이사이 하비에르 바르뎀·톰 크루즈 등 배우와 만남, 작곡가 가브리엘 야레드의 음악 수업, 각종 영화 포럼과 심포지엄, 75주년 기념행사 등이 열렸으며, 칸의 상징인 크루아제트 해변에서는 매일 밤 ‘해변극장’으로 여름 무드를 돋우었다. 


(좌)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해변극장 (우) 가운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좌장을 맡은 75주년 기념 심포지움, 오른쪽은 클로드 를루슈 감독 ⓒ Yoonhye Jeon


큰 충격이나 호불호 덜한 경쟁 부문 

올 경쟁 부문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보다 전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들이 고루 포진된 해였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이 두 작품(‘헤어질 결심’ ‘브로커’)을 올리며 달라진 한국 영화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두 작품의 투자 배급사인 CJ ENM의 치밀한 전력 분석과 과감한 홍보 투자도 눈에 띄었다.(CJ ENM은 2019년 ‘기생충’을 비롯해 지금까지 12편의 작품을 칸에 진출시켰다.) 한국 외에는 각 3편씩 진출한 벨기에와 북유럽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 


팔레 데 페스티벌 앞 마제스틱 호텔에 걸린 CJ의 광고 패널 ⓒ Yoonhye Jeon


충돌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

이민 문제와 인종·국적의 무경계성은 끊임없이 영화의 중심 소재로 파고들었다. 이란계 덴마크인 알리 아바시의 ‘성스러운 거미’(Holy Spider), 스웨덴 이민 2세대 타릭 살레의 ‘천국에서 온 소년’(Boy from Heaven)은 우리가 떠올릴 ‘북풍’과는 거리가 먼 현재의 관점을 제시했다. 벨기에로 넘어온 난민 이야기인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Tori and Lokita), 코트디부아르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가족의 여정을 그린 레오노르 세라유의 ‘어머니와 아들’(Mother and Son), 루마니아 시골의 스리랑카 노동자 차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R.M.N.’ 등, 영화는 현시대 어디서 어떤 충돌이 일어나는지 선명히 보여주었다. 충돌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 


(좌) ‘토리와 로키타’, (우) ‘R.M.N.’


인간 본성을 희화한 ‘슬픔의 삼각형’, 황금종려상 수상

황금종려상은 루벤 외스틀룬드(Ruben Östlund)의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에게 돌아갔다. 돈과 외모에 집착하는 현대의 소비주의 사회를 고발하는 풍자 영화로, 인플루언서 커플과 자본주의 러시아 부호, 마르크스주의 미국인 선장 등이 탄 호화 크루즈가 좌초된 뒤 생존 능력에 따라 계급이 역전되는 이야기다. 호화로운 크루즈에 역한 오물이 난무하고, 가장 낮은 위치의 화장실 청소부가 실세로 역전되는 극단적인 설정을 거부감 없이 엮었다. 인간 본성을 직설적으로 찌른 외스틀룬드의 위트는 마치 오페라 세리아가 범람하던 가운데 빛난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를 연상시켰다. 


‘슬픔의 삼각형’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기자 상영회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고 현지 기대와 평들도 일치한 깔끔한 선정이었다. 이미 2017년에 ‘더 스퀘어’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바 있는 외스틀룬드는 수상 소감으로 “첫 수상은 사고일 수 있지만 두 번째라면 이것이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다며 칸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됨을 기뻐했다.


(위) ‘슬픔의 삼각형’ (아래) 황금종려상 호명 직후의 루벤 외스틀룬드
제75회 칸 영화제 수상자들과 심사위원들 © Valery Hache / AFP


한국 영화계의 쾌거

한편 올해는 한국 영화가 크게 선전해 감독상에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남우주연상에 ‘브로커’의 송강호가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 외에도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이정재의 ‘헌트’가 초청되고, 주목할 만한 시선에 데이비드 추 감독의 ‘리턴 투 서울’, 감독 주간에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가 올라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한국 관련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다.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 © CJ ENM


한류 뒤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이면

‘리턴 투 서울’은 프랑스와 한국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프랑스인이자 한국인 입양아인 프레디가 한국 문화와 관습에 부딪히며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을 담았다. ‘다음 소희’는 학생들을 비윤리적인 노동 환경으로 밀어 넣는 전문계 고등학교의 눈 가린 취업 현실과 어른들의 권위 아래 이를 감내해야만 하는 학생들, 이를 부당하게 이용하고 착취하는 회사들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두 작품 모두 화려한 한류 뒤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 데 큰 의의가 있다. 


(좌) ‘다음 소희’ 스틸컷 (우) 작품 상영 후 김시은 배우, 정주리 감독 © Yoonhye Jeon
 ‘리턴 투 서울’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 이 글은 월간객석 2022년 7월호 ‘3년 만에 돌아온 영화의 전당’에 실린 기사입니다.




* 제75회 칸 영화제 취재기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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