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vie

아름다운 '화합'에 대하여, <엘리멘탈>

사랑의 다양한 형태

by 라미

*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매우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물과 불의 사랑 이야기' 내가 엘리멘탈을 보기 전 들었던 영화 설명이다. 등장인물의 종족을 듣기만 해도 벌써 가슴 아팠다. 한눈에 봐도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불은 물을 증발시킬 수 있고, 물은 불을 꺼버릴 수 있다. 그야말로 완전한 반대 속성을 가진 둘이 얼마나 아련한 사랑을 하게 될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엘리멘탈 티켓을 손에 든 채 영화관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가 품었던 궁금증이 얼마나 단편적이며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편견과 연결된다는 걸 영화관에서 나오며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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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엠버'는 파이어 타운에 살고 있는 불이다. 파이어 타운에는 불 원소밖에 살지 않으며 그들은 대부분의 생활을 이 안에서 해결한다. 엠버의 부모님, 버니와 신더는 고향인 파이어랜드를 떠나 엘리멘트 시티로 이주해 온 '이민 1세대'이다. 엘리멘트 시티에 파이어 타운이 생기기 전부터 상점 '파이어 플레이스'를 차리고 여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갖은 고생을 해왔던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일까. 바로 다른 원소, 그 중에서도 특히 '물' 원소와 섞이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그도 그럴게, 처음 그들이 엘리멘트 시티에 도착했던 날 불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버니와 신더가 엘리멘트 시티에 도착하여 이민 절차를 밟는 순간을 초반에 보여준다. 담당자는 버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심지어 그들의 이름까지도 엘리멘트 시티 방식으로 즉석 작명을 해버린다. 이때 자막으로도 버니의 말이 나타나지 않는데, 단순히 그들의 말이 생소한 외국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한 장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담당자가 파이어랜드의 말을 이해해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넘기는 걸 보며 여기서부터가 차별의 시작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파이어 타운이 생기고 버니와 신더는 사랑스러운 딸 '엠버'와 함께 파이어플레이스를 운영한다. 버니의 신조는 딱 두 가지, 엠버가 어엿한 상점 주인으로 성장해 파이어플레이스를 물려 받는 것, 그리고 절대 '물'과는 어울리지 말 것. 엠버는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부모의 신조를 주입받으며 그게 마치 본인의 신념인 것마냥 머릿속에 새겨버린다. 파이어플레이스를 물려 받으며 당당한 불 원소로서 정통성을 지킨 채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본인의 꿈이라고 단정지어버린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다. 해외에 나갔을 때 외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 (인종차별, 언어, 문화의 차이 등)을 직접 겪지 못한 탓에 어렴풋하게만 인지하고 있던 '외국인'이라는 입지가 곤란해지는 순간을 엘리멘탈 초반에 크게 느꼈다. 그로 인해 불 원소의 정통성을 이어가고자 하는 버니가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나라도 1세대로서 우리 종족이 살아갈 터를 꾸리느라 온갖 차별을 받으며 고생했다면, 다른 원소들이 많이 미울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듯이, 이 또한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할 사상 중에 하나다.


그런 면에서 엘리멘탈은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동시에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한 채 전 세대가 볼 수 있도록 잘 기획하였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엠버(2세대)라고 해서 버니와 신더(1세대)의 입장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지 않은 것이 추천할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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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버는 감수성 풍부하고 눈물 많은 '물' 원소인 '웨이드'를 만나고 점점 변해간다. 이때부터 나는 영화를 굉장히 조심스러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난 본인의 어떤 틀이나 세상을 깨지 못하고 갇혀 있는 여성을 외부에 있던 남성이 구원해준다는 식의 전개를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을 매체가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에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둘의 만남을 지켜봤다. 그리고 웨이드는 내 걱정이 무색하게 완벽한 엠버의 '파트너'로서 구원이 아닌 동행을 꿈꾸었다.


종족뿐만 아니라 성격, 살아온 환경과 거기에서 비롯된 가치관까지 모든 게 반대인 두 원소는 사랑 한 번 하기도 쉽지 않다. 손 잡을 엄두도 나지 않던 두려움을 넘어섰더니 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가 산처럼 우뚝 서 있다. 웨이드는 엠버에게 사랑뿐만 아니라 너만의 인생을 살 것을 제안하고 기꺼이 응원하겠다고 하지만, 엠버에게 있어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쇠한 아버지 대신 아버지의 자랑인 이 가게를 물려받아 가족의 행복을 이루는 것. 이를 위해 엠버는 자신의 꿈과 웨이드를 두 눈 딱 감고 버리겠노라 다짐한다. 어째서인지 이 대목에서 흔히 말하는 K-장녀 이미지가 떠올랐다. 가족을 위해 본인의 인생을 일정 부분 이상 포기했어야 하는 경험을 아마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 집단, 엠버는 그들의 대표격처럼 영화 속에서 움직였다.


엘리멘탈이 한국에서 크게 흥행한 이유는 바로 이렇게 '공감'할 요소가 많은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인 사이에서만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영화에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녹아들어간 덕분에 더욱 엠버라는 캐릭터에게 이입할 수 있었다. 그의 행보가 이해되고, 어떤 심정으로 파이어타운 계승식에 올라간 건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답답하고. 버니와 신더의 철통같은 믿음이 부담스럽지만 저게 얼마나 거절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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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드가 엠버에게 보여준 파이어타운 외의 세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역시 '비비스테리아 나무'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너무 보고싶었지만 불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무를 훼손시킬지 모른다며 입장조차 거부 당했던 기억은 여전히 엠버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침수되는 바람에 이젠 영영 비비스테리아 나무를 볼 기회가 없을 줄 알았던 그를 데리고 간 건 웨이드였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물에 잠겨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했던 나무는 밝은 엠버의 불빛에 의해 꽃 한 송이를 피워낸다.


영화를 보던 나조차도 엠버는 불이니까 나무의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막는 게 엄격하긴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차별에 순응했다. 그러나 엠버에 의해 비비스테리아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걸 보며 반성과 함께 규제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불의 입장을 제한했던 물, 그리고 물 때문에 망가진 비비스테리아 나무와 거기서 꽃을 피우게 한 불. 이것만으로도 특정 존재에 대한 규제를, 특히 엘리멘트 시티에서 기득권에 해당하는 물이 과연 함부로 결정해도 괜찮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위험할 것이라는 판단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권리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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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버의 성장과 함께 그의 가족들 또한 한 단계의 성장을 이루어 낸다. 웨이드가 증발해버리고, 엠버의 가족들이 눈물과 함께 서로의 숨겨진 진심 - 버니의 꿈은 파이어플레이스가 아닌 바로 엠버, 그 자체라는 것. 엠버는 사실 파이어플레이스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는 것 - 을 나누던 순간, 사라진 줄 알았던 웨이드가 시그니처 울음 소리와 함께 돌아온다. 가족의 진심이 통하고 영화 러닝타임 내내 염원하던 소원이 이루어지자 엠버의 또 다른 행복인 웨이드도 곁으로 돌아오는 그 장면에서 마음이 무척 따뜻해졌다. 엘리멘탈은 가슴 저리는 눈물 자극 대신 완벽한 해피엔딩을 선택한 것이다.


최근 등장하는 자극적인 콘텐츠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일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흔한 소스가 되었다. 해피엔딩이 주는 긍정적 영향은 모두가 잊어버린 것처럼 더욱 불행한 서사를 찾는다. 그 속에서 엘리멘탈은 진심을 담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국과 같은 유교 국가에선 부모의 말을 어겼을 때, 자식을 본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느라 부모를 불행하고 속상하게 만들어 버린 불효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부모와 세대 차이가 크게 실감날수록 그렇다. 그러나 엘리멘탈은 진심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버니와 신더를 보면 알지 않나. 그들은 엠버가 아니어도 파이어플레이스를 운영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남은 노후를 함께 보내는 길을 택했다. 책임감을 잔뜩 두 어깨에 얹은 채 꾸역꾸역 가게를 이어나가던 영화 초반보다 훨씬 편안해진 얼굴로 그들은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은 다른 인격체이며, 그게 결코 속상할 일이 아니라는 걸 엠버네 가족 이야기를 통해 잘 보여주어서 참 좋았다. 엠버만이 아니라 버니도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특히 본인이 정의한 아버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그러던 그가 엠버의 자유 덕분에 스스로도 편안해진 게 좋았다. 가족은 소중한 존재이겠지만, 그 테두리와 역할에 집착하는 건 서로를 갉아먹는 행위이며 각자의 인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영화를 보면서 어떠한 '기회'라고 여겼던 적은 많이 없는데 엘리멘탈은 보고 나서 많은 사람들과 가족 및 인생, 그리고 진정한 '화합'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공유받을 수 있던 기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과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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