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되지 못하고 영원히 조각으로 남게 된 영화 감상평들
맞춤법, 문장 구조, 어휘 선택 등등 모든 게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임을 유의하세요.
감사합니다?
2025.01.01 & 2025.01.02 - 위키드
: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한 프레임 안에서 노래하는 걸 고작 만오천원 내고 볼 수 있다니 엄청난 가성비다… 악당이라는 건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아니면 타고나길 악하게 태어난 걸까?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뻗어 나가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왜 어떤 존재는 너무나도 쉽게 잘못되었다는 비난을 받는 걸까, 현실의 벽을 당연히 두려워해야 하는 건가? 위키드 속 엘파바는 처음부터 강하지 않다. 그러나 본인의 신념 만큼은 버리지 않았고 목소리 내는 걸 참지 않았고 끝내 세상을 등지더라도 자신이 가진 마법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갔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마법사라는 존재가 실은 사기꾼이었다는 현실에 좌절하고 무너지기보단 또 다른 방향으로 제 인생을 개척해나간 여성 서사라는 걸 볼 수 있어서 감사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마법사를 여전히 숭배하겠지만 진정한 승자는 엘파바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을 가로막는 현실의 장애물을 중력에 비유하며 자신은 이걸 이겨낼 거라면서 날아다니는 엘파바는 그 자체로 ‘자유’를 나타낸다. 새해 영화로서 정말 완벽한 선택이었다. 무기력할 때 보기 너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2025.01.09 - 그때 그 사람들
: 박정희를 죽인 김재규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블랙코미디 장르에 맞게 코웃음이 나는 장면들이 많았으나 절대 그 어두운 시절의 폭정과 부정의를 가볍게 다루지는 않은 영화. 이 시국에 감상하기 좋다. 독재자와 부역자들의 말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권력 싸움에 밀려나 죽였으면서 자신을 희생적인 민주 투사로 포장하는 김재규의 모습은 추하기까지 하다. 백윤식과 한석규의 연기는 언제 보아도 감탄만 나온다. 내 취향과 맞는 영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영화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 김윤아의 깜짝 등장을 보고 놀랐다.
2025.01.12 - 가타카
: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이 대사가 이 영화에 나오는 건지 몰랐다. 유전자, SF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서 어렵고 굉장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동 포인트가 많아서 뜻하지 않게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린 영화. 결국 모든 가능성은 내가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꽤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영화에선 유전자로 나오지만, 우리 현실에서도 집안 환경, 부모의 재력, 다양한 지적 재산 등의 이유로 미리 나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비슷한 이유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이다.
2025.01.18 - 서브스턴스
: 여성들이 갖는 외모 정병을 적나라하고 확실하게 표현하기에 바디 호러는 정말 적합했던 선택이다. 더욱 예뻐지고 어려 보이기 위해 얼굴과 몸에 가하는 학대 자체가 바디 호러니까. 사용 설명서도 부작용 안내도 약관도 없는 약물을 어떻게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몸에 주입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처음에는 들었지만 볼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도 현실에서 보톡스, 필러 등을 맞을 때 정확히 어떤 약물을 사용하는 건지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지 않고 시술을 받는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은 있지만 그것이 가져다 줄 긍정적 효과에 더 큰 기대를 가지며 마치 눈 먼 사람처럼 성형외과 수술대에 눕는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몸에 서브스턴스를 주입한 건 현대 사회의 여성으로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던 배우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커리어는 고작 피트니스 프로그램 진행자에서 끝나고, 그 자리를 더 젊은 여자가 꿰찼지만 프로그램은 더욱 성적이고 자극적으로 변했으며 그들을 채용하고 해고하는 위치에 있는 자는 변함 없이 늙은 백인 남성이다. 서브스턴스를 판매하는 자의 목소리도 남성의 것이다. 수에게 성욕을 느끼고 신체를 탐하는 자들 역시 남성이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성들의 시선 안에서 성적 도구로서 대상화당하고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외모정병이 가져오는 여성의 모욕 센서 박살 현상을 굉장히 잘 드러낸 영화였다. 너무 끔찍하지만 동시에 공감 가는 스토리와 연출이 진짜진짜 인상 깊었다.
2025.02.06 - 황산벌
: 코믹한 전쟁영화. 초반에는 가볍던 분위기가 후반부에 가서 진짜 전쟁 장면이 나오기 시작하며 무거워진다. 계백이 왜 역사 속 인기 많은 장군인지 알 법한 서사, 그러나 처자식까지 죽이며 결의를 다지는 장면은 불호였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이 당시 단역, 조연으로 나오는 걸 보고 있으니 새삼 세월의 흐름이라는 걸 느꼈다. 언니 말대로 확실히 내가 따로 찾아볼 영화는 아니었다.
2025.02.15 - 브루탈리스트
: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어서 좋았다. 러닝 타임이 길지만 집중하기 어렵지는 않은 영화. 주인공의 인생을 따라가다보면 그가 느끼는 감정, 겪는 시련 등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뷰런이 라슬로에게 왜 너희 유대인들은 욕 먹을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는 대사를 할 때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아픔을 지워내고 새 인생을 살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억압을 공감할 수 없는 자가 왜 아직도 전쟁의 그늘 아래 있는 거냐고 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에 그가 아닌 그의 조카가 유대인 중심적인 해석을 발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는데, 라슬로라는 인물을 통해 유대인들이 과거에는 독일 나치에, 나치가 망한 뒤에는 자본가들에게, 그리고 이후에는 같은 유대인에게 계속해서 이용 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02.16 - 더 폴: 디렉터스 컷
: 다른 걸 다 떠나서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영화다. CG없이 로케 촬영만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라니, 영화에 관한 호불호를 떠나 인간으로서 본받고 싶은 집념과 미감이다. 리 페이스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자기 때문에 모르핀을 구해오려다 낙상 사고로 다친 알렉산드리아에게 울먹이며 널 이용한 거라고 털어놓을 땐 나까지 슬퍼서 눈물이 났다.
2025.03.01 - 미키17
: 블랙리스트 들어가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된다
2025.03.10 - 전함 포템킨
: 잘 만든 프로파간다 영화. 유명한 계단씬은 정말 숨도 못 쉬고 봤다.
2025.03.12 - 인디아나 존스: 레이더스
: 주인공이 섹시하다는 이유로 친구의 추천을 받아 시청했던 영화. 내 취향은 아니었다.
2025.03.14 - 콘클라베
: 너무 좋아서 올해의 영화로 선정하고 싶은 수준이다. 감상문을 쓰고 싶은데 도저히 절제되고 정제된 문장이 나오질 않아서 포기했다. 거친 언어로밖에 표현이 안 될 만큼 좋았다. 영화관에서만 네 번은 족히 보고 나왔다. 연출, 연기, 음향, 미술 뭐 하나 부족한 거 없이 아름답고, 숨 막혔고, 풀어졌다.
2025.03.28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크리스토프 발츠의 한스 란다 연기를 보기 위해 틀었고, 역시나 그가 제일 이 영화에서 돋보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꼭 조연 중에 한 명이 영화의 화제성 100 중 절반 넘게 가져가는 듯하다. 그만큼 배우들이 잘 살렸고, 감독이 맛깔나게 시즈닝을 쳤다는 증거겠지.
2025.03.29 - 퇴마록
: 국산 애니메이션이 이렇게까지 잘 나왔다는 게 존경스러웠고, 적은 인력으로 1시간이 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는 데에서 정말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스토리나 연출, 캐릭터 디자인 자체는 내 취향이 아니어서 지루했다..
2025.03.31 - 킬 빌 Volume 1
: 미루고 미루던 킬 빌을 이제야 봤다. 우마 서먼과 쿠리야마 치아키도 너무 좋지만 난 대릴 해나의 첫 등장씬이 제일 인상적이고 좋았다. 소름 끼치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또각또각 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내면서 점점 우마 서먼과 가까워지는데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은 음산함이 좋았다.
2025.04.05 -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4회차 감상
: 매년 4월에는 영화관에 가서 패왕별희를 보는 게 거의 습관을 넘어 전통처럼 자리 잡았다. 내 인생영화다.. 20세기 종합예술을 약 3시간짜리 영화 한 편으로 다 느낄 수 있는데 안 볼 이유가 있나?
2025.04.06 - 마른 하늘에 날벼락
: 왓챠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봤던 단편 영화다. 좋아하던 선배가 날벼락에 맞아버린다는 웃기고 참신한 설정 때문에 봤는데 사실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특유의 서투른 느낌이 감성 있고 좋았다.
2025.04.14 - 7년만의 외출
늙은 남자의 판타지가 그득그득
마릴린 먼로가 정말 매력적으로 나온다
2025.05.11 - 해피엔드
: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데 영원하고 싶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로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와 함께 이야기하는 영화. 감각이 뛰어난 감독이 하고 싶은 걸 다 때려 넣고 만든 것 같은 영화다. 마지막 인사가 왜 그리도 슬펐는지… 나이 더 먹고 다시 보면 몇 배로 슬플 거 같다.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고 매 순간 그렇게 눈부시게 웃으며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
2025.06.20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 잠이 안 와서 새벽에 시청했다가 후반부에 잠들었다. 그래서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근데 고전영화 특유의 과장스럽고 약간 심즈 캐릭터 같은..? 몸짓과 대사 톤이 재밌어서 잘 봤다. 특히 그 비행기가 날아오는 장면은 나까지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인물들이 하나 같이 의심병 걸렸다.
2025.06.22 -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화
: 드래곤 길들이기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와 영화관에서 봤고, 투슬리스가 나올 때마다 엉엉 울었다. 드래곤들 너무 고양이 같아서 우리 집에 있는 내 고양이가 엄청나게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